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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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한국소설을 물으면 신경숙의 <깊은 슬픔>이라고 답했다. 한 줄씩 읽어내려가는 순간이 아쉬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갔던 책. 20대에 읽고, 30대에 읽었던 책. 내 책장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신경숙 작가의 작품들. 그런 신경숙 작가가 오랜만에 새 장편소설을 썼다고 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실, 표지를 열기까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신간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보면서 다시 한번 신경숙 작가의 글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전 소설도 그렇지만 이 소설 역시 신경숙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보인다. <깊은 슬픔>에서 나왔던 이슬어지도 보이고. 마치 영상을 보듯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는 이 책에도 여지없이 돋보였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와 이런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의 가정을 돌보고 일을 하다보면 고향의 부모님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헌' 역시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자신의 가정을 돌보는 데 힘을 썼다. 하지만 딸을 잃은 순간, 평범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고 겨우 숨만 쉬는 삶으로 바뀌었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자식을 잃는다는 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 자식이 나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이미 엄마로서의 생은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인공 '헌'은 혼자 계신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 그동안 자신의 인생과 딸에게 모든 것을 쏟았던 삶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의 삶. 그것이 400페이지 가까운 이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아버지의 삶이 그리 고단하고 힘들었던 것은 당시 어려웠던 시대상과도 아주 밀접하지만, 아버지라는 자리가 주는 책임감과 무게감이 스스로 입을 닫게 만들었다. 도시에 나가서 바쁘게 사는 자식들에게 나까지 짐이 될 수는 없다는 아버지.

 

나무 궤짝에 보관하던 편지들, 포장도 뜯지 않은 홈쇼핑 택배 상품들에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6남매의 학사모 사진은 아버지 인생, 그 자체였다.

 

 


 

 

 

가방끈은 짧았지만 소설 속 아버지에게선 오랜 연륜에서 우러나온 삶의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마치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인공이 모르는 아버지의 병. 얼마나 오래 전부터 앓아왔는지, 그걸 헤아리지 못한 자식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사는 길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앞으로만, 빠른 속도로만 달려가는 것이 최고라고 여겨지는 시대.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면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아버지가 생각났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엄마 생각이 계속 나서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책 역시 읽는 내내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물론 자라온 환경과 시대는 다르지만, 우리 아버지도 아마 이런 책임감과 무게감으로 인생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 옆에 계시다면 이 책을 꼭 선물해 드리고 싶다. 울 아버지도 많이 고생하셨다고. 마음으로나마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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