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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ㅣ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평점 :
1492년 인도로 가는 신항로를 찾아 모험을 떠나 지금의 쿠바 근처인 바하마 제도 와틀링 섬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인간과 자연이 마치 신의 품 안에서 사는 것 같은 그야말로 평화로운 지상낙원을 발견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 실제로 존재했던 이 유토피아는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에게 황금과 노예를 약속했던 콜럼버스에 의해 얼마 가지 않아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와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는 헨리 8세 시절 추밀원 의원과 대법관직을 역임했던 한 인본주의 지식인,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콜럼버스의 신세계가 실제로 존재했던 지상낙원이었다면 1516년 출판된 모어의 <유토피아>는 서구가 오랫동안 꿈꾸어온 가상의 이상세계였다. 그리스어의 ‘없다’(U)와 ‘장소’(topia)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유토피아’는 결국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혹은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을 말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토피아의 이런 비현실성이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현실 세계를 비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공화국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고 군주제 하의 영국 현실을 비판한 유토피아에는 토마스 모어의 현실비판과 개혁 정신을 담고 있다.

지금의 우리 현실에 비춰볼 때 <유토피아>에서 가장 와 닿는 부분은 바로 경제생활에 대한 모어의 통찰이다. 1부에서 모어는 ‘유토피아’ 섬에 5년간 살았다는 라파엘 히틀로다에오의 입을 통해 당시 영국의 유명한 농업 말살 정책인 ‘인클로저’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큰 이윤이 생기는 양모 생산을 늘리려고 많은 귀족과 지주들은 소작인들을 모두 쫓아내고 농토를 울타리를 친 목축지로 바꾸었다. 농부들은 선대부터 살던 정든 고향을 떠나 객지로 떠돌게 되었고, 농가는 허물어지고, 마을공동체는 사라졌다. 농사를 포기하자 당연히 곡물값은 폭등하고, 농사밖에 모르다 도시로 대거 유입된 농민들은 생계 수단이 없어 굶주리다 못해 처음엔 도둑이 되고 다음에는 시체가 되는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약자에게 가혹하기 마련인 법 집행으로 사소한 절도죄에도 농민들은 목숨을 잃었다. 결국, 유순한 양(羊)이 돈 때문에 사람까지 먹어 치우게 된 것이다.
반면 독과점 형태의 양모 산업은 나날이 번창하여 부자들은 노동하지 않고도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고, 많은 일손이 필요했던 농촌에는 결국 양치기 한 사람만 남게 됨으로써 실업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라파엘이 비판했던 500년 전 영국의 상황은 시간과 장소만 바뀌었을 뿐 우리의 농촌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비옥한 농지가 개발을 핑계로 상업 용지로 바뀌고, 시장개방 압박과 채무에 시달린 농민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빈부격차를 가속하는 기업 세계화에 반대하며 농업은 상품이 아니라고 농민들은 고통스럽게 절규한다. 한 국가가 생존에 필수적인 농업을 포기하고 교역 위주의 상공업으로 돌아설 때 과연 과실은 누가 챙기고 고통은 누구의 몫인지 모어는 영국 현실을 빗대어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유토피아 시민은 누구든 농업에 종사하며 부의 축적도, 화폐도 없다. 따라서 조물주 위의 건물주 같은 불로소득도 없고 빈부격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유토피아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모어가 자급자족 경제를 꼽고 있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자급자족의 가장 중요한 사회경제적 기반은 농업이다. 유토피아 인구의 90%는 하루 6시간씩 육체노동을 하는데, 유토피아 시민이면 누구든지 하는 일이 바로 농업이고, 직조나 목공 같은 생계에 필수적인 수공업적 기술도 익힌다. 이들은 토지를 재산으로 여기지 않고 다만 그들이 경작해야 할 땅이라고 생각한다. 유토피아에는 유럽과 달리 두 가지 직업이 없는데, 하나는 변호사이고, 다른 하나는 상인이다. 유토피아의 법률은 실로 간단하고 쉬워서 변호사와 같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 없고, 기본적으로 사유재산과 부의 축적, 화폐가 없으므로 상인도 있을 수가 없다. 유토피아에도 시장은 있지만, 필수품을 교환하거나 가져오는 곳일 뿐 화폐경제가 통용되는 곳이 아니다.

비록 노예는 존재하지만, 이들은 경제적 이유보다는 간통이나 다른 중죄를 지어 노예가 되며, 일정한 절차를 거치면 다시 시민이 될 수 있다. 어떤 정치적, 경제적 특권계급도 존재하지 않고, 연장자가 존중받는 대가족 생활을 하면서, 모두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믿고, 현재의 삶이 사후의 상벌로 이어진다는 겸손함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결핍의 공포가 없기에 축적의 욕망이 없으며, 금, 은은 희소가치가 없기에 소유하거나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도 없다.
금과 은은 생존에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주로 요강이나 노예들의 쇠사슬로 쓰일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런 헛된 욕망을 갖지 않도록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자연은 흙, 공기, 물처럼 가장 귀중한 천혜의 물질은 일부러 눈앞에 드러내 놓았으면서도,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추어 두었다”고 믿는다. 도살과 사냥과 전쟁을 싫어하고, 교육과 독서를 중시하며 겸허하게 살아간다.
물론 모어가 그린 이상사회에도 약점은 있다. 유토피아 공화국은 필요에 따라 이웃 나라를 식민지로 삼기도 하고, 전쟁하게 되면 용병을 동원하는 제국주의적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는 토머스 모어의 도덕적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났다 하더라도 당시 일개 유럽인으로서 유럽 중심적 인식론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토머스 모어가 더욱 나은 세상을 꿈꾼 지 약 500년이 지났다. 그동안 서구 제국주의는 세계 곳곳에 실제로 존재했던 지상낙원을 모두 허물어뜨리고 가상의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근대 물질문명을 주도해왔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유토피아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30여 년 전 정치 권력의 독점을 온몸으로 막아 내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었다고 자부하면서도, 재벌 위주의 경제적 부의 독점현상에 대해서는 못 가진 자가 가진 자를 걱정해주며 그저 개인의 능력에 따른 결과일 뿐이라고 관대히 받아들여 왔다. 군사독재와 같은 정치 권력의 억압과 횡포에는 저항하면서도 경제적 불평등의 현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저 돈 많은 것이 진리요 정의라며 부자들을 따라잡으려고 애써왔다. 정치 권력은 남용되지 않아야 민주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경제적 축적은 제한을 두지 말고 분배보다 성장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민주적이어야 한다면서 마음껏 씹고 뜯고 흉보면서 기업의 독과점에는 뒷짐을 지고 다음 차례는 내가 될지도 모르는데 우선 내 피해만 없으면 눈을 돌린다.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어도 내 배부르고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며 물욕의 화신을 국가 지도자로 뽑아놓고 인제 와서 술 한잔에 국가 경제가 엉망이라며 대안없이 욕하는 우리의 민낯을 본다.

500년 전 현실 문제 타파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어느 지식인의 상상력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부(富)의 유토피아를 약속한다길래 쌍수를 들어 그토록 환영했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부의 양극화를 키우고 사회적 약자들의 운명을 고착시킬 뿐 결코 경제적 민주화를 가져다주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공생보다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보완하고 경제 민주화를 이룰 대안을 꿈꾸는 데 이 작품은 매우 유익한 길잡이임이 분명하다.
#고전문학 #유토피아 #사회개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