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르샤흐 - 잉크 얼룩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다
데이미언 설스 지음, 김정아 옮김 / 갈마바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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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느 실존 인물의 전기이자 역사소설이다. 전반부는 표준화된 잉크 얼룩을 정신분석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로르샤흐 시험'을 개발한 스위스 정신과 의사 헤르만 로르샤흐의 전기다. 그의 시험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할 무렵인 1922년 그는 안타깝게도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후반부는 그의 사후 로르샤흐 시험이 심리학 분야에 미친 역사를 다룬 것으로, 그 유효성은 여전히 시험대에 올라 개선을 거듭하고 있다. 이 시험의 대중적 인기는 그 후 몇 년 동안 다양한 분야로 파급되었으며, 이 시험의 옹호자들과 비판자들 사이에 의견의 양극화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아도 헤르만 로르샤흐는 상당한 매력을 지닌 인물로 보인다. 20세기 초반의 스위스 정신과 의사라면 구태의연하고 이상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외골수 성격일 것이라 짐작해서였을까? 그는 첫눈에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인물로 작품 곳곳에서 묘사된다. 그는 특히 여성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한하던 시대에도 여성의 권리를 옹호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러시아 출신의 스위스 의사와 결혼함으로써 지적인 여성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몸소 실천하였다. 이외에도 그에 대해 알려진 사실과 일화로 짐작건대 그는 당시에도 상당히 진보적 성향의 인물임을 확신할 수 있다.

 

여기서 잠시 로르샤흐 검사에 관해 알아본다. 이 검사는 종이 위에 잉크를 떨어뜨리고, 그것을 접었다 펴서 좌우 대칭으로 만든 그림(로르샤흐 카드)이 사용된다.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그림은 지금도 로르샤흐의 작품이 그대로 사용된다. 각각 5장의 무채색과 유채색 카드를 사용하며 크기는 약 17cm×24cm이다. 검사자는 피험자에게 카드를 1장씩 보여주는데 피험자는 카드의 잉크 반점이 무엇으로 보이는지 자유롭게 응답하고(자유 반응 단계), 검사자는 어디가 어떻게 보이는지 등을 질문하고 청취한다.(질의 단계) 이 과정에서 반응 시간, 반응 내용(무엇을 보았는지), 반응 영역(어디서 그렇게 보았는지), 결정 원인(어떤 특징에서 봤는지)이 기록된다.

 

로르샤흐 잉크 반점 검사는 피험자가 그림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답변을 고의로 조작하는 반응 왜곡이 발생하기 어려워 무의식적인 심리 분석이 가능하다. 1921년 개발된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반응 및 분석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통계적인 평가도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표준화 검사와 비교하여 타당성신뢰성이 낮고, 응답 결과의 분석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며 이를 포함하여 오랜 시간이 걸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 등을 들어 그 유용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헤르만 로르샤흐는 그가 개발한 테스트의 성격에서 알 수 있듯 예술가의 재능을 보였다. 잉크 반점이라는 말로 그의 테스트에 사용된 그래픽의 특성을 모두 설명하기는 사실 어렵다. 그가 준비한 반점은 최대한 모호하고 상반되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작품이다. 10개의 공식 잉크 반점 검사지는 각각 개별적인 카드에 인쇄되어 있으며, 각 반점은 거의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룬다. 다섯 장은 검은색, 두 장은 검은색과 빨간색, 세 장은 흰색 바탕에 다색 잉크로 인쇄된다. 이 표준화된 열 장의 반점은 첫 개발 이후 지금까지 변함없이 쓰이고 있으며, 이후 이루어진 모든 변화와 개선은 채점 방식과 해석의 영역이었다.

 

로르샤흐가 중년의 전성기를 앞두고 사망한 사실은 매우 안타깝다. 그의 사후에도 그가 남긴 잉크 반점 검사는 심리 검사 분야의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했으므로 만일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자못 궁금했다. 그가 그래픽 도형에 대한 다른 반응을 발견한 후 주로 조현병 진단을 위한 도구로 자신의 테스트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성검사로서 몇 가지 실험을 진행했지만, 적용하는 방식에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 시험을 일반적인 인성검사로 적용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었다.

 

이 책의 후반부는 다양한 심리학 학파들이 우열을 다투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결국 20세기 심리학의 역사서가 되고 만다. 이 책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다양한 성격 유형들이 잉크 반점 검사에서 서로 다른 인식의 패턴을 보여주어 로르샤흐 테스트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로르샤흐의 문제는 채점으로부터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시험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결과를 얻기 위한 지루한 절차로 귀결되었다.

 

점수를 잘못 매겨 이혼 양육권 싸움에서 부적절한 결정을 내리게 된 사례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실수는 다른 심리 검사에서도 흔히 발견될 수 있다. 구두 또는 필기시험을 사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문화와 언어의 차이가 있는 상황이라면 로르샤흐 검사가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로르샤흐는 심리학의 세계적 석학인 융, 프로이트, 블로우어러 등의 영향을 받아 지속적인 치료 결과를 끌어내는 최적의 진단 테스트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병원에서 무려 320명 환자의 정신건강을 진료하면서 자신의 시험 결과를 평가하고 발표하려 노력했다. 열심히 일하는 그는 매우 가정적인 남성으로 처음에는 동생, 누이, 계모, 그다음에는 아내와 두 아이를 차례로 부양했다. 그는 또한 아이들의 대부분 장난감과 아파트 가구를 만들어내던 뛰어난 목공이기도 했다.

 

그가 창안한 진단 테스트는 역설적으로 그의 죽음 이후 인기 있는 실험이 되어 일본, 러시아, 영국, 호주에 도입되었고 그 가운데 가장 열심인 국가는 미국이었다. 이 잉크 반점은 신경증이나 조현병 환자뿐만 아니라 소총수, 아프리카 선교사, 취업준비생, 아동, 교사, 비행 청소년 등을 평가하는 데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입 당시 열렬한 시험 숭배자 미국은 거의 전 분야에서 인성 숭배로 진화하는 단계에 있었고 사람들은 이 시험과 그 결과를 통해 방향을 모색했다. 이때는 광고 전성기의 초기였고 주관적인 반응과 투영으로 로르샤흐 시험에 완벽한 환경이었다. 또한, 시험 결과를 수량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인류학자를 비롯한 최신 과학자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르샤흐는 대중문화에 영감을 주었다. 영화와 응접실 게임에서부터 잡지와 만화의 보급에 이르기까지 잉크 반점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창의성의 상징이었다.

 

이 책은 사회적 관습에 대한 적용과 효과뿐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시행된 원래의 시험에 대한 수정 사항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사실은 각 장의 마지막 5장 정도 읽는 것만으로도 중요사항을 알기 충분하다. 작가인 저자는 헤르만 로르샤흐를 전 세계에 소개하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로르샤흐의 삶을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많은 시간을 들여 테스트 개발의 의도를 진정으로 이해하려 애썼다는 영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에는 로르샤흐가 사망하고 여러 해 지나 그의 아내가 사별한 남편에게 썼던 감동적인 헌사를 담은 부록이 실려 있다. 부록은 또한 어떻게 저자가 로르샤흐의 족적이 담긴 문서를 얻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의 만만치 않은 분량과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배경 설명에도 불구하고 꼼꼼한 고증과 설명의 소설 형식으로 잘 구성된 점을 활용한다면 심리학도, 상담사, 또는 심리학과 문화 인류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읽을거리임이 틀림없다. 일독을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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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불황을 이기는 커리어 전략 - 세계 1위 미래학자의 코로나 위기 대응책
제이슨 솅커 지음, 박성현 옮김 / 미디어숲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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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염으로 온 세상이 들썩인다. 도대체 바뀌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그것도 아주 빠르게 흔들고 있다. 감염자 수의 증감에 따른 정부의 방역 조치로 업소마다 생계에 곤란을 겪는 경우도 허다하게 발생한다. 이제는 단순한 질병 수준을 넘어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는 예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불안감이 지배적인 전망으로 떠오르면서 충분히 장기 불황이 예상되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무력한 개인으로서 다가오는 불경기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채를 줄이거나 직접적으로 빚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정 경제를 잘 유지해야 한다는 말은 진작부터 나돌던 가장 대표적인 자구책이었다. 그러나 교육과 주택문제를 앞에 둔 수많은 가정이 빚 한 푼 없이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 유수의 경제 및 금융 시장 예측 전문가로, 개인이 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두기 위한 전략적인 계획을 제시한다. 그는 일찍이 호황이던 시절의 미국에서 유가 상승을 예견했다가 적중한 덕분에 일약 유명인이 되었고 지금도 이 분야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가장 큰 목표를 개인이 불경기에 대비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두고 있음을 밝힌다. 전체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불황에 대비하는 구체적인 정보를 다루고 있으며, 장마다 마음에 새겨야 할 유용하고 결정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또한, 세계를 강타하고 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있는 실제 전염병의 위기를 추적하는 동시에 재정위기를 피하고 경제 불황과 싸움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한 다양한 전략적 방안에 대해 논하고 있다.


현재로서 코로나 전염병 위기는 쉽사리 사라지기 어려워 보이며 지속해서 삶의 형태를 바꿔놓을 것 같다. 역사적으로도 전염병은 발발과 종식을 거듭하며 인류 문명의 전환점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다. 수 개월간 지속했던 폐쇄조치 이후 일부 국가들은 간헐적으로나마 방역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 애쓰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이 전염병 유행의 여파에 대응할 수 있는 몇 가지 검증된 전략을 제시하려 애쓰고 있으며, 그 불황 방지 접근법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위기에도 창출되는 기회를 찾아라.

수익성이 보장되는 안전한 분야를 탐색하고 투자하라.

경력이 장기간 지속하도록 은퇴 이후를 고려하라.

 

경기가 활황일 때는 박봉의 월급쟁이가 기를 펴지 못하고 지냈으나 이제 불황이 닥치니 여기저기서 부러움의 소리가 들린다. 보수는 적어도 정년과 은퇴가 보장된 안정적인 직장의 위력을 실감하는 걸 보니 불황이 아니라고는 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경기가 아닌 나의 삶에도 언젠가는 다가올 불황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잘나갈 때 준비해두지 않다가 막상 어려울 때가 닥쳐 그제야 준비하려면 매우 난감할 수 있다. 원래 우산은 햇볕 좋은 날에 손봐둬야 하는 법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준비 방법은 요약하면 이렇다.

 

1. 준비하라 : 불황을 예측하고 경력의 지속성을 준비하라.

2. 견뎌라 : 나의 직종 또는 업종에서 끝까지 살아남아라.

3. 숨어라 : 불황에 재교육으로 무장하고 생존 업종으로 몸을 숨겨라.

4. 도망쳐라 : 유망한 곳으로 지리적 물리적으로 전업하라

5. 쌓아 올려라 : 기술력을 높이고 자신만의 사업을 구축하라

6. 투자하라 : 운영 기업, 자녀교육, 주식 등에 투자하라.


이 책은 구직자나 취업 준비생 등 일반 독자들에게도 유용하겠지만 특히 경영 일선의 사업주들을 위해 더없이 좋은 조언으로 가득하다. 간결하며 분명한 어조로 본질적인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특히 직업적인 성실함과 겸손함이 배어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래프와 그림으로 풍부한 예시를 들고 있으며 소단원 끝에 요약 설명을 달아 놓았다.

 

끝으로 직장과 직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가정과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무거운 짐 진 이 땅의 모든 가장들에게 건승을 빌면서, 발걸음 무거워도 이 책을 통해 마음만이라도 나누어 메고 함께 고민하며 살아갈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그래플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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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경제학 - 맨큐의 경제학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스티븐 A. 마글린 지음, 윤태경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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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은 그들의 열정이 진실의 반대편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 상호작용을 규제하는 장치로서 시장을 정당화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 인간이란 무한한 욕구를 지녔고 본래 이기적이며 합리적인 계산기일 뿐이며 유일한 중요 공동체는 민족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시장 관계가 결과적으로 공동체를 잠식한다고 말한다. 축사가 불타버려 재산 손실과 좌절감에 무력해진 어느 공동체의 가족이 있다고 하자. 예전 같으면 이웃 사람들이 뛰어들어 화재를 진압하고 음식을 나누며 위로를 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헛간을 잃은 농부는 이제 보험회사의 관심 고객이 되어 그들에게 의존한다. 보험이 공동체의 헛간을 키우는 것보다 자원을 조직 편성하는 효율적인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상호주의에서 시장 관계로 전환되면서 공동체의 구성 요소인 사회적-인적 유대관계는 점점 약화된다.

 

기본적으로 개인들은 서로 고립되어 있고 사람들의 소비 여력을 기준으로 정체성을 규정하듯, 경제학은 사회적 연결고리가 빈곤한 세상을 정당화하는 방법을 적용해왔다.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지난 4세기 동안 발전을 거듭해온 이 경제 이념은 이제 세계 각국에서 지배적인 신념이 되었다. 저자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이 이념이 조장해온 우리 삶의 불균형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은 과연 이단의 과학인가? ‘우울한 과학이라는 경제학의 별칭은 19세기 영국의 역사가이자 작가인 토마스 칼라일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다. 이 우울한 특성은 그 이후로도 지속하였고 학계와 비학계 모두에게 대중적인 용어가 되었다. 저자는 경제학이 '분열적'인 이유가 공동체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언뜻 보기에 이러한 저자의 발언은 좀 의외일 수 있다. 왜 경제학 같은 특정 지식의 영역이 공동체의 파괴에 이바지하는 것일까? 그가 말하는 '경제학의 관념론'은 사리사욕을 지향하는 개인과 시장 체계를 모두 육성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지금의 세상을 돌아보자. 자율규제 체계로 정의되는 시장이 자원을 할당하고 가격을 책정하며 소득분배를 결정하는 세상에서 더 이상의 공동체를 위한 공간은 없다. 사회적 유대와 상호 부조를 받는 대신 보험, 간호, 건강 등의 의료 서비스가 재화로 거래되면서 비인격적인 시장 관계는 상호주의라는 개인적 관계로 대체된다. 다시 말하자면 경제학이 공동체를 해체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공동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공동체의 상실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가? 일견 사람들은 공동체가 그들의 구성원들에게 구속력 있는 제약을 가하기 때문에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구성원의 수가 적정선으로 줄어들면 그만큼 자유롭고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등장할 정도로 이 행성의 인구는 늘어나고 재화는 부족해졌다.

 

공동체가 약해지면 개인의 자유는 증가할 것이다’. 이 명제를 명시적으로 돌아보는 대신, 저자는 이를 거부할 만한 모든 요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공동체는 일부 경제 모델에서 말하는 이타주의와 동격이 아니며, "생명에 형태와 풍미를 주는 관계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일종의 사회적 접착제"로 정의된다. 그것은 우리 정체성의 필수적인 요소로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핵심이다. 공동체는 경제와 정치뿐 아니라 사회성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래에 대한 공통의 비전과 공유된 기억을 제공함으로써 세대 간의 연속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공동체의 상실이 곧 우리 정체성의 해체임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지배적인 경제 이론이 공동체에 미치는 처참한 결과를 분석하기 위해 심리학, 인류학, 철학, 사회학, 역사학 등 다른 지식의 분야를 바탕으로 독자를 정교하고 매혹적인 분석으로 안내한다. 분석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며, 저자의 주제와 관련된 모든 주요 사안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비정통적, 달리 말해 비주류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주류 경제 이론에 반대되는 명확한 주장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자 자연스러운 관전 포인트이다.



 

저자가 공동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일부 비정통적 경제학자들의 진지한 노력을 실제로 분석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은 조금 의외다. 경제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비평을 훌륭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저자는 내부적 비판을 경시해 왔으며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말하는 경제적 불협화음의 한계로 인해 세상은 다시 주류 경제학 내부의 이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살짝 비틀어 보는 새로운 시각의 경제학을 표방하는 이 책의 논의 가운데 공산주의에 대한 분석을 다루지 않은 것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공산주의는 사람들을 이성적 개인이나 한 국가의 시민으로 정의하는 대신 주로 종교적, 사회적 측면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요 쟁점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추진하는 세계화의 가속과 함께 어떻게 공산주의가 함께 성장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져도 좋을 것 같다.

 

시장이 확대되면서 전통적 공동체가 훼손되는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가 공산주의의 이념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 시장의 확장으로 공산주의가 재등장한다면 이러한 확장이 오래된 지역사회를 파괴하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는 어떻게든 생성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러한 맹점에도 불구하고 주류 경제학과 공동체의 파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실증 실험은 유혹적이고 설득력이 있으며 전반적으로 잘 문서화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세상에 영원불멸한 이론이나 학문은 없다. 유기체처럼 경제도 성장하고 변화한다. 새로운 환경에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맨큐 경제학으로 대변되는 주류 경제에 익숙해진 시각 역시 절대 불변일 수 없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공동체 경제학이 아직은 우리나라 경제 여건에는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에 추이를 지켜보는 감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저자와 함께 주류 경제로부터 한발 물러나 냉철하게 관찰하는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를 표하며 경제를 알아야 하는 모든 독자 제위들께 일독을 권한다.

 


# 경제사상과이론 # 공동체경제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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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나는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 공허함에 무너지지 않고 나를 지키기 위한 마음 공부
박성만 지음 / 빌리버튼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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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이가 들면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줄 알죠? 천만에요. 더 고집스러워지고 괴팍해집니다. 자기 생각에 갇혀 살아요. 그게 다 마음공부를 게을리해서 그런 겁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전직 학교 이사장이었던 어느 어르신의 일갈이다. 사람은 저절로 지혜로워지지 않는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려 넋두리라도 할라치면 꼭 주위에서 이런 말이 들려온다. ‘자기가 아직도 20대인 줄 안다니까?’ 여전히 20대처럼 의욕을 가지고 일한다는 뜻이니 이거 왜 이래, 나 아직 안 죽었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고 해서 꼭 나쁘게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정확한 상황 파악은 아닌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나 때는 말이야를 반복하는 꼰대가 되어가나 싶다. 그래서 저자는 삶의 원리를 겸손이라고 말한다.

 

꼰대는 삶이 아닌, 자신의 말에 귀감을 삼으라고 한다. ‘나 때는 말이야는 삶의 무대에서 물러나는 것에 보상을 받으려는 것이다. ‘나 아직 살아있어라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다. 실은 서서히 땅으로 내려오고 있다. 사람이 땅으로 내려와 흙처럼 되어 겸손해지는 것이 삶의 원리다. (98)

 

이제 50 고개를 넘어가니 몸과 마음에 많은 변화가 찾아온다. 가장 많은 근육량을 자랑하던 허벅지가 얇아지면서 기초대사량이 떨어진다. 식사량은 거의 그대로인데 대사량이 적어지니 자연히 체중이 신경 쓰인다. 40대 중반에 진작 찾아온 노안으로 가까이 있는 글자를 읽으려면 안경을 썼다 벗기를 반복해야 하니 성가시기 이를 데 없다. 체력이 떨어지니 업무 집중력과 의욕도 예전만 못하다. 그러나 노안이 왔다고 해서 서글퍼할 일만은 아니다.

 

진리는 문자에 있지 않다는 선불교의 개념처럼, 노안은 문자의 틀에 갇힌 생각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뜰 때가 왔다는 신호이다. (250)

 

몸은 현재에 있으면서 마음은 과거에 머무르고 있다면 저자가 말하는 현재를 사는 세 가지 원리에 더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첫째, 좋았던 일을 기억하고 둘째,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셋째, 좋거나 나쁜 일에는 반드시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조언한다. 또한, 저자는 지금까지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집중해 왔다면, 생애 후반기에는 이성과 감정으로 나를 어떻게 들여다볼 것인가를 생각하자고 한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이 미천하다고 서러워하거나 공허함에 시달릴 필요가 없으며,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마음의 태도만 바꿔도 자신을 잘 지켜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풍부한 심리치료 임상경험의 결과와 학문적 바탕을 토대로 한 이 책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50 이후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생애 후반기를 건너가는 낯설고 새로운 시선을 설명하며(1), 공허함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기술을 공개하며(2), 진짜 자신을 만나러 가는 시간을 가져보고(3),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원칙을 소개하며(4), 몸과 마음과 병을 바라보는 관점(5)을 제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간에 명성을 크게 얻었던 드라마와 영화 다수를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봐야 할 작품들로 소개하며 각 작품의 감상평을 부록으로 실어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간결하고 차분한 저자의 문장력에 깔끔한 편집은 덤이다. 옆집 아짐과 아재에게 일독을 권해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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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정복한 식물들 - 인류의 역사를 이끈 50가지 식물 이야기
스티븐 해리스 지음, 장진영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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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는 언제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마약 밀매상이 되었을까? 암 치료에 자주 쓰이는 나무가 있다던데? 일상적으로 쓰이는 조미료이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거래되는 향신료는 무엇인가? 이 흥미로운 질문들은 모두 식물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선사시대부터 식물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 아침 침대맡 커피를 내리기 위해 볶는 커피콩에서부터 인간의 단백질원인 동물에게 먹이로 주는 풀, 자동차의 타이어에 사용되는 원료를 제공하는 고무나무까지, 우리는 거의 모든 면에서 식물에게 기대왔다. 이 광범위하고 매력적인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말해주듯, 식물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심오하고 종종 예측하기 어렵기까지 하다.



 

영국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의 교수이자 식물학자인 저자는 무역, 여행, 정치, 화학, 의학 등의 역사를 통해 서구의 부흥기에 큰 역할을 했던 50가지 식물을 연대기별로 살펴본다. 식물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식량원이다. 보리와 밀 같은 작물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애용해온 주식이었고, 오일 팜과 같은 종류는 서구 세계에 상대적으로 늦게 도입된, 말하자면 새내기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식물을 이용하는 방법 또한 극적으로 바뀌었다. 서구의 저녁 밥상에 흔히 오르는 비트는 한때 나병 치료에 효과적인 약재로 여겨졌고 현재는 지속 가능한 바이오 연료의 원천으로서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환각 성분을 지녀 마취제와 진정제로 쓰였던 맨드레이크와 유럽 염료업계의 대표주자였던 대청은 화학약품에 밀려 앞으로의 쓰임새가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식물은 또한 우리의 가장 보편적인 질병 중 일부에 대한 강력한 치료제로 쓰이기도 한다. 일례로 주목의 껍질에서 추출한 성분은 흔히 암을 치료하는 데 애용되기도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50가지 식물의 이해를 돕는 그림 자료가 충실히 제공되기는 하나, 아쉽게도 단색으로 확대된 것이다. 실제 크기와 색감을 가늠하는데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류에게 엄청난 이바지를 하고도 그 보답으로 약간의 물과 보살핌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가지와 뿌리를 지닌 식물 친구들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도와줄 도감이자 자기소개서이다. 처음부터 목차대로 내리읽기보다 관심 가는 식물부터 읽기 편하도록 구성되어 가독성을 높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식물에 대한 저자의 지식과 배경 설명이 해박한 데 대해 감탄만 하다가 책을 덮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의식 있는 석학답게 50가지 식물을 소개할 때마다 본문 끄트머리에 식물계에 생태 교란을 일으키며 약탈자로서 군림해 온 인간의 오만함을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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