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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나에게 - 고흐와 셰익스피어 사이에서 인생을 만나다
안경숙 지음 / 한길사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향기 나는 책이 있다. 향수가 아닌 향기. 페이지를 넘길수록 더욱 깊고 짙은 향기 풍겨나오는 신기한 경험.
<사랑이 나에게>(안경숙 지음 / 한길사 / 2019)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커피가 없는데도 커피향이 나는 느낌. 차분한 글과 멋진 그림이 주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이런 책은 빨리 넘겨 볼 것이 아니라 천천히, 그리고 시선이 머무는 걸 느끼면서 천천히 읽어가는 책이다.
'고흐와 셰익스피어 사이에서 인생을 만나다'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명화와 글이 절묘하게 조합된 일종의 '명화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다른 책처럼 그림을 소개하거나 작가의 생각을 유추해가면서 그림에만 집중하는 책이 아니라 글과 그림의 밸런스가 5대 5 혹은 6대 4 정도로 잘 맞는다. 단순히 그림을 설명하는 책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향기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그림과 글 언저리에서 오래 머물렀던 사람으로 보여진다. 프랑스 기업 및 기관에서 일했고 현재 외국계 기관에서 일한다고 프로필에 나와 있는데, 직업 역시 이와 관련한 직업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글은 고요하다. 마치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적당히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타자기로 쓰는 듯한 차분한 글. 그리고 이어지는 명화. 요즘 이야기와 옛날 그림의 기가 막힌 연결고리도 이 책의 매력이라 느껴진다. 글과 그림이라서 한없이 감성에 빠져들 것 같지만, 이 책은 에세이처럼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용기를 주는 자기계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나는 책과 음악에는 관심이 많지만 미술이나 그림은 잘 모른다. 그나마 그림 분야에서 일하는 남편의 영향으로 조금씩 그림을 알아가고 있는 과정이지만, 여전히 그림은 어렵게 다가온다. 이런 내게 <사랑이 나에게> 에세이가 특별한 건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문학과 음악을 연결하고, 그걸 그림과 자연스럽게 접목하니 관심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림을 더 유심히 보게 된다.

가령, 고흐의 작품은 유명한 몇몇 작품만 알고 있는데 이 책에는 고흐의 다양한 명화를 소개하면서 거기에 담긴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 <구두>라는 고흐의 작품을 보고 저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신발에서 삶의 자취를 읽습니다.(중략)
신발에는 그들의 고된 일상이 묻어납니다. 좋은 신발은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근사한 말이 있지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신발은 화려하고 값비싼 명품이 아닌 내 발과 함께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편안한 신발입니다.

똑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도슨트가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이야기를 곁들여 주면 보이지 않던 게 새롭게 보이게 되듯, 이 책 역시 그림만 보는 것보다, 글만 보는 것보다 함께 보니 더 즐거운 이야기가 되었다. 사는 게 바빠서 이렇게 조용한 책을 읽을 여유조차 없었다. 최고 속도의 BPM으로 달려왔고 앞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여름휴가를 앞둔 시점에, 이렇게 잔잔하고 느린 책을 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도 좋은 바캉스가 되리라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을 필요도 없고, 꼭 끝까지 읽을 필요도 없는 자유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완성될 그림을 상상하며 화가가 캔버스에 조금씩 색을 입히듯
삶의 순간들을 묵묵히, 충실하게 채워나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채워진 것이 인생이라는 그림으로 완성될 테니까요.
쉽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고 매일 작은 성취를 이루며
내밀한 인내의 시간을 이겨내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가장 고통스럽고 힘겨운 순간을 겪고 나면
비로소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처럼요.
우리의 삶은 한 단계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삶을 인내와 기다림이라고 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