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는 짝사랑 쉬는시간 청소년 시선 2
신지영 지음 / 쉬는시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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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출판사의 청소년 문학 브랜드인 도서출판 쉬는시간에서 두번째 청소년 시집이 나왔다. 신지영 시인의 <최고는 짝사랑>


제목을 보고 사춘기의 몽글몽글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시집인 줄 알았다. 제대로 한 방 맞았다. 시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가슴 한켠에 통증이 느껴졌다. 거칠게 깨진 유리조각으로 긋는 듯 했다. 


1부 유령의 교실에서는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교실과 학교에서 강요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멈춰 있는 소년


책을 펴고

시선을 글자에 묶고

무릎을 억지로 굽힌다


붉은 피가 휘도는 몸은 

당장이라도 교실 밖으로 튕겨 나갈 듯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움직이지 않기 위해

발끝에 힘을 모은다


묶인 마음을 풀지 않는 한

누가 보아도


썩 착한 아이

썩 괜찮은 아이

썩어 가고 있는 아이(p16, 모범수)


 ‘작년에 있던 유령들이 올해도 가득하다'(p18유령의 교실)



'어젯밤 꿈에 쭈그려 앚아 담벼락에게 물었다


그늘로 지어진 구석을 나에게 주겠어?

좁고 낮은 질문이라도 키울 수 있게


(중략)


그래도 가만히 눈치만 보고 있으면

오래도록 녹지 않을 수 있었다


입학하고 내내

봄눈이었다(p21, 봄눈1)



2부 파벨라의 고양이에서는 브라질의 빈민촌처럼 보호받아야 할 성장이 배제된 채, 생존에 매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파벨라는 브라질의 빈민촌을 가리킨다. 대낮에도 총격이 벌어지는 곳으로 범죄자가 많고 약물 문제도 심각하다. 범죄 조직 간에 잦은 총격전이 벌어지고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자라 조직으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쓰레기 매립지가 있는 파벨라에서는 쓰레기를 뒤져서 먹고사는 사람들도 많다.(p34)



‘하이바를 쓰면

나 하나 구할 수 있다고

어쩔 수 없는 나 하나 구하자고


오늘도 배달의 용사는 

하이바 쓰고 골목을 달린다(p36 배달의 용사)



3부 태어난 마음 


‘널 보는 

순간이 매일 설레도

고백은 하지 않아

(중략)

의자가 날아가지 않고

그릇이 깨지지 않고

엄마 아빠처럼 싸우지 않아도 되는


나의 사랑은 평화롭지

무엇도 망치지 않고

누구도 아프지 않지


아무도 상처 입지 않는 사랑

최고는 짝사랑!'(p71 최고는 짝사랑)


‘할배가 주워 주기 전까진

나도 찌그러진 캔이었다


나를 건진 날이 

세상에서 제일 수지맞은 날이라는 그 말이 

날 살게 했다


건질 것 하나 없는 내가

나를 건진 날이었다(p55 건질 것 있는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마음. 작은 눈길과 손길 하나에도 부여잡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4부 말 있는 말


‘내게 말해 줘

아무 문제 없다고


거친 말처럼

나 세상에게 달려갈 뿐인 걸’(91 말 있는 말)


‘여름은 어떻게 생겼어?


눈사람이 물었다

(중략)


가난한 개미에게 

그늘을 만들어 줬을 때


알았지


여름은 꼭 너처럼 생겼어(p93 첫사랑)


‘오늘은 날이 좋아

비늘이 더 빛날거야(p96 이름을 찾아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넘어진 자리에서 툴툴 털고 일어서는 아이가 보인다.


‘삐뚤어져서 용케도 자라는 아이들, 어디가 고장 난지도 모르고 삐걱거리는 아이들. 그래도 아이들은 열심히 자란다. 자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상처가 아물지 않아도 벌어진 채로 흉터가 되지 못해도 아이들은 자신을 키워낸다. 그런 씩씩하고 쓸쓸하지만 아름답고 순박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p106, 위험한 고양이들의 랜덤워크 중)


책의 마지막 장에는 독서 활동지가 수록되어 있다. 시를 자기와 연결하여 마음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도와준다. 


시집의 군데군데 나타나는 삽화의 아이는 신발을 한 짝만 신고 있다. 벗겨진 맨발에 신발을 신겨 줄 것인지, 신고 있는 운동화를 마저 벗겨줄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아이는 어디에 속하고 싶은 건가?


시를 읽는 내내 그려졌던 그 아이가 이 시집을 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프게 커가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그 마음을 들여다 보고 눈길을 건네주고 들어주었다면 상처를 흉터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좀더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통증이 내게도 전해진다. 좋은 시집이다. 좋은 시를 담아내는 시집을 펴낸 도서출판 쉬는시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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