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 ㅣ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2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평점 :
오차 범위를 제로(0)로
맞춰야 하는 일상으로의 진입로에서, 내가 마주하는 세상은 숫자의 지배를 받는다. 바이오 스타트업의 품질관리 팀장이라는 직함은 늘 칼날 같은 정밀함을 요구한다.
소수점 아래 세 자릿수까지 맞아떨어지는 데이터,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미생물 배양 조건.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생명에 관여하기에 아주 작은 오류도 용납될 수 없다. 수년간
이 일을 하며 내 뇌 회로는 완벽을 요구하는 시스템으로 프로그래밍되었다.
그러다 문득 차가운 규격서와 리포트 속에서 메말라가는 감정의 처방전이
필요할 때면 교양 인문학 서적을 읽곤 한다. 과부하 걸린 뇌에 신선한 산소를 불어넣는 시간 속에서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2 :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다>였다. 우리가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는 인간 이성의 허상을 해부하는 것이다. 책은 잠, 기억, 쾌락, 치료라는 네 가지 축의 키워드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잠의 장에 등장하는 '잠들지
않은 소년'의 이야기는 잔혹한 시스템 붕괴 과정으로 읽혔다. 264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은 소년의 뇌는 감각을 왜곡하고 치명적인 연쇄 오류를 일으킨다. 의지라는 메커니즘이
고작 '수면 부족'이라는 변수 하나에 처참히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또한 모든 고통까지 선명하게 기억하는 '과잉기억'의 이면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완벽한 기억이 오히려 인간 시스템을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왜 진화가 '망각'이라는 필터를 선택했는지 깨닫게 했다.
인간의 '모방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맹목적으로 복제하며 사회가 규정한 규격품을 내 것처럼 갈망하는 버그와 같았다. '손 씻기를 거부당한 의사' 이야기는 정점을 찍는다. 의사 제멜바이스는 손을 씻는 위생 공정만으로 산모 사망률을 낮출 수 있음을 데이터로 증명했지만, 당시 의학계는 오만과 편견으로 명확한 통계를 거부하고 조롱했다. 과학적
정답마저 밀어내는 인간의 고집을 보며 현장의 한계를 실감했다.
뇌라는 유기적 시스템 자체가 애초에 수많은 버그를 품고 태어난 불량
품목인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지점에서 나는 묘한 위로를 얻었다. 그동안
공정의 사소한 실수에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했던 직업적 강박은 내 삶을 옭아매고 있었다. 하지만 인문학의
렌즈로 본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망가진 채로, 오류투성이 선택을 반복하며 거대한 공정을 굴려온 존재들이었다.
실험실 안의 바이오 물질은 완벽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험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우리 사회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 그 자체다. 진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류의 완벽한 제거가 아니라,
모두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대인배 적 품질관리다. 불완전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의 실수를 품을 수 있고 완벽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내 안의 부족한 부분까지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
데이터의 세계에서 따뜻한 인간의 세계로 건너오는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고, 그렇기에 비로소 인간다운 것이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