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그림 김미진
토요일 아침이었다. 안전 요원의 호각 소리가 맑고 날카롭게 수면 위를 갈랐다. 물안경을 쓴 아이들이 킥보드를 두 손으로 잡고 발차기를 하며 줄지어 나아갔다. 반대편에서는 꽃무늬 천수모를 맞춰 쓴 중장년 여성들이 아쿠아로빅 강습을 앞두고 샤워장에서 걸어 나왔다. 그들은 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잠시 발장구를 치다가 이내 익숙한 동작으로 풍덩, 물속으로 들어갔다.
지하 2층에 자리한 이곳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위해 지어진 실내 수영장이었다. 50미터 길이의 푸른 수면은 여덟 개의 레인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날 오전, 자유 수영을 위한 두 레인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은 아쿠아로빅 강습을 위해 줄을 걷어낸 채 활짝 열린 상태였다.
도준은 오전 8시 무렵, 수영장이 포함된 복합 체육시설에 도착했다. 피트니스센터에서 한 시간 남짓 근력 운동과 유산소 트레이닝을 마친 그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숨을 가다듬듯 짧은 샤워를 마치고 수영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 아쿠아로빅 강습은 한창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마흔 명이 훌쩍 넘는 회원들이 물속에서 서로 간격을 둔 채,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며 체조를 이어갔다. 풀 가장자리에는 까무잡잡하고 다부진 체격의 여성 강사가 서 있었다. 귀에 마이크를 걸고 쉴 새 없이 힘찬 구령을 외쳤다.
-하나둘셋, 둘둘셋! 하나둘셋, 둘둘셋!
강사의 걸걸한 음성이 출렁이는 수면 위를 가르며 울려 퍼졌고, 그 여운은 천장에 부딪혀 되돌아온 메아리처럼 물속에 잔물결을 일으켰다.
도준은 입수 준비를 마친 뒤 우측 두 번째 레인으로 들어갔다. 가볍게 몸을 적시며 심호흡을 한 뒤, 느긋하게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움직임이 돌변했다. 온몸을 수면에 던지듯 튕겨 나가며 연속된 돌핀킥으로 물을 밀어내자, 파장이 길게 뒤로 뻗어나갔다.
이미 풀 안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는 주저함 없이 흐름을 타며 날렵하게 앞사람을 추월했다. 빠른 스트로크가 계속 이어졌다. 수면 아래 그의 팔은 정확한 궤적을 그리며 물을 끌어당겼다. 손바닥이 가슴 아래를 지나 허벅지 곁으로 빠져나가는 익숙한 동작. 한 번 리듬을 타자, 그의 몸은 물결과 나란히 움직이며 유려하게 나아갔다. 그 유영은 돌고래처럼, 지극히 본능적이고 매끄러웠다. 호흡 역시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며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물속에서 홀로 치르는 철인 3종 경기는 단순한 근력 싸움이 아니었다. 수면 위와 아래를 오가며 감각을 조율하고, 거센 물살에 맞서면서도 흐름 속으로 몸을 맡겨야 했다. 도준은 그 안에서 스스로를 시험하며 담금질하고 있었다. 50m 자유형 기록은 25초대. 남자 선수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속도였지만, 그는 결코 한 가지 방식에 머무르지 않았다. 자유형에 접영과 배영을 섞어 가며, 몸의 움직임을 유기적인 패턴으로 엮어 갔다. 경쟁자가 없어도 상대는 늘 자기 자신이었다. 혼자만의 싸움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산에서 암벽을 오를 때처럼, 여기서는 물과 하나 되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그가 물살을 가르며 날렵하게 레인을 왕복할 때마다, 시선을 빼앗긴 수강생들이 하나둘 박자를 놓치기 시작했다. 30대 중반의 강사 또한 구령을 붙이다 말고, 도준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어느새 서른 번째 왕복을 마친 그는 마지막 스트로크를 부드럽게 마무리하고, 가볍게 몸을 끌어올려 풀 밖으로 나왔다. 반짝이는 물방울이 몸의 윤곽을 따라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물속에 있던 몇몇이 아쿠아로빅 동작을 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젖은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그는 무심히 시선을 돌렸다. 적당히 그을린 피부 위로 단단한 어깨선과 잘 발달한 근육이 물빛을 받아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실루엣은 탄력 있는 곡선을 그렸고, 힘과 균형이 어우러진 하나의 완벽한 형상이 되었다.
-저 정도면 국가대표급 아니겠어요?
-현역으로 뛰기엔 나이가 좀 있어 보이잖아요.
-아까부터 쉬지도 않고 계속 턴만 하던데요…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아쿠아로빅 회원들은 아쉬운 눈길로 그의 뒷모습을 좇으며 수군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