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진정으로 태어나길 원한다면 한 번 태어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즉 생물학적 탄생을 뛰어넘어 다시 한 번 태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더 이상은 어머니의 태가 필요치 않다고 예수는 설명한다. 상속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두 번째 탄생은 주체의 재정복을뜻한다. - P190
상속은 일정한 수익을 자기 것으로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재정복의 과정이다. 따라서 상속받는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과, 단 한 번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존재의 주체화와 일치한다. 우리 존재는 ‘타자‘로부터 유래되는 동안 우리를 구축한 말들, 기표들, 인상들, 흔적들의 총체적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타자‘에 대한언급 없이 우리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을형성하고, 각인시키고, 직조하고, 운명 지은 모든 ‘타자‘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존재는 우리의 말과 일치한다. 우리의 말은그러나 우리에게 말하는 ‘타자‘의 말을 통해 구축되지 않고서는형성되지 못한다. 이 말이라는 사건의 기원에 상징적 채무가 주어지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 곧 ‘말의 계율‘이다.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것을 초월하는 언어의 존재에 의해 주어진다. 나의 말은 하나의 개별적인 말로 존재하기 위해 먼저 이 초월적 언어에 안착할 수 있어야 한다. - P192
정신분석학 연구에 따르면 상속의 실패는 두종류의 상이한 경로를 따라 진행된다. 하나는 ‘우파적 경로, 다른 하나는 ‘좌파‘적 경로다. 상속은 우파적 경로를 통해 이미 구축되어 있는 것의 순수한 반복으로 받아들여진다. - P194
상속은 복제를 의미하지 않으며, 과거에서 추출한 이상적 모델의 수동적 재생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속을 반복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은 노이로제적인 경향이다. 자신의 과거와 전통에 절대적으로 충실하려는 경향, 주체를 끊임없이 유년기로 돌려보내려는 경향, 과거에 무차별하게 의존하고 무분별하게 복종하려는 경향, 과거를 기념비적이고 고고학적인 차원에서 보존하려는 경향, 이 모든 경향이 심리적 불안에서 비롯된다. - P194
과거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되풀이될 때 삶은 생기를 잃고 우울증에 빠져 시들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니체의 생각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프로이트의 생각이기도 하다. - P198
상속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이상‘의 상실이라는 덫에 걸려들지 말아야 한다. 현실의 공포라는 덫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어떤 지평도 어떤 ‘이상‘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 젊은 세대의 문제다. 상속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라캉이 ‘아버지를 애도하는 행위‘라고 부른 것이 필요하다. 이 애도의 행위 없이는 상속자는 단순히 직업의 상속자로 남을 뿐이며 상속 역시 과거의 이상과 경직된 방식으로 일치하는 움직임을 보일 뿐이다. - P201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살해와도 비슷하다. 껍질을 깨고 한계 없는 우연성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미 일어난 사건에 비한다면 절대적으로 불규칙할 수밖에 없는 흐름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재정복으로서의 상속은 작별의 시간과 과거의 망각, ‘비역사적인 것‘의 밑도 끝도 없는 현기증을 수반한다. - P201
상속의 ‘우파‘적인 실패가 과거에 대한 과도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반면 ‘좌파적 실패는 과거에 대한 반항적 거부에서 비롯된다. 이 좌파적 경향은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 찬양의 개념적 전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이 좌파적 경로와 우파적 경로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세대가 바로 사춘기의 청소년들이다. 한쪽에는 과거를 이상화하고 찬양하려는 경향, 가족을 모델로 하는 순응주의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과거와의 단호하고 반항적인 단절, 채무의 부인, 자신의 (허구적인) 자생력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논리가 있다. - P204
결과적으로 텔레마코스는 두 개의 영혼을 가진 듯이 보인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텔레마코스가 있는 반면 실천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텔레마코스가 있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아버지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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