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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우주를 알아야 할 시간
이광식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오십이지천명(五十而地天命) 이란 『논어』의 한 구절로, 천명이란 인생의 의미 외에도 넓게는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우주의 섭리나 원리 또는 보편적인 가치임을 예로 들면서, 저자는 사람이 백 세 인생에서 절반쯤 살았다면 이제는 천명을 알 때도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도 필자는 우리가 지구라는 별에 발을 딛고 매일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지만, 광대한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바람 속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이니 인류가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 해도 사실은 그리 겸손하지 못한 표현이라 생각하곤 했다.
우리는 별에서 몸을 받아 태어난 별의 자녀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메이드 인 스타’다. 만약 별의 죽음이 없었다면, 죽으면서 아낌없이 제 몸을 우주로 내놓지 않았다면 여러분이나 나, 그 어떤 인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나와 별, 나와 우주의 관계다. (85쪽)

2100년 전 고대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세계는 항상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선가 생성되어 이어진 것이고, 계속 변하고 있으며 이 변화는 점점 복잡해지는 양상임을 밝혀냈다. 이렇듯 우리는 철들어 세상을 배우고 우주의 오묘한 삼라만상이 있음을 깨달으면서 ‘나’라는 존재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다. 즉,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주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큰 질문이다. 만약 이 시대보다 앞서 태어났고 지금 우리가 아는 만큼 우주의 신비를 깨우치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라 상상해보면, 오늘 이 순간 큰 질문에 답을 제시하는 이 책을 접하며 우리의 존재 의식에 대한 외연을 넓힐 수 있음을 무척 다행으로 생각한다.
“우주가 이해 가능하고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은 경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조화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 아인슈타인

구약성경의 창세기 도입부에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이 책에서는 하나님의 그 말씀이 바로 수소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수소는 어디서 온 걸까? 아름다운 불꽃놀이와 대폭발로 시작된 우주의 잿더미 위에서 우주가 창조되었다며 르메트르 신부의 빅뱅 이론에 사실상 공감한 아인슈타인의 표현처럼, 수소는 가장 원시적 형태의 가스였으며 실제 행성 핵의 연료이기도 하다. 결국, 우주의 생성과 소멸은 이 우주 연료의 거듭되는 생성-소멸이며 만물의 근원인 셈이다.

우주는 이 시간에도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 더 깊은 우주를 들여다보고 우주의 나이를 가르쳐 준 허블의 업적, 별이 빛나는 이유와 사람처럼 생로병사를 겪는다는 유기체설 등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굉장히 알차고 다양한 내용을 배울 수 있다. 바다에서 온 인류의 신체 구성 역시 우주의 별들이 사라지며 뿌려놓은 원소들의 재결합이라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결국, 우리가 거의 매 순간 의식조차 하지 않고 살지만 모든 사람은 저마다 영혼을 지닌 하나의 소우주라는 지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곧 다른 우주와의 만남이라니 이 얼마나 황홀하고 가슴 뛰는 얘기인가.
우주에서 생명이란 언젠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우울한 사실은 변함없겠지만, 그래도 하나의 위안은 있다. 자연이 인간에게 베푼 자비라고나 할까, 우주의 종말이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기 때문에 고작 찰나를 사는 인간의 운명과 연결 짓는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라는 점이다. (274쪽)

창세기의 기록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유일하게 교황으로부터 종교와 과학에 대한 개별적인 인정을 받아 낸 르메트르 신부의 존재감을 새삼 돌아보면서, 원래도 범신론적 입장이었지만 종교는 필요 때문에 인류가 만들어낸 창작품이며 도덕률 또는 생활 철학의 도구여야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좋은 대의명분이라도 결국은 세태에 찌들고 타락한 일부 종교로 인해 인류가 서로를 증오하고 해치는 모양새는 마냥 꼴사납고 도무지 무의미해 보인다.
별이 남긴 물질에서 몸을 일으킨 인간이, 내가, 스스로를 자각하는 존재로서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물질의 대향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기적이요 우주의 대서사시가 아니고 무엇이랴! (276쪽)

풍부한 사진 자료와 보너스 상식을 곁들인 컬러판 고급 양장인쇄와 약방의 감초처럼 유명 과학자들의 금쪽같은 격언을 곁들여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각 우주의 탄생, 성장, 구성 요소, 크기, 끝, 블랙홀, 태양계, 지구와 달을 각각 다루고 있다. 천문학 전문 출판인으로서 이미 교양 수준을 넘어선 전작들을 통해 세간에 명성을 얻은 저자는 이 책을 재치 있는 표현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돋우는 내용으로 채워 매우 훌륭한 천문학 입문서 또는 모든 연령층에 적합한 교양서로 손색이 없다. 우주와 나의 관계가 무엇인가를 깨우치도록 도와주는 이 책을 통해 복잡다단한 세상을 좀 더 멀리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여유와 통찰을 얻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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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