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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 끊기 - 반복된 문제를 부수는 최소한의 행동 설계법
빌 오한론 지음, 김보미 옮김 / 터닝페이지 / 2026년 1월
평점 :

50대 후반으로 접어드니 ‘변화’라는 단어만 봐도 어깨가 먼저 굳어온다. 젊을 때야 뭐든 마음먹으면 될 것 같았지만, 이제는 마음먹는 것 자체가 이미 에너지 소모다. 관성이라는 놈은 나이를 먹을수록 중력 가속도처럼 세진다. 출근하자마자 마시는 커피 한 잔, 늘 같은 위치의 지하철 탑승구, 괜히 습관처럼 켜는 뉴스 채널. 특별히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요즘 잘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태다. 그런 중년에게 이 책은 인생을 바꾸라며 소리치지 않는다. “지금 하던 것 중에서 하나만 다르게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묻는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 요구라면 일단 앉아서 들어볼 마음이 생긴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치고는 목소리가 크지 않은 편이다. 왜 인생이 이렇게 되었는지 따지지도 않고, 어린 시절의 상처나 성격 결함을 굳이 불러내지도 않는다. 대신 “그래도 가끔은 괜찮았던 적 있지 않았나요?”라고 묻는다. 늘 미루다 우연히 일을 일찍 끝낸 날, 늘 짜증 나던 회의에서 이상하게 조용히 넘어간 순간. 저자는 그런 예외의 순간을 집요하게 붙잡는다. 문제를 이해하는 데 반평생을 써온 중년에게 이 접근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이해는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인생은 별로 안 바뀌었기 때문이다.
책의 주장은 일관되게 단순하다. 설명은 줄이고 행동을 바꾸라는 것이다. 해석은 그대로 둔 채 반응만 살짝 어긋나게 해보라는 이야기다. 늘 할 말을 참았다면 한번 말해보고, 늘 따졌다면 이번엔 그냥 넘겨보라는 식이다. 물론 말은 쉽다. 반세기 동안 굳어진 행동 하나를 비트는 게 어디 쉬운가. 허리를 삐끗하고 나서야 자세를 고치는 것처럼, 관성은 늘 통증과 함께 깨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걸 몰라서 안 했겠나” 싶은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그럼에도 이 책이 덜 얄밉게 느껴지는 이유는 완벽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 새 인생을 살라고 하지도 않고, 새벽 다섯 시 기상이나 인생 목표 재설정 같은 잔인한 주문도 없다. 방 전체를 치우지 못하겠으면 책상 위 볼펜 하나만 다른 곳에 놓아보라는 정도다. 오프라 윈프리가 이 책을 두고 “사람을 훈계하지 않고 움직이게 만든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던 김 부장 같은 중년에게 훈계는 이미 과다 복용 상태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 역시 극적이지 않다. 부부 갈등에서 늘 변명부터 하던 사람이 그날만큼은 아무 말 없이 상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는 경우, 직장에서 상사의 지적을 들을 때 자동으로 반박하던 사람이 메모만 하며 끝내는 선택, 운동을 미루던 사람이 헬스장 등록 대신 집 앞을 10분만 걷는 행동으로 시작하는 장면, 불안해질 때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사람이 잠시 창밖을 보며 숨을 고르는 순간, 가족 모임에서 늘 말이 많아 분위기를 흐리던 사람이 그날만큼은 판단을 보류하고 질문만 던져보는 경우들이다. 저자는 이런 사소한 어긋남이 자동화된 패턴에 균열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를 깊이 이해해서가 아니라, 문제가 잠시 멈췄던 방식을 다시 써먹음으로써 말이다.
다만 아쉬움도 분명하다. 행동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는 논리는 매력적이지만, 세상일이 늘 개인의 선택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중년은 이미 몸으로 배웠다. 직장은 여전히 답답하고, 몸은 예전 같지 않고,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바뀌지 않는다. 책에 나오는 사례들 역시 대체로 아직 선택지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무리 다르게 행동해도 결과가 비슷한 날들, 즉 관성을 비틀 여지조차 없는 상황에 대한 성찰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읽다 보면 변화하지 못한 책임이 다시 독자에게 돌아오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안 바뀌는 건 결국 당신이 덜 바꿨기 때문 아니냐”는 뉘앙스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책을 덮고 나면 질문 하나가 남는다. 정말 우리는 모든 걸 이해해야만 바꿀 수 있었던 걸까. 이해하느라 바쁘기만 했지 사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건 아니었을까. 인생을 통째로 바꾸라는 말에는 이제 웃음부터 나오지만, 오늘 하던 것 중 하나쯤은 다르게 해보라는 제안에는 괜히 뜨끔해진다. 결국 이 책이 중년의 삶을 단번에 뒤집어 놓지는 않는다. 대신 반세기 동안 켜켜이 쌓인 관성을 살짝 긁고 지나간다. 그 금이 크게 갈라질지, 그냥 잔흔으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여기까지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균열쯤은 “그래, 이 나이에 이 정도면 선방이지” 하고 한 번쯤 감내해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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