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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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처음엔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고, 농인 부모의 일상을 담은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의 감독이란 점으로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당신을 이어 말한다>(이길보러 지음 / 동아시아 / 2021)는 이 감독이 갖고 있는 생각과 철학을 오롯이 엿볼 수 있는 사회비평집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과 불평등을 언급하며, 모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담아냈다.

저자는 자신을 코다(CODA)로 소개한다. 좀 더 그 으미ㅣ를 알고자 인터넷에서 '코다'를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이길보라 감독의 영화가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그만큼 이 분야의 대표성을 가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코다

청각 장애인 부모를 둔 건청인. | 외국어 표기 | Children Of Deaf Adult(영어) | | 약어 | CODA |

청각 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이다. 이들은 음성 언어보다 수어(手語)를 먼저 익히며 어렸을 때부터 수어를 통해 부모와 의사소통을 한다. 청각 장애인 특유의 문화인 농문화와 비장애인의 문화인 청문화에 모두 익숙해 청각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가교 역할을 하며, 청각 장애인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2014년 코다인 영화감독 이길보라 씨가 만든 청각장애인 부모와 코다 자녀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개봉한 바 있다.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편견과 색안경을 끼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장애인, 성소수자, 인종, 신분, 계급 등으로 사람을 판단하였는지. 그저 '다름'을 인정하면 되는데 뭔가 '틀렸다'는 프레임을 씌워서 군림하려고 했던 건 아닌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다.

모범생으로 살아오면서 특별 장학금도 받았던 저자였지만, 고1때 학교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장학금을 주던 사람의 싸늘한 반응이 충격이었다. 그리고 당장 장학금을 끊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고등학생이었던 저자는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하지만 그때 그 여행은 삶의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고, 이길보라 감독이 자신의 뜻대로 자신있게 살아오게 된 토대가 되었다.



부모의 장애를 긍정하고, 수어와 농문화를 받아들이고, '장애극복' 라벨을 떼고, 장애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몇십 년의 경험을 필요로 했다. 장애해방 서적을, 장애해방 서사를 일찍 접했더라면 다른 사유와 고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좀더 빨리 해방될 수 있지 않았을까?

다름을 장애로 인식하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당신과 나의 차이가 틀리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나'와 '너'가 함께할 수 있는 공존의 바탕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살아가면서 꼭 한 번은 생각해보아야 할 단어 중 하나는 '차별'이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아무 이유 없이 차별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회의 냉철한 시선이 이들을 더 동굴 속으로 밀어 넣게 된다. 한 사람의 힘으론 어려울 수 있겠으나 함께 '연대'하여 부조리를 하나하나 없애가는 길. 그것이야말로 '나'와 '너'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나는 손으로 옹알이를 했다. 음성 언어가 아닌, 수어가 나의 모어였고 부모의 문화인 농문화가 나의 성장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부모를 귀머거리라 부르며 혀를 쯧쯧 찼다. 그 말을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던 나는 살아남기를 택했다. 부모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착한 장애인'이 되었듯 나 역시 '착한 장애인의 딸'이 되었다. 말 잘 듣는 모범생이자 공부 잘하는 우등생이 되는 것이 올바른 예였다.

살아남기 위해 택했던 '착한 장애인'의 길, 그리고 '착한 장애인의 딸'의 길. 저자가 모범생이자 우등생이 된 것은 편견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자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공부 지식보다 세상 구경을 하고 깊은 사유에서 얻은 지혜와 철학이 이 감독의 신념을 공고히 해준 것으로 보였다.

특히 밝히기 어려울 수 있는 자신의 '임신중지'에 대한 고백과 이어지는 #나는낙태했다 해시태그 운동에 대한 제안. 죄책감과 수치심이라는 편견히 여전히 남아있는 이 사회에서 그런 시도를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작가의 프롤로그를 다시 읽어보았다.

'장애를 만드는 건 장애인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 사회라는 것'.

그 말에 적극 공감하며, 이 책이 그런 편견을 깨는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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