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떡 - 백시종 연작장편소설
백시종 지음 / 문예바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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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예쁘고 앙증맞을 수가 없었다.

"옜다. 이거라도 가져라. 그래도 이건 스위스제 쌍둥이표 칼이란다. 아주 귀한 거야. 그러니까 연필 깎을 때만 쓰고, 잘 간수하거라."

정말 최고의 칼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주황색 손잡이에서 빛이 핑그르르 돌 정도로 쌍둥이칼은 윤기가 좔좔 흐르는 물건이었다. (-30-)

할머니는 온종일 그 밭에 앉아 김을 매고, 씨를 뿌리고, 수확을 했다. 주로 고구마였지만 옥수수도 심고 완두콩도 심고 마늘도 심고 참깨 들깨도 심었다. 종류는 많고 밭뙈기는 크지 않고...적게 심으니 추수도 그만큼 적을 수 밖에 없었다. (-68-)

은행시험 중 가장 가산점이 많은 과목이 주판 시력이었다. 주판은 필수 기본기이기도 해서 최소한 3급 실력을 갖추어야 했는데, 실제로 3급을 따지 못하면 은행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176-)

고동욱은 꼬깃꼬깃 구겨진 배춧잎 한장을 라이터 주머니에서 손가락 끝으로 간신히 꺼냈다. 비상금이라고 했다.그리고 가까운 포장마차를 가리켰다. 가락국수를 비롯해서 해삼 멍게 돼지 순대도 취급하는 간이마차 포장을 들추고 구동욱이 먼저 들어왔다. 뜨거운 가락국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를 썰어놓고 우리는 물 마시듯 소주를 마셨다. (-223-)

나는 배불뚝이 아내를 처갓집에 맡기고 혼자 떠날수도 ,그렇다고 그곳에 계속 눌러앉을 수도 없었다. 나는 결딴을 내려야 했다.

내가 그때 그녀와 함께 갈곳은 단 한군데 밖에 없었다. 광주 집이었다.내가 그렇게 결정했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안해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285-)

또 한차례 와장창 사무실 기물이 박살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함부로 때려 부수는 쇠망치 죈 손목에 깨진 유리잔해가 박혔는지 선혈이 낭자했고, 열굴 역시 유리파편 때문인지 피투성이가 된지 오래였다. (-361-)

작가 백시종 님이 어느덧 80이 되었다. 1944년생 한국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태어나, 한국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어린시절을 살아왔다. 후진국, 미군정이 준 물자에 의존하여 살아온 시간, 10여넌 동안 , 배고픔에, 봄철이면, 호랑이보다 더 부섭다는 춘궁기를 지나왔다. 헐벗은 산에 나무를 베어서, 가꾸었던 것은 당장 배고프다 하여,미래의 배고픔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기 까지 , 자가 백시종님이 살아온 인생의 기억과 기록이 존재했다. 특히 소설 『쑥떡』은 그 시대의 가난함과 배고픔을 상징하는 우리의 마음을 녹여 주던 먹거리다.

소설 쑥떡을 읽으면서, 봄철이면, 쌀독에 쌀이 떨어져서, 산으로 들로 향했던 우리네의 부모님이 생각난다. 먹어야 살 수 있었기에 , 쑥은 그들의 허기짐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법칙이었다.보리를 캐어다 먹었던 그 때 당시, 그때의 배고픔은 사라졌지만,그때의 생활습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할머니느 식구들의 배고픔을 위해, 지금도 봄철 쑥을 뜯으러 가서, 장에 내놓아서, 떡을 만들어 먹는다. 쑥떡에 설탕을 찍어 먹으며, 어떤 음식에 비할 바 아니었다. 1960년대 우리의 삶과 정서, 법보다 주먹이 앞섰지만.,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이기적이지 않았다. 경제는 무너졌고, 희망과 기대를 품으면서, 콩사루 같은 교실 내에서, 주판 하나로, 주산과 부기를 배워야 했던 그 시간, 은행에 취업하면, 나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었기에 악착같이 배웠다. 인문계고등학교보다 상고와 공고가 잘 나가던 그 시기였다.

소설은 광복 이후 아련한 60년의 시간을 관통하고 있다. 배고픔과 우리의 나약한 정서와 일치하고 있었으며, 소주 하나로, 추운 겨울을 견디며 살아온 그들의 삶이면서 인생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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