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
천선란 외 지음 / 허블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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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은 많이 읽지 않았다.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고, 나와 내 옆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숨 막히는 현실 이야기를 책으로도 보자니 마음이 불편할 때가 꽤 있었다. 그래서 상상이 만들어 낸 이야기, SF 앤솔로지를 읽게 되었다.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천선란, 박해울, 박문영, 오정연, 이루카 지음 / 허블 / 20201)는 SF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니 이미 유명한 5명의 작가의 SF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이다. SF 소설을 잘 모르던 나도 이 작가들의 이름은 익숙했고, 특히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도 오랜 기간 있었기 때문에 책장을 열기에 부담이 없었다.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 간 여자들의 이야기를 얼개로 쓴 다섯 편의 소설은 각기 작가 특유의 상상과 문체로 매력이 넘쳤다.

각기 다른 5편의 소설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감탄이 계속되었다. 이미 작가의 머리속에 소설 속 공간은 현실이다. 그리고 인물 역시 실존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SF 소설을 한번 읽기 시작하면 밤새는 줄 모른다더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모두 좋았지만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건 박해울 작가의 <요람 행성>이다. 낯선 행성에서 쓰레기차 운전사로 일하면서 겪게 되는 새로운 경험과 당황스런 사건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지구에 있는 동생과 딸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곧 지구와 연락이 되지 않고 안타까운 결과를 맞게 된다. 하지만 그 어떤 일도 '헛된 일'이 아님을, 마지막 문장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중력이 주름을 만드는 거라면, 이 주름의 대부분은 이 행성의 중력이 만든 거다. 여기 있는 동안 나는 정직하게 나이를 먹었다. 이제 지구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없다. 누가 날 기억해주지? 나를 아는 존재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내 옆에 누가 있었더라? 나 외의 타인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데, 내가 이 생물을 이해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들은 내 곁에 있었다. 동족을 위해 장례를 치러주는 종족이.

행성에 사는 설인이 다른 생물체를 위해 장례를 치러준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의 읊조림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두려움과 의외의 존재가 내 곁에 있다는 든든함이 혼재된 어지러움. 주인공의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는 SF 소설이 어렵고 부담스러웠던 나에게 상상의 즐거움을 준 책이다. 그리고 5명의 작가 모두 개성이 넘치는 문체로 '자기만의 행성' 이야기를 잘 풀어가서 재미있게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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