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바꾸면 통증이 사라진다 - 뇌과학이 밝혀낸 만성 통증의 진짜 원인
다니엘 G. 에이멘 지음, 김성훈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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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로서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벽은 통증이다. 동물들은 아픈 곳을 말하지 못해 웅크린 몸짓으로 고통을 호소한다. 영상 장비로 잡히지 않는 만성 통증을 앓고 있는 환축을 볼 때면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했다. 물리적 접근만으로는 생명체의 고통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성 통증은 신체적 손상보다 과민해진 뇌의 문제이므로, 뇌 회로를 리셋해야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저자의 말은 오랜 의문을 풀어주는 명쾌한 열쇠였다.

저자는 만성 통증의 무대가 뇌라고 단언한다. 통증 없는 사람의 64%도 영상 검사상 이상 소견이 발견되듯, 아프지 않다고 해서 완전히 건강한 것은 아니며 몸에 이상 소견이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고통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만성 통증이 뇌의 오류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통증을 느끼고 전달하고 조율하는 중추의 오작동으로(부조화) 나타난다. 통증의 실체를 이해하고 안도한다. 당신이 느끼는 통증은 진짜이지만 고통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은 고장 난 뇌의 회로라며 과학적 해석을 건넨다.

통증 파멸 고리는 수의학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안과 공포 같은 정서적 고통이 근육을 긴장시키고 통증을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은, 병원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통증이 악화되는 동물들의 상태와 정확히 일치한다. 신체와 마음의 상처는 뇌에서 같은 회로를 공유하기에, 통증을 유발하는 부정적 생각 패턴을 차단하고 뇌를 안정시키는 것이 완치의 필수 조건이다. 뇌는 생각에 반응하므로 두려워할수록 고통은 커진다. 따라서 통증을 대하는 두려움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며, 이 과정에서 자동 부정적 사고를 끊어내는 부정적 생각 차단 패턴과 마음 관리 기술을 체득할 수 있다.

뇌 회로 리셋 과정은 경이롭다. 뇌는 변화하는 신경가소성을 가지고 있어 행동 요법과 생각 전환을 통해 통증 회로를 스스로 지워버릴 수 있다. 절망에서 벗어나 완치에 대한 희망을 마주하며, 동물의 행동 치료에 응용 가능한 토닥임 기법 등 일상용 신체 안정화 기법을 배운다.

특히 책에서 제시하는 6단계 치유 프로그램은(RELIEF) 매우 실천적인 대안이다. 통증 요인을 인식하고, 경보를 완화하며, 부정적 사고를 내려놓는 단계로 이어진다. 여기에 이완을 개시하고, 건강 습관을 수용하며, 희망을 함양하는 이 로드맵은 약물 없이 스스로 고통을 제어하게 돕는다. 하루 10~15분의 실천만으로 통증을 평균 33% 줄인다는 데이터는 이 프로그램의 강력함을 증명한다. 즉, 통증 회로를 재설정하여 뇌를 치료하는 것이 완치의 열쇠이다.

통증의 근본 원인이 과민해진 뇌에 있음을 인정하고, 잘못된 회로를 리셋해 삶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라는 권고는 고통과 사투를 벌이는 모든 생명체를 향한 확실한 치유로 이끌어주는 안내서이다.

이 리뷰는 몽실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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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 ㅣ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2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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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 범위를 제로(0)로 맞춰야 하는 일상으로의 진입로에서, 내가 마주하는 세상은 숫자의 지배를 받는다. 바이오 스타트업의 품질관리 팀장이라는 직함은 늘 칼날 같은 정밀함을 요구한다. 소수점 아래 세 자릿수까지 맞아떨어지는 데이터,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미생물 배양 조건.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생명에 관여하기에 아주 작은 오류도 용납될 수 없다. 수년간 이 일을 하며 내 뇌 회로는 완벽을 요구하는 시스템으로 프로그래밍되었다.

그러다 문득 차가운 규격서와 리포트 속에서 메말라가는 감정의 처방전이 필요할 때면 교양 인문학 서적을 읽곤 한다. 과부하 걸린 뇌에 신선한 산소를 불어넣는 시간 속에서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2 :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였다. 우리가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는 인간 이성의 허상을 해부하는 것이다. 책은 잠, 기억, 쾌락, 치료라는 네 가지 축의 키워드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잠의 장에 등장하는 '잠들지 않은 소년'의 이야기는 잔혹한 시스템 붕괴 과정으로 읽혔다. 264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은 소년의 뇌는 감각을 왜곡하고 치명적인 연쇄 오류를 일으킨다. 의지라는 메커니즘이 고작 '수면 부족'이라는 변수 하나에 처참히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또한 모든 고통까지 선명하게 기억하는 '과잉기억'의 이면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완벽한 기억이 오히려 인간 시스템을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왜 진화가 '망각'이라는 필터를 선택했는지 깨닫게 했다.

인간의 '모방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맹목적으로 복제하며 사회가 규정한 규격품을 내 것처럼 갈망하는 버그와 같았다. '손 씻기를 거부당한 의사' 이야기는 정점을 찍는다. 의사 제멜바이스는 손을 씻는 위생 공정만으로 산모 사망률을 낮출 수 있음을 데이터로 증명했지만, 당시 의학계는 오만과 편견으로 명확한 통계를 거부하고 조롱했다. 과학적 정답마저 밀어내는 인간의 고집을 보며 현장의 한계를 실감했다.

뇌라는 유기적 시스템 자체가 애초에 수많은 버그를 품고 태어난 불량 품목인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지점에서 나는 묘한 위로를 얻었다. 그동안 공정의 사소한 실수에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했던 직업적 강박은 내 삶을 옭아매고 있었다. 하지만 인문학의 렌즈로 본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망가진 채로, 오류투성이 선택을 반복하며 거대한 공정을 굴려온 존재들이었다.

실험실 안의 바이오 물질은 완벽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험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우리 사회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 그 자체다. 진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류의 완벽한 제거가 아니라, 모두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대인배 적 품질관리다. 불완전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의 실수를 품을 수 있고 완벽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내 안의 부족한 부분까지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

데이터의 세계에서 따뜻한 인간의 세계로 건너오는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고, 그렇기에 비로소 인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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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4분의 3은 호기심이다 ㅣ 시대철학 1
자코모 카사노바 지음 / 비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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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인물인 자코모 카사노바를 인간의 심리와 관계의 본질을 간파한 심리 전략가로 재해석한다. 그가 제안하는 고프레임 심리학은 맹목적인 저프레임의 늪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와 자유를 지키며 상대를 끌어당기는 심리 전략이다. 나를 낮추는 을의 태도를 버리고, 내 삶의 서사 속에서 자유와 주도권을 쥐는 건강한 이기주의를 회복하라고 이야기한다. 단순한 밀당을 넘어 인간의 본능을 꿰뚫는 세련된 관계의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탁월한 교과서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누구의 무대에 서 있고, 누구의 무대가 되어 주고 있는가?’ 우리가 관계에서 상처받는 이유는 타인이 기획한 무대 위에 올라가 조연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카사노바가 수많은 관계 속에서도 독보적인 매력을 뿜어낼 수 있었던 본질적인 동력은 바로 완전한 자유에 있었다. 그에게 자유는 타인에게 구속되지 않는 상태를 넘어, 관계의 결말마저도 스스로 선택하고 언제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내면의 절대적인 주권이었다. 그는 인생의 주도권을 단 한 번도 남에게 넘겨주지 않았으며,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타협한 적이 없다. ‘투명한 진심은 가장 빨리 질리는 상품이다’라는 말처럼, 상대에게 구속당하며 모든 패를 보여주는 순간 우리의 자유도 매력도 소멸한다. 인간은 완벽한 배경이나 이성적인 논리보다 결핍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호기심 설계와 환상, 그리고 서사라는 키워드에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는 상처 입은 마음을 고쳐주는 ‘의사’가 아니라,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여는 자물쇠공이었다. 상대의 결핍을 치료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그 결핍을 자극하여 방 자물쇠를 열듯 호기심의 문을 열었다. 타인에 대한 미지의 영역이 관계를 지속시키는 핵심 동력이 되기에, 그는 자신이라는 존재의 방 열쇠를 쉽게 넘겨주지 않으며 철저하게 자신의 자유로운 흐름을 통제했다.

이 책의 정점은 화려한 유혹의 순간이 아닌, 박수가 사라진 자리에서 쓴 회고록이라는 서사적 배경에서 기인한다. 육체의 매력과 화려한 젊음이 소멸해 버린 고독한 말년, 둑스 성의 사서로 남겨진 그는 비참하게 탕진된 시간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박수가 떠나간 고요 속에서 펜을 들어 자신의 유혹과 심리전을 방대한 텍스트로 복기해 나갔다. 한시적이었던 육체적 매력을 영속적인 이야기로 치환함으로써, 그는 기어코 자신을 불멸의 신화로 창조해 내다. ‘진실은 느리지만 매력은 언제나 진실보다 빠르게 움직인다’는 말처럼, 타인에게 얽매이지 않는 압도적인 자유를 지닌 존재만이 마지막 순간까지 나만의 ‘미지의 영역’을 영리하게 유지하며 자신만의 서사를 완성할 수 있는 법이다.

결국 카사노바의 철학은 ‘언제나 타인보다 내 자유를 더 사랑하라’는 문장으로 귀결된다. 관계의 중심은 언제나 타인이 아닌 ‘나’의 자유여야 한다. ‘상대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완벽한 배경이 아니라 흥미로운 환상이다’라는 말처럼, 타인을 향한 구걸과 집착을 멈추고 자물쇠공처럼 나의 자유를 지켜내며 나만의 가치를 기획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만의 매혹적인 삶을 완성할 수 있다. 이제 타인의 무대에서 내려와 스스로 매혹적인 호기심의 설계자가 되어, 내 자유가 숨 쉬는 나만의 무대를 세우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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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노을 -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은 너뿐이야!
민이언 지음 / 미드나잇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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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소설을 잘 안 읽는 나에게 책장이란 그저 빽빽하고 지루한 글자들의 미로일 뿐이었다. 민이언 작가의 붉은 노을을 처음 펼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이게 과거의 기억이라는 건지, 꿈이라는 건지, 아니면 주인공이 무슨 초능력이라도 생겨서 미래를 보고 온 건지 사건 전개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몇 번이나 앞장을 뒤적거려야 했다. 이야기의 타임라인을 정교하게 분석하려 들수록 머릿속만 복잡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문득 노을빛이 길게 드리운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깨달았다. 이 소설은 그렇게 머리로 따져가며 촘촘한 퍼즐을 맞추듯 읽는 책이 아니었다.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해묵은 후회의 결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 주인공 하열아의 모습은 참 못나고 비겁해서,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는 과거 학교라는 무거운 장벽 앞에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제자인 '그녀'를 등져버린 방관의 선택을 한 인물이다. 그 냉혹한 현실의 부채감과 가책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깊은 환멸로 박제되어 있었다. 매일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붉은 노을'이 잠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깨울 때마다, 하열아는 그 참담했던 교정으로 강제 소환당한다.

그 뼈아픈 비극의 역사 위로, 작가는 눈물겨운 상상력을 덧칠하기 시작한다. 만약 그때 내가 한 걸음만 더 내딛었더라면, 만약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마주했을지도 모르는 가정의 미래(허구)를 꿈속에서 새로 고쳐 쓰는 것이다. 어떻게든 그녀를 구해내고, 끝내 자신을 짓누르던 죄책감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처절하게 갈망하는 몸부림이었다.

'역사는 이미 일어난 일을 말하고, 문학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한다'라는 책 속 핵심 문장을 마주했을 때, 차갑게 얼어붙었던 서사의 실타래가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의 이름이 왜 '하열아'인지도 비로소 가슴으로 와닿았다.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 행동하라는 묵직한 정언명령, 바로 '하여라!'의 울림이었다. 간절한 사랑과 믿음으로 차가운 조각상에 숨을 불어넣었던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작가는 독자들에게 우리 마음속의 빛바랜 다짐들을 끝내 실현해 내라고 다정하게 등을 떠밀고 있었다. 학창 시절 나른한 5교시 수업처럼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내 일상을 번쩍 깨우며, 낮을 포기하지 않고 붉게 타오르는 저 붉은 노을처럼 오늘의 삶을 뜨겁게 살아내라는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명쾌하게 요약하라고 한다면 나는 여전히 서툴고 서툴다. 하지만 가슴에 남은 여운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다. 살아가면서 저마다의 현실에 부딪혀 용기 내지 못했던 모든 성인들, 그리고 청춘의 아스라한 향수를 지닌 이들이라면 모두가 이 책의 타겟 독자가 될 것이다.

작가는 후회의 늪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우리에게 이제 그만 훌훌 털고 일어나 지금 이 순간을 실천하라는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건넨다. 책장을 덮으며 창가 가득 번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볼 때, 독자는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히던 가슴속 응어리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적 같은 심리적 위안과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글자 위에서 조금 헤매고 길을 잃었을지라도, 내 삶을 다시 사랑할 아주 작은 용기 하나를 건져 올릴 수 있다면, 소설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그것으로 충분히 완벽한 독서가 아닐까.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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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나무 저택의 어린 할머니들 ㅣ 마법 책장 6
도미야스 요코 지음, 사타케 미호 그림, 고향옥 옮김 / 가람어린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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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할머니는 맨날 나를 보면 ‘우리 강아지, 언제 이렇게 컸냐’ 하신다. 처음부터 주름 가득한 노인인 줄만 알았던 할머니에게도 나 같은 열 살 시절이 있었다는 걸 <백합나무 저택의 어린 할머니들>을 읽고 새롭게 알았다.

이야기는 백여 년 된 멋진 백합나무 양로원에서 시작된다. 어느 봄날, 꽃지 할머니가 오래된 공놀이 노래를 무심코 흥얼거리자 저택을 오랫동안 지켜온 집의 수호신이 깨어나며 거대한 괘종시계가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노래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수호신을 깨우고 닫혀 있던 기억을 여는 마법의 주문이었던 것이다. 이 신비로운 마법으로 백발의 노인들은 순식간에 나와 비슷한 열 살짜리 어린아이로 변해 버렸다.

시간은 무려 77년 전인 1941년 8월 3일로 되돌아갔다. 처음에는 판타지 게임 속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1941년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던 어두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시공간이 뒤틀린 저택을 탐험하던 아이들은 홀로 울고 있는 한 아이를 만난다. 노인들은 수호신이 보여주는 단서들을 통해 기억을 더듬으며, 전쟁이라는 큰 불행과 갑작스러운 이별 때문에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다시 꼭 만나서 숨겨둔 보물을 함께 찾고 노래를 완성하자는 그 조그만 다짐이, 전쟁통에 피난을 가고 연락이 끊기면서 평생 가슴속에 아픈 미안함으로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가장 감동 깊었던 부분은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77년 전의 약속을 완성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장면이었다. 그 시절의 슬픔을 열 살의 몸으로 다시 마주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참 용감해 보였다. 책 속 주인공들은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흩어진 기억 조각을 모으고, 끊어졌던 노래를 이어 부르며 마법을 풀 비밀의 열쇠를 완성해 낸다. 오래된 약속을 완수하자 괘종시계는 다시 원래대로 돌기 시작했고, 현재로 돌아온 노인들의 눈에는 평생을 괴롭히던 미안함 대신 행복함이 가득했다.

책을 다 읽고 나자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옛날이야기를 여쭤봐. 그리고 책 속 주인공들처럼 지금 네 곁에 있는 친구들과의 우정을 소중히 여겨야 해.  그 추억들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너를 지켜주는 가장 큰 힘이 되어 줄거야.’ 겉모습이 나이 든 어른이라도 그 마음속에는 언제나 반짝이는 순수함이 살아 숨 쉰다는 것을 알았다. 전쟁이라는 두려움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우정의 가치와 약속의 책임감이 얼마나 소중한지 깊이 느끼게 되었다.

타임슬립 모험 뒤에 가슴 뭉클한 사랑과 우정을 선물해 준 이 책을 초등학교 5학년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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