글·그림 김미진


홍대 밤거리는 빛의 향연을 쏟아내고 있었다. 수많은 상점과 포장마차, 길거리 가판대 사이로 밤의 풍경이 소란스러운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교차로를 지난 후 피카소거리 아래쪽으로 한참을 걸어갔다.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오밀조밀한 가게와 식당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가스등이 켜진 핫도그 가게와 액세서리 숍, 모자 전문점을 지나 미술용품을 파는 호미 화방 근처에 다다르자, 컨트리 스타일로 꾸며진 퓨전 식당이 눈길을 끌었다. 가게 앞에서 ‘오늘의 특별 메뉴’를 칠판에 적고 있던 여자 종업원이 환한 미소로 반기며 칸막이가 있는 테이블로 그녀들을 안내했다.


-아, 배고파 죽겠네!


제이는 메뉴판을 빠르게 훑은 뒤, 해물 샤브샤브 2인분과 생맥주 2.5리터를 주문했다. 맥주가 너무 많지 않나 싶었지만 서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 늦은 밤까지 교정쇄와 씨름한 제이에게, 이 정도 도파민 충전은 필요했다.


잠시 후, 종업원이 무쇠 냄비를 들고 와 테이블 중앙에 놓인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맑은 육수가 보글보글 끓기를 기다리며, 제이는 능숙하게 맥주잔 두 개를 가득 채웠다.


-이걸로 나 좀 쉬게 해줘. 아니면 네 책임이니까.


말끝에 얹힌 장난기가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온기를 퍼뜨렸다.


-덕분에!

-건배!


두 개의 맥주잔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하얀 거품이 잔 위로 넘실거렸다. 그 순간만큼은 하루 종일 쌓인 피로와 긴장도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종업원이 쌈 채소와 고기를 담은 음식 카트를 밀고 오더니, 테이블 위에 빈 접시와 여러 양념 소스를 놓아주었다. 그녀들은 뜨거운 육수에 살짝 담갔다 건져 낸 느타리버섯부터 먹기 시작했다.


-요즘 일이 고됐던 모양이야. 얼굴색이 안 좋아.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아니, 괜찮아. 한강에서 자전거 좀 타느라 얼굴이 그을렸어.

-태일 씨가 잔소리 안 해? 그 남자 스타일은 너 얼굴 타는 거 안 좋아할 텐데.

-내 얼굴이야. 내 얼굴 내가 태우는데, 뭐가 어때서?

-어머, 둘이 싸웠나? 오늘 좀 예민한걸.

-내가? 예민해? 왜?


그 순간, 한 남자의 목소리가 기억의 배경음처럼 귓가를 스쳤다.


-우리 내일 낚시하러 갈래요? 반나절이면 충분해요.


흡.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온 세상이 전혀 다른 빛깔로 보이기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태일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 가슴이 무거웠다. 숨소리조차 끔찍하게 느껴지는 그와는 달리, 도준이 잠시 머물다 간 마음의 빈터에는 미련만이 감돌았다.


도준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서윤은 그와 함께한 순간들이 꿈처럼 흐릿해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인연이었다. 그와의 연결 고리가 완전히 끊어졌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가슴 한쪽이 저릿저릿해졌다.


제이가 자기 맥주잔으로 서윤의 잔을 툭 건드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응? 아냐.


서윤은 고개를 저으며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래도 부럽다. 누구는 약혼자도 있고, 곧 결혼해서 천사 같은 아이도 낳을 거잖아.

-나는 울 엄마한테 천사였을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집에 가서 물어봐.

-부러우면 너도 결혼해. 너는 왜 이렇게 혼자인데?

-나 남자들한테 관심 없는 거 알잖아. 나는 너를 사랑하잖니.


제이의 입술에 어른거린 씁쓸한 미소에는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사연이 응어리져 있었다. 제이가 처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내비친 건,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그날 밤, 서윤은 제이 집에서 시험공부를 하다 지쳐 잠이 들었다. 새벽녘, 낯선 손길이 숨을 죽이며 그녀의 몸을 쓰다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조금 기묘한 꿈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살갗을 스치는 감촉이 너무 또렷해, 얇은 막 너머의 깊은 곳까지 전율처럼 번져갔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입술이 그녀의 입에 닿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손길의 주인이 제이라는 걸 알아차린 순간, 자신이 깨어 있다는 사실조차 내색할 수 없었다.


사지가 묶인 듯, 호흡마저 가늘어졌다. 그것은 사춘기 소녀의 의식 너머를 떠돌던 그 무엇. 두려움도 연민도 아닌, 아직 언어도 표정도 갖추지 못한 은밀한 떨림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서윤은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누구보다 섬세하게 이해했다. 동성 간의 사랑과 우정이 얽혀 빚어낸,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 그 밤의 소극적인 사랑은 이제껏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못한 채, 둘만의 비밀로 남아 있었다.


서윤은 제이의 애틋한 심정을 오랫동안 가까이 느껴왔지만, 끝까지 모른 척했다. 그 마음을 우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받아들인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제이 곁에는 가까운 인척 하나조차 없었다. 서윤은 늘 생각했다. 자신이 없으면 제이는 무중력 속에서 표류하는 우주선처럼 끝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서윤은 그녀를 떠나지 않았고, 제이 또한 한결같이 그녀 곁을 지켜왔다.


-서윤아, 아까 보여준 그 모네 미술 동화책 말인데, 너도 그 시리즈 작업에 함께해 볼래?

-내가 어떻게? 아냐, 난 자격 미달이야.

-자격 미달이라니? 너도 이미 유럽 여행기를 낸 작가잖아. 《파리에서 베네치아까지, 고양이처럼》

-제목은 느낌 좋았는데…

-백 권쯤 팔렸나? 아니지, 반품된 게 더 많았어. 아직도 창고에 쌓여 있잖아.

-미안.

-그러니까 이번엔 나 좀 도와줘.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쓰고, 삽화도 직접 그려보는 거야. 유럽 여행기에 실었던 그림처럼,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글과 그림을 이어주면 돼. 너라면 이 시리즈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거야.

-말이야 쉽지. 내가 정말 그런 걸 할 수 있다고 믿는 거야?

-그럼 믿지. 너 초등학교 때 백일장에서 상도 많이 탔잖아. 그때도 그림 잘 그렸고. 기억나? 미술 대회에서 네가 내 그림 대신 그려준 거.

-그럼, 기억나지.

-근데 나만 상 받고, 넌 못 받아서… 그땐 정말 미안했어.


송정초등학교 3학년 시절, 서윤은 교내 사생대회에서 제이의 그림을 대신 그려준 적이 있었다. 제이는 그 그림으로 우수상을 받았지만, 정작 그림을 그린 서윤은 아무런 상장도 받지 못했다. 그때 서윤은 커다란 나무문과 그 사이로 보이는 또 다른 세계를 그렸다. 양쪽 문은 도화지의 거의 전부를 차지했고, 중앙에 화면을 가르듯 약간 벌어진 문틈으로 현실 너머의 공간이 아득하게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초등학생이 넘기 어려운 기교의 벽 앞에서 그 그림은 손을 댈수록 무너져 내렸고, 끝내 참담한 흔적만 남았다.


그 실패가 단지 표현력 부족 때문이었다면, 서양화와 미술사까지 전공한 지금에는 같은 아이디어를 토대로 비로소 그 그림을 완성해 낼 수 있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혹여 나는 아직도 내 능력을 과신하며, 결코 잡을 수 없는 꿈을 좇고 있는 건 아닐까. 현실 저 너머, 실체의 열린 틈 사이로 얼핏 스치던 또 다른 세계가 결국 나조차 가질 수 없는 환영일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불안이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천천히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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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김미진


제이가 운영하는 출판사 해오름은 홍대 피카소거리 근처의 길게 뻗은 골목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낡은 주택을 개조한 이 건물은 겉보기엔 소박했지만, 기획 방향에 따라 작은 방과 거실이 저마다 다른 용도로 쓰이곤 했다.


벽면을 따라 늘어선 책꽂이에는 신간 도서와 편집 노트, 기획 자료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부드러운 커피 향과 오래된 종이 냄새가 공간 안에 한 겹 따스한 온기처럼 부유했다. 


편집부는 30대 초반의 젊은 편집자들이 주를 이뤘다. 그들은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낮은 목소리로 편집 기획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책에 대한 열정과 미지의 문장에 대한 설렘이 어려 있었다.


해오름이 펴내는 책들은 철학과 문학을 중심으로 일상에 지혜를 더하는 실용서까지 폭넓게 아울렀다. 제이가 불황 속에서도 이 작은 출판사를 여기까지 지켜올 수 있었던 이유는, 초창기부터 ‘선택과 집중’을 유일한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시적인 유행을 좇기보다 한 권의 책이 지닌 시간의 무게와 가능성을 두고 늘 고민해 왔다. 벽에 걸린 오래된 액자 속 글귀 한 줄이 출판사의 신념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책으로 세상을 바꾸다.’


그날 저녁, 서윤은 여덟 시가 다 되어 홍대 앞에 도착했다. 피카소거리 주변은 젊은 청춘과 다양한 예술가들의 아지트답게 떠들썩한 인파로 축제 같은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색색의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고, 거리마다 젊은 웃음과 음악이 넘실거렸다. 노점의 풍경과 음식 냄새가 뒤섞여 온통 생생한 활기를 뿜어냈다. 길 한가운데 가만히 멈춰 선 서윤은,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여러 감정이 혼란스럽게 뒤섞이는 걸 느꼈다. 낯선 도시에 홀로 떨어진 듯,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사람과 차량으로 들끓는 도로를 벗어나 고요한 주택가의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거리의 소음은 점차 잦아들고, 밤의 한기가 어깨를 스쳐 갔다.


인적 드문 골목길에는 오래된 벽돌 건물들이 묵묵히 늘어서 있었고, 어둑한 적막 속에 그녀의 구두 소리만이 또각또각 울려 퍼졌다. 마침내 서윤이 걸음을 멈춘 곳은 낡은 간판이 희미하게 빛나는 해오름 출판사 앞이었다. 건물 입구의 작은 창으로 불빛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오늘도 야근하고 있는 거야?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출입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에는 조용한 숨결처럼 아늑한 기운이 감돌았다. 직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사무실, 제이는 작은 스탠드 조명 아래 홀로 앉아 책상 위 교정지를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얼굴에는 짙은 피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은 단정했고 자세도 꼿꼿하니 흐트러짐이 없었다.


-서윤아? 이렇게 늦게 웬일이야?


제이가 고개를 들며 놀란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빛에는 신간 작업에 대한 깊은 몰입이 묻어났다. 손에 들린 교정지에는 여기저기 빨간 글씨로 표시된 대목들이 빼곡했고, 짚어낸 단어와 문장마다 편집자의 지혜와 세심한 배려가 깃들어 있었다.


-근처에 왔다가 혹시나 해서 들러봤어. 그런데 왜 또 너 혼자야?

-직원들에게는 퇴근 시간이 있지만, 사장은 퇴근 시간이 따로 없지.


제이는 웃음기를 섞어 말했지만, 그 속에 스스로를 다독이는 묘한 고집이 스며 있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괜찮아. 그런데 잠깐… 왜 이렇게 지쳐 보여?


그녀의 눈빛이 순간 흔들리더니, 서윤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살폈다.


-일은 무슨…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서윤은 고개를 저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지만, 사실은 어수선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퇴근길을 배회하다 이곳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물며 애써 말을 삼켰다. 괜스레 제이에게까지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갈 곳 없이 떠도는 이 감정을, 그녀 자신조차 어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침 잘 왔어. 저녁 아직 안 먹었지?

-응, 배고파.

-근처에 새로 생긴 집이 있어. 밥도 먹고, 기분도 풀 겸 같이 가자.


제이는 퇴근 준비를 하다 말고, 옆 책상에 놓인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참, 이것 좀 봐. 이번에 막 나온 책이야.


그녀가 건넨 책은 모네의 수련 그림이 표지를 장식한 어린이용 미술 동화책이었다. 페이지마다 모네 특유의 자유로운 붓질과 따스한 색감이 살아 있었고, 글자 크기부터 그림 구성까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세심하게 꾸며져 있었다.


-모네의 삶과 작품을 동화 형식으로 풀어낸 거야. 그림을 감상하며 이야기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지.


제이는 책장을 펼쳐 보이며 설명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책을 향한 긍지와 깊은 애정이 배어 있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화가들에 관한 시리즈를 만들어볼 생각이야.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미술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서윤은 표지를 넘겨 발행일과 저자 이름을 확인하고는, 페이지를 몇 장 천천히 훑어보았다. 내용도 술술 잘 읽혔고, 이야기 사이사이에 배치된 삽화도 산뜻하게 어울렸다. 무엇보다 모네의 작품 사진까지 함께 편집되어 있어, 글과 그림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한층 풍요롭게 다가왔다.


-좋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겠어.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제이는 고개를 끄떡이며 짧게 자른 머리 위에 검은 비니를 깊숙이 눌러썼다. 어깨에 둘러멘 가죽가방이 오늘따라 유난히 크고 무거워 보였다.


-뭐야? 또 집에까지 일거리 들고 가는 거야?

-우리 같은 영세 출판업자는 심신을 몽땅 바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지. 그게 바로 내 비밀 영업 전략이야.


-그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걱정 마. 난 아직 뽀빠이처럼 튼튼하거든.

-그래서 결국 일중독자가 되셨다?


서윤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뭐든 중독될 거라도 있어야지. 아니면 내 인생, 너무 가엾고 심심하잖아.


제이의 농담 섞인 말 한마디가, 오늘따라 서윤의 가슴 한쪽을 저릿하게 파고들었다.


서윤이 제이를 처음 만난 건 송정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제이는 늦둥이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나이 많은 어머니와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오빠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양친에 이어 오빠마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았다. 제이에게 서윤은 단순한 친구로만 설명할 수 없는 존재였다. 오랜 시간 서로의 삶에 깊숙이 스며든 두 사람은 어느덧 친자매 이상의 유대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다.


-그래도 아프면 안 돼. 네가 아프면, 내가 정말 슬플 거야.


서윤은 그날 밤 유독 작고 여려 보이는 제이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알았어, 알았어. 근데 얘가 왜 이래, 징그럽게. 숨 막히니까 좀 떨어져, 응?


제이가 눈을 흘기며 잽싸게 서윤을 밀쳐냈다. 그녀들의 티격태격하는 말소리와 장난스러운 몸짓이 한동안 이어졌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실내의 불을 모두 끄고 깊은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으로 나란히 걸어 나갔다. 봄밤의 정적 속에서 그녀들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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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김미진


갤러리 안에는 그녀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손문기 선생 회고전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지만, 이제 남은 과제는 모든 작품을 다시 포장해 각 소장처로 반송하는 일이었다. 작품의 소유자는 개인 컬렉터부터 화랑, 미술관까지 다양했다. 일일이 연락하여 반환 절차와 배송 일정을 조율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았다.


서윤이 그동안 밀린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맞은편 책상에 앉아 있던 신입 직원이 도움을 요청해 왔다. 다가올 초대전 기획안을 손에 든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서윤은 잠시 그녀가 내민 기획안을 바라보다가, 몇 가지 조언을 건넸다. 신입은 금세 요지를 파악하는 것 같았다. 서윤은 선배로서 마음이 든든했다.


창고에서 동료와 함께 작품 포장 작업에 매달리던 서윤은, 뒤늦게 출근한 최희숙 관장으로부터 전화 호출을 받았다. 잠깐 화장실에 들러 옷매무새를 점검한 뒤, 서둘러 3층 관장실로 향했다. 최 관장은 책상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두툼한 서류를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 주위에는 평소보다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갤러리 운영이나 전시 기획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관장은 돋보기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서윤을 쳐다보았다.


-어서 와. 그쪽으로 좀 앉지.


그러면서 책상 앞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괜찮습니다. 얼른 내려가 봐야 해서요.

-그래?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내년 전시 일정 때문이지. 상반기에는 반드시 명 선생 초대전을 성사시켜야 해.

-아, 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서윤의 목소리는 경직되어 있었다.


최근 들어 최 관장은 명명희 작가 초대전에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보여왔다. 그렇게까지 명명희라는 이름 석 자에 매달리는 이유는, 리온 갤러리의 잃어버린 명성을 되찾고 악화된 재정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리온 갤러리는 겉으로 보기엔 평온했지만, 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서서히 번지고 있었다. 90년대 초반 화랑가에 닥친 침체는 리온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88올림픽 무렵 도산대로에 문을 연 2호점은 한때 화랑가의 활황을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했으나, 결국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그 여파는 인사동 1호점 운영에까지 악영향을 미쳤고, 머지않아 새 주인을 맞게 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직원들 사이에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미술품 경매 시장까지 확산되는 변화 속에서 자신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불안이 서윤을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그녀가 대학 강단의 경력을 쌓으려는 이유도 최소한의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관장은 명명희 선생 초대전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서윤은 초대전 일정을 당장 확정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본에 머물고 있는 명 선생이 병환 중이어서, 현재로선 전시 기획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기 때문이다. 정확한 병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양녀 김순자 역시 이에 대해서 아직 입을 다물고 있었다. 명 선생이 한동안 소설 『설국』의 주요 무대인 니가타현 온천지에서 요양할 예정이라는 소식만 전해졌을 뿐이다. 명 선생의 일본 체류가 단순한 건강상의 이유인지, 다른 사정이 개입된 것인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


-그럼, 언제쯤 정확한 일정을 잡을 수 있다는 거야?


최 관장은 한층 강압적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글쎄요, 지금은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일단 전시 스케줄부터 정해야 해. 우선순위는 그게 먼저야. 그때 일주일이나 휴가도 줬잖아. 그동안 뭘 했다는 거지?

-초대전 방향을 다시 정리해 봤습니다. 작가님 상태가 변수라서, 몇 가지 경우를 나눠가며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검토만 하다 시간 다 가는 거 아냐? 일정은 숫자로 나와야지.

-작가님 병세가 어떤지 잘 몰라서… 순자 씨 쪽에서도 아직 구체적인 답을 주지 않고 있고요.

-답답하군. 직접 김순자부터 만나 확인하는 게 좋겠어. 이번에 새로 발표할 작품이 몇 점인지도 알아봐야 하고.

-네. 작품 수랑 기존 작품 중 출품 가능한 것까지 정리해보겠습니다.


서윤이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꾸벅 숙이자, 관장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탁 두드리며 덧붙였다.


-뭐든 변동 상황이 생기면 바로바로 보고해. 알았지?

-네, 그 즉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관람객 하나 없는 늦은 오후였다. 관장실을 나와 3층 갤러리 홀을 가로지르던 그녀의 발자국 소리가 텅 빈 마룻바닥 위에서 적막하게 울렸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횡계 별장의 목요일 오후가 눈앞에 되살아났다. 도준이 출입문을 나서려다 불현듯 돌아섰다.


-우리 내일 낚시하러 갈래요?


그의 눈빛, 나지막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이미 지나왔다는 자각에 현기증이 이는 듯 층계 난간을 꽉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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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김미진


샤넬 백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그건 호의를 가장한 훈육이었고, 자존을 길들이기 위해 계산된 값비싼 미끼였다. 수경의 눈빛은 서윤의 여리고 예민한 내면을 단번에 꿰뚫을 듯이 차가웠다.


-그래, 앞으로는 이런 데 익숙해져야 해. 알지? 우리 식구들과 함께하는 삶은 이런 게 기본이니까.


그 말은 서윤의 가슴 한가운데 미세한 균열을 남겼다. 입술을 한 번 달싹였지만, 민망한 낯빛으로 끝내 아무 말도 덧붙이지 못했다. 그 비싼 샤넬 백을 받자니 선뜻 손이 움직이지 않았고, 거절하자니 자존심만 내세운 허세로 비칠까 두려웠다.


수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블랙 플래티넘 신용카드를 꺼내 매장 직원에게 건넸다.


-이걸로 한꺼번에 계산해 주세요.


이 세상에는 할부 인생과 일시불 인생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직원은 눈이 잠시 커졌다가,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두 손으로 카드를 받았다. 태일은 지난주부터 해외 출장 중이었다. 자기 약혼녀가 장래 시누이 앞에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황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그가 지금 곁에 있다고 해도, 이 난감한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을지는 알 수 없었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도사린 피해 의식마저 낱낱이 드러낼 것 같은 갤러리아백화점의 거울 속 세상. 서윤은 자신이 그 안에서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현란하게 반짝이는 조명들은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처럼 냉정하고 무관심하게 그녀의 존재를 비추었다. 감추고 싶었던 감정의 응어리들까지, 표본실 안의 개구리처럼 낯설고 적나라하게 내보이고 있었다.

 

수경과 헤어진 뒤, 서윤은 서둘러 인사동으로 돌아왔다. 작은 종소리와 함께 리온 갤러리의 출입문이 열렸다. 서윤이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전시장 실내에는 뉴에이지 풍의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관람객은 많지 않았으나, 허공을 가르는 낮은 목소리와 바닥을 스치는 발소리가 늦은 오후의 고요를 가만히 흔들었다.


그녀의 손에는 뭔가 묵직한 것이 든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탓에 어깨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다행히 1층 카운터에는 보조 큐레이터 경숙 씨뿐이었다. 경숙 씨는 서윤이 들고 있는 봉지를 유심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뭐예요? 혹시 쇼핑하러 갔다 온 거예요?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서윤은 짧게 고개를 저었다. 태일의 누이가 선물이라며 건넨 샤넬 백은 종이가방마저 지나치게 크고 화려했다. 한낮의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그 흰색 로고를 자꾸 힐끔거리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하철 화장실에 들어가 겉포장을 벗기고 본품만 챙겨 올까도 잠시 망설였지만, 혹시라도 돌려줘야 할 일이 생길까 봐 끝내 손을 대지 못했다. 결국 그것이 자신의 결정적인 치부라도 되는 양, 편의점에서 산 검은 쓰레기 봉지에 넣어 여기까지 들고 왔다. 그 샤넬 클래식은 태일 누이의 말들을 끝까지 견뎌낸 대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버릴 수도 없고, 손에 들고 있자니 더욱 꺼림칙했다.


-뭔데요? 어디 좀 보여줘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제 코는 못 속여요. 냄새가 난다니까.


경숙 씨는 자기도 한번 보자며 계속 졸라댔다. 서윤이 끝내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자, 그녀는 토라진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요즘 세일하는 데 많던데… 나도 선배처럼 몰래 쇼핑이나 하러 갈까나?

-쇼핑은 주말에 하면 되지. 그럼, 수고해.


서윤은 가볍게 주먹을 쥐어 보이고는 2층 사무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네 명의 연구원이 함께 쓰는 공간은 오늘따라 유난히 어수선했다. 도둑질한 장물이라도 감추듯 사물함에 샤넬 백을 밀어 넣고 돌아선 순간, 가슴 한구석이 저려오며 도준의 얼굴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한 달이 지났는데도 횡계 숲길에 멈춰 서 있던 랜드로버와 운전대를 움켜쥔 그의 얼굴은 어제 일처럼 또렷했다. 도준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죄책감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그를 외딴 숲에 홀로 남겨두고 온 기억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우연인 듯 마주친 인연은 고작 나흘 만에 찰나의 불꽃이 되어 사그라졌다. 미처 서로에게 다가서기도 전에 이별이 먼저 찾아왔다. 그날, 도준이 태일보다 먼저 별장 앞에 도착했다면 어땠을까. 이번에는 반대로 자신이 도준의 랜드로버에 올라타고, 태일이 모는 BMW를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몇 번이고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길. 인생의 또 다른 갈래가 어쩌면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백일몽 같은 상상에 잠겨 있던 그 순간, 동료 직원이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직원은 장난스레, 아무도 그녀가 오래 자리를 비웠다는 걸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관장은 아직 갤러리에 나오지 않았고, 최 실장은 미팅 때문에 출타 중이었다. 그러나 오늘 일로 불편한 말이 오갈 거라는 예감이, 그녀의 마음에 가벼운 그늘을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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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김미진


아무도 없는 횡계 숲길에 한 남자를 두고 떠나온 지 한 달 남짓 지난 1997년 4월의 봄이었다. 오늘도 갤러리아백화점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화사한 조명 아래, 명품관 특유의 우아하면서도 은은한 향기가 감돌았다. 유명 디자이너의 신상품과 값비싼 제품들이 가지런히 놓인 공간은, 모든 욕망이 정당화되는 세계처럼 보였다. 그러나 서윤의 눈에 비친 이 찬란한 장소는 오늘따라 무기력한 권태를 불러일으켰다.


손에 든 쇼핑백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그녀의 마음은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두운 터널에 갇힌 듯한 막막함이 그녀의 발목을 붙들었다. 눈부시던 매장들은 어느새 출구 없는 미로로 바뀌었고, 그 속에서 서윤은 점점 옅어지는 존재감과 함께 깊은 허무에 잠식되어 갔다.


오전에 출근하자마자 수경의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잠시 외출을 나온 상태였다. 리온 사무실에는 오늘 안으로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최희숙 관장은 직원들이 지각을 하거나 자리를 오래 비우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갤러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수경은 느긋한 걸음으로 줄지어 늘어선 진열대들 사이를 오가며 쇼핑에만 몰두했다.


‘도대체 몇 시간째야. 빨리 인사동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서윤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지금 약혼자 태일의 누이인 강수경을 따라다니며, 수행 비서인지 짐꾼인지 모를 처지에 놓여 있었다.


어느 순간, 수경도 손목시계를 힐끔거리는 서윤을 의식한 듯했다. 구찌 매장에서 액세서리를 꺼내 살펴보던 그녀가 갑자기 환히 웃으며 서윤을 돌아보았다.


-서윤 씨, 힘들어? 내가 괜히 바쁜 사람 불러낸 건 아니지?

-아뇨,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서윤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강문태 이사장의 맏딸이자 태일보다 일곱 살 위인 수경은 생모가 집을 떠난 뒤 집안의 안주인 역할을 대신해 온 사람이었다. 강 씨 집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 또한 서윤에게는 이미 몸에 밴 습관이었다.

 

수경은 새로 단장한 샤넬 매장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명품 숍에서는 제품보다도 종업원들의 ‘의례적인 공손함’이 먼저 사람을 압도하곤 한다. 실내를 여유롭게 둘러보던 그녀가 유리 진열장 안의 검은색 가방을 가리켰다.


-여기요, 저것 좀 볼게요.


클래식 미디움은 샤넬의 시그니처 백이자, 이 가게에서 가장 고가의 제품 중 하나였다. 정장을 입은 남자 직원이 흰 장갑을 낀 손으로 가방을 꺼내 수경 앞에 값진 도자기라도 되는 양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이 모델은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는 클래식 아이템입니다. 1955년 코코 샤넬 여사가 디자인한 이후, 변치 않는 상징성을 지닌 작품입니다.


직원의 말투는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어색했다. 그는 정중한 태도로 가방 안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샤넬 클래식은 검은색 캐비아 가죽으로 만들어졌으며, 내부는 짙은 버건디 색으로 고급스럽게 마감되어 있었다.


수경은 어깨에 걸친 가방의 레더 체인을 살짝 조정하듯 만지며, 거울 너머로 서윤을 주시했다.


-어때? 괜찮아 보여?

-네, 심플하니 괜찮은 것 같아요. 누님이 입고 계신 옷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고요.


서윤은 가급적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대답했다. 그녀 앞에서는 감탄사조차 함부로 흘릴 수 없었다. 수경은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더니, 천천히 돌아서서 가방을 서윤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야.


순간 서윤의 가슴이 서늘하게 조여왔다. 얼떨결에 양손을 뒤로 감추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저는 이렇게 비싼 백을 들고 다닐 일도 없고…

-서윤 씨가 예뻐서 주는 게 아니야.


수경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싸늘하게 변했고, 날 선 목소리에는 어딘가 위태로운 기색이 숨어 있었다.


-저번에 아버지 생신 파티 때 신발도 그렇고, 백 하나도 변변한 게 없어 보이더라고. 이제 우리 집 식구가 될 텐데, 좀 품위와 격식에 맞게 살아야지. 쇼핑도 패션도, 예의범절까지… 모든 걸 제대로 따라와야 내 동생 체면에 흠이 가지 않지.


수경의 말이 끝나자, 서윤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가느다란 동요조차 감추듯 두 손을 맞잡고 시선만 아래로 떨구었다. 그날, 강문태 고문의 생일 파티에 갔을 때 신었던 신발은 태일이 백화점에서 직접 골라 준 것이었고, 조신하게 손에 들었던 가방은 뉴욕에 잠시 있을 때 점심값을 아껴가며 마련한 코치 백이었다. 금천 강 씨 집안 행사에 참석하려 강남 미용실에도 다녀왔고, 태일이 원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더 신경을 썼지만, 수경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부족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나를 자기들 방식대로 바꾸려는 속셈이야. 화폐의 위력으로 내 기를 꺾으려는 거지.’


불판 곁에 다가간 듯, 서윤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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