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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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 글을 안 쓴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이 반겨주던 분들에게도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서재에는 조용히 들어온다. 그러다가 비의 딸님의 리뷰를 보았다. 고시원에서 생활을 하며, 노량진, 고시원, 시험 이런 글들을 보면 쉽게 지나치지를 못 한다. 저게 내 얘기일까? 내 마음을 이야기할까? 하는 기대감에 보게 된다.

 

'환영'은 그렇게 눈에 들어온 소설이다. 이 소설은 리뷰가 80개 써질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은 소설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윤영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남편과 고시원에서 만나 아이를 낳았다. 그녀가 고시원에 오게 된 것은 여동생이 빚을 지고 떠났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과 옥탑방에서 살림을 차리지만,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남편, 다시 돈을 달라고 하는 식구들, 장애인 아기 등 무엇하나 그녀에게 희망적인 것이 없다. 그리고 어렵게 취직한 왕백숙집에서 돈을 위해 윤영은 결국 매춘을 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며, 나에게 불쾌감을 주는 윤영과 그 등장인물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과 싸우고 싶었다.

 

윤영은 갑자기 찾아온 시어머니를 피해 공사판 여인의 집에서 잠을 잤다. 그 여인은 윤영에게 이 곳은 햇빛이 들지 않으니 알람이 없으면 한 없이 잔다고 말했다.

 

내가 있는 이 곳 지하 고시원은 바로 앞 건물의 빛이 방으로 쏟아진다. 마치 달밤에 누가 나에게 조명을 비추는 것 같다. 바로 앞에 건물도 고시원이다. 대략 다섯 걸음 앞에 있다. 그리고 내가 보이는 시선의 한 2층 높이부터 방 창문들이 보인다. 그리고 12시가 넘으면 그곳에 불이 켜진다.(누가 켜는 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몇 달은 그래도 버텼다. 어둠이 익숙해 지면 다음에 그 공간을 갸냘픈 빛이 가득 채웠다. 그럼 눈은 그 빛에 익숙해 지고, 방이 밝아진다. 결국 누워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고난에 지지 않는다. 다음 날 만물상에서 검은 비닐 봉지를 사서 창문에 완벽하게 틈 하나 없이 붙였다. 그 결과 낮에도 밤에도 창문만 닫으면 나는 바깥 세상과 완전히 격리 되었다.

 

그렇게 '공사판 여자의 알람 없으면 못 깨는 방'을 나는 만들었다.

 

윤영이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나처럼 공부를 하지도 않고 얘만 보는 남편을 위해 돈을 벌어 봤냐고 말이다. 뭐라 대답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나도 그녀가 락스 때문에 시린 눈을 안고 백숙집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처럼 그런 경험은 해 보았다고 말하고 싶다.

 

작년 여름 한참 더울 때, 더 이상 돈이 나올 곳이 없어서 일을 시작했다. 공부도 돈이 있어야 한다. 내가 있는 고시원 근처의 피시방이었다. 나도 윤영이처럼 불안했다. 그녀는 33살에 일을 구하기 힘들었다. 나 역시 그랬다. 36살의 나이에 알바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주말 야간으로 일을 시작했다. 금요일 밤 9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그렇게 일요일까지 반복이다. 카운터에만 앉아 있다가 책 한 줄이라도 더 볼 수 있겠지란 기대와 달리, 오자마자 피시방 앞 인도를 청소한다. 카운터에 앉마마자 들어오고 나가고 손님이 끝이 없다. 손님이 나가면 그 자리에 가서 먹은 음료, 음식을 치우고, 키보드를 퉁퉁 쳐서 먼지를 빼고 모니터 닦고, 그리고 자리 밑에 있는 과자 및 기타 모든 것들을 청소한다.

 

그것의 반복을 새벽 4시까지 한다. 그리고 손님이 덜 움직이는 것 같다고 느껴지면 약 100평 가량의 홀을 쓸고 대걸레로 닦는다. 빗자루가 짧아서 허리를 숙이고 쓸어야 하는데 다 끝나면 허리가 아프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은 락스를 뿌리며 닦아야 한다. 락스의 시린 냄새 때문에 눈도 따갑다. 흡연실의 담배통까지 청소한다.

 

이 때쯤 되면 배 고픈 손님들이 컵라면을 주문한다.

 

컵라면은 정수기 물을 붓고, 뚜껑을 뗀 채로 전자렌지에 돌린다. 그래야 빠르게 익어서 손님들이 먹기가 편하다. 난 교육을 받았음에도 알바를 시작한지 며칠이 안 돼 바쁜 나머지 손님의 컵라면을 뚜껑을 떼지 않은 채 전자렌지 돌렸다.

 

여러분은 절대로 그러지 마시길. 컵라면의 뚜껑은 불이 붙는다. 갑자기 확하고 말이다. 어두운 조명의 피시방 안에서 그 불은 너무나도 환하게 주변을 비추었다. 마치 기적의 불꽃처럼 말이다. 전자렌지 앞 쪽에 앉아 있던 손님들도 마우스를 떨어트릴 정도로 놀라고 조금 떨어져 걸레질하던 나도 놀랬다.

 

급하게 컵라면을 꺼내 불을 끄고, 손님에게는 새로 컵라면을 해 주었다. 그리고 불이 붙었던 컵라면은 아까워서 버리지 못 해 내가 먹었다. 그리고 혼자서 실실 웃었다. 윤영이가 옥탑방 계단에 앉아 최악을 생각하며 혼자 웃듯이 나도 웃었다.

 

새벽까지 밤을 세고 아침을 맞이 하면 멍하고, 제 정신이 아니다. 돈도 좋지만 이러다가 골병들 것 같아서 3달 만에 그만 두었다.

 

윤영이의 자조적인 웃음이 보이는 것 같다. 자기는 남편을 위해, 아기를 위해,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짐승 같은 놈들이 위에 올라타는 것도 참고 버텼는데 나는 저 정도의 일에 힘들어 하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윤영이를 만날 수 있다면 그녀의 남편에 대해 조금이나마 얘기해 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윤영이는 남편에게 화를 내고 모욕을 했다. 밥상을 엎거나, 핸드폰을 머리에 던지거나, 자는 얼굴에 흙을 뿌렸다. 하지만 그래도 남편은 바보같이 미안하다고만 했다.

 

나는 그게 참 마음 아팠다. 윤영이의 분노는 이해된다. 하지만 그녀가 남편과 더 솔직하게 얘기해서 서로 없고 힘들지만 격려해서 그 상황을 극복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남편처럼 고시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를 할 때 가장 무서운 것은 공부가 되고 안 되고 문제가 아니다.  내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한 없이 갸냘픈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내가 결과를 내기를 나이든 우리 부모님은 한 없이 기다리고 계시다. 남편도 부담감을 심하게 느꼈을 것이다. 성공에 대해 집착할 수록  공부가 더욱 안 된다. 그게 스트레스로 이어지곤 한다. 내가 그랬으니 말이다.

 

윤영이는 무서운 희망이라고 했다. 하지만 무서운 희망은 없고, 희망은 무섭지 않다. 희망이 있지만 그걸 향해서 발버둥치고 가지 못하면 그것은 이 소설 제목처럼 환영에 불과하다.나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환영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에게 속상했던 것은 왜 희망을 환영으로 만드냐는 것이다.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이 있다면 그리고 힘든 현실이 있다면 그는 거기서 일어서야 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나눠야할 짐도 아니고, 그리고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그건 자신의 몫이거든. 짊어져야 한다. 그리고 누가 뭐라든 그걸 짊어지고 걸어가야 한다.

 

그녀의 남편은 그러지를 못 했다. 그녀가 나가서 돈 버는 거에 안주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무슨 모독을 해도 그는 받아 들인 것 같다.

 

난 그녀의 분노도 이해한다. 마치 내 안에 그녀와 남편이 같이 사는 것처럼, 이렇게 어렵게 돈을 벌어서 공부를 하는 거면 고시원에 들어오면 퍼질 게 아니라 졸린 눈을 비벼가며 코피 터지게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난 그게 안 되었다.너무 피곤해서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러면 누워있는 내 몸을 향해 윤영은 막 욕을 한다. 왜 그러냐고 말이야. 무기력한 남편과 윤영이 항상 밤이면 뒤엉켜 내 속에서 대화를 한다.

 

이 소설을 통해서 나는 내 안의 비참한 것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들이 윤영이와 그 남편을 통해서 구체적인 살아 있는 인물로 나타났다고나 할까?

 

작가에게 너무나 고맙다. 하지만 소설을 쓴 작가의 인물상에는 반대한다. '환영'에서 모든 인물은 반성도 없고, 개혁도 없고 마치 불행의 바닥으로 달리듯이 쭉 가버린다. 난 인간은 그렇게 고정적인 형태로 가버리는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해피 엔딩의 소설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루쉰 선생은 희망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걸어가는 것으로 길이 생기듯 희망 역시 걷는 속에 생긴다고 하였다.

 

인간의 삶은 변화한다. 그리고 변할 수 있다. 새벽에 고시원에 앉아 홀로 울 때도 있지만, 난 내가 변할 수 있고, 그리고 그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여긴다.

 

이 소설이 나의 어둠을 비춘다면 거기에 지지 않기 위해 그 반발력으로 내 속의 빛이 뿜어져 나옴을 느낀다.

 

윤영이도 남편도 그리고 소설 속의 모든 인물이 부분적인 내 자신이다.

 

그리고 그런 내 자신과 더불어 그것과 싸우려는 내 자신이 있다.

 

이 둘의 조화를 통해 나는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싸우러 가는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참는 건 잘 했다. 누구보다도 질길 수 있었다. 다시 시작이었다.

 

밑에 사진은 고시원 담벼락에 대학생들이 재능기부를 해서 그려준 그림이다. 보고 있으면 왠지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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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9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09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1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3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6-05-2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루쉰님이다!

저도 한동안 알라딘 서재에 자주 못 들어왔어요.
아주 가끔 들어와도 책만 좀 찾아볼 뿐이었죠.

고시원 생활 저도 한 1년 가까이 했어요.
다만 저는 고시 공부를 한 것은 아니고,
학원 강사 하던 시절에 잘 곳이 없어서 고시원에 살았죠.
돈을 벌긴 했지만, 얼마나 벌어야 이 고시원을 벗어나,
방 한 칸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답답해했던 시기였죠.
정말 돈 한 푼 없이 혼자 서울에 올라왔던 초기였기 때문에
불안감, 외로움,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적으로는 아주 조금 나아졌을지 몰라도,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불안하고, 외롭고, 두려우니까요.
내 주변에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동료가 있어도,
그럼에도 여전히 저는 힘드네요.

루쉰님의 소식을 읽어서 무척 반갑습니다!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아주 가끔이라도 서로 안부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어요~

루쉰P 2016-05-23 09:54   좋아요 0 | URL
우와 감은빛님이다! ㅋㅋㅋ

서재에 서로 못 들어왔군요 ㅋ 저야말로 감은빛님의 서재도 못가고 제 서재만 이렇게 와서 숨 한번 쉬고 숨고 그러네요 ㅎ

감은빛님도 고시원 생활을 ㅋㅋㅋ 댓글에 써 준 말이 가슴을 울리네요. 불안감, 외로움 ㅋ 저도 그래요. 매일 그런 것들과 싸움이네요.

시험을 몇 번 말아먹고(?) ㅎ 다시 또 시작하고 있어요. 알바에 다가 학원 다니다가 병원 신세도 좀 지구요 ㅎ 도대체 여기서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인간이 힘든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하나의 법칙이라고 생각해요. 그 누군들 설사 가족이라 할 지라도 저를 이해 못하고 그런 것이라 생각 들어요. 혼자서 외롭고 불안해도 걸어나가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여기서 외로움의 끝을 보며 있다보니 루쉰 선생이 아q정전으로 세상에 나오기 전에 13년 동안 교육부에서 근무를 하며 학교가 끝나면 자기 골방으로 돌아가 불경 서적이나 베끼고 하던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네요.

외로움의 극한에 있으니 뭐가 외로운 지도 모를 그럴 지경에 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기는 도림천이란 곳이 있어서 아침이나 저녁에 한 시간씩 걸어다녀요. 강아지 데리고 온 사람들, 커플끼리 손 잡고 가는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생명의 파워를 간접 흡수하고 있어요 ㅋ

감은빛님 어떤 현실에 어떻게 싸우고 계실지 모르지만 여전히 힘들다는 말에 저 역시 공감합니다. 그리고 그 힘듦에 무슨 말을 해 드려야 할 지도 잘 모르겠구요. 그치만 감은빛님을 응원한다는 것은 100% 믿어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뭔가 희망찬 리뷰로 감은빛님께 힘을 내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책도 하도 안 읽고 안 쓰니 능력이 많이 퇴화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ㅋ

어찌되었든 우리 힘내요 ㅋ

천사 2016-07-3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의 글을 아주 좋아합니다. 제 태만한 일상에 번쩍 정신을 들게 만들어 종종 일부러 당신의 서재를 찾아 글을 읽습니다. 그때마다 당신의 일이 잘 풀리기를 기도하고 또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 형편이 좋아지기를 맘속으로 응원합니다. 당신의 좋은 글을 계속 읽을 수 있으면 좋겠에요. 힘내세요..

루쉰P 2016-08-01 00:54   좋아요 0 | URL
하하하 이거 너무 감사한데요! 천사님의 글을 읽으니 젝가 마치 훌륭한 삶을 사는 사람 같아요 ㅋㅋㅋ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로지 패배의 길만 허덕이며 걷고 있습니다. ㅋ
그래도 너무도 부끄러운 글이지만 천사님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ㅋ 아무래도 글을 쓰는 사람에게 최대의 칭찬은 그 글이 나에게 힘이 되었어라는 한마디가 아닐까 싶어요 ㅎ
기도해주는 거 100% 흡수해서 일이 잘 풀리도록 하겠습니다 .매번 너무 어두운 거 보다 승리의 글도 써야지 않을까요 ㅋㅋㅋ 기대해 주세요. ㅋ
 
모브 사이코 100 : 2
One (원)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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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 모브는 쿠로즈 중학교와의 싸움에 의도하지 않게 휩쓸리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초능력을 가진 하나자와 테루키를 만난다.

테루키는 능력을 숨기고 사는 모브와는 틀리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학교에서 여자들에게 인기짱, 남자들에게는 싸움짱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는 아이다.

 

테루키의 초능력에 의해 모든 사람들은 쓰러지지만, 모브만은 쓰러지지 않는다. 이에 놀라 테루키는 모브를 쓰러트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그럴수록 모브는 자신은 초능력을 사람에게 쓰지 않을거라며 능력을 쓰지 않는다.

 

자신을 쓰러트리기 위해 모든 힘을 퍼붓는 테루키에게 모브는 이렇게 말한다.

 

'알았어. 왜 이렇게 내게 적의를 품는지. 이건 동족혐오라는 거야. 너는 나와 약간 비슷해. 초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자기에게 전혀 자신이 없다는 점이.'

 

고시원에서 그에 대해 고민을 하며 며칠을 보냈다. 처음에는 나 자신에게 조차 의심이 들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지 않을까? 난 왜이리 의심이 많을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 속에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았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기에, 근처 정신병원에 전화를 해서 문의 해 보았다. '그' 나 '나' 둘 중에 누군가가 문제가 있을텐데 한번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고 싶었다.

 

전화를 걸고 횡설수설 하며 상담 받고 싶은 이유를 설명을 했다. 간호사는 얘기에 대해서는 그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간결하게 상담 비용은 1회 5만원이며 본인이 와야 정확한 상담이 가능하다고 했다.

 

5만원. 그 정도의 돈이 나에겐 없었다. 한달 밥값, 학원비 그런 걸 빼면 전혀 무엇에도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알라딘의 몇 분들에게 질문을 했다. 다행히 몇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진정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선택해야 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동안 그의 전화는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 때는 학원을 잠깐 쉬는 기간이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 길을 나설 때도 그와 마주칠까봐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두리번 거리며 걸어 다녔다. 마치 죄수처럼 말이다.

 

어느 날, 고시원 벤치에 앉아 담배만 빡빡 피우던 내가 안 쓰러웠는지 고시원 원장님이 조용히 말을 걸어 왔다.

 

고시원 원장님은 약 60대 초반이시다. 각진 네모난 안경에, 매일 등산복 차림으로 줄 담배를 피신다. 아침 10시 정도 오셔서 하루 종일 고시원 2개 건물 청소와 사람들이 빠져나간 방의 도배, 청소 등을 하며 바쁘게 보내셨다. 그리고 나에게 항상 선생님이란 호칭을 써 주셨다.

 

벤치에 앉아 원장님과 조용히 얘기를 나누었다. 원장님은 나에게 말했다.

 

"여기서 있다 보면 선생님께서 말한 그런 분들이 몇 분씩 들어올 때가 있어요. 맨 처음 고시원 할 때는 그런 분들 때문에 속 좀 썩었죠. 방 구하러 올 때는 정상인 것 같은 데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니 저도 많이 놀랐어요."

 

원장님은 담배에 불을 붙이시면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도 뭐 그런 쪽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선생님 얘기를 듣다 보니 그 친구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네요. 예전에 여기 와서 생활하던 사람 중에 같이 벤치에 앉아 있는데 저 옆의 건물로 사람이 기어 올라 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죠."

 

그러면서 원장님은 옆의 건물을 가르켰다. 우리 고시원 앞에 있는 새빨간 또 다른 고시원 건물의 벽면이었다.

 

"그 사람은 저에게 여자가 벽을 기어올라가고 있다고 보이냐고 물었죠."

 

나는 원장님께 그래서 어떻게 대답했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그럴 때는 보인다고 얘기를 해줬죠. 아 저 여자분 고생이 많다고 말이죠."

 

뭘까? 왠지 모브의 스승 레이겐이 생각이 났다. 원장님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이야기가 매우 비 논리적이지만, 자신은 그런 망상이 타인에게 들키면 아무도 안 믿어줄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그것을 교묘하게 논리적으로 만들어요.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그 세계에 대한 확신이 무서울 정도 깊어요."

 

담배를 툴툴 터시며 원장님은 이야기를 하셨다.

 

"그런 세계를 부정해 봤자, 그런 사람들은 되려 저를 의심하죠. 그리고 더욱 움추려 들어요. 자신의 세계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말이죠. 그런데 거기에 더욱더 강하게 정신차리고 하면 자신을 병자 취급한다며 공격적으로 나오죠."

 

나는 물어 보았다.

 

"그럼 그 분은 어떻게 하셨어요?"

 

원장님은 웃으시며 말하셨다.

 

"그 사람에게 택배를 핑계로 가족들 연락처를 물어봤어요. 그리고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죠. 이런 상황이라고 말이죠. 이미 집에 있을 때부터 그런 징조가 있다고 하더군요. 시험 때만 되면 그런 강박증 같은 게 더욱 발생되었데요. 결국은 가족들이 와서 데리고 갔죠."

 

그리고 나서 원장님은 그런 유형의 비슷한 사람들을 이야기 해  주셨다. 뭐이리도 많은지, 마치 정신병원 치료소 같은 이야기 였다. 원장님은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내 눈을 보며 진지하게 이야기 하셨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 목적이 있어요. 선생님도 돈이 남아서 여기 오셔서 공부하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자신조차 구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 누구를 구할 수 있겠어요. 잘 판단해야 해요. 의욕만 있다고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마치 정신병원 원장님이 갓 입학한 간호사에게 교육하는 듯한 말투셨다. 원장님과 대화를 한 후, 착잡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누워서 여러 생각을 했다.

 

난 그의 눈빛에서 무엇이 두려웠을까. 나는 그에 대한 '동족혐오'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의 반응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눈빛 속에서 나를 본 것 같았다. 나 역시 여러 스트레스 속에서 그런 쪽으로 분출이 안 된 것일뿐 그런 위험성은 항상 간직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눈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니 당혹감을 느낀 것은 아닐까.

 

그는 나에게 말하곤 했다. 형은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고, 힘들고 그럴 것인데 그런 게 안 느껴진다고 했다.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하루에도 수천번 혼자서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와 나는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그래서 난 더 두려웠던 것이다. 나 자신을 스스로 보는 게 너무 두려웠으니 말이다.

 

그리고 난 비겁했다. 그를 감당하기 싫었다. 학원도 그와 다른 학원을 신청을 했다. 그를 보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원장님이 가르쳐 주신데로 '티를 내지 말고 조용히 멀어져라'는 말데로 그렇게 행동했다.

 

그의 전화를 받지 않는 내게, 그가 문자로 걱정된다고 몇 번이나 보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고 무심하게 스팸으로 돌렸다.

 

넌 시험에 합격해야지, 저런 것에 신경쓰면 안 돼. 저 친구가 너의 시험을 망칠 수도 있어.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나를 합리화 하는 목소리를 계속 들었다.

 

그러나 마음 한켠이 너무나 불편했다. 매정하고, 타인에 대해 이렇게까지 차가운 나 자신에 대해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알라딘에 쓴 글도 내가 따뜻하고 좋았던 부분만 이야기 했지, 이처럼 매정하고 차가운 자신에 대해서는 써 본적이 없다.

 

솔직히 의심이 된다. 내가 이러고 시험을 합격을 해서 과연 진짜 힘든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는 자신이 될 수 있을까? 눈 앞의 힘든 자를 구하지 못하고 다른 누구를 구할 수 있는 것일까?

 

매정하고 야박한 자신을 탓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갈 수 없는 자신의 이중성. 가장 최악의 인간인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한다.

 

자기만을 위한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타인만을 위한다는 것은 위선적이다. 이기적이지도 위선적이지도 않은 자신. 그런 자신을 찾고 싶은데 혐오감이 깊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야 말로 진정한 고시원 사이코이지 않을까 싶다.

 

진정한 정신병자는 그가 아니고 나라는 사실. 그것만이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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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6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9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브 사이코 10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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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칭 영능력자 레이겐 아라타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레이겐은 이 책의 주인공 '카게야마 시게오' 통칭 '모브'의 스승이다. 레이겐은 악령 퇴치 사업을 하고 있으나 본인은 전혀 초능력이 없다는 게 함정. 사기로 벌어 먹던 그에게 '모브'가 찾아와 상담을 하다가 발견한 진짜 모브의 초능력! 레이겐은 시급 2,800원에 그를 이용하기 위해 설득한다. 결국 레이겐을 스승으로 모시고 생활하는 진짜 초능력자 중 2 모브의 이야기가 이 책의 줄거리다.

 

이 만화의 매력은 반전이라고 할까? 조금 옮기자면 이런 식이다.

 

레이겐: 요즘 어깨가 무겁다고? 저주 받은 겁니다. 어깨 결림이나 요통의 90%는 저주 때문이죠.

 

상담자: 뭐요...저주?! 저주받을 만한 일이 없는데?!

 

레이겐: 원망 한 번 안 받고 살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잘~생각해 보세요. 요 반년 안에 누군가와 싸운 적 있죠?

 

상담자: 없는데요...

 

레이겐: 본인에게는 가벼운 입씨름 이었을지 몰라도. 앙심을 품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담자: 가벼운 입씨름도 한 적 없는데요.

 

레이겐: 입씨름이라기보다 견해차 정도의 사소한....

 

상담자: 없는데요.

 

레이겐: ....그거군요. 직장 거래처나 상사, 부하에게 저주받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신입사원 교육이나 고객을 상대할 때 트러블이 있을 수도 있죠. 그 상대방이 앙심을 품고 저주를 한 겁니다. 혹시 직업이 뭔지?

 

상담자: 없는데요.

 

레이겐은 계속 '저주'라는 쪽으로 껴 맞추기 위해 여러 질문을 하지만 결국 모든 질문이 막힌다. 레이겐은 인터넷만 하는 이 남성이 야동으로 인한 저주를 받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거부하는 상담자에게 저주를 치료한다며 어깨 마사지를 해준다. 그때까지 거부하던 상담자는 레이겐의 마사지 솜씨에  황홀해 하며 저주가 풀렸다며 사무실을 떠난다.

 

뭐 대략 이런 내용들이 재미나게 이어진다.

 

오랜만에 미친듯이 낄낄 웃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다.

 

고시원 생활 8개월 째, 생각만큼 나가지 않는 공부 진도, 같은 책을 읽고 또 읽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도 기억 나지 않는 백지 같은 나의 뇌.

 

나 역시 레이겐 식의 대화를 자신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을 한다.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배가 고프다. 배가 불러야 뇌가 돈다며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간다. 배가 부르면 졸리니까 건강을 위해서라도 주변을 산책하기로 한다. 산책을 한 후 고시원에 올라오면 피곤함이 몰려온다. 피곤함은 공부의 적이기 때문에 잠시 잠을 청한다. 일어나면 벌써 점심. 급한 마음에 담배를 피고, 노트북 앞에 앉아 인강을 튼다. 조금 듣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하루의 소식이 궁금해 뉴스를 본다.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다가 배가 고파진다. 다시 식사, 산책, 잠 그렇게 저녁까지 반복. 그리고 다시 아침 해를 맞이한다.

 

악령이 내 몸에 들어왔나...

 

고시원은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오로지 공부만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직장의 인간관계를 피해, 하루 하루 적은 돈을 벌기 위해 소비되는 나 자신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이 곳으로 들어왔다.

 

살면서 나만을 위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하루 종일 나와 대화하고, 내가 할 목표를 정하고, 홀로 지낸다. 그러다 보니 나란 녀석이 어떤 사람인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난 책을 좀 좋아하는 편이라 공부를 제법 잘 할 줄 알았다. 직장을 다닐 때는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돈만 안 벌고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이었다. 정작 그렇게 공부만 할 수 있게 되었는 데 공부를 못하고 있는 이 현실.

 

난 레이겐처럼 오로지 합리화, 합리화만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

 

모브는 스승 레이겐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한다.

 

자신이 이대로 사는 게 좋냐고 말이다. 너무 빈둥거리며 산다고 말이다.

 

그러자 레이겐은 인생에서 가장 빈둥거리 좋은 기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빈둥거리는 네가 인생의 승리자다 라는 격려를 한다.

 

모브의 두려움 난 그것을 이해한다. 이렇게 생활해서 되겠냐는 것이다.

 

고시원을 들어올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고 위해서 들어왔다. 더 이상 바닥의 인생으로 살지 않으리라! 이 곳에서 나의 신분을 세탁한다! 그런 굳은 결의로 왔다.

 

모은 모든 돈을 가지고 왔다. 아무런 결과 없이 돌아간다면 난 있을 곳이 없다. 언제나 막다른 길에 와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스스로 막다른 길을 만들어 와 본적은 없다.

 

조급한 마음과 다르게 평온한 뇌가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음처럼 왜 뇌는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왜 책의 한장이 지구를 들어올리는 것 만큼 힘든 것일까? 무엇이 나에게 빠져 있는 것일까?

 

모브는 자신의 초능력이 쓸데 없다고 생각한다. 초능력이 공부를 잘하게 해 주지도 않고, 달리기를 잘 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기껏 해봐야 악령 퇴치 조수로 일하며 시급 2,800원을 벌 뿐이기 때문이다.

 

모브 같은 초능력은 아니더라도, 난 이런 능력은 있으면 좋겠다. 고시식당 식권을 두 배로 늘어나게 하는 능력, 내 눈 앞에 있는 햇반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이 곳에서 식사는 고시식당이란 곳에서 한다. 대학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8 곳 정도 고시식당이 있다. 아마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 한끼 가격은 3,800원이다. 하지만 퀄리티가 남 다르다.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제공이 되며 식권은 한 끼씩 한 장을 쓴다. 식사는 식판으로 한다. 밥은  흑미, 백미 두 종류가 제공되며 양 껏 푸면 된다. 아침은 토스트와 햄, 달걀 후라이까지 스스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세끼 모두 반찬은 고기류 반찬 2종, 기타 나물류 및 김치 등 8종이 있다. 국과 샐러드도 무료 제공이며, 식혜와 커피, 아이스크림까지 있다.
저 가격에 이 정도의 식단이라니, 전국 최고의 식당이다.

 

푸짐한 식단과 다르게, 먹는 사람들은 외롭다. 밥과 반찬들은 짝을 이루며 있어도, 여기서 밥을 먹는 사람들은 짝이 없다. 혼자 이어폰을 들으며 밥을 먹거나, 식당 맞은 편에 걸린 티비를 보며 밥을 먹는다. 여기서는 둘이 와서 밥을 먹으면 더 이상해 보인다. 먹는 사람들은 40대 아저씨들, 20~30대 남녀 고시생들 등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혼자와서 먹는 것은 공통이다.

 

그러고 보니 이 곳에서 그 친구와도 밥을 먹었다. 파마한 부스스한 머리에, 얼굴은 달걀형, 눈은 양쪽이 좀 쳐져서 순한 인상을 준다. 그 친구는 학원에서 알게 되었다.

 

학원에서는 누군가에게 말을 안 거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홀로 뒤에 앉아 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1차 시험이 언제냐고, 그런 당연한 질문을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기에 의아해 해서 쳐다 보았다. 이 친구는 진짜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모처럼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나는 항상 친절하다. 설명해 주고 그 때부터 담배도 같이 피며 여러가지 소소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가정주부 셨다. 그리고 sky대 중에서 k대 법학과를 이 친구는 졸업했다. 좋은 학벌, 좋은 부모님 부러운 환경이었다.

 

식사도 여러 번하며 대화를 했다. 대화를 하며 느낀 점은 뭔가에 압박을 느끼고 있는 듯한 이 친구의 모습이었다. 부모님은 이 시험을 공부하는 것에 불만이라고 했다. 로스쿨을 가는 게 낫지 왜 이 시험을 공부하냐고 말이다. 사실 나도 의아했다. 굳이 노무사 시험을 왜 볼려고 하는 지 말이다.

 

그 친구는 자신을 그렇게까지 법 전공으로 하는 공부를 하기에는 싫다고 했다. 노무사 자격증을 따서 기업에 취직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중에 공부하는 나에게 이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할 얘기가 있으니 꼭 만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늦은 밤인데 전화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절박한 듯 해서 그를 만나러 갔다.

 

어느 정도 술을 먹은 듯한 그를 데리고 근처 술집에 들어갔다. 그가 술이 너무 심하게 마셨다면 집에 돌려 보내야 겠다고 생각하고 계속 그의 상태를 지켜 보았다. 술을 마시긴 했지만 취한 듯한 모습은 아니고, 말도 잘 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도 하고, 창 밖을 보기도 하고 불안해 보였다. 그는 내가 하는 이야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무언가 나에게 얘기하고 싶은 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의 표정, 입의 움직임 말을 할까 말까 하는 움직임 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 하라고 했다. 나를 이 시간에 부른 건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 나 역시 고민이 많다. 그러니 걱정말고 얘기를 해라. 하고 다정하게 말했다.

 

고민을 하는 듯 하던 그는 나에게 얘기를 했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고 말이다. 그는 숨도 쉬지 않고 쉬지 않고 말했다. 자신을 쫓는 사람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러는 지, 여기를 오는 내내 감시를 당하는 것 같아 불안했다는 등 계속 말했다. 마치 그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해 본적이 없고 처음인 것 처럼 말이다.

 

처음 시작부터 느낌이 안 좋았기에, 난 별로 대꾸를 하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이야기 자체는 믿을 수 없는 황당함이지만, 논리적 구조과 이야기의 연결은 흠 잡을데 없이 훌륭했다. 내용 자체의 황담함만 없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능할 구조였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그의 눈이었다. 뭔가에 사로 잡힌 듯이, 충혈되고 집중하는 듯한 그 눈빛.

 

얘기를 마치고, 집에 가기 너무 불안하다는 그를 택시를 태워서 보냈다. 지금 집에 갈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하는 그를 소리를 지르며 안심시켜 보냈다.

 

고시원에 올라와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담배를 폈다. 마음 속에서 두려운 감정이 솟구쳐 올라 왔다. 그것은 내가 소화할 수 없는 듯한 두려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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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가 지침 이어서 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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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4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9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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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읽어도 감동을 준다. 지금 같은 편견의 시선이 난무할 때 이 책은 그 효과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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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5-12-0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돌아오셨군요~, 저 버선 빨아놨어요. 달려갈려고~...ㅋ~.

루쉰P 2015-12-02 02:33   좋아요 0 | URL
부끄럽습니다. 허구헌날 탕아도 아니고 ㅋ 알라딘 밖을 벗어 났다고 돌아오곤 하니까요 ㅎ 저거 투표하면 적립금 준다고 해서 그냥 써 봤어요 ㅋㅋㅋㅋ
날씨도 추운데 잘 지내시죠? 독서도 마음처럼 잘 되지가 않네요 ㅋㅋ
조만간에 꼭 하나 쓸라구요 ㅋ 너무 감사해요 ㅠ.ㅠ

stella.K 2015-12-02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십니다. 알라딘이 전어로구만요. 앞으로 알라딘이 이런 이쁜 짓 좀 많이 해야할 텐데 그래야 루쉰님 뵐 수 있는 거 아닙니까?ㅎㅎ
잘 지내시죠?^^

루쉰P 2015-12-03 16:43   좋아요 0 | URL
너무 잘 지내서 탈이지요 ㅋ 눈이 펑펑 옵니다. 고시원이 산에 위치해 고립된 듯한 이 느낌 ㅋ 길이 얼면 밥 먹으로 하산 할 때는 비닐포대라도 타고 가야할 판이에요 ㅋㅋㅋ 스텔라님도 빙판 길 조심하세요 ㅋ

아이리시스 2015-12-03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오.

루쉰P 2015-12-04 06:24   좋아요 0 | URL
헤헤헤헤헤 ㅋ

cyrus 2015-12-0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죠? ^^
 
한 권으로 읽는 루쉰 문학 선집
루쉰 지음, 송춘남 옮김, 박홍규 해설 / 고인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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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이 글은 전혀 리뷰가 아닙니다. 다만 이 책이 루쉰 선생을 접할려고 하는 분에게는 정말 도움이 된다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리뷰에는 책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저도 왜 리뷰라는 이름으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책의 정보가 필요한 분이시라면 이 글을 안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깁니다. 읽고 나서 화 내실까봐 미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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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서재에 가끔 들어오기는 하지만 여러번 말씀드린 데로 글을 쓰는 것이 이제는 두려워 차마 무엇을 쓰지 못 합니다. 몇 번 쓸려고 하다가 지우기 일 쑤 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쓸려고 하는 걸 보면 제가 관종(관심 종자: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자)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저는 지금 고시원에 들어 와 있습니다. 처음 이 곳을 찾아오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1호선을 타고 N역에 내려서, 5516번을 타면 정류소 이름 자체가 'D동고시촌 입구'입니다.

 

처음 이 곳에 들어왔을 때 놀랐습니다. N역에 내리면 짭짜름한 바다의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리고 비슷한 복장의 수 많은 젊은이들이 급하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모두 약속한 듯 손에는 두꺼운 책들을 하나씩 들고, 백팩을 맨채, 츄리닝이나 아니면 간편한 캐쥬얼 복장입니다.. 그들은 역에서 계단을 내리자 마자 모두 행동을 맞춘 영화 속 인물들처럼 n 학원, 공단기 학원 등 여러 가지 학원 건물로 흡수되듯 사라져 버립니다.

 

저 역시 이 곳의 흐름을 같이 타기 위해, 백팩부터 사고, 두꺼운 책을 산 후, 츄리닝도 위 아래 같은 색으로 맞추어 입었습니다. 그러니 뭐랄까 마음이 든든하다고 할까요?

 

그들이 다 사라진 후, 전 버스 정류장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N역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걸려 'D동 고시촌 입구'에 내립니다. 버스 정류장은 양쪽 모두 산을 깎아 만든 주거지 촌 한 가운데 위치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피시방, 당구장, 술집 및 유흥 시설이 밀집해 있고 학원이 있는 곳이고, 왼쪽은 고시원, 원룸들로 가득찬 곳입니다.

 

저는 당연히 왼쪽으로 가야합니다. 그곳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제가 있는 고시원이 있습니다. 고시원을 가려면 45도 경사의 300미터 고갯길을 세번은 올라야 합니다. 걸어서 올라가다 보면 이대로 저 하늘 끝까지 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왜 그리 높이 갔냐면 높을 수록 고시원 방 값이 쌉니다. 기묘하죠? 높은 것과 방 값이 싼 것의 상관성을 고민했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19만원 입니다. 고시원 방 값이 말입니다. 고시원 건물은 서로 마주보고 1동, 2동 두 건물입니다. 총 수용 인원은 130명이나 됩니다. 방은 모두 130개니 말이지요. 저는 2동 건물 지하에 있는 데 11개 방 중에 하나 입니다. 계단을 내려와 화장실을 정면에 두고 오른쪽에 5개, 왼쪽에 6개의 방이 있습니다. 문과 문 사이는 두 팔을 벌리면 닿는 거리 입니다. 옆 방들과 제 방은 아주 가깝습니다.

방은 5평 가량 됩니다. 가로는 눕지 못 합니다. 무릎이 꺾입니다. 세로로 누우면 충분히 누울 수 있습니다.

이 방에는 창문을 바로 밑에 커다란 책상과 책장 하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 벽면에는 벽걸이용 옷 걸이가 있구요.

 

학원을 마치고 저녁에  고시원 입구에 들어서면 이 곳은 덩굴나무로 장식된 벤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곳엔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벤치에는 탁자가 있는 데 소주와 새우깡 혹은 소세지가 안주로 있습니다. 어떤 날은 모자를 깊게 쓴 아저씨가 앉아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휴대폰을 보며 이어폰을 끼고 실실 웃으며 소주를 먹는 스포츠 머리의 학생이 있기도 합니다.

 

아! 그리고 이 고시원은 남자 전용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하지만 그것이 이 고시원 원장님의 방침입니다. 남자만 사용하게 하는 게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듣지는 못 했습니다.

 

다만, 여자 고시원 방에 팬티만 입고 들어간 남 고시생의 이야기만 근근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의 방에 팬티를 입고 들어간 그 학생의 기구한 사연은 굳이 듣고 싶지 않아 자세히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결국엔 경찰시험을 준비하던 여 학생 이었기에 제대로 얻어 터지고 나왔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이 얘기를 하며 원장님은 껄껄 웃으시더군요. 결국 그 이후 남 고시원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덩굴나무 벤치 아래 소주를 먹는 사람들은 분명 가슴에 묻어 논 얘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은 듭니다. 그러나 그들 옆에 가서 한번도 말을 걸지는 못 했습니다. 그냥 조용히 지나쳐 제 방으로 들어 옵니다.

 

이 고시원에는 40대 이상의 일용직 근로자가 반이고, 나머지는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사시가 폐지 절차를 밟으며 학생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일반 사람들이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전 이곳에 온갖 법 서적을 책장에 진열하고, 루쉰 문학 선집 한 권만 놓고 시간 날 때마다 읽고 있습니다. 

 

아, 외롭지 않냐구요?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사람과의 대화도 안 하다가 보면 익숙해 지나 봅니다. 대화라면 편의점 갈 때나 마트 갈 때 가끔 하곤 합니다.

'적립 카드 있으세요?' '포인트 카드 있으세요?' 그러면 친절하게 웃으며 하나도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인간적인 교류가 없냐구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알고는 있습니다. 말씀드려 볼까요? 전 여기 옆 방 친구가 새벽 4시에 샤워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화장실이 세면실 겸용인 데 씻으면 물 소리가 납니다. 조용히 말이죠. 아주 조용히...

그리고 여기 그 누구의 방이건 문을 열면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이웃 방 이웃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 합니다.

또한 아침 6시, 7시에는 진동 울림이 제 방까지 전해집니다. 신기하죠? 저도 그 진동이 어느 방에서 울리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 일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저 역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합니다.

가끔은 뜬금없이 방귀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들이 아주 잘 먹고 소화를 잘 시키고 있다고 여기고 괜히 혼자 흐뭇해져 잠들곤 합니다.

 

이 곳에 학원은 크게 3곳이 있습니다. B 학원은 화장실에 휴지도 없고, 냉난방 시설이 열악해 '노무사 학원의 아오지 탄광'으로 불리 웁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곳은 시설이 괜찮아 그런대로 다닐만 합니다.

 

저도 시설 괜찮은 한 곳을 잡아 학원을 다녔습니다. 학원에는 여 학생들은 23살부터 28살 때까지가 가장 많습니다. 남 학생들은 28살부터 30대 초반까지가 제일 많습니다.

 

전 학원에서 나이 순으로 넘버 3에 들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40대가 두 분이나 계셨으니까요. 다들 유명 대학을 나온 친구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 취업이 안 된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대체 알 수가 없지만, 그것이 이들과 저를 한 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처음 학원에 들어간 것이 작년 9월이었습니다. 몇 년만에 강의실에 앉아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공부를 하니 희열 비슷하게 오더군요. 열심히 듣고 집중 했습니다.

 

전 교실에서 뒤에서 3번 째 줄에 앉았습니다. 앞에 앉기에는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뒤 정도에 있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몇 번 정도 수업이 흐른 후, 어느 날부터 인지 수업 후 10분 정도 흐르면 한 여학생이 제 앞에 빈자리에 항상 앉았습니다. 긴 생머리에 귀걸리랑 목걸이도 예쁘게 하고 티에 스키니 진 청바지를 입고 왔는 데 얼굴도 갸름하고, 몸매도 호리호리 하여 참으로 이쁘구나 하며 앞에 앉아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습니다. 괜히 집중도 더 잘 되고 말입니다.

 

공부를 하러 온 여학생들은 귀걸이 조차 하지 않고 화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이 학생은 특히나 튀어 보였습니다.

 

어느 날 이었는 지 모르지만, 하필이면 그 날 따라 제 앞 자리에 장발머리의 덩치 큰 남학생이 킁킁 대며 앉았습니다. 순간적으로 이 학생이 앉으려고 할 때 의자를 발로 차서 넘어 뜨리고 싶었습니다. 왜 그랬는 지 모르지만 제 안에 악마가 있나 봅니다.

 

예상대로 그 여학생은 늦게 도착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좀 늦어 쉬는 시간에 왔는 데 자리를 앉으려고 두리번 거리더군요.

 

여러 자리가 비었지만 제 옆자리로 걸어 왔습니다. 하지만 제 옆자리 의자는 두 개가 있는 데 그 중 하나가 예전에 앉아 봤지만 앉는 곳에 나사 못이 조금 튀어 나와 따끔 했습니다.

 

그 의자에 앉으려는 그녀에게 말을 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의자 못이 있다구요.

너무 급하게 말하다 발음이 꼬였나 봅니다. 그녀가 저에게 '의자가 멋있다구요?'라고 되물었습니다.

못이 있다고 말하며 미친 사람처럼 웃고 말았습니다. 그녀도 제 이야기를 듣고 웃고 말입니다.

 

학원 강의실에서는 좀처럼 사람들이 웃지 않습니다. 웃을 만큼 기쁘진 않기 때문입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강의를 듣는 데 웃을 수 있다면 마하트마 간디 형이지 않을까요?

 

수업을 다 마치고 그녀는 저에게 커피를 한 캔 사 주었습니다. 먹고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에 주저 거리다가 학원 옥상에 같이 올라가 벤치에 앉아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그녀도 저처럼 직장 생활을 하다가 비정규직을 계약을 반복하고 결국에 정규직 약속만 하던 그곳에서 배신을 당해 노무사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O시가 집인데 여기서 1시간이 걸리지만 그래도 열심히 올려고 하지만 자꾸 늦잠을 잔다고 합니다. 혼자 계신 어머님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데 게으른 자신이 참으로 웃기다며 말이죠.

 

햇살이 비추는 가을의 오후였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웃는 데 그 모습이 참 이쁘더군요.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스키니 진 청바지의 여성이 앞에서 웃으니 참으로 좋았습니다.

 

저는 무슨 기분이 들었는 지 직장에서 제 이야기를 하염없이 했습니다. 그곳에서의 비참함, 갈등, 그리고 속상한 것들.

그녀는 조용히 들었습니다. 커피를 홀짝 홀짝 마시며 말이죠. 제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는 말했습니다. 자신은 직장에서 성추행도 당했다고 말입니다.

그녀는 너무 담담하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퇴근 후에도 쫓아다니는 50대 중년의 스토커 고객의 이야기,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라는 직장 상사들의 이야기도 마치 남의 일처럼 담담히 말했습니다.

 

여기서 노동법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대화를 했지만 그들에게 그 어떤 것도 벌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더욱 실망했다고 합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그녀는 웃었습니다. 왜 웃었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 웃음 속에 모든 걸 날리고 싶은 지 그녀는 웃었습니다. 조용히.

 

전 교과서 적인 대답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반드시 시험 붙자고, 그리고 필요하신 자료 있으면 드릴테니 USB 하나 꼭 가지고 오시라고 말입니다.

 

가을 햇살을 맞으며 그녀와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자료가 들은 노트북을 몇 번이나 살펴 보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또 다음 날도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 버리고 그녀는 학원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0월 초 고시원의 밤, 새벽에 홀로 공부를 하다가 뉴스를 봤습니다. 공부를 하다 지치면 머리를 식힐 겸 뉴스를 보곤 합니다.

 

뉴스에서 '비정규직 여직원 자살'이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별 생각 없이 읽었습니다. O시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비정규직으로 퇴사한 여자가 자기 집 방에서 자살을 했고, 그녀는 어머니의 권유로 노무사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다음 날, 노동법 선생님을 찾아 갔습니다. 며칠 전 노동법 선생님이 비가 엄청 내리던 날, 우울한 모습으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몇 년전 자신이 가르친 학생 중에 죽은 친구가 있어서 갑자기 생각이 나 우리에게 무슨 고민이 있던 간에 자기를 찾아와 대화를 해달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 입니다.

 

선생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담배를 피며, 그녀에 대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놀라시며 사람들이 뉴스에 나온 그녀를 눈치 챌까봐 몇년 전에 죽은 학생이라고 거짓말 했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 장례식에 다녀왔다고 하시며 그녀가 맞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쓰레기 같은 고객들과 직장 상사들에 대해 욕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놈들은 그녀를 어떻게 해 볼까하고 지들끼리 히죽거리며 얘기 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럴 때마다 자신이 노동법을 가르키는 것에 대해 속상하다고 했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말입니다.

 

저에게 어떻게 그녀를 아냐고 물어보실 길래, 옆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조금 하게 되었다고 애기했습니다.

 

선생님과 둘이 하염없이 담배를 피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학원을 나왔습니다.

 

그후 학원에서도 고시원에서도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녀와 오랜 시간을 대화를 한 사이도 아니고, 친해졌다고 생각되지도 않았지만 그냥 아무 것도 하기가 싫었습니다. 뉴스에서는 매일 자살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 같이 죽을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 비난 했습니다. 왜 죽냐고 하면서 그러나 그것이 저의 생활에 어떤 흔들림도 주지 못 했습니다. 그냥 몇 분 뒤 그 소식들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근데 왜 몇 분 대화한 그녀의 죽음이 저에게 이렇게 모든 생활을 뒤흔들 정도로 힘들었는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진정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그 직장에서 정규직이 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전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 뭐라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타까움, 그리고 안타까움. 그것만이 제 가슴 속에 휘몰아 쳤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노력한 것이 상실되고 나서 자신의 모든 노력이 산산히 부서졌을 때 그 마음을 저는 조금이나마 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자살이란 선택에 대해 그것은 잘못됐다고 쉽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낼만큼 그 무엇인가를 반대로 이야기할 수도 있어야 하는 데 전 마음 속에서 죽지 않아야 하는 반대의 이유를 찾지 못 했습니다.

 

그렇다고 죽는 것이 맞다고는 보지도 않습니다. 루쉰 선생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반드시 격퇴해야 할 상대들을 앞에 놓고, 내가 죽어 버린 다면 그것은 그들만 편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려면 독하게 아주 독하게 칼을 갈아야 합니다. 그것을 전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가진 상처는 단순한 말로 해결될 그런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 꽤나 뻔뻔합니다. 공부를 하는 이유도 안정적이고 고정된 수입과 조금이나마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1%라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란 희망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입니다.

 

생명이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전 아무 것도 해 주지를 못 했습니다.

 

지금도 문득 어두컴컴한 방에 고시원에서 해결되지 않는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루쉰 선생의 책을 읽으며 그냥 더듬 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사회는 썩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데로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정도의 상처를 입히고 결국엔 그녀를 죽였지만 그런 원인을 제공한 자들은 기껏해야 직장에서 아주 작은 제재만 받았습니다.

 

어느 날 꿈에는 그들을 찾아가 빈 병으로 머리를 부수고 이빨로 물어 뜯어서 갈기 갈기 찢어버리는 꿈을 꿨습니다.

 

루쉰 문학 선집에는 열강의 내정 간섭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항의집회를 열고 정부에 대한 청원 데모를 벌였지만, 정부는 발포로 대응해 47명이 죽고 150여명이 다치는 대참사가 벌어졌는 데, 죽은 40여명 중에는 루쉰 선생의 제자도 있었습니다. 여학생 이었습니다.

 

루쉰 선생은 2주 후에 추도사의 글을 썼습니다.

 

"나 역시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참이었다.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는 대체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중략) 하지만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이 인간세상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뿐이다. 마흔 여 명 청년의 피가 주변에 흘러념쳐 숨이 막히고 보기도 힘든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이 비분을 글로 쓴다 해도 그것은 아픔이 가라앉은 뒤라야 할 것이다.(중략) 나는 나의 더 없는 애통을 이 비인간적인 세상에 공개하여 그것으로 나의 고통을 위안할 것이며 이것을 죽은 자에 대한 약소한 제물로 삼아 영전에 삼가 바치리라."

 

그녀는 절망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살려고 공부를 도전 했었고, 무언가 해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죽일려고 드는 사람들의 압력이 너무 세어 그녀를 압사 시키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녀가 죽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그녀의 친구들에게 다행스럽게 연락이 되어 그녀가 묻힌 곳의 주소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페이스북에서 저와 대화했던 그 때 그 미소로 웃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닷가가 있는 가족 묘지에 묻혀 있었습니다. 전 아직도 찾아 가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꼭 갈 생각입니다.

 

루쉰 선생은 또 이렇게 쓰고 계십니다.

 

"언제나 생글생글 웃을 띠고 상냥하던 그녀가 죽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고 거리는 다시 태평을 찾았다. 워낙 한계가 있는 몇 사람의 생명쯤은 중국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악의가 없는 한가한 사람들의 식후의 이야기꺼리로 되거나 악의를 가진 한가한 사람들이 풍문이나 만들어내는 종자로 될 뿐인다."

 

세월호의 학생들이 죽은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렇게 학생들은 죽인 자들은 아무런 제제도 받지 않고, 벌도 받지 않으며 시간이 용서를 부르듯이 그러고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그들의 이야기가 지겹다고 댓글다는 놈들만 보입니다.

 

반드시 벌해야 하는 것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며,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있는 데 그런 것을 장님처럼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참으로 구역질이 납니다.

 

루쉰 선생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마음속에 묻혀 남지 않는다면 그들은 진정으로 죽은 것이다."

 

"전사가 부족한 곳에서는 생명이 더욱 귀중한다. 귀중하다고 말하는 의미는 생명을 집에 깊이 감춰두려는 것은 아니고 적은 원금으로 최대의 이자를 얻으려는 것이며 적어도 수지가 맞아야 할 것이다.(중략) 이번에 희생자들이 뒷사람들에게 남겨준 공덕은, 인간의 탈을 쓴 수많은 물건들의 허울을 찢어버리고 상상할 수 없이 잔악한 마음을 보여줌으로써 뒤를 이어 싸울 전사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점이다."

 

누구나 의미 없이 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절망적인 세상이 지속되게 내버려 두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녀를 추억하며 그녀가 그냥 헛되이 의미없이 그녀가 나약하기 때문에 죽었다고 하는 세상을 받아 들이기는 싫습니다.

 

"피로 쓴 진실은 지울 수 없다"

 

는 루쉰 선생의 말처럼 그 진실은 지울 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런 피로 뒤덮인 현실을 뒤짚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제가 찾을 수 있을 지 말입니다.

 

다만, 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를 죽게 만든 세상의 논리에 따라 가고 싶지 않습니다. 역겨운 그곳에 침이라도 뱉을 정도의 그리고 그들이 조금이나마 짜증이 나도록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공부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이것이 저의 긴 편지입니다. 쓰고 싶었을 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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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5-2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잘 지내고 계신 거죠?
루쉰님은 언제나 묘사가 정확해서 무슨 단편 소설 읽는 것 같다고 늘
생각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안타깝네요.
또한 읽으면서 난 얼마나 시야가 좁고 안일하게 사는지
반성하게도 됩니다. 내가 사는 세계가 전부가 아닌데 말입니다.ㅠㅠ
이렇게라도 소식 전해줘서 고마워요.
점점 더워지는데 건강 조심하구요, 가끔 소식 전해줘요.
힘내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