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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ㅣ 열린책들 테마 컬렉션 : 호러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8월
평점 :
50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정오를 지나 어스름한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시기다. 청춘의 뜨거웠던 야망과 치기 어린 열정은 어느덧
잔잔한 안정과 바래진 추억으로 치환되었고, 거울 속 내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세월의 훈장이 겹겹이
쌓여 있다. 청년 시절, 그저 자극적이고 기괴한 공포 영화로만
소비했던 영화 〈드라큘라〉를 이 나이가 되어 다시 마주했을 때, 스크린 너머로 다가온 감정은 뜻밖에도
깊은 처연함이다. 그것은 불멸이라는 지독한 저주에 갇힌 한 존재의 고독이자, 흐르는 세월을 붙잡고 싶어 하는 인간 내면의 처절한 모습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영국인 변호사 조너선 하커가 런던의 부동산을 사려는 드라큘라
백작의 초청을 받아 루마니아의 외딴 성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커는 성벽을 거꾸로
기어내리고 거울에 비치지 않는 백작의 기이한 모습에 경악하고, 세 명의 흡혈귀 여인들에게 매혹당해 목숨을
위협받으며 갇히게 된다. 하커가 성에 감금된 사이, 백작은
수많은 흙 상자를 실은 유령선을 타고 영국의 항구 도시 휘트비에 상륙한다. 그의 목표는 하커의 약혼녀인
미나와 그녀의 단짝 친구 루시였다. 백작은 몽유병을 앓던 루시를 밤마다 유혹해 피를 빨고, 루시는 원인 불명의 빈혈로 급격히 시들어간다. 루시의 약혼자 아서와
구혼자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네덜란드의 석학 반 헬싱 박사가 합류해 수혈을 하며 사투를 벌이지만, 결국
루시는 숨을 거두고 밤마다 아이들을 사냥하는 잔혹한 흡혈귀로 부활한다.
결국 반 헬싱 박사는 슬픔에 잠긴 남자들을 이끌고 무덤으로 향해, 루시의 가슴에 말뚝을 박고 목을 자름으로써 그녀의 영혼을 구원한다. 위기를
느낀 드라큘라는 미나의 방에 침입해 그녀의 피를 빨고 자신의 피를 강제로 먹여, 미나를 자신과 정신이
연결된 감염 상태로 만든다. 그러나 반 헬싱과 극적으로 탈출한 하커,
그리고 동료들은 백작의 안식처인 흙 상자들을 찾아내 성수로 오염시키며 그를 압박한다. 런던의
모든 근거지를 잃은 백작은 고향 트란실바니아로 도망치기 시작하고, 소탕대는 최면 상태에서 백작의 시각을
공유하는 미나의 능력을 역이용해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을 벌인다. 해가 지기 직전, 백작의 성 바로 앞에서 소탕대는 드라큘라의 궤짝을 호위하던 집시 무리를 기습한다. 어둠이 내리면 백작이 완전한 힘을 얻게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 조너선
하커와 미국인 동료 퀸시 모리스의 칼이 백작의 목과 심장을 동시에 가른다. 드라큘라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소멸하고 미나는 저주에서 풀려난다.
타인의 피를 탐해야만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드라큘라의 처지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안고 살아가는 영혼의 형벌과 다름없어 보였다. 이
모습은 문득 우리 세대의 뒷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이쳤다. 앞만 보고 달렸던 치열한 삶의 정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던
청춘은 유한한 시간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고, 우리는 상실과 이별이라는 단어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다. 드라큘라가 그토록 갈구했던 생명력 가득한 '붉은 피'는, 어쩌면 우리가 이미 지나쳐온,
그래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찬란했던 봄날에 대한 집착이자 향수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 삶의 유한함을 겸허히 인정하고 수용해 나가는
과정이다.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오늘 하루가 소중하고, 내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드라큘라의 불멸이 부러움이 아닌 슬픔으로 읽히는
순간, 비로소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 유한한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마침내
재가 되어 사라지던 드라큘라에게서 공포 대신 기묘한 평온함을 느꼈다. 그것은 오랜 집착을 내려놓고 드디어
시간의 순리 속으로 돌아간 존재로 얻은 안식이었다. 붙잡을 수 없는 젊음에 연연하기보다, 내게 허락된 매 순간의 어둠과 빛을 온전히 사랑하며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
〈드라큘라〉는 나에게 단순한 공포가 아닌, 남은 생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에 대한 묵직하고도
다정한 질문을 남겨주었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