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라는 공통 분모에 끌렸다. 시인 태재는 광고를 전공하고 잠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지만 이내 글 쓰는 직업으로 업을 바꿨다. 이미 4권의 시집을 낸 시인의 첫 산문집이라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에 대한 기대가 컸다.읽고난 지금, 기대를 꽉 채워준 느낌이다. 책은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로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 아주 편한 사이즈였다. 그리고 글도 보통의 산문처럼 빡빡한 것이 아니라 여백이 많았다. 하지만 이 여백이 공허함을 주는 게 아니라 사유의 시간을 주는 역할을 했다. 행간에 많은 의미가 숨어 있어서 천천히 읽었다.매일 새벽 2~3시에 퇴근하는 광고회사 생활. 채 100일도 넘기지 못하고 퇴사한 그에게 사람들은 '포기'라는 단어를 써서 깔아뭉개지만 그는 광고회사에 '도전'한 게 아니라 '선택'을 한 것이기 떄문에 단지 '취소'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공감한다. 그런데 그 시절엔 직장이 인생의 전부로 보인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이 세상에 많음을 놓치고 있을 때가 많다. 나도 그걸 깨닫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으니. 태재 시인은 그걸 사회생활 초반에 알았으니, 부럽기도 하다.책의 초반에 나온 '행복론'도 기억에 남는다. 보통 불행의 반대는 '행복'이라 생각하는데, 불행의 반대는 '다행'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그게 맞구나. 불행하지 않다고 해서 꼭 행복한 건 아니니. 이렇듯 문장마다 시인의 깊은 생각이 담겨 있어 많은 공감을 했다.
꿈과 잠꼬대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 몸부림친다.자기 전 건투를 빌어주는 나와일어나서 또 하루를 살아보자는 내가.중요하고도 소중한 나와소중하고도 중요한 내가.
누구나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산다. 때론 그런 생각을 한다. 직장뿐만 아니라 내가 하기 싫은 일에는 '사직서'를 내고 끊어버리고 싶다는 것. 그리고 사직서를 내고 난 후에는 뒤도 보지 말고 잊는 것. 그래서 끌려가지 말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도, 다시 채워질 가을을 기대하기 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