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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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가 절판된지 21년만에 아르테 출판사에서 새 번역본으로 재출간되었다. 


읽기에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을 만큼의 지성을 갖추고 싶다는 열망을 안겨준 책이기도 했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고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대부분은 글이 아니라 글자를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좌절하기도 하였지만, 두 번째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책은 1970년대 서구 사회가 원숭이, 유인원, 여성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논의하는 글을 쓰려고 과학사학자가 되고, 이후 ‘사이보그 페미니즘’의 가능성으로 시선을 돌린 저자의 1978년에서 1989년까지 쓴 논문 10편을 수록하고 있다. 


1부. 생산과 재생산 체계로서의 자연

3편의 논문은 원숭이와 유인원의 사회 생활과 행동에 대한 지식과 그 의미를 생산하는 양식을 둘러싼 페미니즘의 투쟁을 검토한다.


2부. 경합하는 독법들: 서사의 성격

3편의 논문은 ‘자연’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들을 결정하는 권력을 둘러싼 경합을 탐사한다.


3부. 부적절한/부적절해진 타자를 위한 차이의 정치학

4편의 논문은 사이보그의 체현, 젠더에 대한 다양한 페미니즘 개념들의 운명, 페미니즘의 윤리적,인식론적 목적에 맞게끔 시각의 은유를 재전유하는 문제, 그리고 포스트모던 세계에서 ‘차이’의 주요 체계를 그리는 생명정치의 지도로서의 면역계를 설명한다.


인간이 구성한 세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가? 객관적 사고가 가능한가? 가장 객관적이고 사회적 맥락이나 관계에서 분리되어 있을 거라고 여겨지는 과학조차(역시) 문화적 맥락에서 만들어지는 상황적 지식임을 해러웨이는 알려준다. 기술과학은 가부장제, 자본주의, 군사주의, 식민주의, 인종주의 등과 같은 여러 지배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그와 같은 관계를 구성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설명하는 말, 지식, 구분 모두가 사회적, 문화적 맥락으로 만들어진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류사적으로 남성적, 서구적, 생산적인 세계 속에서 영장류, 사이보그, 여자의 지위는 경계에 서 있으며 저자는 이분법적으로 구분된 세상의 경계를 허물기를 주장한다. 


“사이보그 이미지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몸과 도구를 설명해 왔던 이원론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길을 보여 줄 수 있다. 이것은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이 아니라, 불신앙을 통한 강력한 이종언어를 향한 꿈이다. 이것은 신우파의 초구세주 회로에 두려움을 심는, 페미니스트 방언의 상상력이다. 이것은 기계, 정체성, 범주, 관계, 우주 설화를 구축하는 동시에 나를 파괴하는 언어이다. 나선의 춤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8장 사이보그 선언문


순수하고 기술배제적인 유토피아의 상징인 여신의 모습이 아니라 계급, 인종, 젠더 정치로 구성된 기술과학에 뛰어들고 현실적인 투쟁을 하겠다는 해러웨이의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라는 말이 내게 쿵 부딪혀온다. 나를 둘러싼 당연했던 세상의 틈이 보인다. 내가 쓰는 말, 내가 하는 행동,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내용들.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아르테의 북서퍼로 선정되고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책이 도착했을 때, 살짝 당혹감을 느꼈다. 읽고 싶기는 했으나 내가 리뷰를 쓸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북서퍼의 첫번째 책으로 해러웨이의 책을 보내주신 아르테 출판사의 자신감과 신뢰가 느껴져 고마웠다. 


많은 사람들의 기다림 끝에 재출간된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무엇을 공부하든 가장 먼저 읽어야 한다.”는 정희진 선생님의 추천사처럼 나를 둘러싼 세계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하면서 두번 째 읽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사이보그가 되어 지구에서 살아남아 보자!“-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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