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노래하는 트바로티, 김호중의 음악세계 - 국내 최초 김호중 음악 평론
조성진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적인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 Placido Domingo 의 콘서트 <플라시도 도밍고 라이브 인 부산 2022> 이 2022년 6월 26일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렸다.'트바로티' 김호중이 게스트로 출연해 더욱 화제가 됐다. (-19-)

김호중이 게스트로 출연한 2022년 부산 공연은 플라시도 도밍고의 일곱번째 내한 공연이자, 2001년 6월 22일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개최된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3대 테너' 내한 공연까지 합치면 통산 여덟 번째 한국 공연이기도 하다. (-21-)

대중음악 발성도 출발선상으로 본다면 성악 발성이 추구하는 '몸의 특정 부위에 무리를 주지 않고 복식 호홉에 기초, 공명을 통한 소리의 아름다움'이란 개념도 포함되지만, 이것이 불멸의 명제처럼 '반드시' 따라야 하는 성악과는 달리 대중가요는 따르지 않아도 되는 , 전적으로 작곡자와 가창자의 몫이다. (-33-)

그러나 김호중은 마치 '좌트로트 우성악'이라고 외치듯 둘 모두를 끌어안고 용감하게 통념과 정면 대결을 선언했다. 성악계건 트로트계 건 김호중이란 존재가 너무 낯설고 '듣보잡' 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전쟁 선포였다. 초반엔 김호중 스스로에게도 많이 불리한 싸움으로 보였다. (-53-)

마일스 데이비스 는 1960년대 후반부터 재즈에 록비트, 각종 민속 리듬(월드 뮤직) 의 어법을 섞는 시도를 했고 1970년대로 와선 펑키, 사이키델릭, 엠비언트 등 많은 스타일을 더욱 과감하게 재즈 속에 녹여냈다. (-54-)

"김호중은 작곡가보다 곡을 더 많이 알아요. 전세계의 노래를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그래서 김호중과 음악 얘기를 할 때면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만큼 음악을 다양하게 들었던 것이죠. 잘 알려지지 않은 나폴리 민요부터 샹송, 칸초네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음악이 없어요." (-111-)

김호중은 2023년 6월 5일부터 11일까지 팬들과 함께 떠나 크루즈 여행 '선상아리아'를 통해 6박 7일간 특별한 추억을 쌓았다. 일본 오키나와, 미야코지마, 대만 기륭 3곳에 하선해 기항지 여행으로 진행된 '선상의 아리아'는 평소 팬들과 함께 여행하고 싶었던 김호중의 바람으로 기획된 것이다. (-164-)

TV 조선 <미스터트롯> 음악감독을 할 때 김호중을 처음 만났습니다.당시엔 연습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담당 작가와 밤을 세울 때가 많을 정도로..

"어라, 저 친구 뭐지?"라며 선입견을 갖고 보던 것도 사실입니다."성악 하는 애가 왜 여기 와 있는 거야" 라며 의아해 했으니까요. 이 부분은 아마도 저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걸로 생각합니다. (-221-)

2020년 1월 미스터트롯에 출연하였던 김호중은 특별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성악가였으면서, 트로트 음악을 소화했으며, 그것이 심사위원들에게 먹혀 들었고, 깊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미스터트롯 결승전에서 임영웅,영탁,이찬원에 이어, 미스터 트롯 4위의 의미있는 순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성악과 트로트를 가미한 퓨전음악을 추구하였다.가수보다 더 가수답게 대중 음악을 소화했으며, 작곡가 보다 더 음악에 대해서, 곡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2013년 데뷔하였던 그가, 2020년 미스터 트롯에 출연하며, 천사의 목소리가 될 수 있었으며, 그는 세계적인 성악가 플라시도도밍고의 내한공연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성악으로서,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콩쿠르에 출연하여, 입상을 해야 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음악 콩쿠르'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였고, 그 이후 유명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김호중은 콩쿠르 입상 경험이 전무하다. 성악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으며, 성악가가 높은 고음에서 삑사리가 나는 반면에 김호중은 편안하게 높은 고음을 낼 줄 알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며,트로트와 성악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으며,대중들이 그의 음악에 긍정하며, 팬으로서 응원하고 있는 이유다.

1991년, 1995년, 2009년, 2016년 그리고 2022년 공연 플라시도도밍고의 일곱번째 내한공연이 있었으며,한국 게스트를 한명 이 항상 고정 출연했다. 2022년 플라시도도밍고의 내한공연에 한국인 게스트로 나온 이가 김호중이었다. 그의 음악 세계는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이유이며,김호중은 처음 그 제안을 받고 얼떨떨해 했지만,마지막까지 겸손함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호중의 천재적인 음악 세계 뿐만 아니라,그가 음악에 대해 다가가는 진정성, 자세와 태도를 사람들이 높게 보고 있었다. 그의 음악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다. 1960년대 재즈 뮤지션 마일스 데이비스 남긴 독특한 퓨전 재즈는 21세기 들어서서 새로운 K-MUSIC 로 이어지고 있었으며,한국적인 음악에 성악을 접목하고자 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이 네임 이즈
한완정 지음 / 메이킹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란 자신이 공감하지 못하는 일에 애써 사랑과 긍정을 쏟지 않는 생명체이다. 그렇게 못한다고 생각한다. 가식으로는 그럴 수 있어도 진심어린 손길을 빈 깡통이 꽉 채워진 것처럼 연기할 순 없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희 할머니의 자기소개에선 앞선 둘째 녹희 할머니에게서 보이지 않던 외로움이 느껴졌다. 막둥이로 태어나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다 큰 언니들이 시집을 가서 홀로 보내야 했던 시간이 많았던 것,모두 선희 할머니의 살믜 목적이나 의도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21-)

셋째 할머니는 유독 사물로 행복을 기억하고 계셨다.

어머니의 아이롱 주황 티셔츠, 큰언니가 선물해 주었던 파란 플라스틱 슬리퍼, 그리고 그걸 입고 신으며 입꼬리도 맑게 개었던 마음의 나날들., 얼마나 가족들의 사랑이 좋았고 고팠는지 알 것 같아 괜히 마음도 눈가도 축축해졌다. 유난히 나 자신이 좋았고 자랑스럽고,기뻤던 나날로 첫째 딸을 낳았던 시절을 꼽는 것도 자식에게만큼은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싶고, 조금은 부족했던 사랑은 그럴 일 없게 충족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 이것은 나에겐 모르는 영역이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느껴진다. 할머니는 이 형제들 중 누구보다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울 사람이라는 것을.그렇기에 누구보다 자신의 자식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주고 싶으셨을 것이라는 걸. (-53-)

그렇기에 나는 나이가 든다는 건 죽어가는 것이라고 할아버지의 말씀에 동의하면서도 부정하고 싶다. 그리고 자유와 젊음은 어쩌면 같은 결이 아니란 생각도 해 본다. 젊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나이가 들었다 해서 마음이 늙는 건 아니니까. 나이가 찰수록 옥죄는 걸 벗어던지고비고 자유로워지시는 분이 내 눈앞에 계셨기 때문에 산이든 바다든 전국을 여행하면서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오히려 자유로워지시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난 이것도 젊음이 아닐가 생각해 보았다. (-97-)

책 『마이 네임 이즈』은 첫째 이명희 할머니, 둘재 이녹희 할머니, 셋째 이선희 할머니, 그리고 막내 이은승 할아버지와 함께 인터뷰를 통해 ,우리의 살, 나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해 주었다.

주어진 삶에 대해서 성찰과 반성, 그리고 후회와 원망, 저자는 네 사람의 인생 발자국을 인터뷰, 혹은 구술을 통해서, 그들이 평감한 삶을 기록하고 있었다.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 인간은 누구나 나이와 무관하게 청춘으로 남고 싶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나 자유로워지고 싶은 삶이 있다. 내 안의 선입견과 편견을 덜어낼 수 있는 시간, 독서의 즐거움이 여기에 있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인정하며,공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평생 누구를 오해하고,미워할 수 밖에 없는 착각의 늪, 후회의 늪에 빠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자 족쇄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행복과 기쁨, 만족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외로움을 덜어내고,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누군가에게 되물림하고 싶지 않다. 좋았던 일상, 긍정했던 일상이 내 마음 속에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에 있었다. 사람은 결국 삶 속에 반복된 죽음이 존재한다. 그 죽음조차도 긍정하고, 행복으로 느끼며 살아가며,살아있는 생명체나 사물에 대한 추억이 필요하다.아픔과 고통, 상처는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그것을 견디는 것은 오로지 내 몫이며, 삶에 있어서, 놓칠 수 없는 시간과 기억을 한나 하나 목록으로 만들어서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따스함과 행복은 남이 아닌 내가 만들어 준다는 것을 내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서 , 한 가족의 삶에서, 깨우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직 끝나지 않은 열정 - 대한민국 대표 양복 장인 58년 외길 인생
손외식 지음 / 닻별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 칠십이 되니 어느 날 문득 살아온 길을 기록하고 싶어졌습니다.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 품에서 산 것도 잠깐, 6세에 어머니와 헤어져서 할머니와 살다가 11살부터 5촌 당숙의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18세에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양복점을 운영해보고 싶은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꿈의 출발로 한성양복점을 개업했습니다. 그때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첫 딸과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24-)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내 전영순,

우리가 만난 지가 어언 52년이란 세월이 흘렀군요.

52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한번 생각해봐요.

그 당시의 우리의 만남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생각이 납니다.

가족도 없이 고아처럼 살아온 나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당신과의 만남이었습니다. (-52-)

2009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서 내 최고기록인 3시간 46분이 나왔다.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때의 감동과 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라톤 20년을 하면서 풀코스인 42.195KM 를 67 회 완주했고, 하프코스인 21.0975KM 를 56회 완주했다. 10KM 는 50 여 회 완주했다.새을 살면서 마라톤을 통해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137-)

옷 잘 입는 남자가 성공한다. 점잖은 슈트 차림의 비즈니스맨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남자들이 대체로 옷을 입을 줄 모른다."고 말하면 다들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몸에 맞지도 않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디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더욱 그렇다. 점잖은 슈트를 입은 사람 중에도 옷을 잘 못 입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양복과 와이셔츠 넥타이 신발 등의 코디가 맞지 않아서 그렇다. (-187-)

유복자로 태어난 한 사람의 인생에 퍼즐을 맞춰 보았다. 작가 손외식, 최고의 양복 장인 손외식 ,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는 기억 속에 없었으며, 6세 되던 해, 어머니 마저 자신의 곁에 떠나게 된다. 삶에서 기구한 운명이 여기에 있었던가, 1950년대 , 고아 아닌 고아가 되었던 손외식은 철들기도 전에 기술을 배워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였고,2년간 양복을 만드는 일을 배워서,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도모하였다. 1974년 한성양복점을 개업하였으며,그의 양복인생은 어느 덧 58년을 지나가고 있었다.

오로지 한 길을 걸어간다는 것, 최고의 자리에 서 있기 위해, 최고의 양복장인이 되어, 자신의 부족한 것을 채우려 했을 것이다. 고인이 되신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바인그룹 김영철 회장, 전 연세대 농구 감독 최희암 감독까지,그의 손을 거쳐 가지 않은 유명인은 없었다.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내 전영순과 결혼하여, 딸 손경희와 아들 손종오가 있었다. 그가 걸어온 성공적인 삶에는 가족이 있었고,몸과 마음의 건강한 삶이 있었다.

작가 손외식은 사람의 몸을 관찰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수치로 몸 곳곳을 체크하고,손으로 옷을 만드는 손의 예술사였다. 가난하였고,고아나 다름 없었던 삶에서,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나섰고, 내 인생에 당당한 삶을 드러내고 있다.내 삶을 긍정하고,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 어둠을 원망하지 않았고, 세상의 촛불이 되고자 하였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생의 등대를 스스로 만들었으며, 1999년부터 24년간 크리스토포 리더십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년간 마라톤으로 다져진 몸, 풀코스 67회를 완주하였으며, 100여회 마라톤 대회 참가경력이 있다. 옷 잘 입는 남자가 성공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왓다. 가정의 화목과 아내에 대한 존경심, 자녀의 삶을 인정하면서 최고의 양복장인으로서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만들어낸 그가 살아온 인생 발자취는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삶과 행복을 심어 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흔에 버렸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 -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는 내려놓음의 기술
고미야 노보루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고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그와 동시에 매달 들어오는 월급, 교수라는 명함도 내려옿는 것이다. 나 역시 꽤 많은 것을 내려놓으며 살아왔다. 그 대신 손에 넣은 것이 많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무언가를 내려놓아먄 한다.

그 선택을 함으로써 후회는커녕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

그럼 '내려놓는다'는 건 무엇일까.그리고 살아가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7-)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이라는미래에 가까워진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그리고 '내 인생은 나만 책임질 수 있다'라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나느 그것을 '근원적 고독' 이라고 부른다. 이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참으로 두렵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회피하려고 한다. (-19-)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에 따르면 살아가는 태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마음을 잃는 태도.

또 하나는 '지금 이곳'에 사는 태도

첫번째 마음을 잃은 태도란 일상의 바쁨, 일상의 이것저것 즉 중요하지 않은 수다나 오락 등에 파묻혀 마음을 잃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바쁠 망(忙)'이라는 한자는 '마음을 잃는다'는 뜻이다. 물질에 대한 집착, 돈의 많고 적음, 사람들의 말과 행동, 물건의 좋고 나쁨 등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두번째 '지금 이곳'에 사는 태도란 저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이것은 무엇인가 하고 마음을 분주히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인생에 있는 '저것' '이것' 그 자체에 감명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도 타인도 덧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태도는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때 자신을 바꿀 힘이 생긴다. (-34-)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느긋하고 유연하게 살고

이번 인생보다 더 바보처럼 살리라.

이제 와서 깨달은 것은

중요하게 받아들인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 (-39-)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좋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관을 명확히 하고,자신에게 높은 가치관에 힘을 쏟고, 낮은 가치관은 과감히 내려놓는 일이 중요해진다. (-97-)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을 내려놓자.

'정말 중요한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든 받지 못하든 신경쓰지 않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순간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가' 깨닫는게 중요하다.

스스로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지를 명확히 하자. 그것을 깨달아 아는 게 커다란 한 걸음이 된다. (-104-)

우리가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을 비하하고 타인의 가치관에 다라 자신을 재단하기 때문이다. (-109-)

'내려놓음'은 모든 것을 명확히 한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에 가장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기 위한 중요한 관점 중 하나가 자신의 높은 가치관에 도움이 되는 일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113-)

오늘 문자로 지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지인은 일흔이 되지 않는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지지인의 따님이 지인의 전화로 문자를 보낸 것이다. 깊은 상념에 잡ㅁ기면서,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삶의 마지막 종착지는 죽음이며, 마흔이 되면,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죽음 앞에서,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면,비워야 할 것을 비우지 못하면, 스스로 버려지게 되고, 스스로 비워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비운다는 것은 선택을 바꾸는 것이다.비운다는 것은 살아가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채우는 습관을을 비우느 습관으로 전환할 때,명확하게 비워낼 수 있다.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고,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타인에게 인정 받으려고 애쓰지 않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힘써야 할 일을 명확하게 하면서,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타인의 평가가 내 삶을 지배할 때,불행한 삶이 놓여질 수 있었다. 우리 삶에서, 아픔과 슬픔, 불행이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선택을 잘하려면, 책임을 잘 하려면,높은 가치관과 낮은 가치관을 정확하게 알고 가야 한다. 즉 내가 생각하는 높은 가치관을 중심에 놓는다면, 낮은 가치관이 무엇인지 명확해질 수 있다. 살아가면서, 견뎌야 할 것을 명확하게 선택하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두 마리 토끼 모두 다 놓칠 수 있으며, 미혹되지 않는 삶, 삶에 있어서 주도작인 삶을 살아가되 내 안의 열등감의 시작은 어디서 출발하는지 명확하게 구분하며 살아야 할 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정치사상사 2 - 진한위진남북조 중국정치사상사 2
류쩌화 지음, 장현근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는 권력욕이다.이는 또 종과 횡 두 방면에서 나타난다. 횡이란 공간을 가리킨다. 무릇 인적이 닿는 곳,일월이 비추는 곳이면 어디든 군주가 그 위에 군림해야 한다. 선진의 제자백가가 고취했던 왕천하론을 그는 다 실천에 옮겼다. 이를 위해 그는 사이四夷에 일련의 전쟁을 일으켰으며 어떤 대가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20-)

다른 하나는 심한 사치와 극단적 욕망이다.천하의 신민, 토지가 모두 황제의 소유에 속하니 그는 자연히 일체를 사용할 권한이 있으며 갖은 향락을 즐길 수 있다.진시황이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운 제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 다만 그의 물 쓰듯 한 낭비가 제국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 만은 확실히 전형적이라고 할 만하다. (-21-)

한 漢 제국은 몇십년의 발전을 거쳐 중앙 집권적 군주 전제 정치를 날로 공고히 했다. 그런데 정치에 대한 인식 수주에선 오히려 이런 체제에 맞지 않는, 예컨데 도가의 황로 무위 사상 등과 같은 현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군주 전제하의 통치자에게 있어 정치적 실천은 그에 상응하는 이론 지침을 필요로 한다. (-152-)

그는 말한다. "인의에 근본을 두고, 현덕을 포상하며, 선을 권하고 포악을 벌하는 것은 오제, 삼왕이 그로 말미암아 번창한 바다." 그는 특히 덕치의 기능을 중시하여 "세상을 떠받치고 백성을 이끄는 데 덕보다 좋은 것이 없다" 고 말한다. 덕치의 주지는"예로 천을 섬기고 의로 몸을 세우며, 효로 부모를 섬기고, 인으로 백성을 기르는" 것이다. 그는 인의도덕의 선양을 통해 "인민을 예로 이끌고 ,악으로 바람을 일으켜" 백성에게 "인이 행해져 선을 따르고, 의가 세워져 풍속이 바뀌도록 함으로써 안정된 통치 질서를 이루려는 구상을 했다. (-240-)

"천자가 명당을 세우는 것은 그로써 신령에 통하고 , 천지에 감응하고, 사시를 바르게 하고,교화를 내리고, 덕이 있는 사람을 으뜸으로 삼고, 도가 있는 사람을 중시하고, 유능한 사람을 드러나게 하고, 실천한 사람을 포상하려는 까닭이다.명당은 위를 둥글게 하고 아래를 각이 지도록 하며,여덟 개의 창문과 네 개의 문을 단다. 정치를 행하는 궁전은 국도의 남쪽에 둔다. 위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받음이요, 아래가 각진 것은 땅을 본받음이다. 여덟개의 창은 팔풍을 닮음이요, 네 개의 문은 사시를 본받음이다. 9궁은 9주를 본받음이요, 12좌는 12월을 본받음이다. 36호는 36 우를 본받음이요, 72 유는 72풍을 본받음이다." (-327-)

군주는 곧 신이라는 정치 관념은 제왕 권위를 신비화했을 뿐만 아니라 신비주의를 현실화했다. 신화 칭호가 관념상 제왕을 신명으로 받듦으로써 군주는 전체 사회집단과 한 걸음 더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고, 군주와 군권은 사람들이 발밑에 굻어 공손히 절하는 대상이 되었다.중국 고대 군권 숭배는 처음부터 일종의 신비주의적 신앙, 즉 군주는 신성한 몸이라는 데서 출발했다. (-468-)

전하의 통치자들 또한 다른 통치자들과 마찬가지로 일단 최고 권력을 장악하고는 온 정성을 다하여 권력의 영원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전한 후기 사면에 위기가 고조되자 한 왕실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에 대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거대한 의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천명, 혁명, 영명, 갱명에 관한 토론들은 바로 이러한 의문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반영된 것이다. (-553-)

여기서는 물가와 소, 말, 풀벌레 등의 재앙과 관련 있는 예언 몇가지를 예로 들어 그 황당무계함을 보자.

"정월에 월식이 있으면 신분이 천한 사람이 병이 생기니 쌀 2000석을 사들여야 한다. 2월에 월식이 있으면 신분이 귀한 사람이 병이 생기니 쌀 3000석을 사들여야 한다. 3월에 월식이 있으면 군주가 거기에 해당되므로 쌀 4000석을 사들여야 한다."

"달이 방성房星 에 침범하면 네발 달린 벌레가 많이 죽는데, 그 기한이 1년을 넘지 않는다."

"달이 견우성을 침범하면 장군이 도주하고 천하의 소가 많이 죽는다."

"달무리가 각 성과 항성 주위에 퍼지면 동물이 많이 죽는다." (-632-)

한나라 말 당인들의 청의는 시기적으로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지만 정치사상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풍설품평과 시대 인물들의 경학적 성취 및 유적한 행위, 그리고 논의의 핵심은 곧바로 집권세력을 겨냥했다.그들은 군주에게 감히 직언으로 간했으며, 조정 권력을 장악한 기득권 이익 집단과 날카롭게 맞서 "공적인 것을 받들어 굽히지 않았으며 악을 원수처럼 미워했다." 정치에 간여하는 사대부들의 대표가 된 그들의 의지와 담력은 역사상 가장 우수한 측면을 보여주었다. (-744-)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이와 같은 개혁관념은 생기와 활력이 부족한 당시 정치에 대한 최식의 강렬한 불만과 정치 개혁 실행을 향한 소망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요, 순과 문, 무의 도에 관한 공리 공담에 반대하고 현실 정치에서 출발하여 실제 상황에 근거하여 모든 정책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의 변화에 맞춘 조정과 개선의 요구는 매우 실질적인 태도다. (-835-)

사람은 성정에 따라서도 열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굳센 사람, 유순한 사람, 성급한 사람, 신중한 사람, 강경한 센 사람, 변론에 능한 사람, 융통성이 큰 사람, 고지식한 사람, 활동적인 사람,조용한 사람, 드러내는 사람, 감추는 사람이다.이 열 두 부류 사람들의 성정은 모두 장단점이 있다. 유소는 말한다."올곧고 굳센 사람의 자질은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데 있으나 문제점은 과격하게 들추는데 있다.유순하고 편안한 사람은 관용을 베푼다는 장점이 있으나 문제점은 결단력이 부족한 데 있다. 성급하고 강건한 사람은 맡은 일에 대담하고 열렬하나 문제점은 금기를 자주 범하는 데 있다. 면밀하고 신중한 사람은 장점은 공손한 데 있으나 문제점은 의심이 많은 데 있다. 강경하고 모범적인 사람은 핵심 요직에 쓸 수 있으나 문제점은 너무 고집스러운데 있다. 변론을 잘하고 이치에 밝은 사람은 맺힌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이 있으나 문제접은 방탕에 빠지는 데 있다. 두루두루 융통성이 넓은 사람은 널리 관대함을 베푸나 문제점은 혼탁해지기 쉬운데 있다.청렴하고 고지식한 사람은 검소하고 절개가 있으나 문제점은 상황에 구애받는데 있다. 활동적이고 당당한 사람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업무에 적합하나 문제점은 대충대충 건너뛰는 데 있다. 조용하고 기밀한 사람은 아주 작은 부분까지 면밀하게 살피나 문제점은 너무 느리다는 데 있다. 모든 것을 다 드러내는 사람은 마음 바탕이 참된 사람이나 문제점은 미세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지모가 많아 잘 감추는 사람은 권모와 계략에 능하나 문제점은 피해 달아난다는 데 있다." 사람의 성정에 대한 유소의 분석은 대단히 깊이 있고 세밀하다. 그는 각각의 장단점을 제기하면서 사람을 임용할 때는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라고 주문한다."사람들의 단점을 지적함으로써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948-)

언어는 실재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만, 필연이 반드시 실재 진상에 관한 소식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고 곽상은 생각했다."만물의 존재는 자연적이며,이치는 지극한 것이다.순환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니 그윽하게 저절로 합치하며 바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라서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허무맹랑하며, 그것에 대해 듣는 것은 의혹 불명이다.황제가 되돌아온다 하더라도 만물이 존재할 수 없도록 할 수 없으므로 의혹 불명의 지경이다.. 세계의 존재 상태는 본래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그런데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로부터 미혹과 혼란이 생겨난다. 언어에 대한 곽상의 견해는 곧 명교에 대한 견해이기도 하다. (-1034-)

불교는 "나라에 들어와서 나라를 파괴하고," "집안에 들어와서 집안을 파괴하고." "몸에 들어와서 몸을 파괴한다." 이 또한 군권, 부권에 대한 불교의 영향을 두고 한 말이다. 불교와 군권과의 모순 가운데 비교적 뚜렷한 예는 동진 시기에 '사문불경왕자' 론이 불러일으킨 논쟁이다. 중국에서 불교가 발전하려면 이런 문제들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했다. 불교도들은 불교가 본질적으로 명교와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거꾸로 국왕과의 교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146-)

4대 문명의 발상지인 황허가 있는 중국 문명은 하나라, 상나라, 기나라, 주나라 로 이어진다. 고대 중국 최초의 나라 하나라는 언어가 발당하지 않았고,기록으로 현존하지 않는다. 단 , 상나라 이후 중국의 역사적 기록이 현존하고 있으며, 중극으이 청지사상사의 출발은 상나라로부터 시작한다.

춘추전국 시대(춘추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 770년 ~ 기원전 221년)를 지나, 진나라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였고, 백성들은 잠시 동안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중국의 진시황은 법가사상을 받아들여서,중국 통일에 앞장섰으며,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를 형성했다.법가사상은 형벌로 다스렸지만, 사치와 방탕, 욕망으로 진나라는 곧 멸명하였다. 진나라는 나라을 통일할 수 있는 힘은 있었지만,진나라를 유지할 수 있는 정치 사상이 없었다. 형벌로 백성을 다스렸던 진나라 진(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7년)은 기원전 207년 멸망하고, 진나라는 사라졌지만,진나라가 추구하였던 정치사상, 법가사상은 이어질 수 있었다.

중국이 중심이 된 동양사상을 알기 위해서,사서오경을 배운다. 명당에 대해서 배우고,주역을 배운 이유는 지적인 향유가 아니었다. 충과 효,인,의, 예,지 신, 예,악을 만든 이유는 중국의 황제에 해당하는 천자가 백성들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였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아버지,어머니의 개념도 다른 특징응 확인케 한다. 공자의 논어가 지금까지 정치 사상으로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 사회의 질서를 덕치와 인치에 의한 , 인의에지에 초점을 맞춰 나가면서, 태평성대를 만들기 위해서다. 나라가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힘과 정치,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하나의 구심점이었다.천자는 나라의 질서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나라의 성장을 꾀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중국을 사대했다. 삼국시대 이후 지금까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했고, 역사,문화,청치에 중국과 엮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상식으로 볼 때, 명청 교체기에 조선이 명나라를 취하고, 청나라를 적대하였던 이유에 대해 지금의 관점으로 어이가 없는 일일 수 있지만, 류쩌화 『중국 정치사상사2』 를 읽는다면,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중국의 사상 대부분은 춘추전국 시대에 형성되었고,지금까지 중국과 동양인에게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어왔다. 동양 사상이 서양의 그리스 철학과 대조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지리적 환경과 역사적으로 이어진 전쟁과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기존의 사상에 새로운 사상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상이 지금까지 중국의 역사의 큰 물줄이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류쩌화 『중국 정치사상사2』 은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것에서 시작하여, 후한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국 사상의 본질과 궁극들 소개하고 있었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스며들게 되면서,기존의 중국 본토의 유가 사상과 충돌하였다. 법가 사상,묵가 사상이 현존하였던 중국에 불교가 스며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책에서 소개하고 있으며,중국인의 가치관과 인식 관점에 있어서 변화는 불가피했다. 무위 자연, 인간의 본성을 관찰하고,그 본성을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데 힘써왔다. 자연과 인간,사상을 권력에 내재하였고,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의 근거를 하나하나 제도로, 법으로,인의예지로 만들어 나간다. 동양사상에 내재하고자 하였던 사상,관념, 이치를 실천하면, 이익으로 돌아오고, 지키지 않을 때는 불이익을 줌으로서, 상벌을 명확하게 함으로서,옳고 그름의 기준을 명확하게 해왔다. 결국 군주를 추종하고,군주를 현인에 버금가도록 유도하고,사상으로 정리함으로서, 중국의 역사의 시행착오들은 중국 정치 사상의 흐름과 변혁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중국을 큰 어버이로 생각하였던 한반도 5000년의 역사가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