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규칙은 관계 중심인가? - 통제의 힘에서 자율의 힘으로 관계를 해치는 규칙에서 관계를 살리는 규칙으로
원은정.신동엽.박성근 지음 / 착한책가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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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사제 간의 관계개선학생들을 바라보는 교사의 시선부터 달라져야.

학교로부터의 체벌과 학생 간의 거친 몸싸움이 일상다반사고부모님에게 체벌 받은 사실을 들키면 더 얻어맞던 시절을 지나 다시 학교로 돌아왔더니 현장에서는 여전히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달라진 것이라고는 엉덩이에 매를 맞는 대신 회초리를 휘두르게 된 입장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러다 10년쯤 전 어느 날 나 자신이 학부모가 되고 나서 내 아이들이 학교에서 매를 맞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 이후로는 사용하던 회초리를 모두 꺾어버렸다통제의 대상으로 보이던 학생들에게 내 자식의 모습이 겹치면서학생들이 학교에 와 있는 동안이라도 잠시 아버지나 큰 형 노릇을 해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였다매를 들었을 때 보다 생활지도가 수월하지는 않았지만매를 내려놓으니 아이들이 보였다주변에서 사람 달라졌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실은 달라진게 아니라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


 

 

사례 2. 학교규칙은 미래 인재를 위한 디딤돌.

일선 경찰처럼 학교규칙을 사법(?) 적용하는 부서인 학생부에서 학교규칙 개정에 앞서 교사들에게 규칙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알려왔다이에 참여하는 교사들의 숫자가 극소수인 점에 한 번 놀랐고, 80년대 군사독재 시절 같은 분위기의 규정에 두 번 놀랐다폭력 써클 조직 및 운영패싸움백지동맹단체휴업조직적인 부정행위 등등 검정 교복과 삭발 머리로 기억되는 추억의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용어들로 학생들을 온갖 규제 속에 묶어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한편 교복 착용을 의무화한 규정과는 달리 학생들은 옷이 작아졌다는 주된 이유로 체육복이나 생활복 또는 사복까지 섞어 입는 튜닝’ 복장으로 생활하는데굳이 이러한 실정을 뒤로하고 장기간의 여론조사와 수렴을 거쳐 복장 규정을 개정하였다사실상 학생들은 규정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복장 자율화를 앞서 실천하고 있는데 규정은 현실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말로는 미래 민주사회를 이끌어 갈 인재를 키운다면서 단지 골치 아픈 민원이나 사고 무마 선에 머물 뿐미래 지향적이지 못하고 실제 도움이 되지도 않는 후진적 규정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례 3. 시대에 뒤처지는 규칙은 이제 그만.

학교도 사람 사는 사회의 축소판인지라 규칙에 저촉될 만한 온갖 잡다한 일이 벌어진다그러나 학생과 교사의 인권이나 교권(엄밀히 말하자면 수업을 보장받는 학습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명확한 책임과 의무의 한계 없이 그 결과는 흐지부지 끝나기 일쑤이고오히려 학교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염려하여 알아서 각자도생해야 하는 예도 있었다그나마 최근 들어서야 관리자들의 입에 인권 교권이라는 단어가 오르내리는 형편이고특히 정해진 법규를 따르는 국공립이 아닌 사립학교는 별도의 사립학교법 영향 아래 놓여있고 때에 따라 그 규정이 매우 자의적으로 이행되므로 학교가 학생과 교사를 보호해주리라는 기대를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학교생활의 일부 단면들을 모아 위와 같은 사례를 들어보았다저자들이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의 핵심은 관계를 살리는 규칙을 만들 때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이 어떤 관계를 염두에 두고 지향할 것인가에 있다주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단지 통제와 규제의 대상이었던 학생들이 자신을 스스로 주인이라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교사 역시 실제 학교생활과는 동떨어져 지나치게 학술적인 선발기준을 통과하여 교직 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생기는 현실과의 괴리감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측에서 일방적으로 설정한 규칙을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적용받는 상황에서 벗어나하루 대부분을 머물러야 하는 힘든 학교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 성장할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학생다움을 구실로 정작 학생다움이 무엇인지 가려왔던 학교가이제는 학교다움을 회복하고 관계를 해치는 규칙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규칙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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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되기 싫은 개 - 한 소년과 특별한 개 이야기
팔리 모왓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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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개를 키우지는 않지만, 누구나 개를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를 키울 여건은 못되지만, 개를 좋아하고 키우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책을 읽다가 방바닥을 몇 번은 굴렀을 것 같다. 이 책을 관통하는 코드는 가족 같은 개와 야생동물을 포함한 대자연을 함께 했던 저자의 유쾌한 어린 시절 추억이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28년부터 대략 10년 정도 저자의 유년기이고 실제 출간된 해는 1957년이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 한국 동란을 겪으며 어렵게 사는 동안 저 건너 지구 반대편의 캐나다에서 저자는 대자연에서 호연지기를 키우며 살았으리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살짝 부럽기도 하였다.


 

현지에서 자연주의 작가로 유명한 저자의 놀라운 어휘력과 자조적 유머는, 문법에 엄격하고 완전한 언어사용을 추구하던 도서관 사서 출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자신을 비하하지 않는 동시에 유쾌한 어조의 농담으로 살짝 비틀어 우스꽝스럽게 말하는 점이 돋보인다.

 

저자의 어린 시절 추억은 미국 대공황 시기에 먼지 구덩이 시골로 가족이 이주하면서 시작된다. 시골 생활을 모르던 엄마에게 이 여행은 하나의 도전이었지만 저자에게는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인 새로운 종류의 모험에 무수한 기회를 가져다줄 모험의 땅이었다.

 

아버지 앵거스는 직업이 사서인 반면 타고난 뱃사람으로 평야지대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엽사가 되기로 한다. 이는 당연히 새 사냥에 필요한 사냥개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아버지가 몸값 비싼 사냥개를 찾던 와중에 어머니는 새끼 오리를 두당 10센트에 팔러 온 시골 꼬마로부터 4센트에 강아지를 사들임으로써 지혜롭게 일을 해결한다. 비싸고 근사한 사냥개 살 돈도 굳었고 꼬마 저자가 좋아하는 사냥개도 얻었으니 일거양득인 셈.

 

명견을 원하던 아버지에게는 조금 유감스럽지만 머트라고 불리게 된 이 리트리버 바둑이가 바로 국면을 전환할 엄청난 존재였다. 사냥에 바로 투입된 건 아니지만 사냥감을 잘 물어와 내기에 이길 정도로 유명인사가 된다. 동네 총포상에 전시된 뇌조 박제를 순식간에 물어와 사냥개로서의 물어오기 실력을 입증한 것이다.


 

또한, 머트는 훌륭한 사냥개일 뿐만 아니라 자기 주도학습으로 스스로를 훈련하여 고양이들의 전매특허인 울타리 위 걷기를 시전함으로써 동네 고양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악취를 풍기는 골칫거리 스컹크를 쫓아내기도 하고 높은 나무와 사다리에 오르는 재주를 보여주기도 한다. 꼬마 저자에게 머트는 풍부한 상상력과 초자연적인 언어 능력을 지닌 완벽한 동료였다.

 

인물에 대한 세부 묘사는 거의 없지만 저자의 부모님에 대한 언급 역시 눈에 띈다. 하나뿐인 아들을 애지중지 키울 법도 하건만, 아무리 너그러운 부모라도 수리부엉이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야생동물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함께 생활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임에도 동물을 해부하고 방부제를 쓰도록 허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로써 이들 세 가족이 매우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으며 아들에게 굉장한 애정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순수하고 유쾌한 유년 시절 저자의 추억 이야기라 독자에게는 무엇 하나 걸리는 것 없이 술술 읽히는 이 책은 쉬지 않고 한 번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만큼 가독성과 흥미, 몰입도 면에서 훌륭하다. 독자가 만일 동물 애호가라면, 특히나 개를 좋아하는 경우라면 틀림없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읽게 되시리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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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여름 1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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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는 온통 카우보이와 카우걸뿐이고, 주일이면 동네 교회에 빠짐없이 모인 주민들이 하늘나라에 이르는 설교를 듣는 마일스 시 같은 곳에서 십 대 소녀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다. 역사 선생님이나 편의점 직원이 알지 못하게 누군가와 드러내놓고 키스하기란 더 어렵고, 하나님조차도 다른 모습의 소녀를 허락하지 않는다.

 

1989년 몬테나 주의 포트 마일스 시에서 가장 친한 친구 아이린과 키스를 나눈 어느 여름날 밤, 열 두 살의 주인공 캐머런의 부모님이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는 수없이 많은 감정적 혼란의 시초가 된 친구와의 키스를 계속 원했고, 부모님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첫 반응은 의외의 안도감이었다.

 

부모님을 잃은 슬픈 감정이 넘쳐 오르는 대신, 친구 아이린과 저지른 부끄러운 비밀이 세상에 드러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안도감과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죄책감은 점점 커져 자신의 감정을 갉아먹게 되고, 부모님의 사망과 이 비밀은 헤어나올 수 없는 상심과 맞물리게 된다.

 

이후 부모님의 사고 여파로 대단히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루스 이모와 구시대의 유물 같은 할머니가 캠을 돌봐주기 위해 함께 살게 된다. 이 시점부터 캠은 자신이 알고 있던 인생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리라 짐작한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캠은 자신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발견한다. 들키지 않고 물건을 슬쩍하는 재주, 훔친 술을 마시면서 알아낸 자신의 주량, 마리화나는 언제나 옳다는 것 등.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매료되면 아주 정신없이 푹 빠진다는 점이다.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이던 콜리 타일러 같은 이성애자 소녀에게 빠져들면서 캠은 감정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마일스 시에서의 생활은 타인과 섞여들어 아무런 삶의 파도를 일으키지 않음을 의미하며, 특히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파도가 곧 닥쳐오고 말았다.

 

캠은 가족의 감시망을 피해 은밀한 좌충우돌의 삶을 살며 다른 여자애들과 엮이게 된다. 이미 멋진 남자친구가 있으며 픽업 트럭을 몰고 다니는 매력적인 카우걸 콜리 테일러가 마을로 이사를 온 것이다. 콜리와 절친이 된 캠은 자신도 모르게 친구 이상의 것을 원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캠의 열망은 곧 밖으로 노출되고 만다.

 

콜리의 남자친구가 그해 여름 멀리 떠나가 있는 동안 이들은 친구 이상의 각별한 사이가 된다. 이성과 동성 친구의 사이에서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 괴로워하던 콜리는 자신의 가족과 교회에 이들 사이의 관계를 알리고 만다. 극도로 종교적인 루스 이모는 특단의 조치로 동성애 호감 증후군 환자인 조카 캐머론을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기숙학교에 보내기로 한다. (이후의 줄거리와 리뷰는 2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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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VS중 무역대전쟁 - 세계 패권 쟁탈을 향한
주윈펑.어우이페이 지음, 차혜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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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학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은 중국의 중화사상 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의 첨예한 대립으로 읽힌다. 지정학적으로는 중국에 가깝지만, 심정적으로는 미국에 더 많은 러브 콜을 보내온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읽힐 것인가. 이 책에 제시되는 수많은 수치와 자료를 일일이 짚고 넘어가기는 쉽지 않지만, 아무리 큰 규모의 국가 간 대결이라도 결국 이를 움직이는 것은 지도부의 마음 속에 깔린 생각의 차이일 것이다. 부실한 신흥 강자와 노회한 전 지구적 패권 국가 그리고 그 틈새에 우리나라가 있는 미중 무역마찰의 배경과 전망을 살펴보자.


 

1. 트럼프의 외교정책

트럼프가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의 시초는 그가 30여 년 전부터 일관되게 주장해 온 미국 우선주의로, 장사꾼 출신답게 자국의 적자를 타개하고 세금을 줄여 경제를 성장시킴으로써 타국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게 과연 세계정세의 흐름을 주도하는 빅 브라더 국가의 지도자가 제정신으로 할 소리인가 싶고, 이런 인간을 뽑아 준 미국인들의 정신적 타락과 철학의 빈곤이 놀라울 따름이다.

 

비행기로 날아가는 주 Flyover States’처럼 경제적으로 낙후된 내륙의 주 대부분이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신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 이후 분배 불균형 상황은 대공황 직전까지 갔고, 더는 참지 못하게 된 미국 중산층은 반세계화, 반이민, 수입반대를 외치던 트럼프를 선택했다. 하긴 우리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저 잘 살게 해주겠다는 공약 하나만 믿고 희대의 사기꾼을 대통령으로 뽑은 적 있으니 누굴 탓하랴 싶다.

 

2018616일 트럼프와 김정은의 북미정상회담 이후 시작된 무역전쟁은 현재의 글로벌 무역체계가 중국에 이익을 안겨주었지만 21세기 들어 미국에는 손해를 끼쳤다는 사실에 기반하며, 이 모든 상황을 불공정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계속하는 상대에게는 각종 가능한 법률을 채택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하였다. 무역 편중 현상을 두고 중국한테 공정무역을 위해 이미 충분한 개선의 기회를 주었으나 따르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이를 수정할 전쟁의 수단으로 관세폭탄을 투하하기로 하였다.

 

2. 전쟁의 근원

이번 무역전쟁은 과거 아테네의 국력 신장으로 두려움을 느낀 스파르타가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으로 전쟁을 일으킨 양상과 거의 흡사하다. 위협의 싹이 트기 전에 먼저 제거한다는 명분은 그럴싸하게 들리겠지만, 국제관계에서 볼 때 이는 신흥 약소국을 대하는 소심하고 겁많은 강대국 특유의 오만의 극치인 동시에 내부의 적을 감당할 수 없는 무능한 정권이 택해 온 외부의 적 유인책인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다양한 경로로 자국의 정보를 캐내 간다고 믿으며, 장기적으로 가장 큰 위협적인 존재가 되리라고 본다. 신흥국가 중국의 굴기를 두려워하여 미국의 당파를 초월한 방위비 증액을 공동으로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핵심기술과 지적 재산권을 획득하고 신흥 하이테크 산업과 국방산업 신기술을 장악하는 경제 침략을 저지르고 있다고 판단, 미국은 중국을 경제적 및 지정학적 최대 경쟁자로 인식하며 할 불공정 경쟁을 유발하기에 반드시 제거할 악성 종양으로 보는 것이다.

 

기독교적 사고방식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천사는 악마가 존재함으로써 그 지위와 역할에 정당성을 획득한다. 미국의 국방산업이 천사의 구실을 하려면 언제나 무찌를 악마가 필요하며, 악마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려 든다. 이로써 빈부격차, 지역 간 소득 격차, 인종 문제, 이민자 문제, 총기 남용, 약물 남용 등 산적한 내부 갈등에 관한 관심을 외부의 적에게 돌리게 되면 다른 모든 문제는 자연스레 묻혀간다. 때마침 눈에 띈 악마적 존재가 바로 중국 되시겠다. 가장 두려운 점은 성장세에 있는 중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이긴 하지만 언제가는 미국의 경제적 지정학적 맞수가 되리라는 예상이다.

 

3. 패권 전쟁의 역사

대국의 부상과 쇠락의 과정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수반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p.107)

대부분의 강대국은 중상주의로 대변되는 산업정책과 이를 실행하는데 필요한 무력을 바탕으로 일어섰다. 일단 강대국의 기반을 갖추고 나면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하려 들었고 이를 고수하기 위해 무력 충돌도 감수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서구 역사에서 일어난 전쟁은 통상 자국의 상권과 영향력 확장을 위한 무력 충돌이었으며,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사상자의 참상이 더욱 참혹해졌다. 미국과 중국은 평화롭게 공존하고 구동존이 하며 충돌을 화해로 풀어가고 협력과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이는 허울 좋은 구실일 뿐 이들 각자가 원하는 것은 결국 자국의 이익이다.


 

4. 미국과 일본의 무역마찰

한국 동란이라는 호재와 전쟁을 치르는 듯한 국가 주도형 경제성장 계획으로 떼부자가 된 일본의 성장 과정을 상술하였다. 사상 초유의 경제성장으로 대미 무역 흑자국 지위를 누리던 일본은 미국의 두 번째 핵폭탄, 즉 플라자 합의에 따른 관세 폭탄으로 1990년대 들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장기침체를 겪게 된다. 무역에 관한 한 미국은 혹독한 방법으로 일본의 무릎을 꿇게 했지만, 일본 기업들은 혁신, 업그레이드, 우회 진출 전략으로 곤경을 타파하였다.


 

5. 미중 무역전쟁이 중국과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미중간 무역마찰로 인해 예상되는 결과로는 첫째, 미국보다는 중국이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받으며 둘째 미국 수출에 끼치는 영향이 더 크고 셋째, 그렇다면 중국은 860만개 미국은 125만개 일자리가 감소하며 넷째, 2025년까지로 예상할 때 미국보다는 중국이 장기적인 영향을 받는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으로는 한국 GDP 0.18%에 해당하는 약 27.1억 달러 하락되고 컴퓨터, 전자, 광학제품에 대한 영향이 가장 크다. 일본의 경우처럼 업그레이드와 우회진출 및 주문 이전 효과가 예상된다.

 

지난 40년간 경제성장에 주력해 온 중국은 현재로서는 확실히 미국의 가장 큰 상대로 부상하였으나 본질적으로 여전히 개발도상국이다. 일부 최첨단 기술에서는 선두집단에 속하지만 GNP는 세계 평균 정도이며 미국의 1/6 수준에 불과하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신흥 소국 아테네로 비유당하지만 정작 미국의 적은 항상 마음 깊은 곳에 있어왔다. 저자는 승자는 없고 패자뿐인 무역전쟁을 해결할 평화의 사자로 문재인 대통령을 예로 들고 있다. 국내에서는 공약도 못 지키고 우유부단한 존재로 매도당하지만, 외부로부터는 사뭇 다른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 색다르다. 저자는 대만에서 평화의 사자가 나타나기를 염원하며 글을 맺는다.

 

흔한 말로 미국이 우리의 혈맹이며 든든한 우방이라고 한다. 일본의 거품경제가 국제적 지위의 급격한 부상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작품이라는 음모이론마저 제기되는 가운데, 과거 그들이 일본을 상대로 톡톡히 효과를 보았던 관세폭탄 전법을 이번에는 중국을 상대로 대만을 무기 삼아 구사하고 있다. 실제보다 평가절상된 사실상의 개발도상국 중국의 중화사상 명분 찾기와 팍스 아메리카나의 재현을 노리면서 이익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손을 뻗는 자국 우선주의 미국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말로는 등거리 실리 외교를 외치지만 사실은 무역마찰로 어떤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 눈치 보느라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했던 외교정책을 펴온 우리 정부는 과연 앞으로 어떤 실익을 취할 것인가 관심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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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중산층 사회 -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
조귀동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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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대가 처한 경제적 상황과 정치 사회의식 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분석 보고서에 저자가 불평등 세습에 관해 2017년에 작성한 글을 엮고, 기존 연구와 통계청, 고용노동부의 통계 자료 및 기관에서 만든 원시 자료를 가공 분석한 것이다. 다양한 형태와 상세한 내용의 그래프와 도표를 수록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모두 8개의 장으로 구성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보았다.


 

1. 20대가 진입하는 노동시장의 특성

부모 세대의 소득 불평등이 자녀 세대로 이어지는 핵심경로는 자녀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 당시 임금격차 (처음 취업했을 때의 임금소득의 차이)에 있다. 100인 이상 중소기업 취업자 초봉을 100으로 할 때 대졸 취업자 초봉은 159, 25년 장기 근속할 경우 194 340으로 벌어진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은 번듯한 일자리, 즉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정규직, 공무원을 희망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일자리의 양은 적지 않으나 번듯하고 괜찮은 일자리 창출이 적다는 것이 진짜 문제이며 이것이 기를 쓰고 명문대 진학 하려는 이유이다. 취업 시장은 서열 높은 대학 졸업자들이 상대적으로 대규모 사업체, 상용직 및 정규직을 더 많이 차지하며 결국 대학 서열에 따른 임금격차는 곧 일자리의 격차를 의미한다. 단군 이래 가장 공부를 많이 하였다는 20대는 1차 노동시장 진입 인원의 약 70%가 명문대 및 상위권 대학 입학자들이며, 나머지 30%를 놓고 비명문대 출신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이는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 같은 최악의 수준이다.

 

2. 2010년 이후 20대가 노동시장 진입 당시 겪는 경험의 변화

가장 큰 특징은 번듯한,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서울 4년제 대졸자의 취업시장 여건이 크게 악화되어 취업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소위 문과 위주의 경영, 회계, 사무 관련 직종이 가장 심하고 대신 헬스케어, 사회복지, 교육 등 고만고만한 서비스업의 인력 수요가 빈자리를 채웠다. 기업의 고부가가치-고비용 인력 수요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번듯한 일자리에 대한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추상적이고 루틴화하기 힘든 업무를 수행하며 IT 기술 발전의 영향을 덜 받는 관리직, 전문직, 기술직고, 기계로 대체하기 어려운 경비직, 요식업, 청소업, 대인 돌봄서비스 등의 저숙련 서비스업 두 직종에서 지난 30년간 가장 빠르게 취업자 수가 증가하였다.


 

3. 교육은 세습 중산층 지위를 유지하는 불평등 제조기.

20대 인구 취업시장의 중심부는 서울 소재 명문대가, 반주변부는 서울 수도권 4년제 및 지방 거점 국립대가, 나머지 주변부는 지방대생과 고졸자들이 차지한다. 지방 고용률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괜찮은 일자리 부족이며, 양질의 일자리가 있고 제조업이 활성화되면 실업률이나 고용률 등 양적 지표가 개선될 것이다. 81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공약했던 촛불 정부의 출범에도 20대를 위한 공공 일자리는 늘지 않았고 이는 일자리 정책이 실제 도움이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연간 비진학 고등학교 졸업자 10만여 명 가운데 특성화고 졸업자를 제외한 8만여 명 이상은 일반계고 졸업 미취업자로서, 별다른 직업 교육도 못 받고 기술 경력을 쌓을 일자리도 갖지 못한 사각지대에 놓인다. 지방대생과 고졸자는 근로빈곤층 (일은 하지만 소득이 워낙 낮아 가난한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의 주공급원으로, 이들에게 실제 도움이 될 청년 기본소득제의 도입이 절실하다.

 

4. 세습 중산층의 테두리인 지방 소재 대학생과 고졸자 논의.

90년대생에게 번듯한 일자리 획득에 필요한 학력, 즉 좋은 대학으로의 진출 기회가 이전보다 훨씬 불평등하게 주어지고, 그 기회 자체도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및 학력까지 큰 영향을 받아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복합적인 불평등을 경험한다. 사회 전반의 하부구조가 서울에 집중되는 것처럼 교육계 역시 일부 명문고에 대학 진학률이 편중된다. 학력격차는 중학교 때부터 본격화되며 특히 수학 과목은 부모의 재력 여부와 직결된다. 부모의 학력 소득이 자녀의 성과와 밀접할수록 높은 값을 갖는 개천용지수로 보면 기회 불평등도가 가장 큰 과목은 영어이고 수학은 약간 작은 정도이다. 자녀의 노력 수준과 아버지의 학력은 정비례하며 부모가 고소득일수록 자녀의 자기학습 시간이 늘어난다. 노력 수준도 계층에 따라 뚜렷하게 나뉘며, 비인지적 능력도 불평등하게 배분된다. 영화 친구에서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 질문에 즈그 아부지 통이라예라는 대사가 곧 현실이 되었다. 결국, 사회 계급 간에 일종의 다중격차가 발생하면서 사회 이동성을 가로막고 있다.


 

5. 결혼과 주택 구입에서 나타나는 계층 분화 양상 분석.

중산층에서 같은 계층끼리 결혼하는 동류혼이 늘어났으며 이는 결혼이 가족 단위의 계급 재생산에 핵심임을 의미한다. 4인 단위 핵가족을 꾸리는 자체가 울타리 안에 있는 중산층의 특권적 행위가 되고 있다. 번듯한 일자리가 없어 남성의 20%는 결혼을 하지 못하며 여성의 경우도 미혼 선택이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대규모 집단이 결혼을 못해 가족을 꾸리지 못하는 것은 단지 운이나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닌 광범위한 구조적 문제이다. 남성 자녀는 부모의 자산이 있어야 결혼이 용이하며 이는 자녀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맞먹는 영향력을 지닌다. 부동산 자산의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경제성장률을 초과하는데다 자녀에게 상속되면서 20~30대의 불평등이 문제를 키우게 되었다.

 

6. 90년대생의 다중격차는 586세대의 역사적 특수성에 기인.

1988년 대학 정원 자율화로 대졸자가 급증하고 1996년 대학 설립요건 완화로 인해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들은 1990년 들어 학력과 전문지식, 직업, 경제적 지위가 맞물린 기술관료에 가까운 대규모 집단을 창출하게 된다. 586세대에게 활짝 열렸던 기회의 창이 자녀 세대에서는 완전히 닫혔고 소수의 중산층만이 교육을 통해 계층 지위를 상속하려 분투하게 되었다.


 

7. 20대 세계관의 성별, 계층별 특성

조선일보 독자의 주축이며 50-스카이 대학-강남 아파트 거주 중산층의 자녀인 G(Global) 세대와, 기성 세대의 잘못으로 피해 대중이 되어 이것저것 다 포기한 요즘 것들인 N 세대가 공존한다. 20대 하층의 다수가 개인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차등 분배되는 사회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작금의 공정성문제는 20대 세습 중산층 자녀들에게 민감한 것으로, 누구나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세계는 오직 그들에게만 문이 열려있다.

 

8. 세계관 차이와 정당 지지에 주는 영향

중상위층 20대는 동일 계층 여성과 명문대 진학과 번듯한 일자리 취업을 놓고 예전보다 격렬한 경쟁을 벌여야 하므로 분노하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사회경제적 약자로 살아가는 20대는 연애와 결혼시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약자라는 현실을 절감하면서 분노한다. 여성의 보수극혐 진보성향 쏠림은 수년 전보다 진보적 생각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이고, 20대 남성의 보수화 현상은 민주 진보 정당에 포섭되지 못한 대규모 계층으로 차라리 비당파화에 가깝다. 정당에 대한 무태도가 아닌 부정적 태도를 지녔으며 정당을 기준으로 한 후보 선택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집단으로 분석된다. 30대 중반까지 포괄하여 대규모 탈민주당 유권자 집단이 수년 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양보와 공정이 아닌, 의무와 공평이라고 말한다. 시작 단계에서부터의 공평과 그것을 위한 세습 중산층의 경제적, 사회적 의무 부담,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뜻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어야 할 것으로

첫째, 기회의 평등이다. 단순한 입시제도 공정함이 아닌, 공공 보육과 공교육 강화로 사다리를 걷어차이지 않을 기회를 주자는 것.

둘째, 최소 수준의 사회보장에 대한 합의와 그에 따른 적극적인 세원 학보 차원에서 상위 10프로 중상위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자는 것.

 

저자의 구체적인 자료 및 근거와 일리 있는 주장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매우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계층을 통합하고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겠다는 사회적 약속들이 이처럼 극심한 계급 간 격차를 어떻게 극복하고 실현될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태어나 보니 금수저를 물고 있는 사람이 수저가 없는 이들을 어찌 이해할 수 있으며, 한 번도 뭐가 있어서 누려본 적도 없는 이들이 미래를 향해 달려볼 수 있을까? 문득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는 건 우연만은 아니지 싶다. 지금의 현실에 대한 많은 생각과 고민을 떠올리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노력은 실력이 아니다. 계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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