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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자를 위한 철학
오석종 지음 / 웨일북 / 2021년 8월
평점 :
'세상이 발전하는 속도에 따라 우리의 생각도 업데이트해야 한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본 책은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절로 눈길이 갈 것이다.
저자인 '오석종' 작가는 학창 시절 다른 애들이 성적 올리기 급급했던 국영수보다 서양철학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 진학도 철학과를 선택하셨는데, 이유는 당시에 철학이 부조리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고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철학은 개뿔(?),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채 붕 떠있는 철학의 현실을 보았고, 이러한 경험은 훗날 본 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 '현실주의자를 위한 책'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져 온 철학에 본격적으로 딴죽을 거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인 본문을 살펴보면 첫 장부터 고민해 봐야 할 주제가 나온다. 바로 '철학에는 업데이트가 없나요?'이다. 사실 철학은 오늘날 일반인에게 그다지 가깝지 않은 분야이다. '철학책'하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든지 '국가'와 같은 어려운 책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필독서가 아닌 이상, 마니아가 아닌 이상 잘 읽지 않으려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잘 생각보면 우리는 '어려운 철학책'이 있다고 쳐도 왜 어려운지 의문을 제기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철학책은 원래 어려운 것이다'라는 인식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기 때문일까? 저자는 이렇게 대중들 사이에서 철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대에 달라지고 변화하는 과학이나 수학과 달리 철학은 그렇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철학에 어려워한다고 말이다. 저자는 철학자들도 역시 사람인지라 당시 시대상에 큰 제약을 받았을 것이며, 이런 몇 백 년 전 시대상이 반영된 철학이 어떻게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적절한지 알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한다. 그리고 과학이나 수학과 마찬가지로 철학도 현실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철학자들의 주장은 시대가 변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가 걱정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철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희망(천국)을 말하는 유형'과 '절망(지옥)을 말하는 유형'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철학은 21세기 경쟁 사회인 대한민국에 맞지 않다고 말한다.
희망을 말하는 유형은 인간에게 무한한 잠재력이 있고, 열심히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철학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철학은 당사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며 누군가를 밟고 넘어서야지 성공할 수 있는 21세기 경쟁 사회에선 인간의 잠재력이 마냥 희망적이지 않는 일이라고 말한다.
뒤이어 절망을 말하는 유형은 흔히 '사회, 공산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본주의 때문에 착취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이다. 여기서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가 그렇게 착취구조나 노동 소외만 있는 곳은 아니며, 유튜브 크리에이터처럼 본인이 스스로 자본에 참여해 주체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요즈음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저자는 니체의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나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밀의 '공리주의' 등등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21세기의 현대의 사건들과 대입해 앞에서 말했듯이 '업데이트'가 필요해 보이는 부분이 있는지, 또 반대로 철학이 현대를 판단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끊임없이 철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오늘날 문제가 되는 여러 시사들 역시 다루고 있어 철학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회에서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즉 철학을 마냥 '도덕적'이고 '공리적'이라는 이유로 추종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 근거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철학도 그래야 한다고 말이다.
이 '현실주의자를 위한 철학'은 제목 그대로 매우 현실적이고 뼈아픈 말들이 많은 책이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부터 '철학과 나오면 뭐 할래?'라든지, '학생들이 철학과를 가는 이유는 보통 대학 졸업장을 위해서이고, 아니면 전과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편이 많다.'라는 말 등등 철학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철학과'하면 흔히 떠오르는 생각들을 팩폭하면서 씁쓸함을 남긴다.
하지만 제가 본 책을 읽으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은 현실에 대한 뼈아픈 말들보다는 앞에서 말했듯이 '철학도 업데이트가 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철학이 현실과 동떨어지게 되었는지를 속 시원하게 고백하는 말들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때문에 철학이 오늘날에 쓸모가 없어졌다는, 비록 냉정하게 느껴질지라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책이라고 본다. (물론 저자는 정작 현실에선 아무것도 못하면서 철학책을 읽고 한숨만 푹푹 쉬는 '무능력한 철학'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지, 실제로 철학이 완전히 쓸모없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저 좀 더 융통성 있게 현실적으로 철학을 보자는 것일 뿐!)
*본 리뷰는 출판사의 지원에 따라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쓸모 있는 철학의 역할은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하며 선택 가능한 해석본을 제공하는 일이다. 이 해석본은 선택한 관점에 따라 무한히 도출될 수 있으며 맥락의 변화에 따라 끝없이 재서술될 수 있다. 철학이 세상을 하나의 명사로 결론짓는 일을 멈추고 여러 동사를 이용해 변화의 흐름을 추적하는 작업에 집중한다면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천국을 말하는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은 자아실현을 통해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라는 잔인한 담론은 실패한 이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자괴감을 유발한다. 꿈과 목표를 가지기만 하면 현실의 모든 일이 해결될 것처럼 낭만적인 말을 늘어놓는 그들의 응원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더 기만적으로 들려온다.
(중략) 자본주의 사회를 지옥으로 묘사하는 철학자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긍정하지 못한 채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라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것은 그들의 낡은 충고이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은 현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에게서 발견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새로운 환경에 던져봐야 한다. 이는 꼭 퇴사를 하거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대단한 사건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안다는 것 그 자체로 우리는 진정한 나의 모습에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다.
만약 스마트폰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기계를 개발하려고 한다면, 과거로 돌아가 ‘삐삐‘의 작동 원리를 다시 살펴볼 게 아니라 삐삐- 피처폰 -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통해 기술이 어떻게 보완되고 혁신되어 왔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이처럼 철학자들이 앞선 철학자들의 사상을 어떻게 극복하고 보완했는지를 살펴본다면 철학의 고전의 지혜를 우리 시대로 끌어오는 일도 가능하다. 철학적 탐구의 핵심은 철학 그 자체가 아니라 ‘철학 사상의 업데이트‘에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지금 이 시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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