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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너라는 계절 - 한가람 에세이
한가람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8년 12월
평점 :

라디오 덕후 생활 28년차. 중학교 입학선물로 받은 소니 워크맨이 내 감성의 불씨를 당겨주었고, 그 이후로 잠시의 빈틈도 없이 라디오로 내 생활을 채워왔다. 회사 다닐 땐 라디오를 들을 수 없어서 너무 안타까울 정도. 그만큼 라디오가 없는 내 생활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TV보다 라디오가 좋은 이유는 온전히 글과 사연, 노래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라디오 작가가 쓴 글을 좋아한다. 꼭 찾아서 읽어보는 편이다. 2019년 처음 읽은 에세이 <온통 너라는 계절>(한가람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8) 역시 풋풋한 감성이 묻어나는 감성 에세이다.
저자인 한가람 작가는 '이소라의 FM음악도시',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 '윤하의 내 집으로 와요', '최강희의 야간비행', '박명수의 라디오쇼'의 작가이다. 또한 JTBC 드라마페스타 <한여름의 추억>을 쓴 드라마작가이기도 하다. 저자가 했던 방송 중 반 이상을 들어본 청취자로서, 책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마음 따뜻해지는 일러스트 표지를 넘기고 '작가의 말' 첫 문장부터 말문이 막혔다.
'언제나 사랑이 전부였던 저는 하루가 늘 같았습니다'로 시작하는 작가의 말은 왜 진작 책을 내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 만큼 눈에 쏙 들어오는 내용이었다. 이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으려니 얼굴이 너무 빨개졌다는 작가, 귀엽지 않은가. '저에겐 사랑이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로 귀결되는 작가의 말이 참 좋았다. 그리고 이 책이 또 내 속을 들었다놨다 하겠구나 직감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
사랑의 기쁨과 슬픔, 이별의 아픔, 그리고 새로운 사랑에 대한 기대를 '계절'에 맞춰 감성적으로 그려 있다. 마치 라디오 사연을 읽어내려가듯 편하게, 하지만 가슴 아픈 내용도 종종 있었다. 내가 라디오 작가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디테일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내용.

샤프를 내 나이만큼 찍어 누른 뒤 하트를 그리고
그 안에 그 사람의 이름을 적고선
샤프심이 부러지지 않을 때까지 하트 속을 채우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들 했었다.
그 아래 이어지는 내용도 좋았지만, 나는 이걸 기억하고 있는 작가의 기억력에 감탄했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씩은 해본 것. 하지만 세월이 지나 잊고 있었던 것. 문득 향수에 젖었다. 나는 그때 누구의 이름을 적었더라, 생각나지 않는 이름을 애써 기억해내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렇게 작가의 디테일이 남달랐다.
<온통 너라는 계절>은 편하게 읽을 수 있지만 가볍지 않아서 좋다. 요즘 SNS에 난무하는 말장난 또는 만들어진 감정선을 갖고 쥐어짜는 글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감정을 포장하지 않아서 좋다. 결국 독자가 보고 싶은 건 작가와의 일대일 교감인데, 어떤 작가들은 다수의 대중과의 호흡을 염두에 두고 대중성만을 노린 글을 쓴다. 그래서 마치 연예인을 보듯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담백하고 진솔한 한가람 작가의 글이 가깝게 다가온다.
'언제나 사랑이 전부'였다고 서두에 말했듯, 이 책이 품고 있는 키워드는 '사랑'이다. 사랑으로 인해 얼마나 행복했는지, 또 얼마나 힘들었는지 툭 던지는 짧은 글에 보여진다. 행간의 깊이. 그래서인지 가슴이 먹먹할 때 한번씩 꺼내 보고 싶은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