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걸 우울증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 정신과 의사의 다정한 마음 처방
전지현 지음 / 시원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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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편의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익숙하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달고 짠 과자 몇 봉지를 손에 쥐고 식탁에 앉아 입안으로 음식을 밀어 넣는다. 맛을 느끼는 게 아니다. 그저 텅 빈 위장이 아니라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을 메우려는 몸부림이다.

50대 중반, 바이오 스타트업 품질관리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단 하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세계에서 매일 긴장 속에 살아가며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완벽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압박은 영혼을 갉아먹는다. 언제부터인가 스트레스를 가짜 허기로 채우며 스스로를 '갱년기라 식탐이 늘었나' 자책하던 중, 정신과 전문의 전지현의 책 <우리는 그걸 우울증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귀여운 '우울이'를 보며 읽다 명치를 맞은 듯 멈춰 섰다. ‘슬픔과 눈물만이 우울의 전부는 아니다.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 끊임없는 자책,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음식으로 채우려는 몸부림 또한 뇌가 보내는 간절한 신호다.’라는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일상적 무기력과 질환으로서의 우울증 차이를 명확히 짚고, 정신과 방문을 망설이는 이들의 심리를 다독이며 회복 루틴을 안내하는 치유의 시작점이 되어주는 책이다.

'우울이가 건네는 이야기'는 나를 무너뜨렸다. 내 안의 우울이는 나를 망치러 온 괴물이 아니라, ‘제발 멈춰라, 그러다 너 진짜 죽는다’라며 온몸으로 나를 붙잡던 방어기제라는 것이다. 가짜 허기로 음식을 밀어 넣게 한 것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숨 쉬지 못하겠구나' 싶어 내지른 우울이의 비명이었다. 나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라 원망했던 감정이 실은 나를 살리려던 노력이었다는 깨달음은 내 마음에 균열을 냈다.

데이터와 품질 표준만을 신봉하는 방식으로 마음의 불량을 제거하려던 나였다. 하지만 ‘마음에 올바른 이름을 붙여줄 때, 막연한 두려움은 비로소 다룰 수 있는 감정이 된다.’는 말처럼 가짜 허기를 '우울증'으로 직면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당신이 지금 힘든 것은 결코 나약해서도, 의지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나를 향한 날카로운 비난을 멈추는 것부터가 치유의 시작이다.’는 확고한 메시지를 전한다. 자책하는 대신, 우울이의 구조 신호를 받아들이고 전문가에게 손을 내밀어 잠시 멈추는 것이 진짜 용기라고 다정하게 말한다.

식탁 위 과자 봉지를 바라보며 내 안의 우울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나를 살리려고 애써줘서 고마워. 이제는 내가 스스로 내 마음과 몸을 제대로          보실필게.’ 이 책은 책임감이라는 무게에 눌려 영혼의 비명을 외면해 온 이 시대 모든 중년들에게 바치는 가이드북이다. 우리 마음에도 지금, 잠시 멈춤과 정비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자.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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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후더닛
아사네 주지 지음, 김은모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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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쉰다섯. 남들은 은퇴를 고민하고 삶의 속도를 줄여갈 시기에 나는 바이오 스타트업의 품질관리(QC) 팀장으로 매일 치열한 하루를 보낸다. 마이크로리터 단위의 세포를 다루고, 완벽한 멸균 상태를 확인하며, 단 0.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내 직업이자 삶의 전부였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늘 건조하고 정형화되어 있었다. 문학이란 그저 젊은 날의 사치 같았고, 특히나 미스터리 같은 장르 소설은 내 인생의 타임라인에 존재하지 않던 영역이었다. 솔직히 말해 자극적인 살인 사건을 다루는 가벼운 오락거리라고만 치부했던 오만과 편견이 있었다. 그랬던 내가 퇴근 후 거실에서 스마트폰을 집어 던지고 두꺼운 소설책을 붙잡은 채 눈을 빛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천 년의 후더닛>은 완벽한 규격과 수치만을 쫓던 내 메마른 삶에 불시착한 기분 좋은 충격이자, 굳어 있던 뇌세포를 깨운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바이오 분야에 평생 몸담아온 내게, 인류 최초의 냉동수면(콜드슬립) 실험에 참여한 7명의 자원자라는 설정은 시작부터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세포의 대사를 완전히 멈추고 천 년의 시간을 손상 없이 보존한다는 것. 외부 침입이 절대 불가능한 방주이자 가장 이상적인 관리가 이루어져야 할 그 지하 쉘터 안에서, 천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장치가 열린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눈을 뜬 사람은 6명뿐, 미래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실험을 주도했던 ‘시몬’은 냉동수면 장치 안에서 차가운 사체로 발견된다. 모두가 천 년 동안 완벽하게 잠들어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진 상황. 범인은 함께 깨어난 6명의 생존자 중 한 명일 수밖에 없다는 모순된 의심 앞에서 내 안의 조사자 본능이 무섭게 발동했다. 시스템의 어느 프로세스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인가? 내가 매일 수행하는 원인 분석(Root Cause Analysis) 과정이 이야기와 겹친다.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들의 면면은 통제되지 않는 변수들이었다. 아내를 잃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채 방관자처럼 굴던 주인공 ‘쿠란’이 탐정이 되어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특히 장치의 하드웨어를 설계한 ‘카이’와 시스템 프로그래밍을 담당한 ‘이리야’가 장치 내부 로그를 분석하며 153년 전이라는 범행 시점과 결함을 두고 공방을 벌일 때의 긴장감은 숨을 막히게 한다. 여기에 순수한 열정의 생물학자 ‘시나’와 이타적인 ‘크로에’, 그리고 지원 동기를 끝까지 숨기며 불신을 조장하는 ‘마르코’가 용의선상에서 격돌할 때 쉘터는 거대한 인간성의 시험대로 변한다. 이성적 데이터와 숨겨진 인간의 욕망이 격돌하며 '누가 범인인가(Who done it)'를 넘어 단서가 파묻힌 시간 속에서 기어이 '언제' 살인이 일어났는지 추적해 나가는 논리는 실로 정교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 이토록 격렬하게 매료된 진짜 이유는 화려한 트릭이 아니다. 바로 ‘시간이라는 가혹한 밀실이 주는 고독과 상실감’이라는 주제와 메시지 때문이다. 천 년 뒤 깨어난 이들이 마주한 것은 찬란한 미래가 아니라, 소중한 이들이 모두 먼지가 되어 사라진 거대한 상실의 공간이었다. 이 지독한 밀실을 통해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타인과의 연결을 잃어버린 인간은 어떻게 자신을 증명하는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50대 중반을 지나며 사별과 이별,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한을 조금씩 경험하고 알아가는 나이여서일까. 범인을 찾아내려는 처절한 논쟁이 내게는 사라진 과거와 연결되기 위한 인간의 집착으로 읽혔다. ‘어떤 시대든 남겨진 자들은 마음속에 저마다의 후더닛을 품고 살아간다’는 말을 읽었을 때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이 책은 나에게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인간의 깊은 본성과 논리, 그리고 보편적인 슬픔을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그릇’임을 똑똑히 알려주었다. 언제나 정답이 정해진 데이터만 바라보던 직장인의 가슴에, 이 소설은 기분 좋은 긴장과 설렘을 선물했다. 나는 아마도 이 책에서 경험한 미스터리의 매력에 빠지는 기쁨으로 가득 채워질 것 같다.

이 리뷰는 몽실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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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비로소 아버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 딸이 기록한, 70세 원모씨 관찰 일기
정아름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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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출근하지 마까……." 책 속 70세 원모 씨의 나지막한 투정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다. 50대 중반, 바이오 스타트업의 품질관리 팀장으로 매일 숨 가쁜 규격과 기준을 다루는 나 역시 아침마다 속으로 수백 번은 삼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오차 없는 데이터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퇴근 후에는 프로 N잡러로 또 다른 나만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느라 늘 시간에 쫓기는 내게 이 책은 잠시 숨을 고르게 만드는 멈춤이었다.

품질관리자로 일하며 배운 원칙 중 하나는 '현상 너머의 근본 원인을 보는 것'이다. 정아름 작가가 70세 아버지를 관찰하고 기록해 나간 과정은, 흡사 한 인간의 역사라는 거대한 결과를 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딸의 시선에서 늘 답답하게만 보였던 아버지의 고집과 독특한 행동들. 밥을 꼭꼭 씹어 먹는 대신 훌훌 마셔버리듯 급하게 식사를 끝내고, 매일 손가락에 커플링을 꼭 챙겨 끼는 원모 씨의 기이한 습관도 처음엔 그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이해가 필요없지 않나?

하지만 카메라 렌즈를 통해 현상 너머를 깊숙이 들여다보았을 때, 딸은 ‘아버지는 처음부터 아버지가 아니었다’는 가장 단순한 진실을 마주한다. 시간에 쫓기듯 밥을 마시던 습관은 평생을 일터에서 긴장하며 살아온 치열한 청춘의 흔적이었고, 매일 끼는 커플링은 가족을 향한 변치 않는 책임감과 사랑의 징표였다. 부모이기 전에 꿈 많던 청춘이었고,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었던 한 사람의 인생이 그제야 비로소 보인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닮고, 때로는 미워하면서도 닮아간다고 했던가. 딸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밀어내던 시간을 지나, 결국 아버지의 서툰 삶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진정한 화해는 서로를 대단한 존재로 우러러볼 때가 아니라, 서로의 나약함과 서툼을 가만히 응시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점이다. 매일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터로 향했던 아버지의 무거운 뒷모습. 딸은 그 우직한 걸음 속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고집들이 사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만의 서투른 사랑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깊은 이해의 시선이 부모 된 입장으로서 부러웠다. 자식의 입장으론 송구하다.

솔직히 부러움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자식에게 내 모든 서툼을 들키고도, 그것이 원망이 아닌 이해와 사랑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돌아오는 기적을 경험한 원모 씨는 얼마나 복을 받은 아버지인가. 70세의 나이에도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책임을 다하는 원모 씨의 모습은, 내가 스타트업 품질관리 팀장으로서 중심을 잡고 또 다른 분야로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본질적인 이유와 통한다.

책을 덮으며 내일 아침 출근길을 떠올린다. 여전히 "출근하지 말까"라는 투정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겠지만, 이제는 안다. 그 서툰 고집 속에 담긴 삶을 향한 지독한 책임감을. 이 시대의 모든 서툰 부모들과, 이제야 비로소 부모의 뒷모습을 이해하기 시작한 모든 자녀에게 이 따뜻한 기록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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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ㅣ 열린책들 테마 컬렉션 : 호러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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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정오를 지나 어스름한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시기다. 청춘의 뜨거웠던 야망과 치기 어린 열정은 어느덧 잔잔한 안정과 바래진 추억으로 치환되었고, 거울 속 내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세월의 훈장이 겹겹이 쌓여 있다. 청년 시절, 그저 자극적이고 기괴한 공포 영화로만 소비했던 영화 〈드라큘라〉를 이 나이가 되어 다시 마주했을 때, 스크린 너머로 다가온 감정은 뜻밖에도 깊은 처연함이다. 그것은 불멸이라는 지독한 저주에 갇힌 한 존재의 고독이자, 흐르는 세월을 붙잡고 싶어 하는 인간 내면의 처절한 모습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영국인 변호사 조너선 하커가 런던의 부동산을 사려는 드라큘라 백작의 초청을 받아 루마니아의 외딴 성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커는 성벽을 거꾸로 기어내리고 거울에 비치지 않는 백작의 기이한 모습에 경악하고, 세 명의 흡혈귀 여인들에게 매혹당해 목숨을 위협받으며 갇히게 된다. 하커가 성에 감금된 사이, 백작은 수많은 흙 상자를 실은 유령선을 타고 영국의 항구 도시 휘트비에 상륙한다. 그의 목표는 하커의 약혼녀인 미나와 그녀의 단짝 친구 루시였다. 백작은 몽유병을 앓던 루시를 밤마다 유혹해 피를 빨고, 루시는 원인 불명의 빈혈로 급격히 시들어간다. 루시의 약혼자 아서와 구혼자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네덜란드의 석학 반 헬싱 박사가 합류해 수혈을 하며 사투를 벌이지만, 결국 루시는 숨을 거두고 밤마다 아이들을 사냥하는 잔혹한 흡혈귀로 부활한다.

결국 반 헬싱 박사는 슬픔에 잠긴 남자들을 이끌고 무덤으로 향해, 루시의 가슴에 말뚝을 박고 목을 자름으로써 그녀의 영혼을 구원한다. 위기를 느낀 드라큘라는 미나의 방에 침입해 그녀의 피를 빨고 자신의 피를 강제로 먹여, 미나를 자신과 정신이 연결된 감염 상태로 만든다. 그러나 반 헬싱과 극적으로 탈출한 하커, 그리고 동료들은 백작의 안식처인 흙 상자들을 찾아내 성수로 오염시키며 그를 압박한다. 런던의 모든 근거지를 잃은 백작은 고향 트란실바니아로 도망치기 시작하고, 소탕대는 최면 상태에서 백작의 시각을 공유하는 미나의 능력을 역이용해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을 벌인다. 해가 지기 직전, 백작의 성 바로 앞에서 소탕대는 드라큘라의 궤짝을 호위하던 집시 무리를 기습한다. 어둠이 내리면 백작이 완전한 힘을 얻게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 조너선 하커와 미국인 동료 퀸시 모리스의 칼이 백작의 목과 심장을 동시에 가른다. 드라큘라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소멸하고 미나는 저주에서 풀려난다.

타인의 피를 탐해야만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드라큘라의 처지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안고 살아가는 영혼의 형벌과 다름없어 보였다. 이 모습은 문득 우리 세대의 뒷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이쳤다. 앞만 보고 달렸던 치열한 삶의 정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던 청춘은 유한한 시간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고, 우리는 상실과 이별이라는 단어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다. 드라큘라가 그토록 갈구했던 생명력 가득한 '붉은 피'는, 어쩌면 우리가 이미 지나쳐온, 그래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찬란했던 봄날에 대한 집착이자 향수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 삶의 유한함을 겸허히 인정하고 수용해 나가는 과정이다.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오늘 하루가 소중하고, 내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드라큘라의 불멸이 부러움이 아닌 슬픔으로 읽히는 순간, 비로소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 유한한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마침내 재가 되어 사라지던 드라큘라에게서 공포 대신 기묘한 평온함을 느꼈다. 그것은 오랜 집착을 내려놓고 드디어 시간의 순리 속으로 돌아간 존재로 얻은 안식이었다. 붙잡을 수 없는 젊음에 연연하기보다, 내게 허락된 매 순간의 어둠과 빛을 온전히 사랑하며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 〈드라큘라〉는 나에게 단순한 공포가 아닌, 남은 생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에 대한 묵직하고도 다정한 질문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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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ㅣ 열린책들 테마 컬렉션 : 호러
메리 W. 셸리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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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의 힘은 예상치 못한 문턱에서 사람을 멈춰 세운다. 영화 속에서 나사를 목에 박은 채 기괴하게 걸어 다니던 대중문화의 ‘몬스터’로만 프랑켄슈타인을 기억하던 나에게,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은 편견을 완전히 부수는 거대한 충격이었다. 더욱이 이 깊고 서글픈 서사가 19세기 초, 고작 스물 안팎의 젊은 여성 작가의 펜 끝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경외감으로 남았다.

50대 중반, 생의 중반을 넘어서며 매일 동물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인간의 고뇌를 마주하는 수의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 소설은 단순한 공포물이 아니었다. 소설의 내용은 북극을 탐험하던 선장 월턴이 얼어붙은 바다에서 구조한 스위스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적인 고백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오만과 무책임이 불러온 파멸의 생생한 기록이었다.

대학에서 자연과학에 매료되어 신의 영역인 ‘생명의 창조’에 집착하던 빅터는 마침내 시체 조각을 이어 붙여 인공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막상 눈을 뜬 피조물의 추악한 외모에 공포를 느끼고 책임감 없이 그대로 도망쳐 버린다. 수의사로서 나는 생명을 다루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을 요하는지 뼈저리게 안다. 숨을 불어넣는 순간, 그 존재는 고통을 느끼고 외로움을 타며, 사랑을 갈구하는 하나의 존엄한 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홀로 버려진 피조물은 소박하고 선량한 드 레이시 가족을 몰래 도우며 인간의 언어와 지식을 독학하지만, 단지 흉측하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조차 몽둥이질을 당하며 철저한 소외를 경험한다. 괴물이 악해진 이유는 태생 때문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잔인한 거부 때문이었다. 인간에게 절망한 괴물은 창조주인 빅터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빅터의 어린 남동생 윌리엄을 살해한 뒤 하녀 저스틴에게 누명을 씌워 죽게 만든다.

이후 알프스산맥에서 재회한 괴물은 빅터에게 자신과 평생을 함께할 ‘여성 피조물’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며, 이를 들어주면 인간 세상을 떠나 조용히 살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그러나 빅터는 또 다른 재앙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제작 중이던 여성 피조물을 눈앞에서 파기해 버린다. 이 약속의 파기는 괴물을 완전한 괴물로 각성시키며 ‘네 결혼식 날 밤에 찾아가겠다’는 경고로 이어진다. 괴물은 약속대로 빅터의 절친한 친구 앙리 클레르발을 죽이고, 마침내 결혼식 당일 밤 빅터의 아내 엘리자베스까지 살해하며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결국 모든 소중한 이를 잃은 빅터와 창조주의 사랑을 끝내 받지 못한 괴물은, 서로를 향한 증오심만으로 북극의 얼음 황무지까지 쫓고 쫓기다 파멸을 맞이한다. 기력이 다해 선장 월턴의 배 위에서 숨을 거둔 빅터의 시신 앞에서, 스스로를 불태워 생를 마감하겠다며 오열하는 괴물의 마지막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 책은 나에게 단순한 독서를 넘어,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으로서의 소명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었다. 영화가 보여준 자극적인 괴물의 외형 뒤에 숨겨진 인간 소외와 생명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이제야 읽어낸 것에 깊은 부끄러움과 다행스러움을 동시에 느낀다. 메리 셸리가 얘기한 이 메세지는 시대를 불문하고 생명을 다루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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