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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던 오늘 - 카피라이터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코로나 이후, 시대의 변화
유병욱 지음 / 북하우스 / 2021년 6월
평점 :

카피라이터가 쓴 글을 좋아한다. 마치 광고카피를 읽듯 술술 읽히고, 남들과는 다른 인사이트가 있기 때문이다.
기대보다 더 좋았던 책 <없던 오늘>을 읽은 최근 며칠 동안 무척 행복했다. 이 책은 TBWA KOREA의 유병욱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쓴 에세이다. '카피라이터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코로나 이후, 시대의 변화'란 부제를 달고 있듯 이 책은 코로나 이후 달라진 우리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처럼, 예전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없던 오늘> 말이다.
코로나가 바꾼 우리의 일상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정말 1년 6개월 사이에 모든 것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저자는 특히 코로나가 준 변화 중 하나로 '음미력'을 꼽는다.

음미는, 지금 내게 없거나, 곧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들 앞에서 자주 시작된다. '지금 이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구나'에서 시작된다. 가혹한 코로나의 시대를 어떤 케이스 스터디도 없이 온몸으로 통과하고 있는 우리. 당연했던 것들을 너무나 많이 빼앗겨버린 우리. 그래서 우리에겐 그동안 없던 능력이 하나 생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것은 '음미력' 아닐까.
사소한 것 하나라도 음미하게 되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 저자의 생각에 적극 동의한다. 생활도 생각도, 모든 게 예전과 같지 않은 우리들. 이러한 상황이 인간관계를 변화시키고, 삶에 대한 기준과 태도를 변화시켰다. 그렇게 변해가는 환경에 우린 또 적응을 해가는 중이다.

좋은 책을 보면 페이지를 넘기기 아까운 순간을 마주한다. 이 책이 그랬다. 책에 써있는 저자의 생각과 기억, 장면들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일하는 풍경, 회의하는 모습, 아이디어를 쥐어짜는(?) 모양새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특히 내 눈이 한참 멈췄던 곳은 감성 코드의 공감대 부분이다. 저자는 뭔가 새로운 생각을 하고 싶을 때 일주일 정도 '레트로 위크'를 갖는다고 했다.
뾰족한 날들에 지칠 땐, 뭉툭한 과거를 연다. 필요하다면 일주일 정도. 나는 그 주간을 '레트로 위크'라고 부르는 중이다.
그리고 그때 눈에 띄었던 게 영화 '비포 선라이즈'였다는 걸 보고 너무 반가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공유했다는 연대감 때문이었으리라. 게다가 무한궤도의 '여름 이야기' 역시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이며, 내가 거의 30년째 좋아하는 유희열의 이야기도 있으니...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레트로 위크'를 가진 것만 같았다.

두세 시간, 아니 하루 종일 신해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나 역시 광팬이었기에. 지금도 내 플레이리스트엔 공일오비, 신해철, 토이가 늘 상위에 랭크되어 있고, 불과 며칠 전엔 신해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필사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또 하나 소름끼쳤던 건, 신해철이 가사를 쓴(물론 대부분 그의 노래는 직접 가사를 썼지만)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를 썼을 나이가 불과 스무 살을 넘긴 때였다는 걸 발견하고 나 역시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책에서 발견하니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발상은 혼돈 속에서 나오지만,
좋은 문장은 집중과 예의에서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남는 글들이 많아서 여러 장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노트에 적어둘 좋은 글이 생겨서 내심 흐뭇했다.
사실, 여기에 기록하지 못한 감동이 더 크다. 마지막 책을 덮기가 아쉬울 만큼. 같은 직업을 갖고 있다는 유대감과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공감대, 좋아하는 감성 코드가 같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카피라이터 후배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 <없던 오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