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붉은 노을 -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은 너뿐이야!
민이언 지음 / 미드나잇인 / 2026년 3월
평점 :
평소 소설을 잘 안 읽는 나에게 책장이란 그저 빽빽하고 지루한 글자들의
미로일 뿐이었다. 민이언 작가의 붉은 노을을 처음 펼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이게 과거의 기억이라는 건지, 꿈이라는 건지, 아니면 주인공이 무슨 초능력이라도 생겨서 미래를 보고 온 건지 사건 전개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몇 번이나
앞장을 뒤적거려야 했다. 이야기의 타임라인을 정교하게 분석하려 들수록 머릿속만 복잡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문득 노을빛이 길게 드리운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깨달았다. 이 소설은 그렇게 머리로 따져가며
촘촘한 퍼즐을 맞추듯 읽는 책이 아니었다.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해묵은 후회의 결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 주인공 하열아의 모습은 참 못나고 비겁해서,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는 과거 학교라는 무거운 장벽 앞에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제자인 '그녀'를 등져버린 방관의 선택을
한 인물이다. 그 냉혹한 현실의 부채감과 가책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깊은 환멸로 박제되어 있었다. 매일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붉은 노을'이 잠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깨울 때마다, 하열아는 그 참담했던
교정으로 강제 소환당한다.
그 뼈아픈 비극의 역사 위로, 작가는
눈물겨운 상상력을 덧칠하기 시작한다. 만약 그때 내가 한 걸음만 더 내딛었더라면, 만약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마주했을지도 모르는 가정의 미래(허구)를 꿈속에서 새로 고쳐 쓰는 것이다. 어떻게든 그녀를 구해내고, 끝내 자신을 짓누르던 죄책감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처절하게 갈망하는 몸부림이었다.
'역사는 이미
일어난 일을 말하고, 문학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한다'라는
책 속 핵심 문장을 마주했을 때, 차갑게 얼어붙었던 서사의 실타래가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의 이름이 왜 '하열아'인지도
비로소 가슴으로 와닿았다.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 행동하라는 묵직한 정언명령, 바로 '하여라!'의
울림이었다. 간절한 사랑과 믿음으로 차가운 조각상에 숨을 불어넣었던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작가는
독자들에게 우리 마음속의 빛바랜 다짐들을 끝내 실현해 내라고 다정하게 등을 떠밀고 있었다. 학창 시절
나른한 5교시 수업처럼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내 일상을 번쩍 깨우며,
낮을 포기하지 않고 붉게 타오르는 저 붉은 노을처럼 오늘의 삶을 뜨겁게 살아내라는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명쾌하게 요약하라고 한다면 나는 여전히 서툴고
서툴다. 하지만 가슴에 남은 여운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다. 살아가면서
저마다의 현실에 부딪혀 용기 내지 못했던 모든 성인들, 그리고 청춘의 아스라한 향수를 지닌 이들이라면
모두가 이 책의 타겟 독자가 될 것이다.
작가는 후회의 늪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우리에게 이제 그만 훌훌
털고 일어나 지금 이 순간을 실천하라는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건넨다. 책장을 덮으며 창가 가득 번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볼 때, 독자는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히던 가슴속 응어리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적 같은
심리적 위안과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글자 위에서 조금 헤매고 길을 잃었을지라도, 내 삶을 다시 사랑할 아주 작은 용기 하나를 건져 올릴 수 있다면, 소설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그것으로 충분히 완벽한 독서가 아닐까.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