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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길 시골하우스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3년 11월
평점 :
하유는 그러나 죽을 한 숟갈 뜨기만 하고 그 뒷모습을 계속 눈에 담고 있었다. 은순이 세상 떠난 이후로 늘 추웠던 삶이었다. 매일 얼음이 얼고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에 가슴에도 금이 갔다. 모자, 목도리, 장갑으로 막아낼 수 있는 추위가 아니었다. (-19-)
'그거 알아요? 설시곤 씨랑 시골하우스는 꼭 선물 같아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예요.'
하유는 제 숨결이 시곤에게 닿을까 조심했다.
'나는 그동안 좀 추웠거든요. 혼자서 손과 발이 시렸고 항상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너무 따뜻했어요. 그 어떤 난로도 줄 수 없는 따뜻함. 그래서 또 잠은 얼마나 달게 잤게요?' (-80-)
"여하유! 넌 오늘도 뭘한 거니?"
오늘도 저는 역시나 비겁했다. 용서를 구하는 것은 저의 몫이고 해줄지 말지는 시곤의 몫이다. 그러니 저는 최선을 다해서 용서를 빌어야만 하는 쪽이다. 하유는 들어올 때보다 빨리 계단을 내리 달렸다.신발이 짝짝이란 것도 몰랐다. 하지만 시곤의 차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143-)
그 주의 토요일, 시곤은 하유를 데리고 벨롱 예술 가게에 갔다. 금산면 입구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이 카페는 예술인들의 활동 공간이었다. 밴드 동아리, 장애우 성장 교실, 북토크, 미니 음악회 등을 진행하는 실내에는 갖가지 악기들과 악보, 장애우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229-)
"그래도 정례 언닌데, 은 닥터랑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례 언니는...."
"엄마! 그 이름,들먹이지도 말랬지? 순 사기꾼 새끼."
우리는 오징어 다리를 재혁을 씹듯 질겅거렸다. (-255-)
"그러니까 부모님 없이 치르는 결혼식에서도 , 앞으로도, 그 누구라도 내 손부 아기의 배경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말해줌세. 그 누구보다고 고운 심성을 지녔고, 사라을 베풀 줄 아는 아이니까.그만큼 예쁜 글을 쓰는 아이이고. 오늘 참여한 모든 분들을 위해서 우리 손부 아기가 쓴 동화책이랑 이 두 아이가 함께 만든 책을 답례품으로 준비했으니 글을 읽어 보면 내 말의 뜻을 알거라 믿고." (-321-)
소설 『감꽃 길 시골하우스』 차가운 툰드라 지대에 살아왔던 한 여인이 따뜻한 남족으로 인생이 바뀌는 모습을 그린 책이다. 자전적 소설 같은 느낌 속에서,주인공 여하유는 엄마 은순의 영정 앞에서, 딱한 처지로 묘사되어 있었으며, 현재의 인생을 갈망하며 ,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나약한 존재가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 연이어 엄마의 죽음, 동화 작가 여하유가 진주 내촌 호수마을을 찾게 된 것은 운명적인 순간이다. 이모였던 지순은 하유를 거둘 처지가 아니었다. 예전부터 검은 머리 인간을 거두지 말라고 하였던가. 하유의 딱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하유는 스스로 일어나야 하는, 떠돌이 늑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감꽃길 시골하우스 설시곤을 만나게 된 하유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시곤에게 의탁할 수 밖에 없었다. 용서는 하유의 몫이 아니었다. 선택과 결정도 하유의 몫이 아니었다. 오로지 선택되어지는 존재,희생되어지는 존재가 고아인 하유의 주어진 운명이었다. 두 사람이 연리지가 되어야 하느 순간, 오로지 사랑만으로, 보타니컬 아트 설시곤을 만나서, 동화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소설 『감꽃 길 시골하우스』 은 꽃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움을 주는 선물, 사랑의 깊은 정에 대해서, 읽어 볼 수 있었다. 나약한 꽃은 자신의 시각적 이미지와 향기로 벌을 불러 들인다.자신의 생존을 위한 진화였다. 시곤이 꿀을 찾아서, 꽃과 꽃을 옮겨 다니는 벌이라면, 하유는 꽃이었다. 소설에서, 하유가 항상 두려워하는 것은 벌이 내 곁에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실존 공포다. 오직 설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상처를 경험하지 않기 위해, 진실보다는 거짓을 선택하는 것도 상처입지 않기 위한 ,연민을 느끼기 위한 하유의 인생 그 자체이다. 하유가 떠나는 긴 여정을 선물처럼,인연처럼 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하유가 , 꽃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것을 본다면, 사랑의 힘을 감꽃길 시골하우스에서, 얻으려 하는 하유의 잡초같은 인생을 느꼈다. 하유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하유가 스스로 일어서고, 시곤의 마음을 얻는 강인한 존재로 설 수 있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