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은 단순히 소통을 위한 수단뿐만 아니라 그 민족의 고유한 민족성이 담긴 정신이다.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우리 민족의 정신까지는 지배할 수 없다는 강한 애국심. 이것이 그들이 그토록 목숨을 다해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자 했던 이유이리라.
명문 학교인 배재고보에 다니는 춘천 출신의 민위, 종로경찰서 순사부장의 아들인 규태, 문예부의 박 선생, 일본 여학생 노리코, 강형사, 창제, 조선어학회, 상록회 등 소설에 나온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 중에서, 조선 날라리(?) 규태의 변화가 놀라웠다. 당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순사부장의 아들이란 완장을 차고, 멋대로 살아가던 규태가 나중에 '시골말 캐기 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조선어사전의 원고를 지키는 데에도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 되었다. 노리코에 대한 연애 감정이 규태를 문예부로 이끌었고,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마지막에는 우리말을 지키는 데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의 변화는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희망을 전해주었다.
이 책은, 조선어학회의 시골말 캐기 운동과 배재고보 문예부의 교지 복간, 춘천고보의 상록회 사건이란 역사적 사실 위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말을 캐는 시간>이란 명작이 탄생했다.
이렇게 살아남은 한글을, 우린 지금 어떻게 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