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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정복한 식물들 - 인류의 역사를 이끈 50가지 식물 이야기
스티븐 해리스 지음, 장진영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8월
평점 :
영국 정부는 언제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마약 밀매상이 되었을까? 암 치료에 자주 쓰이는 나무가 있다던데? 일상적으로 쓰이는 조미료이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거래되는 향신료는 무엇인가? 이 흥미로운 질문들은 모두 식물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선사시대부터 식물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 아침 침대맡 커피를 내리기 위해 볶는 커피콩에서부터 인간의 단백질원인 동물에게 먹이로 주는 풀, 자동차의 타이어에 사용되는 원료를 제공하는 고무나무까지, 우리는 거의 모든 면에서 식물에게 기대왔다. 이 광범위하고 매력적인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말해주듯, 식물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심오하고 종종 예측하기 어렵기까지 하다.

영국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의 교수이자 식물학자인 저자는 무역, 여행, 정치, 화학, 의학 등의 역사를 통해 서구의 부흥기에 큰 역할을 했던 50가지 식물을 연대기별로 살펴본다. 식물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식량원이다. 보리와 밀 같은 작물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애용해온 주식이었고, 오일 팜과 같은 종류는 서구 세계에 상대적으로 늦게 도입된, 말하자면 새내기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식물을 이용하는 방법 또한 극적으로 바뀌었다. 서구의 저녁 밥상에 흔히 오르는 비트는 한때 나병 치료에 효과적인 약재로 여겨졌고 현재는 지속 가능한 바이오 연료의 원천으로서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환각 성분을 지녀 마취제와 진정제로 쓰였던 맨드레이크와 유럽 염료업계의 대표주자였던 대청은 화학약품에 밀려 앞으로의 쓰임새가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식물은 또한 우리의 가장 보편적인 질병 중 일부에 대한 강력한 치료제로 쓰이기도 한다. 일례로 주목의 껍질에서 추출한 성분은 흔히 암을 치료하는 데 애용되기도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50가지 식물의 이해를 돕는 그림 자료가 충실히 제공되기는 하나, 아쉽게도 단색으로 확대된 것이다. 실제 크기와 색감을 가늠하는데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류에게 엄청난 이바지를 하고도 그 보답으로 약간의 물과 보살핌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가지와 뿌리를 지닌 식물 친구들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도와줄 도감이자 자기소개서이다. 처음부터 목차대로 내리읽기보다 관심 가는 식물부터 읽기 편하도록 구성되어 가독성을 높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식물에 대한 저자의 지식과 배경 설명이 해박한 데 대해 감탄만 하다가 책을 덮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의식 있는 석학답게 50가지 식물을 소개할 때마다 본문 끄트머리에 식물계에 생태 교란을 일으키며 약탈자로서 군림해 온 인간의 오만함을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