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회복력 - 아파서 시작한 일, 몸을 살리는 회복의 비밀
박희연 지음 / 바이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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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운동을 멀리하던 내가 오십 대 중반이 되자, 건강은 더 이상 관리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지키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이 되었다. 예전에는 며칠 무리해도 금세 회복되었지만, 이제는 한 번 컨디션이 떨어지면 오래 간다. 손발이 차고,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으며, 이유 없이 짜증이 쌓이는 날이 잦아졌다. 휴양지에서 23일을 보내고 와도 하루는 꼬박 쉬어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쯤 되니 건강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가 된다. 그런 시점에 읽은 체온회복력은 단순하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몸은 따뜻한가.”

 

저자 박희연은 두 차례 유산의 후유증과 오랜 통증, 암 투병, 불면과 우울을 지나며 몸의 근본 조건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붙잡은 실마리는 다름 아닌 체온이다. 체온이 1도만 떨어져도 면역력은 크게 요동친다는 말처럼, 몸이 차가워지면 혈액과 림프의 순환이 둔해지고, 순환이 막히면 결국 면역과 회복력도 함께 떨어진다. 설명 자체는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생활의 기본에 가까운 익숙한 이야기다. 그러나 중년의 몸으로 읽으니 그 익숙함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늘 무엇을 더 먹을지, 어떤 영양제를 추가할지 고민하면서도, 정작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가장 단순한 원칙은 소홀히 해 온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책은 체온 회복을 위한 네 가지 축을 제시한다. 따뜻함, 수면, 순환, 그리고 스트레칭이다. 배와 하복부를 따뜻하게 하는 습관, 깊은 잠을 위한 환경 만들기, 굳은 근육을 풀어 주는 스트레칭, 과하지 않은 운동. 특별한 비법이라기보다 꾸준함을 요구하는 생활 태도에 가깝다. 읽다 보면 이 정도야 알고 있지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나는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알고 있다는 사실과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종종 알고 있다는 감각 속에서 안심할 뿐, 실제로는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침 최근 다녀온 단체 연수에서 이 책의 내용과 묘하게 겹치는 경험을 했다. 평소 혈압과 비만 등 성인병으로 고생하던 한 동료가 자신의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을 오랫동안 즐겨 먹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상의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식단을 바꾸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 위주로 식사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보면 그는 유난히 음식을 가려 먹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분명했다. 20년째 몸에 이로운 음식만 섭취한 결과, 성인병 증상이 모두 사라졌고 6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체온회복력의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체질이 다르면 필요한 음식과 관리법도 다르듯, 몸의 회복력 역시 각자의 조건에 맞게 길러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들이 좋다는 방법을 무작정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게 돌보는 일이다. 저자가 강조하듯 회복의 주체는 외부의 처방이 아니라 자기 몸이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회복 사례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계단을 오르지 못하던 노인이 다시 걷기 시작하고, 오랜 불면에 시달리던 이가 숙면을 되찾으며, 요실금과 전립선 문제로 고통받던 이가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은 거창한 기적이라기보다 생활의 방향을 바꾼 결과로 그려진다. 체온을 올리고 순환을 돕는 습관을 꾸준히 이어가자 몸이 서서히 반응했다는 이야기다. 속도는 느릴지라도 방향이 맞으면 몸은 응답한다는 믿음이 책 전반에 흐른다. 이를 실현할 방법으로 직접 개발하여 특허를 획득한 온열 매트, 팥 찜질 팩, 좌훈음파 운동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다만 아쉬움도 남는다. 건강을 회복한 사례들이 책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독자의 집중을 다소 흩트리는 인상을 준다. 이 책이 엄밀한 학술 이론서라기보다 저자의 실천 경험과 현장 사례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보다 밀도 있는 논증이나 체계적 분석을 기대한 독자라면 유사한 사례의 반복에서 약간의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아무리 유익한 건강 회복의 팁이라도 잦은 반복은 신선함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또한 저자가 들꽃잠이라는 브랜드로 건강 회복 관련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이 순수한 경험담을 넘어 자신의 사업 철학과 제품 활용 방식을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기능을 일부 겸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독자에 따라 실천적 안내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다소 상업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십 대를 지나는 필자에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건강은 약 하나로 해결될 문제도, 단기간의 다이어트로 끝날 일도 아니다. 체온을 지키는 일, 체질에 맞는 음식을 선택하는 일, 잠을 제대로 자는 일은 결국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체온회복력은 새로운 유행을 제시하는 책이라기보다, 건강한 삶의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권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기본은 생각보다 깊다.

 

연수에서 만난 동료의 변화와 이 책의 메시지를 겹쳐 보며 깨닫는다. 건강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신호를 존중하는 작은 선택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따뜻함을 회복하는 일은 단순히 체온을 올리는 문제가 아니라, 중년 이후의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지탱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속도를 내기보다 방향을 점검할 나이다. 그 방향의 출발점에 따뜻한 몸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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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 끊기 - 반복된 문제를 부수는 최소한의 행동 설계법
빌 오한론 지음, 김보미 옮김 / 터닝페이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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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후반으로 접어드니 변화라는 단어만 봐도 어깨가 먼저 굳어온다. 젊을 때야 뭐든 마음먹으면 될 것 같았지만, 이제는 마음먹는 것 자체가 이미 에너지 소모다. 관성이라는 놈은 나이를 먹을수록 중력 가속도처럼 세진다. 출근하자마자 마시는 커피 한 잔, 늘 같은 위치의 지하철 탑승구, 괜히 습관처럼 켜는 뉴스 채널. 특별히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요즘 잘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태다. 그런 중년에게 이 책은 인생을 바꾸라며 소리치지 않는다. “지금 하던 것 중에서 하나만 다르게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묻는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 요구라면 일단 앉아서 들어볼 마음이 생긴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치고는 목소리가 크지 않은 편이다. 왜 인생이 이렇게 되었는지 따지지도 않고, 어린 시절의 상처나 성격 결함을 굳이 불러내지도 않는다. 대신 그래도 가끔은 괜찮았던 적 있지 않았나요?”라고 묻는다. 늘 미루다 우연히 일을 일찍 끝낸 날, 늘 짜증 나던 회의에서 이상하게 조용히 넘어간 순간. 저자는 그런 예외의 순간을 집요하게 붙잡는다. 문제를 이해하는 데 반평생을 써온 중년에게 이 접근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이해는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인생은 별로 안 바뀌었기 때문이다.


책의 주장은 일관되게 단순하다. 설명은 줄이고 행동을 바꾸라는 것이다. 해석은 그대로 둔 채 반응만 살짝 어긋나게 해보라는 이야기다. 늘 할 말을 참았다면 한번 말해보고, 늘 따졌다면 이번엔 그냥 넘겨보라는 식이다. 물론 말은 쉽다. 반세기 동안 굳어진 행동 하나를 비트는 게 어디 쉬운가. 허리를 삐끗하고 나서야 자세를 고치는 것처럼, 관성은 늘 통증과 함께 깨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걸 몰라서 안 했겠나싶은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그럼에도 이 책이 덜 얄밉게 느껴지는 이유는 완벽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 새 인생을 살라고 하지도 않고, 새벽 다섯 시 기상이나 인생 목표 재설정 같은 잔인한 주문도 없다. 방 전체를 치우지 못하겠으면 책상 위 볼펜 하나만 다른 곳에 놓아보라는 정도다. 오프라 윈프리가 이 책을 두고 사람을 훈계하지 않고 움직이게 만든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던 김 부장 같은 중년에게 훈계는 이미 과다 복용 상태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 역시 극적이지 않다. 부부 갈등에서 늘 변명부터 하던 사람이 그날만큼은 아무 말 없이 상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는 경우, 직장에서 상사의 지적을 들을 때 자동으로 반박하던 사람이 메모만 하며 끝내는 선택, 운동을 미루던 사람이 헬스장 등록 대신 집 앞을 10분만 걷는 행동으로 시작하는 장면, 불안해질 때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사람이 잠시 창밖을 보며 숨을 고르는 순간, 가족 모임에서 늘 말이 많아 분위기를 흐리던 사람이 그날만큼은 판단을 보류하고 질문만 던져보는 경우들이다. 저자는 이런 사소한 어긋남이 자동화된 패턴에 균열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를 깊이 이해해서가 아니라, 문제가 잠시 멈췄던 방식을 다시 써먹음으로써 말이다.

 

다만 아쉬움도 분명하다. 행동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는 논리는 매력적이지만, 세상일이 늘 개인의 선택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중년은 이미 몸으로 배웠다. 직장은 여전히 답답하고, 몸은 예전 같지 않고,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바뀌지 않는다. 책에 나오는 사례들 역시 대체로 아직 선택지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무리 다르게 행동해도 결과가 비슷한 날들, 즉 관성을 비틀 여지조차 없는 상황에 대한 성찰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읽다 보면 변화하지 못한 책임이 다시 독자에게 돌아오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안 바뀌는 건 결국 당신이 덜 바꿨기 때문 아니냐는 뉘앙스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책을 덮고 나면 질문 하나가 남는다. 정말 우리는 모든 걸 이해해야만 바꿀 수 있었던 걸까. 이해하느라 바쁘기만 했지 사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건 아니었을까. 인생을 통째로 바꾸라는 말에는 이제 웃음부터 나오지만, 오늘 하던 것 중 하나쯤은 다르게 해보라는 제안에는 괜히 뜨끔해진다. 결국 이 책이 중년의 삶을 단번에 뒤집어 놓지는 않는다. 대신 반세기 동안 켜켜이 쌓인 관성을 살짝 긁고 지나간다. 그 금이 크게 갈라질지, 그냥 잔흔으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여기까지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균열쯤은 그래, 이 나이에 이 정도면 선방이지하고 한 번쯤 감내해볼 만하지 않을까.

 

#터닝페이지 #관성끊기 #행동변화 #자기계발 #문제인식부터 #덜외롭자면_변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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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 인류가 나아지지 못하는 7가지 이유와 그럼에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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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변하고 싶다는 말을 참 쉽게 한다. 새해만 되면 어김없이 결심을 다짐하고, 삶이 꼬이는 순간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이번엔 진짜야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삶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 늘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한숨만 거듭 쉬게 된다. 슈테판 클라인의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원제: 왜 변화는 이토록 어렵고, 어떻게 가능해지는가)는 바로 이 익숙한 좌절의 지점에서 독자를 붙잡아 세운다. 그리고 묻는다. “왜 변하지 못했는지를 따지기 전에, 왜 변화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은 있는가?”

 

이 질문에 은근히 마음이 찔린다. 우리는 보통 변하지 못하면 자책하며 자신을 몰아붙인다. 의지가 약해서 그렇고, 절실하지 않아서 그렇고, 결국은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결론을 낸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익숙한 자기 비난의 방향을 슬쩍 틀어 준다. 클라인은 변화의 실패를 개인의 나약함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뇌과학과 심리학 연구를 들이밀면서 인간이 애초에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우리가 변화를 꺼리는 건 성격 탓이 아니라 기본 설정값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단일 기관으로서 신체 에너지의 무려 20%를 소모하는 우리의 뇌는 새로운 가능성보다 익숙한 반복을 좋아한다. 이미 해본 행동, 이미 살아 본 방식이 훨씬 적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반대로 변화는 언제나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잘 될 수도 있지만, 망할 수도 있다. 뇌 입장에서는 굳이 모험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기존의 습관을 깨려는 순간, 괜히 피곤해지고 귀찮아진다. “오늘은 그냥 접고 내일부터 하자라는 생각이 스르르 올라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걸 알고 나면 그동안 자신에게 던졌던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없을까라는 질문이 조금은 우스워진다. ,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어진다.

 

문제는 우리가 이 사실을 자주 까먹는다는 데 있다. 알면서도 못 하는 자신을 못 견뎌 한다. 그래서 더 굳게 다짐하고, 더 독하게 마음먹으려고 한다. 하지만 클라인은 오히려 그런 태도가 변화를 더 어렵게 만든다고 말한다. 변화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분이 자동화된 습관에 의해 굴러간다. 기상 시간, 식사 패턴, 일하는 방식, 쉬는 방법까지 대부분은 늘 하던 대로. 여기에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자기 인식, 가족과 조직이 기대하는 역할,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까지 얹히면 개인의 변화는 금세 제자리로 끌려온다.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삶 전체가 원래 방향으로 계속 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거창한 변화 계획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을 통째로 바꾸겠다는 선언 대신, 아주 작은 이동을 반복하라고 말한다. 자신과 싸우기보다 환경을 조금 손 보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면 의지가 약해서 운동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운동화가 눈에 안 띄는 자리에 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 과거로의 회귀를 실패로 취급하지 말라고 말한다. 변화는 직선 코스가 아니라 앞으로 갔다가 뒤로도 오고 옆길로도 새는 곡선에 가깝다. 중요한 건 한 번에 성공하는 게 아니라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묘한 안도감이 남는다. 그동안 변하지 못했던 이유가 비로소 설명되기 때문이다. 더 굳게 마음먹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 조금 덜 자신을 몰아붙여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사소한 방향 전환 하나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 당장 달라져야 한다고 재촉하지 않는다. 변화는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문제라는 점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변화에 성공한 사람들의 화려한 무용담이 아니라 늘 작심삼일을 반복해 온 우리 모두를 위한 변화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교실 풍경을 떠올렸다. 남자고등학교 교사로서, 우주 정복보다 더 어렵다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 길들이기와 학업 향상을 눈앞에 둔 학생들을 매일 마주한다. 밤늦게 게임 하느라 수업 시간마다 졸던 녀석이 어느 날부터 지각을 덜 하고, 숙제를 늘 안 해 오던 아이가 가끔이라도 내밀듯 제출하면 우리는 속으로 물개박수를 친다. 겉으로는 이게 뭐 대단하냐하고 웃어넘기지만, 그 한 걸음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변하지 않는 건 게을러서가 아니다. 이미 굳어진 리듬과 환경 속에서 조금씩 방향을 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이들에게 대단한 각오 대신 오늘보다 딱 5분만 빨리 잠자리에 들라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런 말이 어설픈 위로나 포기가 아니라, 인간을 제대로 이해한 데서 나온 가장 현실적인 조언임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어크로스 #뇌는어떻게변화를거부하는가 #슈테판클라인 #네잘못아니야뇌잘못이야 #뇌도먹고살아야지 #뇌과학 #책추천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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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인류 - 인류학의 퓰리처상 ‘마거릿 미드상’ 수상작
마이클 크롤리 지음, 정아영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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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주변에서 달리기는 취미를 넘어 하나의 생활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기록을 인증하고 루틴을 공유하며 함께 달릴 사람을 모으는 일이 낯설지 않고, 주말마다 크고 작은 대회가 열리며 도시의 리듬 자체가 달리기에 맞춰 움직이는 듯한 순간도 잦다. 이제 달리기는 왜 달리느냐보다 어떻게 오래, 더 잘, 더 즐겁게 달리느냐라는 지속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이 책은 이런 흐름을 흔히 기대하는 달리기 서적과는 다른 각도에서 비춘다. 훈련법이나 기록 향상 요령을 정리한 안내서가 아니라, 세계 장거리 달리기를 사실상 지배하는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삶과 감각을 내부에서 관찰한 생생한 기록이다. 달리기를 기록의 언어가 아니라 문화의 언어로 읽게 만드는 책이다.

 

책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세계 주요 마라톤 대회에서 케냐와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늘 선두를 차지하는데, 그 압도적 강세는 어디서 오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 크롤리는 인류학자로서 15개월 동안 아디스아바바에 머물며 선수들과 함께 먹고 자고 훈련한다. 그는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국제 수준의 러너이기에, 관찰자의 거리감과 달리는 몸의 감각을 함께 지닌 채 현장에 들어간다. 새벽 3시 도심 러닝부터 숲 훈련, 산지 캠프와 지역 대회까지 직접 몸을 보탠다. 이 책이 기록 향상서와 갈라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독자는 숫자와 프로그램이 아니라 달리기가 한 사회 안에서 어떤 믿음과 규칙, 감각으로 구성되는지를 먼저 만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잘 달리는 비결을 내심 기대하는 독자의 욕망을 교묘히 비껴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러너라면 페이스 전략, 심박 구간, 인터벌, 영양 관리 같은 과학적 용어에 익숙하다. 데이터 기반 훈련이 달리기 문화를 확장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크롤리가 마주한 에티오피아의 달리기는 그런 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힘들이 작동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한다. 유럽에서는 운동 능력을 개인 내부의 잠재력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 에너지는 사람들 사이를 흐르는 것으로 이해된다. 공유되고, 흘러 다니며, 때로는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인식은 곧 훈련 방식으로 이어진다. 혼자 달리기는 건강에 좋지만 변화는 함께 달릴 때 일어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대열에서 선두를 번갈아 맡는 행위는 단순한 로테이션이 아니라 타인의 부담을 대신 짊어지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누군가의 발을 따른다는 말 역시 기술적 드래프팅을 넘어, 타인의 기세와 리듬을 받아 달리는 행위로 읽힌다. 달리기가 개인의 의지와 체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들의 언어로 구체화된다.


이 대목은 한국의 달리기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요즘 크루 러닝이 늘어나는 이유는 외로움을 덜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함께 뛰면 페이스가 안정되고,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되며, 초보자도 달리기의 언어를 더 빨리 배운다는 경험이 널리 공유되고 있다. 기록보다 과정이 오래 남는 날의 충만함,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받쳐주는 집단적 리듬이 달리기에 재미를 붙인다는 사실을 많은 러너가 체감한다. (사실 신호가 꺼져가는 횡단보도조차 뛰어 건너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런 표현을 하자니 참 멋쩍다) 이 책은 이런 경험을 단순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문화적 실천으로 해석하며, 함께 달리기가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환경을 대하는 태도도 인상적이다. 에티오피아 러너들에게 장소는 배경이 아니라 거의 동료에 가깝다. 특정 장소를 찾아가며 공기가 특별하다고 말하는데, 이는 고도나 산소 같은 물리적 조건이자 그곳의 분위기와 몸의 감각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그들은 일부러 험한 지형을 찾아 속도를 늦추기도 하고, 재미를 위해 그런 길을 택하기도 한다. 숲에서는 지그재그로 달리며 나무 아래를 숙여 지나가고, 선두가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기도 한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라는 코치의 말은 이 책의 정서를 압축한다. 달리기는 숫자로 관리되기도 하지만 몸과 타인, 장소가 엮여 만들어지는 경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감각은 한국의 달리기 문화에서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같은 거리를 달려도 강변, 도심, 트랙, 산책로는 전혀 다른 몸의 반응을 만든다. 대회 역시 코스가 곧 이야기이고 장소가 곧 경험이다. 이 책은 어디서 뛰느냐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달리기의 리듬과 태도를 형성하는 조건임을 설득한다.

 

또 하나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달리기는 과학인가, 예술인가이다. 데이터와 장비는 훈련을 분명 효율적으로 만들지만, 숫자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에티오피아 러너들이 중시하는 것은 경험으로 체화된 감각과 몸이 먼저 아는 지식, 그리고 때로는 합리로 설명되지 않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선수가 신은 내가 준비되었을 때를 안다고 말하는 장면은 승패와 기록 중심의 시각을 흔든다. 이는 한국의 달리기 문화가 기록과 인증에 지나치게 매달릴 때, 달리기가 삶을 확장하는 통로인지 아니면 소진의 장이 되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렇다고 에티오피아 러너들을 낭만화하지는 않는다. 순위에 들어 상당한 금전적 보상을 받는 성공하는 소수와 달리 다수는 흩어지고 멈춰 선다. 저자는 그 현실을 끝까지 정중하게 바라보며 하나의 정답으로 꿰어 맞추지 않는다. 달리기 역시 숫자와 원리로만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서사의 방식으로 보여주기에 이 책은 더욱 믿음직하다.

 

달리기 유행이 유행을 넘어 문화로 남기 위해서는 깊이가 필요하다. 기록과 감각, 혼자 달리기와 함께 달리기, 효율과 의미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 책은 그 균형의 방향을 조용히 가리킨다. 달리기는 개인의 성취이자 공동체의 리듬이며, 과학이자 설명되지 않는 믿음을 품은 행위다. 에티오피아 러너들의 세계는 그 복합성을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흔히 공동체의 에너지는 개개인의 에너지를 합친 것보다 크다고 말한다. 에티오피아의 달리기 문화가 그랬다. 선수로서의 삶에 전적으로 헌신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있기에, 에티오피아 달리기의 최정상에 오른 선수들이 그토록 압도적 기량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서로의 발을 따라 뛰고, 모범을 보고 배우거나 직접 부딪히며 익히는 과정에서 최고 수준의 달리기를 가능케 하는 건, 관리와 규율은 물론 그 바탕에 있는 호기심과 모험심이었다.” (380)

 

결국 이 책은 동아프리카 선수들은 왜 강한가라는 질문에 시원스레 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달리기를 이루는 몸, 관계, 장소, 믿음, 불확실성이 어떻게 얽혀 하나의 문화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더 빨라지기보다 더 깊게 달리는 법을 묻는 이 책은, 지금 우리의 달리기 열풍이 삶의 문화로 남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독자에게 조용히 건넨다. 답은 각자의 달리기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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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답할 때 교육은 무엇을 묻는가 - AI가 채우지 못한 교육의 영토
함영기 지음 / 에듀니티교육연구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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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안내하는 실용서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너무도 능숙하게 답을 생산해 내는 시대에, 교육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를 묻는 사유의 기록이다. 그 질문은 미래 담론의 언어로 포장되지 않고, 교실이라는 구체적인 공간과 교사라는 현실의 자리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더욱 무게감이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저자의 시각에 깊이 공감한다. 인공지능을 경계의 대상으로만 보지도 않고, 반대로 만능의 해결사로 떠받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인공지능의 도입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영어 교사인 나 역시 시대의 변화에 맞춰 AI 기반 영어 학습 프로그램, 자동 첨삭, 생성형 작문 도구를 수업과 평가에서 부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학생 개별 수준에 맞는 연습 문제를 제시할 수 있고, 반복 학습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효과가 있다. 교사에게도 수행평가 채점이나 세부능력 특기사항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 변화의 속도 앞에서 나는 늘 뒤따라가는 위치에 서 있다. 불과 몇 년 전 코로나 시국에 비대면 수업을 위해 줌과 구글 클래스를 배우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새로운 연수가 끝날 즈음이면 또 다른 기술이 등장하고, 익숙해질 만하면 다시 다음 단계가 요구되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대입 진학을 앞둔 학생들의 영어 과목을 맡아 해마다 바뀌는 교재에 적응해야 하고,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으로 여러 과목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현실까지 더해지면서 수업 준비의 피로도는 분명히 높아졌다.

 

이 책은 그러한 교사의 불안과 피로를 외면하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의 최전선에 선 이들은 교사들이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진단이 아니라, 오랜 시간 교단을 지켜 온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 말처럼 느껴진다. 평생 자기의 경험과 축적된 수업 감각으로 아이들과 호흡해 온 교사에게 인공지능은 혁신인 동시에 위협이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 학생이 나보다 먼저 AI에게 질문하고, 더 빠르고 친절한 답을 들고 오는 장면을 여러 차례 마주했다. 그 순간 교사의 말은 느려지고, 설명은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답을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라 배움이 일어나는 시간을 지키는 존재로서 교사의 자리를 다시 묻는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교육의 중심이다. 인공지능은 오답의 패턴을 분석할 수는 있어도, 학생이 답을 적지 못한 채 멈칫거리는 이유까지 이해하지는 못한다. 영어 문장을 쓰다 말고 연필을 내려놓는 침묵, 발표를 앞두고 시선을 피하는 불안, 정답은 맞혔지만 이유를 설명할 자신감이 없어 고개를 숙이는 학생의 마음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다. 학습을 포기하게 되는 순간의 심정, 그리고 그런 학생을 바라보는 교사의 안타까움까지 인공지능이 대신 헤아릴 수는 없다. 영어를 포기한 학생들이 여전히 다수인 교실에서 그런 장면을 수없이 지켜봐 온 교사에게, 이 책은 교육의 본질이 여전히 관계와 기다림에 있음을 교사에게 다시 돌려준다.

 

특히 33화에서 언급한 정답을 주는 AI, 질문을 잃은 교실이라는 문제의식은 지금 영어 수업의 현실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생성형 AI는 언제든 유창하고 세련된 영어 문장을 만들어 낸다. 학생들은 더 이상 서툰 문장을 붙잡고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이면에는, 틀린 문장을 고치며 배우던 시간과 어색한 표현을 두고 웃음이 오가던 교실의 풍경이 사라질 위험도 함께 존재한다. 사람은 원래 실수를 반복하며 배운다. 틀리고, 고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배움은 서서히 단단해진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기다림의 교육학은 느린 교실을 미화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배움이 실제로 일어나는 시간을 지키기 위한 분명한 선언이다.

 

이 책의 독창성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드러난다. 저자는 장미라고 이름 붙인 인공지능과 실제로 대화하며 글을 써 내려간다. 인공지능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때로는 거부하고 수정하며 자신의 언어를 끝까지 밀고 간다. 이 과정은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다. 인공지능과 함께 일하되 판단과 선택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는 점을 서사적으로 증명한다. 이는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 그리고 AI가 맺어야 할 관계에 대한 하나의 모델처럼 읽힌다.

 

50대 교사로서 나는 여전히 새로운 기술 앞에서 서툴다. 연수 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가르치는 사람인지 배우는 사람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느리게 따라가는 교사의 역할이 분명히 남아 있음을 느낀다. 모든 기능을 완벽히 익히는 사람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고 질문의 방향을 잡아 주는 안내자로서의 역할이다. 인공지능 도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도입의 이유와 방식에 대해 끝까지 묻는 사람으로 남는 일이다.

 

저자의 교육 전문가로서의 깊은 이해와 통찰이 돋보이는 이 책은 미래 교육의 청사진이나 인공지능 활용 팁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교사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던져야 할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가르치는가, 이 교실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많은 답을 내놓는 시대일수록, 그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교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이 책을 덮으며, 나 역시 느리게 걷더라도 그 질문만은 끝까지 붙들고 있는 교사로 남고 싶다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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