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 우리가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관하여
에리카 산체스 지음, 장상미 옮김 / 동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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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의 솔직함과 유머 감각을 불편해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살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강간을 당하는 것이다. 나는 무수한 방식으로 폭행당했고 분명히 나를 강간하려 드는 남자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기적적인 일이지만 축하하기에는 너무 슬픈 일이다. (-576-)

이처럼 상호연결성을 깨닫던 시기에 나는 실존적 고비를 수없이 겪었다. 완전한 평온에 잠겨 있다가도 갑자기 우울감에 휩싸여 안에서부터 무너지곤 했다. 이럴 때는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고 , 내면이 속속들이 아팠다. 세상이 견딜 수 없는 정적 속에서 맥동했다. 시간이 진득한 꿀처럼 늘어졌다.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 를 처음 읽었을 때는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암울한 시각에 충격과 위안을 동시에 받았다. 거울을 보며 자기 얼굴을 살펴보던 주인공이 "다른 사람들도 자기 얼굴을 평가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까? "라고 묻는다. 내가 살면서 내내 해왔던 질문이다. (-134-)

혼자 사는 것은 여러모로 즐거운 일이었지만, 곧 내가 밥을 제대로 챙겨 먹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녁으로 송어 통조림과 크래커만 먹는 날도 많았다. 한 번은 나초 칩과 소스만 먹고 소파에서 울다가 잠든 적도 있었다. 어른 답게 스스로를 돌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혼자 끼니를 챙기는 게 귀찮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살든 나무랄 사람도 없었다. (-218-)

죽고 싶은 기분으로 강의를 계속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학생들 앞에서 성장 소설에 대해 강의했다. 연구원 과정을 망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만족스럽게 지내는 척하며 다문화 사회에서의 성장 소설에 담긴 이야기 전개 방식을 논했다. 나는 시서로에서 자라서 프린스턴까지 온 여자니까. 이 똑똑한 학생들에게 걸맞는 교수가 되기 위해서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다. 아무래도 내 병보다 멕시코인으로서의 노동 윤리가 더 강했던 모양이다. 부모님은 매일 공장에서 일하셨는데 강의 정도야 할 수 있지. (-247-)

윌과 나 둘 다 요리를 할 수 없을 만큼 지칠 때면 배달음식을 주문했다. 필요한 것은 그냥 다 사서 썼다. 기저귀, 이유식, 가구, 장난감, 옷, 그밖에 아이를 좀 더 쉽게 돌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이든, 그러니 돈이 정말 많이 들었다. 저임금 전일 노동이라는 계약 속에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297-)

멕시코 이주 노동자의 딸 에리카 산체스다. 젋은 유색인 여성이며, 양극성 장애환자이자,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아온 여성,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표방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현실에서는 요리조차 못하는 실존적 위기를 겪고 있는 이주 여성이었다.

그가 쓴 책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은 독특하면서, 삶,실존,존재의 경계를 넘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멕시코 여성이 교수를 한다는 것,강의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미국에서, 백인사회 틈바구니에서, 멕시코 여성이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시와 소설 쓰기르 가르치고, 드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기까지, 수많은 편견과 억압,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폭려과 강간에 노출되었으며,꿋꿋하게 버텨왔으며, 남편과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여성들은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슬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수많은 고뇌들을 끊어내고자 하였던 한국 여성들은 에리카 산체스기 보여준 솔직함에서, 자신의 욕망을 밀고 나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서로 연대하고, 화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찾아 나서고 싶었을 것이다. 할머니- 어머니- 딸로 이어지는 여성으로서 실존적 아픔에 대해서, 불안과 공포 속에서,사회의 견고한 틀에서,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 안에는 도덕적 우월감이나,윤리적 강박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성이 아닌, 젠더가 아닌 인간으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꿋꿋하게 가고자하는 , 구질구질할 수 밖에 없는 멕시코 유색 인종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계급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 한 여성의 실존적 괴리감과 함께 보편적인 일대기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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