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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 -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상 수집 에세이
하람 지음 / 지콜론북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나가다 보니, 이게 일종의 휴식이자 놀이가 되었단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하람 글 그림 / 지콜론북 / 2018)라는 제목의 에세이다. 갤러리에서 그림을 들여다보는 차분한 그림의 표지와 담백한 제목은 내용을 읽기도 전에 힐링이 되는 느낌을 주었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상 수집 에세이'라는 부제도 부담스럽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글도 잘 쓰고, 그림까지 잘 그리는 사람이 참 부럽다. 내가 그.알.못. 그림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SK커뮤니케이션즈와 현대카드에서 UI디자이너로 일했단다. 어쩐지 걸어온 길이 나와 비슷해서일까. 저자의 소소한 일상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들어있는 그림도 글맛을 더해주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우표를 모았다. 수집의 기쁨이라기보다, 편지봉투에 붙은 우표를 정성스레 떼어내는 순간의 설렘이 좋았던 것 같다. (중략)
봉투에 붙은 우표의 개수만큼 떨어져 있는 우리 거리를 실감하면서, 편지지 위에 글자를 눌러 적는 동안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상상하면서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잊혀가는 모든 것들이 애틋하지만 우표는, 우표가 붙은 편지는 내게 특별히 더 애틋한 기분을 안긴다.
내 친구가 쓴 글인 줄 알았다. 늘 같은 반에 친하게 지내면서도 따로 불러서 편지를 교환한다던가, 방학 때 우표를 붙여서 집으로 보내던 편지. 그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봉투에 붙은 우표의 개수만큼 떨어져 있는 우리 거리'라는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괜찮은, 기억하고 싶은 표현이다.

잘 익은 외로움은 달다.
외롭고 쓸쓸한 '혼자'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스스로 원하는 '혼자'의 의미. 그래서인지 저자는 '잘 익은 외로움은 달다'는 멋진 표현을 썼다. 이렇듯 기존에 알고 있던 단어에 대한 재해석이 이 책 구석구석에 엿보였다.

꿈이라는 사치스러운 단어를 좋아한다.
꿈이라고 소리 낼 때 맞닿는 입술의 모양과 그 발음을 좋아한다.
꿈을 꾸다가 꿈을 닮다가 꿈이 되는 사람을 좋아한다.
꿈을 크게 가지라는 말을 좋아한다.
꿈이 깨져도 부서진 조각이 클 테니까.
한동안 내 가방에선 이 책이 늘 상주해 있었다. 한 페이지의 짧은 생각이 연속성에 대한 불안감을 낮춰주었고, 아무데가 펼쳐도 위안이 되는 글이 좋았다. 그리고 작가의 전공분야답게 중간중간에 들어간 그림의 톤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