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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서문
버크.베카리아.니체 외 27인 지음, 장정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2월
평점 :

서문보다 본문이 먼저 읽고 싶었다. 읽고 싶은 책을 펼치면 그만큼 마음도 급해졌다. 본문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서문을 건너뛰거나 한번 쓱 읽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위대한 서문>(장정일 엮음, 열림원, 2017)을 읽으며, 서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왜 서문인가. 장정일 작가가 말하길 '서문은 책의 작은 우주다.', 제목이 압축 파일이라면 서문은 그것을 푸는 암호다'라고 말하고 있다. 서문이야말로 책의 주된 흐름, 실마리를 보여주는 단서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서문에는 저자의 생각과 철학, 이 책을 집필한 의도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을 갖고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는지, 어떠한 배경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게 서문이다.
서문은 늘 본문보다 짧지만,
저자의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서문은
그것의 실현물인 본문보다 크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계속
글을 쓰게 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서문을 끝내 완성하기 위하여.
<위대한 서문>은 시대를 이끈 위대한 명저자의 서문을 모은 책이다. 스피노자, 조너선 스위프트, 몽테스키외, 장 자크 루소, 에드먼드 버크, 노발리스, 클라우제비츠, 키르케고르, 보들레르, 막스 뮐러, 찰스 다윈, 도스토옙스키, 엥겔스, 니체, 쥘 발레리, 앙드레 지드, 에밀 졸라, 베르그송, 프로이트, 짐멜...
명저자 30명이 쓴 유명 책의 서문을 모았다. 누군가는 시로 서문을 채웠고, 누군가는 편지 형식으로, 누군가는 논문처럼 서문을 쓴 저자도 있었다. 다양해서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생각의 깊이가 위대했다.
나의 시선을 붙잡아둔 한 구절.
그대 가득한 가슴에서 나는 삶을 마셨지.
나는 그대로 해서 나의 모든 것이 되었고
즐겁게 내 얼굴을 들 수 있었소.
- 노발리스 <파란꽃> 서문 중
저자인 노발리스(1772~1801)는 독일의 대표적인 초기 낭만주의 시인으로, 약혼녀가 세상을 떠나고 비통한 마음으로 작품을 썼고, 이 서문이 실린 <파란꽃>은 그가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후 발표된 미완성 장편소설이라 한다.
'그대 가득한 가슴에서 나는 삶을 마셨지.'라는 표현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까. 서문의 행마다 가슴을 울리는 구절들로 채워져 있어 본문을 더욱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이게 바로 '서문의 힘'인가보다.
장정일 작가가 뽑은 서른 편의 서문을 내가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대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밤낮 없이 고민하던 작가의 생각이 보였고, 고뇌가 보였다. 서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이 책에서 언급된 책을 한 권씩 찾아 읽어보겠다는 다짐을 새해 첫 날에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