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가 내려온다
오정연 지음 / 허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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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르에 도전을 했다. 특히 올해 큰 수확은 동화를 읽고 쓰게 된 게 아닐까. 그럼에도 SF는 나에게 여전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장르였다. 이 책을 보기 전까진.

<단어가 내려온다>(오정연 지음 / 동아시아 / 2021)는 오정연 작가의 총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 소설집이다. 첫 소설부터 빠져들었다.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마지막 로그>는 안락사를 앞둔 주인공이 죽기 전 일주일의 삶을 보여주면서 존엄한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 씨앗을 던져준 소설이다. 어릴 때부터 당뇨로 고생한 자신의 안락사를 신청한 주인공. 안드로이드 '조이'는 아무런 감정 없이 주인공의 안락사를 준비하고 꼼꼼하게 처리해 나간다.

요양원과 안락사 시설을 갖춘 실버라이닝에서의 일주일. 삶을 정리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남겼던 모든 흔적들을 지우고, 마지막엔 '조이' 역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컨트롤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과연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상상한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웠다. 2078년의 이야기지만, 그보다는 아마 더 당겨질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안락사를 앞두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당사자가 계속 망설이고 고민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말리거나 하는 과정이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서 충격과 먹먹함이 뒤섞였다. 당연한 결과인데,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마지막에 조이가 남긴 글의 반전도 무척 흥미로웠다.

이 책의 제목인 <단어가 내려왔다>도 재미있게 읽었다. 만 15세가 되면 통과의례처럼 사람마다 그 사람의 특성을 규정짓는 '단어'가 내려온다니. 지학이란 개념으로 소개된 이 행위라 무척 재미있었다. 책 소개에 소개된 문구처럼 '국어학 SF'란 개념 자체가 흥미로웠다. 국어학과가 가장 인기학과이고 모두들 국어를 연구하는 세상이 온다니. 생각만 해도 흐뭇했다.

이 외에도. 화성에서 제사를 지내는 <분향>, 화성으로 간 싱글맘의 육아 전쟁을 그린 <미지의 우주> 등 책에 실린 7편의 소설이 각각의 매력을 뽐내며 무한한 상상력을 잘 드러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라고 감탄한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SF 소설이라 그런지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가 배가되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SF 소설을 좀 더 찾아 읽어보려고 한다. 두 발은 현실을 밟고 서 있지만, 상상력의 범위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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