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야구 - 실패는 철저히 버린다, 오효주와 이정후의 깊은 면담
오효주.이정후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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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6월 28일 금요일, 대전이었다. 당시 키움 히어로즈는 한 화 이글스를 상대로 6대 5한 점 차 승리를 거두며 연승을 만들었다. 3안타 2득점 활약과 함께 수훈선수로 선정된 이정후는 방송 인터뷰에서 오늘 전까지 상대 선발투수에 대한 공략이 어려웠지만 , 강병식 코치의 조언대로 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답했다. (-13-)

본격적으로 선수를 시작하기 전에 한 번 더 말씀하시더라고요. 분명히 힘들거라고요. 근데 제가 괜찮다고 했어요. 왜냐면 너무 재밌었거든요. 아빠는 야구를 시키지 않으려고 하셨기 때문에 대신 다른 운도을 많이 시키셨어요. 축구도 하고 쇼트트랙도 했고, 수영도 했죠. 그런데 야구가 제일 재밌었어요. (-23-)

어렸을 때부터 공 맞히는 능력은 타고난 게 아니라 공을 정확하게 맞히는 능력이요, 문제는 어렸을 땐 힘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제가 야구전수로서 더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은 컨텍트 능력, 그게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했죠. 제 강점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어요. (-83-)

구단에서 플랜을 세워준 대로 꾸준히 몸을 키워갔어요.단기간에 힘을 기르려고 무리한 게 아니었고요. 왜냐하면 제가 가진 큰 장점을 잃으면 안 되니까요. 제 장점은 더 살리면서 몸을 키우는 과정 역시 한 해, 한해 서서히 쌓아간 거죠. 그렇게 차츰 힘이 좋아지다 보니까 외야수에게 잡힐 타구가 넘어가고, 펜스에 맞을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면서 장타력이 좋아지더라고요. 모든 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거예요. (-140-)

그중에서 부모와 자식까지 모두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역사가 아직은 짧다 보니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종범-이정후 부자는 모두 '성공한 케이스'로 분류됩니다. 아버지는 기록으로 남겼고. 지금도 남아 있고요. 이정후 선수는 남기고, 남겨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조심스럽습니다만, 선수로서 성공을 경험한 부모에 반해 자식까지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와 이종점-이정후 부자지간의 차이가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192-)

도쿄 올림픽이요. 미국과 일본 등 좋은 투수들을 상대해 보니까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더라고요. 메이저리그 유망주 1~2 순위라 불리는 선수도 있었고 현직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있었고요. 앞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이 유력하다는 선수들도 있었죠. 그들을 상대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메이저리거들은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일까, 그 투수들을 매일 상대하다 보면 나도 실력이 늘게 될까, 나도 그들을 상대로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게 궁금해졌습니다. (-204-)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 선수는 6년 1억 1,300만 달러의 역대 최고 계약을 맺으며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성했다. 메이저리그 구단은 그의 타격왕으로서의 존재감 뿐만 아니라 수비 늘력을 높게 평가했다. 앞서, 박찬호, 김병현,서재응, 최희섭을 넘어서는 최고의 연봉을 획득하였으며, 윤석민,한기주가 하지 못했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바람의 손자였다. 아빠 종범신 , 이종범의 아들이었고,이종범은 아들이 야구하는 것을 탐탁지 않았다. 자신이 겪었던 힘든 것을 아들이 걸어가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종범 선수는 항상 부상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의 인터뷰를 보면,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야구를 할 수 밖에 없는 최고의 환경과 운명에 놓여졌으며,스스로 야구가 좋았다고 말한다.

이정후는 좋은 환경과 조건도 있었지만, 박병호 선술르 지켜 보면서 꾸준함과 야구 선수로서 좋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즉 실패할 수 있고, 항상 아빠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타고난 성격과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 사람을 이종범의 팬들은 아들 이정후에 대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평저편가하기도 하고,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정후는 그 우려를 불식시킬 정도의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으며, 같은 소속, 선수 박병호가 그에게 최고의 야구선수가 되기 위한 씨앗을 보여주었으며, 꾸준한 연습만이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아빠처럼 될 순 없지만, 스스로 자기 스스로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최선를 다하는 모습이 인터뷰 속에 드러났다. 그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격왕이 되는 것이 목표다. 좋은 환경 속에 살아오면, 자칫 오만해질 수 있지만, 이정후 선수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1998년생 이정후가 메이저리그에서,투수 박찬호, 타자 추신수를 넘어서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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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을 변화시키는 해설
샘 햄 지음, 이진형 옮김 / 바른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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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은 단순히 사실적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실물의 이용, 교보 재나 체험을 통해 의미나 관계를 들추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육적 활동이다.

그의 이러한 정의가 제안하고 있듯이, 틸튼은 해설을 읿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특성들에 숙달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방문객의 마음속에 그것들의 관계를 들추어내고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다, (-43-)

탐방객들은 종종 정확한 정보를 바란다는 것은 사실이고 이는 때때로 강의를 요구하며, 훌륭한 해설사는 요청이 있을 경우 언제나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해설의 목적은 해설 전시 작품을 읽거나 해설을 듣는 청중들이 자신의 관심과 지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자극하는 것이고, 사실에 관한 진술의 배후에 있는 보다 큰 진실을 이해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자신만의 의미를 찾도록 하는 것이다. (-121-)

해설사가 잘 개발한 하나의 테마는 청중의 머릿속에서는 여러가지 테마가 될 수 있다. (-200-)

우리는 종종 청중들이 우리의 해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를 경청해야 한다. 물론 청중들이 우리 해설을 좋아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이해하기 쉬웠는지, 재미있었는지도 알아야 한다.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반응들 외에 청중들이 해설을 들으면서 자기 자신과 어떠한 내적인 대화를 했는지, 어떠한 메시지르 수용했는지, 어떠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어떠한 교훈을 얻었는지, 해설되어지는 사물이나 장소 등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했는지, 즉 해설로부터 청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주관적으로 취한 개인적인 테마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253-)

청중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한 해설에 있어서 해설사들은 해설의 청중들에게 해설의 테마를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할지 말지,만일 해야 한다면 테마를 어느 부분에서 이야기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326-)

내가 알아내고자 했던 것은 결국 물리적 환경이 아니고 심리적인 것이었다. 청중들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해설을 다른 종류의 커뮤니케이션과 구별 짓게 해주었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청중의 마음 상태를 알아야 하고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바라보는 청중의 마음에 따라 그의 접근 방식을 조정해야 한다. 우리가 청중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려면 우리는 부지런히 청중의 관심을 끌고 유지시켜야 하는 것이다. (-373-)

내 기억 속에 첫 번째 문화해설사는 수학 여행에서, 관광지에서 만났던 문화해설사이다. 문화해설사는 문화,관광 자원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고,나름대로 테마를 여러개 개발하여, 탐방객, 청중들을 몰입하도록 돕고 있었다. 특히 대한민국 주요 관광지나 유적지, 국보, 민속촌,박물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있는 곳에는 문화해설사가 정규로 지정되어 있으며,지방자치단체에서,직접 육성하고 있다.

문화해설사는 커뮤니케이션에 능하다. 짜임새 있게 말하는 것은 기본이며, 은유와 직유에 따라서, 자유자재로 말을 할 때가 있다. 특히 강연을 하는 사람, 문화해설사는 청중, 탐방객의 수준에 맞게 테마를 만들고, 직접 개발한 여러개의 테마를 자유자재로 섞어 놓거나 중첩해 놓고 설명하기도 한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해설사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해설사의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달리 해야 한다. 즉 나이, 성별, 분위기에 맞춰서, 테마를 선장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샘 햄의 『청중을 변화시키는 해설』은 외국의 문화해설의 기준을 학술적으로 정의하고 있으며,기존의 문화해설사가 자신의 문화해설의이 방식을 교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문화해설사는 테마 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도 중요하디. 이야기로만 채워지는 문화해설도 문제이지만, 테마로만 채워지는 문화해설도 진부할 때가 잇다. 역사 관련 문화해설사는 정보 제공과 이야기, 야사를 곁들여서, 유적을 소개하고, 청중, 탐방객이 혹하게 되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테마를 정해진 시간과 상황, 계절(봄, 여름 ,가을 ,겨울) , 날씨에 맞게 소개한다. 대체적으로 문화 해설사가 퇴직한 국어 선생님, 역사 선생님이 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신의 적성에 맞아서 교직에서의 전공을 살려서 , 자신만의 차별화된 문화해설, 외국인에게 대한민국의 문화 테마를 소개하는 문화해설사가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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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정석 - 교육·인구·노동·연금·조세·정부개혁의 성공 공식
전주성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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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은 왜 필요할까. 기존 제도에 비효율적이고 불공평한 요소가 많아 지속적으로 성장의 발목을 잡거나 분배를 악화시킨다면 뭔가 바꿔애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고, 어느 정도의 결함은 정책의 차원에서 보전하며,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제도의 결함이 구조적 성격을 띄고 있어 부분적 개편이나 정책 전환 만으로 더 나아갈 가망이 없어지면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25-)

노무현 정부의 사례가 대표적인데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세계 평균에 밑도는 것은 물론이고 아시아 최하위 수준으로 뒤처져 있었다. 사후적으로 보면 당시의 낮은 성장률은 상당 부분 추세적으로 하락하던 잠재 성장률을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 고도성장기의 향수에 젖어 있던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경기도 안 좋은데 복지 비전 같은 장기 정책에 관심을 쏟고 있는 집권 정부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나아가 2005년부터 시행한 종합부동산세는 과세 대상이 제한적이었는데도 '경제는 못 살리며 세금이나 올리는 정부' 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78-)

나아가 일하는 여성들이 늘게 되면 비정상적인 수준과 방식으로 자녀 교육에 혼신을 쏟아붓는 '강남 엄마'들도 줄어들 것이다. 제대로 교육받은 요즘의 고급 여성인력은 가사 문제에 집중하는 전통 사회의 안방 마님 역할에 만족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자녀를 의대반이나 영재반이니 하는 식으로 내모는 것은 어쩌면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는 대리 만족 욕구 때문일 수도 있다. (-166-)

고양이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쥐들이 모였다. 다들 그놈 목에 방울을 거는 것이 최선이라고 열변을 토했지만 누가 나설 것이냐는 질문에는 입을 다물었다. 세금을 올리는 일이 이런 문제다. 복지지출 등 재정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는데 그 재원을 마련할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선뜻 나서는 정치인은 드물다. 결국 재정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 이런 소극적 대응이 관행처럼 지속되다 보면 재정규율이 무너지면서 정부부채가 불어나게 된다. (-250-)

정치 세력이 인기 영합적인 정책에 매달리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런데 복지 포퓰리즘이 유난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성격의 정책들이 정부 재정의 건전성을 해치기 쉽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전염병처럼 외환위기르 겪은 남미 국가들의 사례처럼 적자 재정이 지속되다 보면 돈을 찍어 재원 부족을 해결하려는 유혹이 생기기 쉽고, 이는 물가 불안이나 국가 신뢰도 하락 등의 과정을 거치며 경제 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320-)

대한민국 6개 개혁으로 교육, 인구, 노동, 연금, 조세,정부 개혁이 있다. 이 여섯가지 개혁은 국민의 요구에 다라서,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바뀌게 된다. 개혁이란 완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실패한 개혁을 보완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국민의 요구가 커져가고 있었다.개혁의 본질은 법을 만들고,기존의 법을 고치는 것에 있다.

첫번째, 교육 개혁이다. 사교육 시장과 공교육 시장으로 나누고 있는 가운데,교육에 대한 개혁을 강조하고 있으며, 유럽 교육의 장점을 대한민국에 접목하고자 한다. 특히 번 돈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교육에 대한 자본이며, 생활비를 줄여서라도 ,내 아이의 교육은 줄일수 없다는 게 보편적인 정서였다.

두번 째 , 인구 개혁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산부인과가 폐업하고 있다. 그 자리에 실버 세대를 위한 용양 시설이나 병원이 생겨나고 있으며, 큰 정부를 지향하는 진보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 간에 개혁에 있어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문화 가정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으며,그 과정에서,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우리의 이질적인 정서는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노동 , 연금,조세 정책은 세금과 연관되어 있는 정책이다. 복지에 관한 세금이 커지고 있으며,그로 인해 과거의 퇴직 연령을 올리고, 연금을 받는 시기를 늦추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연금 개혁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 것인가로 이어지고 있으며, 조세 개혁좌도 정부에 큰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마지막 정부 개혁이다. 정부 개혁은 IMF 때도 제대로 하지 못한 개혁이다. 대체로 정부 개혁은 정부의 권한은 분산하는 개혁이며, 사법,행정, 입법,3권 분립에 대한 힘의 균형을 잡아보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4년마다 뽑는 국회의원의 수에 다라서, 정부 개혁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으며, 한 정당에서, 확보하는 국회의원 수가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정부 개혁 뿐만 아니라 개헌도 가능하다. 앞으로 2024년 국회의원 선거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이유도, 정부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ㅓㅂ을 만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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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과 제주역사 - 4.3길찾기 6
박찬식 지음 / 각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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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후반부터 제주청년연합회의 중심 인물들은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제주도 야체이카를 구성하여 갔다. 제주청년연합회의 실질적 주도자인 송종헌은 1927년 7월에 광주에 가서 전남도당의 책임자인 강석봉으로부터 입당 권유를 받고 정식 입당하였다. 이어서 그는 1927년 7월 25, 6일 광주의 광양여관에서 개최되었던 전남도당대회에 참가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전국대회 출석 대의원으로 서태석을 뽑고 후보로 송종현을 선정하였다. (-53-)

제주도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가들은 이 시기에 재건 조선공산당 제주도야체이카를 결성하여(1931년 5월 16일), 곧바로 위의 테제에 대한 비판회를 가졌다. 당시 야체이카의 구성원은 대체로 제주청년동매의 간부들로서,주로 1920년대 중반 이후 신인회와 조선공산당 제주도야체이칸의 구성원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지역에 기반을 둔 운동가들이라 할 수 있다. 일람표를 통해서도 재건 야체이카사건에 관련된 자들 가운데 사건 이전 도일 경력이 있는 자는 김태안(79, 김태륜(48)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32-)

한편 1948년 1월 22일 조천면 신촌리에서 열린 제주도당 지도부와 비밀회의가 경찰에 적발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1월 중순 신촌리 출신 남로당 조직부 연락과장 김생민을 체포한 뒤 그로부터 주요 정보를 확인한 뒤 남로당 조직부 아지트가 있던 신촌리를 급습하였다. 당시 조직부장은 김달삼인데, 1948년 초에 아지트를 신촌리 민가에 두고 있었다. 미국 정보보고서에는 모임에 참석했던 남로당 간부를 비롯한 221명이 검거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238-)

1949년 목포 형무소 탈옥사건은 대한민국 수립 이후 4.3사건, 여순사건,숙군으로 이어지는 이승만 정권의 폭력적 반공국가 수립 과정에서 빚어진 연속적 사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목포형무소 탈옥사건 1년 뒤 같은 처소에 대한 일괄 '숙청'이 이루어진 것은 우연의 결과는 아니라고 본다. (-367-)

전쟁이 발발했을 때 제주도에는 4.3 사건이 아직도 종료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었다. 제주도는 전쟁 이전부터 극단적인 공포와 굶주림, 격분, 좌절, 체념 등의 집단적 일상성과 정서가 사회의 인간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었다. 제주도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은 아니었지만 , 주민들은 4.3의 '내전'에 이어서 연속된 전쟁을 겪었다. 예비검속과 형무소 재소자 학살(죽음의 일상화), 잔여 유격대 토벌과 방위 조직 동원(내전의 연속과 동워늬 일상화), 피난민의 입도에 따른 식량난의 가중(배고품의 일상화),피난민(외래밍)과의 갈등(갈등의 일상화),레드콤플렉스 극복을 위한 참전 등 작은 전댕을 섬 내부에서 벌이고 있었다. (-430-)

4.3 특별법의 규정에 따라 4.3 위원회는 2003년 10월 15일 4.3의 진상을 담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보고서를 확정했다.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진상조사보고서에 근거해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실을 정부가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진상조사보고서는 4.3 을"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 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도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하였다. (-516-)

1946년 12월 자유신문은 "제주도가 도로 승격하는 것에 관해 보수진영에서는 당국의 방침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나, 도민의 태반은 人委(인위) 를 위시하여 도로 승격한 것을 아직도 반대하고 있다"라고 전하며,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로 네 가지를 들었다.첫째로 본토와 고립됨으로써 식량 등 물자교류가 힘들 것, 둘째 모든 행정구역의 개편은 미군정이 아닌 민족의 뜻에 의해 수립될 우리 정부에 맡기고 싶어하는 것, 셋째 도 승격 이후 기구가 확대되어 세금이 늘고 2백명읻던 경관이 곱으로 느는 것, 넷째 제주도의 군사기지화에 대한 우려 등이었다. (-622-)

제주섬의 문화 정체성의 변화과정을 제주 역사의 정치적 요인, 특히 대외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제주인들은 고대 탐라국의 독립 경험에서 부터 비롯된 자율성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주인의 자립적,자강적 정체성으로 지속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11세기 이후 고려와 조선과 같은 중앙정치 체제의 강력한 구심력에 이끌리면서 중앙에 대한 순응과 더불어 반발하는 사례도 빈발하였다. 중앙의 대리자인 지방관의 수탈 속에서도 순응의 정체성은 '조냥'과 '수눌음'으로 표출되었고, 반발의 정체성은 민란으로 표출되는 저항정신, 저항을 초월한 別國(별국) 의식으로 승화되었다. (-731-)

2003년 노부현 정권 당시, 4.3 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2만 ~3만에 달하는 제주도민의 죽음에 대한 진실 규명,과거사 정리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1947년 3월 1일 제주도민 6명이 경찰에 의해 죽어 나갔으며, 제주도가 공산당(남로당 제주도당 세력) ,국가 전복을 원하는 북한사회주의 세력이 제주도 땅에서, 한라산 인근을 둘러싸며, 경찰과 관군에 대항햇다. 우리는 1948년 4.3 에 대해서, 4.3 사건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4.3 사건은 폭동, 반란, 항쟁, 봉기, 양민학살로 다르게 불리고 있으며, 4.3 특별법이 제정되고 난 이후 4.3 사건 으로 통일 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1978년에 발표한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이 널리 알려진 이후의 변화였다. 여기에 최근 작품 으로 세권으로 된 『제주도 우다』나 나왔으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다시는 4.3 사건의 비극이 재현되면 안 된다느 경종을 울리고 있다.제주도 4.3 사건은 공식적으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였으며, 6.25 전쟁 기간에도 이어졌다.

30만 인구 제주도 도민이 제주도에 삶의 터전을 만들고 있었다. 1945년 광복 후, 미군정이 한반도에 들어섰으며, 1948년 4월 3일은,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총선거가 치러져 제헌국회가 구성되기 직전이었다.이승만 정권이 남한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였던 북한과 김일성 정권은 제주도 땅에 제주도 사회주의 계열의 남로당 제주도당 세력 운동가들을 투입하였으며, 재건 조선공산당 제주도야체이카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책에는 1920~1932 년 사이에 , 제주도 사회운동 주도 세력이 표로 정리되어 있었으며, 조천만세시위운동(1919) , 제주노동회(1923), 제주청년회(1924), 신인회(1925),함덕 협성청년회 노동야학(1925), 제주청년연합회(1926), 제주소년연맹(1926), 조선공산당야체이카(1927), 한수풀소년단(1927), 천황모독 기사투고사건(1928), 화북청년회 학생처벌 항의사건(1929), 제주 무정부주의결사<우리계> (1929), 조천 노동 야학 사건(1930) ,성산포 격문사건(1930),신창독서회 주도(1930), 혁우동맹(1930) 재건 야체이카(1931), 연평리 비밀결사<적> (1931), 제주 청년동맹원 사건 (1931), 종달리 농민회 (1931)화북청년동맹원 혁명가 제창사건(1931), 함덕 비석사건1931),구좌해녀 투쟁(1932), 강창보 탈출 방조사건 (1932) ,조천연설사건(1932), 제주도 적색농조 창립준비위원회(1933),함덕리 독서회(1934), 신좌소비조합 상무이사(1938), 조천소비조합사검(1939) 등이 있었으며, 1945년까지 사회운동이 이어졌으며, 제주도 4.,3 사건이 발생할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으며. 6.25 전쟁으로 인해 제주도로 피난온 3만 인구가 제주도 땅에 살게 되면서, 극심한 공포와 혼란은 가중된다.

이 책을 읽으면 , 북한 사회주의가 제주도에 물들어가는 과정 속에서,제주도 양민학살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승만 정권 다시 우리가 보여주었던 역사적 사실이 정리되어 있으며, 대만에 2.28 사건이 발생한 것처럼,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고, 통치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저자는 4.3 사건을 6.25 전쟁의 축도(縮圖) 로 보고 있으며, ,1048년 10월 19일 여순사건(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일으킨 사건.) 또한 ,4.3 사건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즉 두 사건은 별개의 사건이 아닌 , 대한민국에서,이승만 정권이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느끼게 해준 것과 동시에, 70 년 내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야만 , 국가 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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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남자들 - 남편의 외도 방지하기에 필요한 결혼 준비 가이드
고미성 지음 / 좋은땅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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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7: 7~8) 라고 말씀에 약속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고 사회적인 풍토가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은 변하지만, 영원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남자의 바람기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영적 원인이 무엇인지 보여 주십니다. (-13-)

"놀랍게도 다수의 가정폭력 사건이 '아내의 성관계 거절'에서 비롯된다는 보고가 있다. 얼마 전 나를 찾아온 중년 부부도 그랬다. 아내는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 반면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불만이 쌓일 대로 쌓였다. 급기야 남편은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할 때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세상에 섹스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이 있을까 싶지만 이는 분명 실화다." (-68-)

"남자들은 여자들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결혼합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변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그들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들은 서로에게 실망합니다." (-134-)

현대 여성에게 일은 자신의 삶에 고기처럼 여기고 남편은 샐러드 정도로 취급합니다."

특히 현대 직장 여성들에게 성공에 대한 유혹과 자신의 능력, 기술, 지식과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다면, 이 부분까지 해야 하는 돕는 배필의 사역이 어렵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독립심이 강하고 사회적 성취감에 대한 야망이 큰 아내는 이러한 남편의 약점 때문에 자신의 삶에 박해를 받는 것이 아닌가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202-)

"내가 내 눈과 서약했으니 어찌 처녀를 정욕의 눈으로 볼 수 있겠는가?내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위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무엇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의롭지 못하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재앙을 내려 벌하실 것이 아니겠는가? (욥기 31: 1~3) (-248-)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가지 정욕과 향락에 종 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니,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여 하심이라." (-308-)

불륜이라는 죄앙에 바지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지 못한 남자들은 외도에 취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고 거듭난 남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크리스찬 아내들도 남편이 외도를 하면 어떡하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남자들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온 인물들 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주의 큰 은헤를 입었던 신실한 다윗 왕도 간음을 했으니 아내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358-)

지혜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물의 이치를 빠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세상적 지혜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로 구분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혜란 무엇일가요? 신명기 4장 5~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 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아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423-)

작가 고미성은 경건한 결혼과 가정 사역으로 하나님의 제자이자,.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왔으며, 성경 공부로 얻은 지식과 지혜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하고 있으며,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분노, 미움, 성남, 원망, 두려움, 불안감, 우울함, 부신) 을 긍정적인 생각( 양심, 지식, 지혜, 이해, 연민, 은혜,자비, 겸손, 통찰력)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경혼은 기대와 설레임, 행복을 위해서, 부부가 함께 하고, 영적인 관계,육체적인 관계, 정신적인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 부부사이의 결혼과 욕체적 관계와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것을 극복하는 지헤가 필요하다. 필자는 『위험한 남자들』 에서, 결혼 이후 발생하는 불평, 불만, 비판이 부부갈등으로 이어지며, 서로간의 가치관의 차이, 성의 차이로 인해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로 상처를 주고, 자울질하며,잣대를 들이대는 행동은 필연적으로 아내는 난편에 대한 실망과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부관계의 회복에서 기본이 되는 것이 자제력(Self-Control)과 의지력(Will-Power) 이며, 위로와 격려, 칭찬과 존중,배려로 사탄을 무찌른다면 긍정적 영적인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남편의 외도와 불륜의 시작은 ,바뀌지 않으려는 남편과 바뀌려 하는 아내의 심리적 욕구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르시시즘, 우상화, 가스라이팅과 같은 문제가 나타나며, 영적인 사랑과 육체적 사랑에 대한 결핍은 필연적으로 부부갈등을 넘어서서, 자신의 육구를 해소하기 위해, 남편의 외도로 이어지고 있다. 건강한 부부 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부부간에 사랑과 존중 배려가 우선 되어야 하며, 겸손과 온유, 사랑과 참음으로서, 서로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고,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면서, 남성은 상대적으로사회적 열등감을 가지며 살아간다. 아내의 역할와 남편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것을 채워 나가는 영적인 지혜, 영적인 삶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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