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그림 김미진
정지된 세계의 일부처럼, 시간은 멈춘 듯 천천히 흘러갔다. 도준은 찌를 바라보며 떡밥을 꾹꾹 주무르다가, 가끔 물가로 다가가 낚싯대를 들었다 놓곤 했다.
-이 호수엔 늙은 붕어가 한 마리 있어요. 육십 년이 넘도록 살아남았다니, 거의 귀신 같은 녀석이죠. 한 번 물에 담갔던 찌도 단박에 알아챈다고 해요. 그래서 진짜 꾼들은 여기 올 때마다 찌며 떡밥을 새로 만들어 와요.
-왜요?
-낚시 가게에서 파는 걸로는 도저히 잡을 수 없거든요. 그 특유의 냄새 때문이겠죠.
-아, 그렇군요.
-낚시꾼들이 여기서 잃어버린 낚싯대가 수도 없이 많아요. 어쩌다 그 녀석이 잡히는가 싶으면, 어느새 낚싯대를 물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죠.
-호수 바닥 어딘가엔 낚싯대가 아주 많겠네요.
-늙은 붕어가 그걸로 용궁을 지었을지도 모르죠. 하하.
도준의 웃음소리가 잔물결처럼 호수 표면에 번져갔다. 그는 낚싯대를 걷어들여 떡밥을 살펴보고는 다시 수면을 향해 낚싯줄을 던졌다. 물 위에서 찌가 잠시 뒤뚱거리더니, 금세 빨간 윗부분만 남기고 꼬르륵 가라앉았다.
그는 낚시 상자에서 주먹만 한 버너를 꺼냈다. 작은 냄비에 생수를 붓고 불을 붙이자, 파란 불꽃이 날름거리며 냄비 바닥을 핥았다. 차츰 자잘한 기포가 피어오르고 물이 데워지는 소리가 잔잔히 번져왔다.
-낚시터에서 자기가 먹을 것 이상으로 잡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불편해져요. 어쩌면 우리가 하는 낚시도 인간에게 남아 있는 살해 본능이 문화적으로 변형된 형태 아닐까요?
-살해 본능의 표현이라고요?
서윤은 눈길을 떼지 않은 채 되물었다.
-원시인들은 먹기 위해 사냥을 했죠. 몸집이 더 크고 사나운 동물과도 싸워야 했어요. 라스코 동굴벽화도 사냥을 위한 주술이었다는 해석이 있잖아요. 사냥을 나서기 전에, 많이 잡게 해달라는 뜻으로 그렸다는 거죠.
-주술 기도를 위한 부적 같은 거였네요.
-부적치고는 사이즈가 좀 크긴 했죠.
-후후…
-이제 더 이상 사냥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지만, 인간에게는 여전히 그 본능이 남아 있는 거 같아요. 아직도 전쟁을 하고, 마녀사냥을 하고… 아, ‘라이프’ 잡지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생각나네요. 한 남자의 머리에 총구가 겨눠져 있었어요. 그는 몇 초 뒤 목숨을 잃었죠. 그 장면은 ‘이 남자는 곧 죽는다’는 설명과 함께 사진 속에 박제되어 박물관에 전시됐어요.
-어머, 맙소사…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휴머니즘이라는 게… 그 안에 감춰진 다른 얼굴이 있는지도 모르죠.
짧은 침묵이 흘렀다. 서윤은 그의 말을 가만히 곱씹어 보았다. 그것은 어떤 결론이라기보다, 오래 묵혀 둔 생각이 잠시 고개를 내민 것처럼 느껴졌다. 거칠거나 과장된 기색은 없었다. 다만 살아오며 스쳐 갔을 장면 하나가, 그의 이야기 너머로 무심히 비쳐 보였을 뿐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이런 말들조차, 그가 무슨 의도가 있어서 꺼낸 것은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캠핑 버너 위에서 냄비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도준은 캔커피 두 개를 뜨거운 물에 담가 데운 다음, 그중 하나를 수건으로 감싸 그녀에게 건넸다. 손안의 캔을 천천히 굴리자 따스한 온기가 몸속 깊은 곳까지 퍼지는 느낌이었다. 다시금 낚싯줄이 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날았다. 수면에 닿은 찌가 이내 균형을 찾아갔다. 파장을 일으키며 번져가던 둥근 원들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혼자 여행 다닐 땐, 주로 무슨 생각을 하세요?
-산에 오를 땐 산만 생각해요.
-참 이상한 분이네요. 겨우 잡은 물고기를 다시 놔주고, 내려올 산을 그렇게까지 힘들게 또 올라가고… 두렵진 않나요? 깊은 골짜기에서 길을 잃거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다쳐 움직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진짜 두려움은… 글쎄요. 두려움 그 자체를 마주 보는 일이 아닐까요. 실패하면 어쩌나, 외로움을 견딜 수 있을까, 이러다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런 생각들은 어쩌면 핑계일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늘 미래에 사로잡혀 있죠. 마치 지금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요.
-그 누구도 자기 미래를 예측할 수 없잖아요. 안 그런가요?
-맞아요. 산을 오르다 보면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가 있죠. 여행도 그렇고요. 멀리서 보면 길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한 발씩 내딛다 보면 어느새 닿아 있어요. 그 순간에 나를 맡기는 것, 그게 전부예요.
그의 말에는 오랜 세월 몸으로 통과해 온 시간과, 그 속에서 한 걸음씩 버텨온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단단한 내공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허무도, 신비주의도 아니었다. 오히려 삶의 본질을 응시하는 투명한 통찰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