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김미진


도준이 조심스럽게 차를 옆으로 붙이며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자전거에 문제라도 생겼나요?


나지막하면서도 묵직한 그의 목소리에 서윤은 움찔했다. 그녀는 자전거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옆을 돌아보았다.


-, 안녕하세요.


평소와 다르게 입술 끝이 살짝 떨리고, 불편한 기색이 감돌았다. 방금 땅바닥과 씨름이라도 한 듯한 자신의 모습이 민망했고, 이런 쑥스러운 순간을 들킨 것 같아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지?’


인적 드문 외딴 숲길에서 생판 모르는 남자와 단둘이 마주한 상황은 묘하게 꺼림칙했다. 전날에도 그는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있던 그녀를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오늘도 그랬다. 울타리 하나 없이 누구에게나 개방된 야외 공간이지만, 이 깊은 숲 한가운데서 낯선 이와 다시 마주쳤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녀는 은연중에 간절히 빌고 있었다.


어서 가세요. 그냥 모른 척 지나가 주세요. 제발.’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뭐야, 저 눈빛?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거지?’


서윤은 바퀴가 터진 자전거를 억지로 끌며 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지쳐 있었지만, 가능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균형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남자가 다시 차를 옆으로 붙였다.


-괜찮으세요?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세요?

-아뇨. 괜찮아요. 그냥 가세요!


서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턱에 난 상처가 소금을 뿌린 듯 화끈거리며 몹시 따가웠다.


-잠깐만요.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요.


남자가 차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오더니,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의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자전거 타다가 넘어진 거예요?

-괜찮아요.


남자의 호의를 밀어내듯 그녀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긴요. 턱에 흙이 잔뜩 묻었어요. 우선 상처부터 좀 씻어내야겠네요.


그녀의 눈동자에는 경계하는 빛이 어른거렸다.


남자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차로 가서 생수병과 휴대용 티슈를 들고 돌아왔다. 그녀는 먼저 입안을 헹군 뒤, 그가 따라주는 물을 손바닥에 받아 턱 주변을 닦았다. 찬물이 상처를 스치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많이 쓰라려요?


도준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윤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자전거 헬멧은 왜 안 쓰셨어요?


그의 목소리는 온화하지만 단호했다.


-여기 그런 데잖아요. 혼자 천천히 타는 건데굳이 그렇게 눈에 띄고 싶진 않아서요.


부어오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거북하게 울렸다. 자기 귀에도 낯설게 들리는 음성에, 순간 입안 어딘가 크게 다친 것은 아닐지 불안이 치밀었다.


-혼자일수록 더 조심하셔야죠. 자전거 사고도 자동차 사고 못지않게 위험하거든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아니요. 괜찮아요. 정말로요.


서윤은 손을 내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거절의 제스처는 분명했지만, 눈빛에 미세한 망설임이 어렴풋이 비쳤다. 도준은 시선을 옮겨 펑크 난 자전거 바퀴를 가리켰다.


-이걸 혼자 끌고 갈 수 있겠어요?

-, 그냥

-이런 길에, 혼자서요?

-아니, 그러니까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입술만 달싹였다. 혼자 할 수 있다고 말하기엔 자신이 없었고, 도와달라 하기엔 자존심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냥 가라고 하시면,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도준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돌아섰다. 하지만 차로 향하는 걸음은 서두르지 않았다. 한 발씩 멀어지면서도, 그 뒷모습에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여유가 묻어났다.


-잠깐, 저기요!


서윤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쫓아갔다.


-, 도와주는 김에 좀끝까지 부탁드릴게요.


조금 숨이 찬 말투였지만, 끝까지 말을 이어갔다. 도준은 천천히 돌아섰다. 눈빛은 조금 전보다 깊어져 있었고, 입가에 그윽한 미소가 떠올랐다.


-, 이 정도면 인연이네요. 먼저 자전거부터 실을게요.

-? 어제는 운명이라더니, 오늘은 또 무슨 인연이에요?

-어제요?

-할아버지네 집 마당에서요.


도준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 제가 잠깐 착각했나 봐요.


서윤은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뭐그냥


말끝이 흐려지자, 도준이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냥이라니요. 이런 것도 인연인데.


서로의 눈빛이 잠깐 맞닿았다. 긴장과 웃음, 약간의 부끄러움이 뒤섞인 순간이었다. 봄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숲길을 스치며, 잠시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은 어색한 침묵을 흔들어 놓았다.


도준은 멋쩍게 웃으며 자전거 앞으로 다가갔다. 앞바퀴를 분리하는 그의 손놀림에는, 도구를 다루는 데 익숙한 사람 특유의 침착함과 신중함이 배어 있었다. 그는 유아용 자전거라도 되는 양 가뿐히 들어 짐칸에 싣고,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 타세요.


서윤은 문득 멈칫했다. 도움을 받는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낯선 남자의 차에 올라탄다는 건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어제 잠시 스쳤던 김 씨 할아버지 댁 마당에서의 불안이 되살아났다. 마음 한편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스스로를 달래면서도, 본능적으로 어깨가 굳어졌다. 숲길 양옆을 살피며 되돌아설 길을 찾았지만, 다른 선택지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자신과 남자, 그리고 고요한 숲만이 고립된 현실 속에 남아 있었다.


김 씨 할아버지 조카라잖아.’


그 순간, 우연히 찾아온 작은 일탈에 그녀는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을 느꼈을까. 아니면 불안하기만 했던 걸까. 그 불안 너머에, 은근히 스며드는 설렘도 있었을까.


소리와 기척이 사라진 오후의 숲길에서, 서윤은 그의 부축에 살짝 기대어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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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미진


서윤이 자전거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뉴욕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뉴저지 포트 리의 작은 가게 위층 원룸에서 지내며, 혼잡한 버스 대신 자전거로 맨해튼까지 통학했다. 거의 1년 가까이 워싱턴 브리지를 건너 허드슨강의 바람을 맞으며 질주했던 그 경험은 몸에 깊이 각인되었고, 이제는 횡계의 숲길 정도는 무리 없이 달릴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 2차선 차도를 따라 달리던 서윤은 인가를 벗어나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덜컹거리는 길 위로 엷은 햇살이 부서졌다. 사람의 발길마저 드문 구불구불한 길 끝에는 완만한 내리막이 펼쳐져 있었다.


서윤은 속도를 줄이고 페달을 수평으로 맞춘 뒤,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렸다. 자전거가 울퉁불퉁한 지면 위를 내달릴 때마다 짧고 날카로운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앞바퀴는 자갈에 부딪힐 때마다 불규칙하게 튕겼지만, 서윤은 핸들을 미세하게 조정하며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았다. 경사가 가팔라지자 뒤꿈치에 힘을 주어 페달을 깊이 밟으며 속도를 조절했다.


-좋아, 이 정도는 문제없어. 근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오늘은 손문기 선생님 전시회 오프닝이 있는 날이었다. 손 화실 식구들이 리온 갤러리에 와서 자신을 찾을 생각을 하니 괜히 마음이 속상했다.


-괜찮아. 전시회 끝나려면 아직 멀었어.


스스로를 다독이듯 중얼거리며 핸들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바로 그때, 길 한가운데 돌덩이 하나가 툭 튀어나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까만 암석의 날선 면이 햇빛을 받아 번쩍 빛났다. 서윤은 반사적으로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지만, 앞바퀴가 돌무더기를 스치며 중심을 잃었다. 자전거는 미끄러지듯 흔들렸고, 한순간 휘청거리며 그대로 무너졌다.


-!


짧은 비명이 터진 순간, 그녀의 몸이 자전거와 함께 튕겨 올랐다. 중력에서 풀려난 듯 허공에 매달린 채, 손은 핸들에서 빠져나갔고, 두 발은 페달을 벗어나 공중에서 엇갈렸다. 곧이어 닥칠 충돌을 직감한 가슴이 차가운 공포에 휩싸였다. 그녀는 자전거와 함께 럭비공처럼 날아가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얼굴부터 처박히는 충격과 함께 거친 흙이 입과 콧속 깊숙이 밀려들었고, 흙먼지와 뒤섞인 비명이 날카로운 파편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두 다리는 자전거 바퀴에 꼬여서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웠다.


-, 으으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얼굴 한쪽에 강펀치를 맞은 듯한 예리한 통증이 파고들었다. 입안에서는 마른 흙이 서걱거렸고, 귀에는 찌잉하는 이명이 울렸다. 머릿속은 쇠망치에 찍힌 듯 멍하고, 시야는 희미하게 흔들렸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혼자 당한 일이니 그다지 창피할 일은 없었지만, 곧바로 전혀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혹시 크게 다친 것은 아닐까. 갑자기 싸늘한 예감과 함께 울음이 치밀어 오를 듯했다.


-아냐. 괜찮을 거야. 정신 차리자.


땅바닥에 그대로 엎어진 채, 그녀는 충격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뼈마디 곳곳이 돌덩이에 짓눌린 듯 욱신거렸고, 손끝조차 움직이기 힘들었다. 혀끝에 와닿은 흙의 거친 감촉이 메스꺼운 불쾌감을 더했다. 그녀는 힘겹게 엉킨 다리를 풀기 시작했다. 흙먼지를 퉤 뱉은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손끝으로 조심스레 얼굴을 더듬자 오른쪽 뺨 아래가 울퉁불퉁 부어 있었고, 턱 밑은 쓰라렸다. 팔뚝과 무릎에서는 화끈거리는 통증이 올라왔고, 피부가 벗겨진 다리 상처에서도 붉은 열기가 느껴졌다. 손바닥에도 둔한 통증이 남아있었으나, 장갑 덕분에 깊은 상처는 피한 듯했다.


-많이 안 다쳤어. 부러진 데도 없잖아.


서윤은 조금 안심한 표정으로 몸에 묻은 흙먼지를 대충 털어내고는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앞바퀴가 터진 자전거는 만취한 취객처럼 무겁게 비틀거릴 뿐이었다. 멀쩡하게 잘 달리던 타이어를 찢은 범인은 바로 그 녹슨 못이었다. 오랜 세월 벌겋게 산화한 뾰족한 쇳조각 하나가, 하필 그 순간 누군가가 걸려들기를 숨죽인 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 기능을 잃어버린 자전거를 끌고 가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힘이 들었다. 가뜩이나 험한 비포장도로에서 질질 끌리며 휘청대는 앞바퀴 때문에 몇 걸음 옮기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겨우 비틀비틀 걷고 있던 그때, 갑자기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이게 우연은그러니까, 운명이라고나 할까요?


그가 더듬거리며 내뱉었던 그 말을 서윤은 또렷이 기억했다. 처음 본 남자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운명이라는 단어에, 그녀는 놀란 새가슴이 되어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왔다. 하필 이런 모습으로 다시 마주치다니.


-맙소사, 왜 이럴 때 나타난 거야.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며 눈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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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미진


횡계 읍내는 도로포장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거리마다 흙먼지가 피어올라 읍내를 뿌옇게 뒤덮었다. 그 위로 스며든 초봄 햇살이 풍경 전체를 엷은 장막처럼 감쌌다. 중앙로를 따라 트럭과 롤러가 쉴 새 없이 오가며 땅속까지 울릴 만큼 굉음을 토해냈다. 먼지가 소복이 내려앉은 낮은 건물과 오래된 상가들 사이로 슈퍼마켓과 스키 숍, 공인중개사 사무소, 식당들의 간판이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냈다.


이 동네는 겨울 한 철이 성수기였다. 12월 삭풍이 불기 시작하면 용평 스키장을 찾는 사람들로 이 좁은 거리도 제법 북적거렸다. 스키장은 사월까지 문을 열었지만, 그해 삼월은 유난히 따뜻했다. 슬로프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도 일찌감치 뜸해졌다. 도로에는 외지인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공사장 트럭들만 먼지를 풀풀 날리며 오갈 뿐이었다.


이튿날, 도준은 오대산 등반을 마친 뒤 횡계로 돌아왔다.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며 몸의 감각을 다듬고 근력 훈련도 하면서 오전 시간을 거의 다 보낸 것이다. 그의 몸은 땀으로 후줄근하게 절어 있었고, 어깨에는 쇠뭉치를 올려놓은 듯 묵직한 통증이 남아 있었다. 다리 근육은 은근히 잡아당기듯 뻐근했다. 점심때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먼저 몸에 밴 냄새를 씻어내고 싶었다.


중앙로 근처 사우나탕에는 대낮부터 술기운을 씻어내려 온 남자들이 몇 명 눈에 띄었다. 간단히 목욕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도준은 젖은 머리를 털며 느긋하게 거리를 걸었다. 늘 단골로 다니던 납작식당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다. 발길을 돌리려던 순간, 소박한 분위기의 함박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빛바랜 간판 아래 황태국밥과 황태 고추장구이 사진이 붙어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탓인지, 가게 안은 손님 한 명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어서 오세요. 저리로 앉으시죠.


부엌에서 나온 주인 남자가 창가 옆 빈자리를 가리켰다. 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발을 벗고, 좌식 테이블이 놓인 방으로 들어섰다.


흰색 모조지를 깔아놓은 밥상 앞에 앉으려던 순간,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는 무릎 주변을 마사지하듯 손으로 꾹꾹 누르며, 묵직한 다리를 천천히 상 밑으로 밀어 넣었다.


이 시큰거리는 관절통은 이미 몸에 밴 익숙한 통증이었다. 겨울마다 빠지지 않고 즐겨 왔던 모굴 스키의 흔적일 터였다. 좁고 울퉁불퉁한 슬로프를 내달리던 짜릿한 쾌감이, 그만큼 무릎 속 관절과 근육을 서서히 갉아낸 것이다.


재작년 함께 스키장에 왔던 정형외과 의사 친구가 그의 무릎 통증을 지켜보며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 신은 공평해. 슬로프 내려오면서 평생 쓸 무릎 다 썼잖아. 재밌게 놀았으면 아픈 것도 감수해야지. 버틸 때까지 버텨. 나중엔 인공 관절 넣어야 할지도 몰라.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도준의 귀에는 전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부실한 무릎으로, 저 검푸른 마의 벽처럼 솟은 로체 남벽에 다시 설 수 있을까. 그러나 아직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첫 시도에서 이미 8,200미터까지 올랐으니, 이번엔 정상의 마지막 구간까지 닿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삶이란 결국 모든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형상이지 않은가. 그 끝을 보기 전까진 누구도 알 수 없는 법이다. 도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불길한 생각을 조용히 밀어냈다.

주인 남자가 다가와 물컵을 밥상에 내려놓았다.


-뭘 드시겠어요?

-황태국밥 하나 주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는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부엌에서 식당 아줌마들이 도란도란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겨울엔 눈이 안 와서 다들 재미 못 봤잖아요.

-장사 안돼 큰일에요. 이러다 문 닫는 건 아닌지.

-부정적인 생각은 몸에 안 좋아요. 그럴수록 더 힘들어지지 않겠어요?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도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부정적인 생각은 정신 건강에도 해롭고말고.’


스키장도, 날씨도, 밥장사도 이들에게는 모두 소중한 삶의 일부였다.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짧은 여유. 식당가 골목의 잔잔한 소음과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그는 잠시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았다.

 

얼마 후 식당을 나온 그는 차를 골목 어귀에 세워둔 채 큰길가 슈퍼마켓으로 향했다한 달 가까이 고모부 집에 머무는 동안, 슈퍼 주인과도 어느새 낯이 익었다가게 문을 밀고 들어서자, 마른걸레로 당면 봉지를 하나하나 닦고 있던 주인이 고개를 들었다.


-어이구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좀 어떠세요?

-젠장, 사방 천지가 먼지투성이라 숨도 못 쉬겠어요.

-공사 때문에 힘드시겠어요.

-누가 아니라오. 좀 보시구려. 물건들이 죄다 이 모양이니, 이렇게 매일 닦아줘야 한다니까.

-횡계가 좋아지면, 스키 손님도 늘고 좋잖아요.

-그렇긴 하죠. 나쁜 게 있으면 좋은 것도 있고. 그래야 세상만사 서로 퉁 치면서 살아가지.


가게 안은 시골 동네치고는 제법 큰 규모였다. 각종 음료수와 식료품은 물론, 크고 작은 광주리와 둥근 밥상 같은 생활용품까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공사판 먼지 속에서도 주인의 부지런한 손길 덕분에 매대마다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도준은 생수와 캔맥주, 짭짤한 안줏거리 몇 가지를 골라 계산대로 향했다.


-오늘도 산 다녀오는 길이요?

-.

-아이고, 부지런도 하시지. 그럼, 또 봅시다.

-안녕히 계세요.


가게 문을 나서자, 공사판 먼지가 뿌연 연기처럼 퍼지며 시야를 가렸다. 도준은 두어 번 허공을 휘저은 뒤, 눈을 가늘게 뜬 채 맞은편 공중전화 부스로 걸어갔다.


그는 웬만한 전화번호는 거의 다 외우는 편이었다. 머리가 좋아서라기보다 숫자에 집착하는 성격 탓이었다. 머릿속에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두는 습관은 전문 산악인으로서 생사를 가르는 순간마다 큰 도움이 되었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순간, 필요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꺼내 쓸 수 있는 능력이 산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는 그런 방식을 신체적 반응처럼 익힐 때까지 오래도록 반복해 왔다.


도준은 수화기를 집어 들며 청소 용역회사를 운영하는 최윤 선배의 사무실 번호를 떠올렸다. 동전을 넣고 숫자 버튼을 누르자, 곧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사장님 조금 전까지 여기 계셨는데... 잠깐 나가셨나 봐요. 어디시라고 전해드릴까요?

-저는 도준이라고 합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러시겠어요? 그럼 5분쯤 후에 다시 전화 부탁드릴게요.


그가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뿌연 먼지구름 사이로 자전거를 탄 여자가 나타났다. 노란색 바람막이를 입은 여자는 전화 부스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왔다. MTB 자전거가 빠르게 전화 부스를 스쳐 지나갔다. 흙먼지가 일렁이는 도로 위로 그녀의 모습이 점점 흐려지며,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도준은 문을 밀치고 나가,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며 잠시 서 있었다.


어제 고모부 집 마당에서 본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 장면 위로 22년 전 기억 속 어린 소녀의 얼굴이 겹쳐졌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인연의 시곗바늘이, 어느새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듯했다.


또 만나는군, 꼬마 아가씨.’


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래된 시간의 틈 사이로, 무엇인가가 다시 깨어나는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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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미진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겁도 없이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얕은 물살이 발목을 감싸며 서늘한 기운이 밀려왔다. 소녀는 잠깐 멈춰 서는가 싶더니, 신발을 붙잡으려는 듯 다시 발을 내디뎠다.


-안돼! 위험해!


도준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섰다. 소녀는 어느새 물살이 빠른 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물이 순식간에 허벅지까지 차올랐고, 소녀는 중심을 잃고 휘청대다가 그대로 물속에 휩쓸렸다.


-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계곡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퍼져나갔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작은 몸짓이 그의 심장을 얼어붙게 했다.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악몽이 불쑥 되살아났다.


칠흑 같은 어둠, 도무지 아침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밤. 차 안에 갇힌 채 앞좌석에서 들려오던 부모님의 희미한 신음.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숨 막히는 침묵. 그날, 그는 더 이상 손을 뻗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내가 구할 거야.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아.’


도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친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거기 그대로 있어! 내가 갈게!


사납게 꿈틀거리는 계곡물이 허벅지를 휘감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소녀는 이미 거센 물살에 휩쓸린 채 몸부림치다 이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도준은 미친 듯 팔을 휘저으며 급류를 헤집었다.


-꼬마야, 어딨니? 대답해! 조금만 버텨!


그것은 찰나였으나, 그의 의식 속에는 영원처럼 각인된 한순간이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소녀의 몸을 물살은 쉬이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거친 물결 속에서 간신히 손끝에 아이의 살결이 스치는 순간, 그는 단숨에 그 여린 몸을 낚아채듯 끌어당겼다.


사건이 났던 그날 밤에는 부모님을 붙잡을 수 없었다. 전복된 차 안, 어둠의 간격은 너무 멀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거리, 생은 이미 저편으로 기울고 있었다. 두 분의 신음은 끝내 침묵 속으로 잦아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생명의 온기를 놓치지 않았다.


마침내 얕은 물가에 닿은 그는 소녀를 널찍한 바위 위에 눕혔다. 소녀는 축 늘어진 채 미동조차 없었다. 노란 원피스 밖으로 가냘픈 팔다리가 드러났고, 창백한 이마에는 젖은 머리카락이 엉겨 붙어 있었다. 작은 얼굴은 눈을 꼭 감은 채 잠든 인형처럼 고요했다. 도준은 말려 올라간 치맛자락을 내려주고, 떨리는 손으로 소녀의 등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숨소리는 점점 옅어졌고, 호흡은 금방이라도 멎을 듯 위태로웠다.


그 순간, 보이스카우트 캠프에서 배운 구조법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지도 교사는 아이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입을 맞대고, 숨을 불어넣고, 가슴을 누른다. 실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도준은 단호한 손길로 여린 가슴을 꾹꾹 눌렀다. 이어 소녀의 차가운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겹치고 숨을 불어넣었다. 몇 초가 끝이 없는 시간처럼 아득했다. 그러다 문득 소녀의 가슴이 미세하게 들썩이더니, 거친 기침과 함께 물을 토해냈다.


-괜찮아. 안심해. 괜찮아.


도준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특해. 잘했어. 이제 다 괜찮아.


소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의 티셔츠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약한 힘에, 오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가슴 깊은 곳에서 천천히 깨어났다. 어둠 끝에서 처음 만난 따뜻한 체온에 기대듯, 소녀는 다시 잠이 들었다. 도준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작고 연약한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구했어.’


뜨겁게 달궈진 바위 위에서 소녀를 내려다보던 그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의 작은 용기가 단지 소녀만을 살려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날 밤, 점점 식어 가던 두 분의 숨결. 어떻게든 붙잡으려 허공을 더듬던 어린 손. 자신을 옭아매던 어둠 속에서, 그는 분명 한 발짝 벗어나고 있었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했다는 안도감이, 오래전부터 목말라하던 어떤 감각처럼 다가왔다. 잃어버린 온기. 끝내 닿지 못했던 손. 내내 갈망해 온 것들이었다.


내가 아이를 구한 게 아니라, 오늘은 나도 함께 살아난 거야.’


그런 생각과 함께 가슴 깊은 곳에 걸려 있던 무언가가 아주 조금,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윤아! 서윤아! 어디 있니?


도준은 소녀를 내려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네 이름이 서윤이로구나. 만나서 반가웠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를 바위 위에 남겨두고 소나무 그늘 속으로 물러났다. 그의 발자국이 사라진 곳을 향해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솔잎을 흔들었다. 잠시 후, 사람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누군가 소녀를 안아 들며 외쳤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서윤아.


고모부 내외와 친하게 지내던 윗집 아줌마의 모습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도준은 나무 그림자 속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웃으며 속삭였다.


-잘 가라, 꼬마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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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미진

 

1997년 가을, 도준이 남긴 등반일지 한 귀퉁이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횡계에 있는 고모부 댁 마당에서였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니 한 여자가 마당에 서 있었다. 나는 온몸이 땀에 절어 엉망인 차림이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묘하게 낯설지 않았다. 우리는 어디선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예감 같은 것이었다.


살면서 여자로 인해 이렇게 가슴이 뛰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 순간, 나는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몸이 굳어졌다. 나는 늘 죽음의 바깥에서 살아온 자였다. 산의 벼랑 끝에서, 눈보라 속에서, 매번 살아남은 이유를 묻는 삶이었다. 그런데 그녀를 본 순간, 처음으로 살아 있어도 좋다는 감정이 스쳤다. 생존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응답처럼.


그때 내가 횡계에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땠을까. 여전히 서로 다른 세계에 머물며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아니,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날이 아니었더라도 우리는 결국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인연이었다. 기억에서 사라져도, 멀리 흩어져 있어도, 결국 다시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으니까.


조금 전에, 우리의 인연을 설명할 만한 비유 하나가 떠올랐다. 한 사람이 걸어온 모든 길을 실로 묶어 이어 놓는다면, 나는 아마 다른 이들보다 훨씬 긴 실이 필요했을 것이다. 세계 곳곳을 떠돌며 그 실의 길이를 늘여 가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조그마한 실타래의 일상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녀의 씨실과 나의 날실이 오래전에 한 번 엇갈린 적이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어린 꼬마 아가씨는 이제 어여쁘고 성숙한 여자로 자라 있었다. 그녀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녀를 구했던 일을 어떻게 기억하겠는가. 하지만 나에게는 분명했다. 그녀를 구했던 순간, 사실은 나 역시 그녀에게 구원받고 있었다는 것을.


인생에서 중요한 건 실의 길이나 두께가 아니다. 사랑이 없다면 그 긴 여정은 결국 공허와 외로움 속을 떠도는 덧없는 여로일 뿐이다. 나는 그녀를 보며 깨달았다. 죽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스물두 해 전 여름, 열세 살 도준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의 바다에 잠겨 있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날, 그의 세계는 부서진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흩어졌다. 어린 그에게 횡계의 고모만이 유일한 혈육이었다. 고모는 막내아들처럼 살뜰히 그를 보살피며 따스한 식사와 부드러운 말을 건넸지만, 도준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것은 절망이 쌓아 올린 성벽이었다. 세상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가두는 장막이었다. 소년은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길 위에 홀로 선 작은 그림자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여름방학이 다가오던 7월의 어느 날, 도준은 학교를 빼먹고 집 근처 용천 계곡으로 향했다. 아버지를 떠올리기에 그보다 더 나은 장소는 없었다. 산이었다. 그곳에 가면 아직 아버지의 숨결이 남아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주말마다 올랐던 푸른 능선. 땀에 젖은 목덜미를 닦아내며 건네던 시원한 물 한 모금, 정상에서 내려다보던 끝없는 풍경. 아버지 몸에서 번져 오던 그 냄새와 땀의 열기, 단조롭지만 어딘가 따스했던 그 목소리. 그렇게 눈을 감으면, 손끝에 스며드는 듯 아버지의 모습이 또렷해졌다.


-도준, 너는 발이 빠르구나. 아버지를 곧 따라잡겠어.


너그러운 미소로 그를 격려하던 아버지의 음성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랐다그러나 이제 산은 더 이상 따뜻한 위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 한편에 보듬어 두고 싶은 추억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한 은신처에 가까웠다. 산자락에 홀로 앉아 아픈 시간의 장면들을 더듬다 보면, 그 고통이 서서히 뻗어 와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럼에도 그는 그 심연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모든 순간을 삼켜버릴 듯했지만, 그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 잔인한 물결에 몸을 내맡겼다.


그래. 나를 가져가거라. 그것이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해 한여름의 햇살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강렬했다. 나무 그늘조차 뜨거운 기운을 피하지 못하고, 흐릿한 열기로 공기마저 일렁였다. 도준은 녹아내릴 듯한 무력감 속에 스스로를 방치한 채, 개울가 근처 널찍한 바위 위에 무심히 걸터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맑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의식의 저변을 가볍게 흔들었다.


-, 여기 있다!


고개를 돌리자, 개울 건너편에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어린 소녀가 물가를 따라 가볍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수면 가까이 날아오르는 나비를 쫓아, 한 걸음 한 걸음 빛 속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햇빛에 반사된 개울물은 투명한 보석처럼 반짝였고, 소녀는 물비늘 사이를 부유하는 초롱한 그림자 같았다. 도준은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내리깔았다. 무릎 위에 무기력하게 얹힌 자신의 손등. 아무런 의욕도 없이 축 늘어진 채, 거기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 소녀는 자신과 너무도 먼 세계의 사람이었다. 환한 빛살 아래 자유롭게 뛰노는 저 작은 몸짓은, 그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보드랍고 따스한 무엇처럼 느껴졌다. 어린 날의 바람도, 체온도, 품에 안기던 기억조차 비껴간 삶. 소녀는 그에게 꿈의 풍경 같았다. 아니, 꿈조차 꿔보지 못한 세계의 조각이었다.

 

그러나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작은 비명이 들려왔다.


-, 내 신발!


도준은 그 소리에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소녀를 바라보았다. 물가에 벗어놓은 소녀의 분홍신 한 짝이 개울물에 휩쓸려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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