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앨런 그린스펀.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지음, 김태훈 옮김, 장경덕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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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미국 자본가들의 관점에서 이 책을 소개하자면전설적인 연준 위원장부터 누구나 알만한 이코노미스트 잡지 편집자 겸 역사가에 이르기까지다 떨어져 기워입던 식민지 시대의 누더기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부와 혁신의 성장 동력에 이르는 미국 자본의 발전상을 노래한 대서사시라 칭할 만하다이 책은 2018년 파이낸셜 타임스와 맥킨지 비즈니스 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다참고로 맥킨지 비즈니스 어워드는 실용적이고 획기적인 경영이론을 표창하기 위해 1959년에 제정되었으며해마다 경영계와 학계의 저명한 지도자들로 이루어진 외부 심사위원단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뛰어난 기사를 선정하여 수여한다.


전설적인 경력을 시작으로 저자는 미국 경제의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까지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 너머까지 알고 싶어 하는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의 소유자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유기체처럼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미국 경제를 이해하는 교과서적 방법론을 정립한 그는 특히 혁신의 난제인 생산성 성장에 관한 질문즉 혁신은 어디서 시작되며 사회 전반에 확산시킬 방법은 무엇일까?’, ‘보다 민주적으로 퍼진 혁신의 열매를 거두는 시기가 있던 반면 지금 같은 시기는 왜 그렇지 못한가?’와 같은 질문의 해답을 깊이 연구하였다.




저자가 평생에 걸쳐 씨름을 벌여왔던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지난 역사의 과정에 미국 경제를 움직여 온 결정적 동력이라는 핵심어로 압축된다이코노미스트 기자이며 역사가인 에이드리안 울드리지와의 협업으로 저자는 광활한 풍경내로라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업적성공적인 돌파구계몽적 사상과 형편없는 도덕적 실패담 등이 포함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 안에는 남북전쟁 이전 남부지역 경제의 기반이었던 노예 역할부터 루스벨트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뉴딜 정책의 실제로는 미미했던 성과자유무역 개방을 위해 전혀 자유롭지 못했던 미국 정부의 강압적 영향력 행사에 이르는 모든 중요한 논란거리도 들어있다자본 축적을 위해 악용되었던 노예제도원주민 학대와 이주민 착취 등 역사의 그늘 속에 묻혀간 자본주의의 추악한 이면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인정하게 되는 분명한 사실은 미국을 유례없이 강력하고 융성한 국가로 만든 원동력은 수백만 평범한 미국인들이 뿜어낸 비범한 생산적 에너지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사실 저자가 주장하는 가장 큰 미국적 특징은 창조적 파괴와 그 결과에 대한 독특한 관용에 있다예전의 문물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생각에 따라 끊임없이 동요하며 새 문물에 길을 내어주는 것이다때로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지만이 창조적 파괴는 거의 모든 미국인을 불과 몇 세대 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시민들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생활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정의감과 인간 존엄성이 변화의 고통을 정면으로 맞이하는 선구자들을 보호할 수 있어야 마땅하겠지만미국인들은 언제나 이득에는 수고가 따름을 수용하였으며 이러한 유산의 인식이 있어야만 그들이 맞섰던 도전이나 자랑해마지않던 국운 상승이 퇴색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하지만 지금 이 시대 미국의 생산성 성장은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며 다시금 정체기를 맞이하고 있다과연 미국은 빅 브러더로 불리던 세계적 주도권을 지속할 수 있을까아니면 자칭 미국보다 덜 민주적인(?!) 국가들에게 어쩔 수 없이 주도권을 양보할 것인가미국이 당면한 가장 절박한 이 질문에 역사의 교훈을 적용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기는 다시 없어 보인다.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실크 스타킹을 가질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가난한 여공도 그 스타킹을 신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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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렇게 화냈어야 했는데! - 적재적소에 전략적으로 화내는 33가지 방법
가타다 다마미 지음, 김정환 옮김 / 센시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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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는 내는 순간 사라진다화는 참을 때 더 커진다.” -에밀리 디킨스


가끔 외국인 친구들로부터 한국인들은 평화를 사랑해서 그런지 화를 잘 참는 편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상당히 공감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느끼는 분노는 민족성이나 개인의 기질보다는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는 것 같다. 분노 사회, 불안 사회, 불공정 사회라는 말로 에둘러 분노를 표현하지만 화를 참아봐야 얻는 것이라고는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다.


 

화를 참으면 성공한다는 말은 거짓이고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다. 그럼 언제 어떻게 분출한담? 적재적소에 전략적으로 분출하여 순기능을 얻기란 쉽지 않은 법인데, 어느 정신과 의사가 30년 임상경험을 통해 밝혀낸 33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모 아이스크림 메뉴보다 겨우 두 개 더 많다.

 

이 책은 작고 휴대가 간편한 문고판 분노 표출 지침서로 그야말로 군살 빼고 핵심만 담았다. 무엇보다 분량이 적어 언제 이 두꺼운 책을 다 읽겠냐는 독자의 분노를 미리 방지하고 있어 일단 건강에 유익해 보인다. 내용은 화내지 않는 사람은 손해를 보며(1), 분노의 진짜 원인을 찾지 못하면 매일 화만 날 뿐이고(2) 직장에서 화 분출 요령(3), 가족과 친지, 지인과 이웃으로 인한 화 다루기(4), 이렇게 해도 화가 다스려지지 않을 때(5)로 구성되었다.

 

저자가 분노의 양팔 저울이라 이름 붙인 기준에 따르면, 현실 생활에 적응하기 위하여 욕구의 충족을 연기하거나 단념하는 심리상태인 현실원칙’, 또는 고통보다 쾌락을 추구하고 본능적인 충동에 따라 즉각적, 직접적 만족을 얻으려는 심리상태인 쾌락원칙이 있다. 쉽게 말하자면 화를 분출함으로써 무엇을 얻고 잃을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또한 전략적으로 화를 표출하기 위한 3단계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분노를 느낀 순간 그 감정이 분노임을 자각한다. 둘째, 분노의 원인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인지, 자신의 이익을 침해당했기 때문인지, 혹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인지를 분석한다. 셋째, 위에 언급한 분노의 양팔 저울을 기준으로 분노의 표출 여부를 결정한다. 현실적으로 화를 내게 되는 상황은 예고 없이 오는 법이라 이를 실제 상황에 적용하려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쨌든 화를 표출하더라도 그 방향 역시 중요하다. 억눌렸다가 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분노의 방향이 내부로 향하면 자해가 되겠지만, 외부로 잘만 분출되면 엄청난 성공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저자의 경우 방송 직전 자신의 글이 의도적으로 삭제당하는 모욕을 당한 후, 보란 듯이 성공하여 몇십 배로 갚아주겠다는 분노에 전례 없이 원고 집필에 집중한 결과 베스트셀러를 내게 된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을 화나게 하는 감정 속에는 깊은 슬픔, 두려움, 선망과 질투, 과대평가 등의 요인이 있으며 이를 마음속으로 잘 알아채야 화를 다스릴 수 있다면서, 우리를 화나게 하는 분노유발자 다섯 가지 유형,즉 항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득형, 자기 자랑과 우월감을 확인하는 자기애형,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삼는 선망형,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여 몰아세우는 부인형, 엉뚱한 대상에게 화풀이하는 치환형을 제시한다. 아울러 실생활에서 분노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한 대처법으로 회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권하고 있다.

 

결국, 분노를 잘 표출해야 하는 이유는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함이다. 자신에게 화를 돋우는 분노유발자는 고쳐 쓸 수 없으니 잘 피해 다니되,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행복할 권리가 있음을 주지시키고 있다. 한편 친구이면서도 주종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인물로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처음 등장했던 프레미(fremy = friend + enemy)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성장 과정에 프레미였던 어머니와 친할머니에게 보란 듯이 행복하게 잘 살아줌으로써 행복이야말로 최고의 복수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인생 뭐 있겠나. 독자 여러분, 건강하게 분노하고 행복하게 삽시다.

"화는 내는 순간 사라진다. 화는 참을 때 더 커진다." -에밀리 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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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움의 사회학 - 남자를 지배하는 ‘남자라는 생각’
필 바커 지음, 장영재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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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통틀어 전통 또는 풍습이란 핑계로 지금까지 남자들은 숨 막히고, 제한적이며 파괴적인 ‘남자다움’ 연기에 몰입하도록 윗세대로부터 강요받아왔다. 남에게 나약한 모습과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여자처럼 아파도 울면 안 된다. 남의 도움 얻을 생각 말고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 남들 앞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움직여라. 왜냐고? 너는 남자이니까.


호주 언론인 출신인 저자는 태어나 눈을 뜰 때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남자다워지려는 연기가 우리 주변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면서 ‘맨박스’로 명명한 남자다움의 신화를 풀어헤친다. 이 낯설고 끔찍한 시대에 남자다움에 대하여 수많은 글을 쓰며 자살 유행, 가정 폭력, 음란물과 여성 혐오뿐만 아니라 남성 간의 우정, 아버지 노릇 하기, 남성과 여성 간의 관계 맺기 등을 연구 조사하며 많은 세월을 보낸 그는, 이 과정에서 ‘남자다움’의 의미를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전체 3부 11장으로 구성되었으며 1부는 남자다움을 배운 남자들, 즉 나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울면 안 되는 소년들, 과용 혹은 오용되는 음란물의 오해 및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을 다룬다. 각종 통계 자료와 더불어 솔직하지만 애써 동정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일화들은 재미있고 쉽게 읽히며 마치 저자와 마주하여 담소를 나누는 느낌을 준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호주 남성권리운동(Men’s Rights Activism) 단체의 여성 혐오 태도와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신념은 좋게 표현하자면 아직 원시성을 보존하고 있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한국보다 35배 더 넓은 땅에 인구는 채 절반도 되지 않는 지역적 특성이 이러한 여건이 보존되는데 한 몫 거드는 것 같다.


남자답게 산다는 것을 다룬 2부는 남자다움을 기대하며 앞 세대로부터 자행되는 가정 폭력, 남자다움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자살, 깡패 기질 맨박스의 자질을 숭상하는 직장 문화를 이야기한다. 호주에서는 매주 여성 한 명이 배우자 또는 이전 배우자의 손에 목숨을 잃고, 3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에 의해 성폭력을 당하며, 여성의 1/3은 15세 이전에 물리적 폭력을 경험한다. 이 폭력은 성별 규범, 즉 남자는 튼튼하고 강해야 하며 여성에 대하여 지배적이고 통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에서 유래한다.


미래의 취업 시장에서 가장 소중한 자질은 창조성과 공감 능력처럼 우리를 독특한 존재로 만들어주며 때로는 맨박스가 여성적이라 비난하는 인간적 특질이다. 각종 공무원 시험, 교원 임용, 학업 성적은 물론 마지막 남성의 영역이라던 자동차 운전에 이르기까지 성별은 사라지고 다만 인간만이 남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자다움을 다시 생각하는 3부의 첫 장은 아쉽게도 남자들은 모두 요리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투성이로, 남자들이 따라야 할 요리법을 잔뜩 나열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개된 내용과 문맥상 연결이 어색한 이 부분은 사실 요리가 맨박스로부터 남자들을 자유롭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이자 진정한 남자다움에 유용한 기술임을 언급하려던 저자의 의도로 읽힌다. 남자다움을 재정의하는 데서 한발 물러나 이 부분만 부록으로 만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3부의 나머지 부분은 우월감으로 흐르기 쉬운 남성의 신체적 특징, 훌륭한 아버지가 되는 길, 오래 가기보다는 더 나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다루면서 감성의 연결고리를 갖고 유지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훌륭한 ‘요약 보고’를 선호하는 저자는 책 뒤편에 요약 정리를 달아놓아 앞서 다루었던 주제들을 돌아보고 논지의 핵심만 정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친절 자상하게도 남성 독자들이 남자다움을 실행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읽혀 살갑다.


아들 없이 십 대 초반의 딸만 하나뿐인 저자는 딸 가진 아버지의 심정에서 나중에 딸이 장성하여 괜찮은 젊은이와 진지한 만남을 갖게 되기를 바라며, 호주의 심리학자 비덜프의 입을 빌려 그 청년이 그의 아버지로부터 이성 존중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받았기를 소망한다.


“사랑과 살뜰한 관심을 받고 싶다면 여성을 인간으로 여기고 그들과 공감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신을 연약하게 만들고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지만, 결국에는 삶의 참된 기쁨을 찾게 될 것이다. 여성도 삶이라는 모험의 여정에서 남성과 같은 것, 즉 기쁨, 친밀감, 이해, 함께할 동반자를 원한다.” (p.107)


이 책은 남성은 물론 여성들에게도 무척 흥미로운 읽을거리임이 틀림없다. 저자는 남성 독자들에게 스스로 책임 의식을 가지고 미래를 헤쳐나갈 힘을 암묵적으로 부여하고 있으므로, 여성 독자라면 사랑하는 어린 아들이나 연인 혹은 남편이 남성성의 늪에서 허우적대지 않을 방법이 있지 않을까를 자문할지도 모른다. 만일 이런 부분이 추가 보완되어 출간된다면 더욱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곳곳에 등장하는 수많은 일화와 남자다움의 주제에는 20년 넘게 편집자 또는 언론인으로 일해 온 저자의 관찰과 관록이 녹아있다. 이 책은 세상의 모든 남성이 자신과 이후 세대를 위하여 남성성으로 과대 미화 포장된 맨박스를 인지하고 정체를 파악한 후 결별하는 방법을 안내하도록 고안된 지침서이다. 저자는 남자다움의 의미를 돌아보고 잃어버린 감성을 복구하여 남성들뿐 아니라 그들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행복하고 건강하며 더욱 의미 있게 살 것을 희망한다. 어떻게? 사랑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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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 오늘을 위해 내일을 당겨쓰는 사람들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9
양승광 지음 / 씽크스마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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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하루 24시간을 보내지만, 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물리적으로는 24시간이지만 누구나 똑같은 비중으로 살고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나의 선택으로 온전하게 보낼 수 있는, 나만을 위한 자유로운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진정한 자유란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타인 혹은 타의에 의해 소모되지 않으며 자신의 능동적인 선택과 의지가 동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출퇴근, 학업, 업무, 가사노동 등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은 진정한 나의 시간으로 볼 수 없다. 나만의 시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니, 가질 수 있는 걸까.

 

개인의 생활세계는 노동하지 않는 시간(여가, leisure)에 만들어진다.” - 한동우 교수

 

자신을 경제인, 가족 구성원, 임금노동자, 연구자, 귀차니스트라고 표현하는 저자는 우리가 소유물이라 생각했던 시간이 왜 온전히 소유될 수 없는지, 우리의 시간은 왜 공평하지 못한지, 왜 오늘을 위해 내일을 당겨 쓰게 되는지를 묻고 있다. 책은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자의 차분하고 깊은 통찰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간명한 결론이 돋보인다.

 

1.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인간의 삶은 시간으로 채워졌기 때문에 삶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어느 누구도 똑같은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로 삶이 공평하지 않듯 시간 역시 공평하지 않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픈 욕구에 더하여 의미를 지니려면 생존 이외에도 자유의 개념이 더해져야 한다. 능동적인 시간만이 진정한 자유인 반면 누구나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생존에 필요한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2. 직장인의 시간은 어떻게 달라질까

근로와 노동의 차이는 수동과 능동의 차이에 있다. 직장인들은 노동의 삶을 원하며 퇴근 이후에도 노동을 연장해야 하는 조악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법정 노동 시간보다 더 오래 일해도 보호받지 못하는 유권 해석의 모순, 은폐된 점심시간의 노동, 메신저 지옥 등 희생과 강요에 의한 직장인들의 애환을 예로 들고 있다. 직장 가까이 거주를 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한계를 두고 정신승리 이외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음을 토로한다. 생존에 필요한 직장인들의 시간은 극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3. 비정규직은 어떻게 신분이 되었을까

대한민국에서만 통용되는 신분제 그 이름은 바로 비정규직. 요즘은 무기계약직이라는 대체용어도 있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옳지 못한 말이다. 기간제, 단시간, 간접고용과 같은 말 또한 우리 노동 형식에서 벗어나 있고 마땅한 명칭이 없어 생겨났는데 웃기지도 않게 상대 개념인 정규직은 이후에 생겼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며, 원청업체의 갑질에 무방비로 놓인 약자인 동시에 차별적 신분의 또 다른 이름으로 등장한 비정규직은 사회적 정의에 어긋난다. 임금 격차를 줄이고 고용을 보장하며 신분에 무관한 노동을 통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4.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은 동일할까

내일의 노동을 저당 잡히는 대학 학자금 대출로 졸업과 동시에 채무자로 시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사회생활 격차는 시작부터 벌어진다. 학비와 용돈 조달을 위해 시작한 부업 역시 업주의 인건비 절약을 이유로 보장받지 못해 두세 군데 더 뛰는 쪼개기 알바를 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신조어가 된 취업준비생은 취업 활동에 쓰인 시간이 곧 취업의 보장을 의미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쟁 치열한 의자 빼앗기 놀이의 희생자인 셈이다.

 

5. 게으름과 노력, 그 일란성 쌍생아

근거 없는 자신감의 줄임말인 근자감은 결과적으로 자신감을 안겨주기에 저자는 이 조어를 좋아한다. 기대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게으르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게을러지려면 충분한 시간 여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시간이 충분한데 하지 않는 것은 능력 부족일 뿐 게으른 게 아니며 역량을 기대하게 만들고 결국 표현되기 때문에 게으름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 게을러져야 노력도 가능하므로 노력과 게으름은 반대어임에도 불구하고 닮은꼴이다.

 

6.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삶의 예로 대입시험과 사법시험 두 개를 제시한다. 대입시험은 부모의 욕망이 나에게 투사된 경우이나, 사법시험은 내 욕망이 실현된 것이므로 시간의 소유 면에서 의미가 달라진다. 시간의 주인으로 산다고 함은 욕망을 가진다는 뜻이고 이는 삶을 누린다는 말과 같다. 삶을 누린다는 말은 곧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는다는 뜻으로 우리는 인간답게 생활을 할 이유가 충분하며 이를 실현할 잉여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적용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해 추구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확대하는 삶이 필요하다. 이처럼 시간은 각자에게 모두 달리 나타난다.


이 책을 읽으며 시간이 가지는 의미를 돌아보고 인간들의 삶에 동질적으로 적용되느냐는 질문의 답을 사유해 보았다. 시간은 모두에게 각자 다른 모습으로 다가가며 이를 알아채기는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은 불평등의 디폴트 값을 지닌다. 다만 강요되지 않는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이 사회 구조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만큼은 누구나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 두어 편이 떠오른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영화 <인 타임>처럼 시간을 매매, 탈취, 독점하여 영원불멸의 존재가 될 수도 없고 <어바웃 타임>처럼 임의로 시간의 앞뒤를 오갈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으로 채워진 우리의 삶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에 제도화된 시간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멈추지 않기를 바라며, 저자가 제시한 시간의 공식 [(시간+노력) x 역량+=성과]에서 시간이 최소한의 상수가 되도록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한다면 더없이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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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 - 청년 정치인의 현실 정치 브리핑
이동수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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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으로 가린 얼굴. 뒤집어 입은 교련복. 깨진 벽돌과 몰로토프 칵테일. 군부 독재 타도를 외치던 팔뚝질. 이게 다 뭐냐고? 영화 1987의 시위 장면과 겹치며 등장하는 멋진 주인공 강동원처럼은 아니지만 나름 군부 독재로부터 정치 민주화에 한 숟가락 얹어본 세대의 기억 속 장면들이다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나 비록 정치는 민주화되었다지만 경제 분야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상황은 그다지 나아진 것 같지 않다. 피 끓던 청춘이 이제는 배 나온 아재가 되어 식구들 먹고사니즘에 지치고 아직도 진보냐 보수냐 진영 싸움하는 정치권에 진력이 난 요즘,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 대해 2, 30대 청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마침 이 책을 만났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태어난 저자는 이제 30대에 막 들어선 젊은이지만 정치 활동에 관한 한 절대 초심자가 아니다. 이미 고등학생 시절부터 청년의회 활동을 시작하여 대학에서는 언론을 공부하였고 졸업 후에는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으며 지금은 청년정치크루를 이끌고 있다.

 

책 제목처럼 저자는 분열로 망하는 진보와 부패로 망하는 보수를 모두 지켜보며, 이념과 패거리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주는 상식정치의 현주소를 묻고 있다. 아직도 그저 그런 수준의 정치환경을 물려 준 앞선 세대로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을 접하며 떠오른 옛말이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상식적으로 이 나라의 미래는 앞으로 죽을 날이 가까운 기성 정치인들보다 살날이 더 많은 젊은 정치인들이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 30년간 새 술을 담글 환경이 아직도 조성되지 않아 여전히 헌 부대에 술을 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곳곳에서 수준 이하의 언행을 일삼는 일부 정치인들을 볼 때마다 왜 불필요한 사회적 스트레스를 국민이 감당해야 하는가 자문도 많이 해보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능한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새 술을 담글 새 부대를 마련하면 될 것 아닌가.

 

저자는 청년들이 기성 정치인들과 공정한 정책 대결이 가능하도록 선거법을 정비하여 진영과 관계없이 소신껏 활동할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정치 초년생인 점을 고려하여 비례대표를 늘리거나 공천의 일정 부분을 할당해 달라는 요구 따위는 필요 없는 대신, 능력과 콘텐츠로 경쟁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런 패기와 참신함이야말로 기성 정치인들에게 던지는 정책 대결의 도전장이 아니겠는가. 이 부분, 상당히 고맙고 마음에 들 뿐 아니라 정치의 장래를 낙관할 여지가 많아 보인다. 앞으로 저자와 같은 젊은 정치인들이 대거 입문 등용되기를 강력히 희망해본다.


 

사족으로 간접 민주주의, 대의정치의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제대로 일하는 국회의원을 위해 어설프나마 다소 과격할 수 있는 제안 몇 가지를 적어보았다. 대한민국의 한 유권자로서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니 이로 인한 시비는 없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만 하면 모르기는 해도 정말 하고픈 사람만 할 수 있는 업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군필자(남성) 및 실거주 1주택자로 자격 제한. 국회의원 외 사학재단 사외이사 등의 겸직 금지. 보좌진과 비서 폐지. 최저시급의 5배 이내 급여. 고급 승용차 대신 자전거 지급. 입법 활동과 무관한 면책특권의 축소 또는 폐지. 해외연수 자부담. 무노동 무임금 원칙으로 국회 회기 중 결석 시 벌금부과. 일반 공무원처럼 58세 은퇴.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금지. 국회의원 단 하루만 해도 받는 연금제 폐지.’

새 술은 새 부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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