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그림 김미진

 

그날 오후, 서윤은 미로처럼 얽힌 뒷골목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차들이 오가는 인사동길을 중심으로 서북쪽에는 육백 년 역사를 품은 경복궁이, 동쪽에는 음악인들의 성지라 불리는 낙원상가와 고종의 잠저였던 운현궁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쪽으로는 크고 작은 화랑과 식당가 사이로 골목들이 그물처럼 뻗어 있었고, 남쪽으로는 차량과 인파가 뒤섞인 왕복 8차선의 종로 거리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리온 갤러리 근방을 벗어나자마자, 서윤은 어느 쪽으로든 방향을 정해 내달려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도준이 향한 곳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인사동길 남쪽 입구 부근을 서성였다. 이번에도 그를 놓친다면, 그건 평생 지워지지 않을 후회로 남을 것이다. 숨이 막힐 듯한 절박함이 온몸을 조여왔다. 갤러리에 남겨두고 온 복잡한 사연들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희미해졌다. 지금 그녀의 의식 한가운데 있는 것은 오직 한 사람, 도준이었다.


처음엔 무작정 안국역을 향해 달렸다. 왜 그쪽이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도준이 지하철을 타러 갔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그녀를 이끌었다. 무심한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그가 스쳐 간 흔적을 찾으려 애썼지만, 사방 어디에도 그의 존재를 짐작할 만한 단서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디든 떠돌아다니길 좋아하는 녀석이죠.


병문안을 갔을 때 김 씨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문득 귓가에 되살아났다. 그녀가 지금껏 상상 속에 그려본 도준의 모습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행자이자, 거침없는 모험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이었다. 가끔 고요한 물가에 앉아 강태공 낚시를 즐기고, 진한 커피 향을 좋아하며, 히말라야의 험준한 고산에도 몇 번이나 올랐다고 했다. 그런 특별한 이력과 개인적인 취향을 고려할 때, 분명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장소보다는 한적한 풍경을 택했을 확률이 높았다. 경복궁, 아마 그쪽일까. 서윤은 곧장 방향을 틀었다.


그날은 마침 전통문화 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인사동길에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다양한 복식 차림의 행위예술가들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귀청을 찢을 듯한 꽹과리 소리가 거리 전체에 울려 퍼졌다. 길목마다 빼곡히 들어선 구경꾼들 때문에 그녀의 발걸음은 자꾸 늦춰졌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의 귀에는 어떤 소리도 또렷이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 공간 안에 있었으나, 그 사람들 속에는 없었다. 화려한 몸짓과 북소리, 흥에 겨운 웃음소리가 겹겹이 쌓여도 그녀의 시야는 오직 한 사람만을 좇고 있었다. 도준. 그가 저 어디쯤, 상심한 얼굴로 점점 멀어지고 있으리라는 슬픈 예감… 희미하게 스며드는 그 감각 하나만을 움켜쥔 채, 그녀는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어머, 리온 갤러리 큐레이터 님 아니세요?


누군가 갑작스레 서윤의 손목을 붙잡았다. 사람들 틈에 갇힌 그녀는 순간 얼어붙은 듯 멍해졌다. 환히 웃는 얼굴이 낯설지 않았지만, 지금만큼은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치고 싶었다.


-바쁘신가 봐요. 어디 가시는 거예요?

-저기요, 저기…


서윤은 얼떨결에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정작 어디를 향한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뭔가 급하신가 본데, 다음에 찾아뵐게요.

-네, 네…


급히 몸을 빼내며, 그녀는 뒤늦게 그가 누군지 기억해 냈다. 매년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여는 지방 중학교 미술 교사. 화가 경력 한 줄을 보태기 위해 어렵사리 전시회를 이어가는 그가, 평일인 오늘 또 무슨 까닭으로 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지 아리송했다. 서윤은 현실의 벽, 그리고 그 위로 드리워진 수수께끼를 떨쳐내며 탐색 범위를 인사동길 남쪽, 종로 거리 방면으로 넓혀갔다.


걸음을 재촉하며 길 양옆을 살폈지만, 그건 한여름 백사장에서 귀걸이 한 짝을 찾아내려는 시도만큼이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준을 다시 만날 가능성은 저물어가는 별빛처럼 희미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매던 동그라미처럼, 도로변의 카페와 상점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이미 인사동 일대를 벗어나 멀리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서서히 마음을 잠식해 갔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바람의 결이 바뀌었다. 늦은 오후의 청명한 빛은 사라지고, 회색으로 흐려진 하늘 아래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이내 소낙비처럼 퍼붓기 시작했다. 예기치 않은 날씨의 변덕 속에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급해지고, 주변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서윤은 낯선 나라 어딘가에 홀로 버려진 듯한 고립감을 느꼈다. 발밑의 포장도로에서 타고 올라오는 섬뜩한 이질감이 그녀를 움츠러들게 했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무엇을 쫓고 있는가.


그것은 파랑새인가, 아니면 현실 도피인가.


길 한복판에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억눌러왔던 감정과 함께 터져 나온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섰던 탓에 핸드백도, 지갑도, 전화를 걸 동전 한 푼조차 없었다. 다시 갤러리로 돌아가야 할까, 태일이 기다리는 현실 속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세계로… 이제 정말 그를 다시는 볼 수 없겠지. 어쩌면 그것이 처음부터 내 운명이었을지도 몰라.


비 내리는 거리 한가운데, 세계의 끝에서 절망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조용히 우산을 씌워주었다. 서윤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빗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시야가 일순 흐려지며 환영을 본 듯 아득해졌다.


-어린애처럼 왜 여기서 혼자 비를 맞고 있어요?


문득 들려온 귀에 익은 나지막한 그 음성은 오래된 기억의 틈새에서 흘러나온 듯 그녀 마음 깊은 곳을 흔들어 깨웠다.


어느새 빗방울이 가려지고, 세상은 우산 아래 작은 원 안에서 숨을 고르는 듯했다. 어깨가 듬직하게 넓고, 그녀보다 키가 한참이나 큰 남자. 그리고 그 따스한 목소리. 맙소사. 그렇게 말한 사람은 도준이었다.


-아니, 어떻게 여기…?


그녀가 놀란 숨을 토하듯 말했다. 다시는 마주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바로 그 순간, 그는 말없이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는지, 어디서부터 따라온 것인지, 그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이제… 이제 놓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조금 가까이 그에게 몸을 기대었다. 우산 안에서 서로의 온기가 비로소 맞닿았다. 세상이 잿빛으로 짙게 물들어도 그 순간만큼은 빗줄기조차 부드러운 가림막이 되어 주위를 감쌌다. 시간이 멈춘 듯, 둘만의 작은 비밀이 생겨났다. 침묵 속에서 그녀의 마음은 처음으로 알았다. 다시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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