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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잊은 그대에게 - 불안하고 막막한 시대를 건너고 있는
김성중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8월
평점 :

낭만이 사치가 된 시대이다. "먹고살기 바쁜데 낭만은 개뿔"이라며 콧방귀를 뀌는 게 자연스럽다. 그만큼 현실이 너무 팍팍해졌다. 그야말로 너무 '현실적인' 현실이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는 감성이 그리웠다. 그래서 펼쳐든 책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김성중 지음 / 흐름출판 / 2022).
동국대 영문과 김성중 교수가 쓴 19세기 영국의 시와 소설에 관한 이야기이다. 띠지를 보니 '문학과 사랑으로 찬란했던 19세기 격변의 영국', 그 당시의 문학을 되짚어보는 책이다.
책은 천천히 읽었다. 낭만스러움과 빠름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너무 오랜만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기에 작가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20년 만에 마주한 시와 소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당시 수업시간엔 왜 그리 따분하고 지루하고 어려웠는지. 이렇게 재미있는 해설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그때도 알았더라면 수업시간이 더 재미있었을 텐데.

로망Roman은 중세 프랑스에서 유행한, 비현실적인 모험담을 다룬 이야기를 뜻한다.
흔히 '로망'이라고 하면 로맨스를 떠올리거나 바람, 희망 등을 떠올렸는데 '비현실적인 모험담'을 일컫는 말이라고 했다. 낭만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고전주의와의 비교도 인상깊었다.
'난 너무 고전주의자처럼 살고 있어. 낭만이라고는 1도 없이.'

영국 낭만주의의 창시자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말하기를, "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강렬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외부의 직접적인 자극 없이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 바로 시인이라고 정의했다. 지극히 예민하고 섬세한, 남들과 다른 촉을 가진 존재. 그래서인지 그 당시 시인들이 쓴 시를 보면 남들이 가지지 못한 시각과 영감, 촉이 있었다.

윌리엄 블레이크, 바이런, 키츠, 로버트 브라우닝, 콜리지 등 '영시 수업' 시간에 귀가 닳도록 들었던 시인들의 시를 다시 읽으면서 당시에는 몰랐던 낯선 감성이 피어올랐다. 수업시간에는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느라 시가 주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였다. 그런데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를 천천히 읽으면서 '이 시가 이런 뜻이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이 번쩍 떠졌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단어 하나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이야기의 방향성이 확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사전적인 의미만으로는 작자의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라는 장르가 더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 읽을수록 새롭고 매번 다른 해석이 샘솟으니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여행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혼자 가는 것이 좋다. 방에 있을 때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야외에서 친구는 자연으로 충분하다. 자연에 있으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들판이 서재요, 자연이 책이다." 대화하면서 동시에 걷는 것에 무슨 좋은 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시골에 있을 때에는 식물처럼 가만히 있고 싶다. 남의 집 담장이 어떤지, 남이 기르는 가축이 어떤지에 난 관심 없다.
아니, 이게 19세기에 쓰여진 수필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마치 지금 내 마음에 들어온 것처럼 '요즘 갬성' 아닌가. 낭만주의 시대의 수필가 윌리엄 해즐릿의 <여행에 대하여>란 수필이다. 요즘 쓴 글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생생하다. 아마도 '고독'이란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가진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인가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문학 수업을 듣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잠시 조용한 음악을 틀어둔 채 명상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기쁘고 슬픈 감정들을 그대로 담은 낭만주의 시와 소설들이 '낭만은 개뿔'이라고 생각하는 내 마음에 '감성'이란 옷을 입고 노크를 해오는 듯하다.
마음이 팍팍할 때마다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