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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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세상을 떠난다. 그때부터 남은 사람들의 슬픔이 시작된다. '애도'라는 이름으로.
롤랑 바르트는 '기호학'의 대가로 문학 이론 교과서에서 자주 등장하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어머니의 죽음 후  2년 동안 <애도 일기>를 썼다는 사실을 얼마 전 알게 되었다. 지독하리만치 집요한 상실의 슬픔.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바닥 밑바닥까지 긁는 슬픔이란...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롤랑 바르트. 노트를 사등분해서 만든 쪽지 위에 주로 잉크로, 때로는 연필로 일기를 썼다 한다. 그리고 이 쪽지들을 세상에 내놓지 않고 책상 위의 작은 상자에 모아두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 후, 이 쪽지가 비로소 책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애도 일기>는 커버를 새로 한 리커버 에디션이다. 한정판.

초반에는 하루에도 몇 번의 일기를 쓸 만큼 그의 슬픔은 극심해보였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나는 벌써 몇 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엄마가 떠나시던 날을 바로 엊그제처럼 선명하게 기억하니까. 그리고 그때마다 눈물이 터져 나오니까. 돌아가신 직후엔 오죽했겠는가. 글 쓰는 사람이니, 글로라도 터져나오는 울음을 달래고 싶었겠지.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우습고도 말도 안 되는 시도).

 

 

애도의 한도에 대하여.

(라루스 백과사전, 메멘토) :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18개월이 넘으면 안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러니까 그녀가 아프던 동안,
내가 간절히 바라던 것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그러나 이제 성취될 수가 없다.
만일 지금 그것들이 성취된다면,
그녀의 죽음은, 이 욕구들을 실현시켜주는
만족스러운 일이 되고 마니까.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나를 바꾸어버렸다.
내가 욕망하던 것을 나는 더 이상 욕망하지 않는다.
남은 건,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다면,
어떤 새로운 욕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죽은 뒤의 욕망이.

 

 

 

애도 : 그건 (어떤 빛 같은 것이) 꺼져 있는 상태.
그 어떤 '충만'이 막혀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 상태다 :
지금 나는 극도로 긴장한 채, 잔뜩 웅크린 채,
그 어떤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1977년에 롤랑 바르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는 <애도 일기>를 2년 동안 썼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1980년 2월, 그는 길을 건너다 세탁물 운반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를 거부했고, 한 달 뒤에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공식적으로는 사고사였지만
어떤 이들은 자살이라 부른단다. 어떻게 생각해도 너무 슬픈 결말이다.

얼마 전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올 초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천수를 누리고 떠나셨으니 슬픔이 적을 줄 알았지만 누군가의 빈자리는 나이와 상관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10년 사이에 참 많은 이가 떠났구나.
사랑하는 가족과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난, 나에겐 너무 아픈 10년.
누군가는 말하더라. 누구나 겪을 일을 미리 겪었으니 나중에 울 일이 적겠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남은 자의 슬픔을 하나도 모르는 소리.
하필 지금 읽는 책이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라니. 타이밍 한번 절묘하다.

애써 억누른 슬픔을 울컥 쏟아내고 싶을 때, 이 세상에 없는 그 사람이 보고 싶을 때,
미칠 듯한 상실감이 밑바닥에서 솓구칠 때 열어볼 책이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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