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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의 죽음 - 죽음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 ㅣ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12
기세호 지음 / 스리체어스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최근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면서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고 있다. 과연 죽음은 나에게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와 있는가. 나는 죽음을 얼마나 실감하고 있는가.
<적당한 거리의 죽음>(기세호 지음, 스리체어스, 2017)는 서울에서 죽음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 현 상황을 직시하고, 삶과 죽음이 어우러진 프랑스 파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이란 도시에서 묘지를 찾는 것은 어려워졌다. 장례식장은 있지만 화장터도 봉안당도 수도권과 지방으로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지역마다 화장터 건립 반대 운동이 격렬하게 펼쳐지고 있는 이 사태를, 저자는 안타깝게 보고 있다.
저자인 기세호는 서울대에서 건축학과 학사,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건축과 도시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 감추려고 하는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되어 '묘지와 도시 사이의 거리 변화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를 토대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연구에 대한 일환으로 서울과 파리의 묘지 문화를 비교하고 있다. 과연 묘지가 무섭고 음습한 공간으로만 인식되어야 하는 걸까. 세상을 떠난 사람을 추모하고 기억하기에 너무 멀리 있는 건 아닐까. 물론 가까운 곳에서 생각날 때마다 갈 수 있는 건 좋다. 하지만, 우리 동네는 절대 안 된다는 님비(Not In My BackYard) 현상이 부른 폐단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프랑스 파리는 달랐다. 최초의 공원식 묘지였던 페르 라셰즈를 비롯해 몽 파르나스, 몽 마르뜨의 공동묘지에는 시민들이 뛰어노는 공원이 되었다. 1853년 프랑스 파리를 근대적으로 바꾸려는 '오스만 계획'에 따라 파리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대규모 묘지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파리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계획은 없던 것으로 되었다. 이때부터일 것이다. 죽은 자를 삶의 터전 가까이에 두고 언제든 쉽게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국가가 보장해야 할 시민의 권리로 인식되는 것이.
실제로 신혼여행으로 파리에 갔을 때 마을에 있는 공동묘지가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들어가서 편하게 추모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어서 무섭거나 두려운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고, 이게 묘지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친구를 떠나보낸다. 그럼에도 '나와 내 지인만큼은 아닐 거야'라는 생각에 죽음을 기피하고 멀리하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실제로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모시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 생각하지 않는다고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늘 죽음을 가까이 두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삶이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새해 첫 날 <적당한 거리의 죽음>을 읽은 것이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새롭게 시작하는 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모순된 행동이라 생각되겠지만, 오히려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죽음을 늘 떠올리는 건 바람직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스리체어스 '북저널리즘'의 일환으로 출간된 이 책은 시집처럼 작고 얇아서 지하철에서 잠깐잠깐 읽기에 참 좋은 책이다. 대신 생각을 더 깊게 할 수 있는 화두를 많이 던져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