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라니, 좋잖아요 - 우리나라 작은 섬 텐트에서의 하룻밤 벨라루나 한뼘여행 시리즈 3
김민수 지음 / 벨라루나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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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가까운 곳에 살다보니 섬에 갈 일이 많지 않았다. 교통 불편으로 인해서, 만약 뱃길이 끊긴다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기껏해야 부산이나 동해안 강릉,동해, 삼척, 울진 쪽을 주로 다닐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보면서 그동안 알고 있었던 섬도 보이고 서해나 남해에 살고 있다면 직접 가보고 싶은 욕심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서 바닷가를 구경하면서 책을 맘껏 읽고 싶은 마음, 캠핑도 즐기고 트레킹도 할 수 있는 곳에 나에게 안성 맞춤이다. 


섬에 간다면 우선 신경써야 하는 것이 많다. 우선 섬에 대한 정보도 중요하지만 날씨는 꼭 체크해야 한다. 여기서 가까운 육지에서 섬까지 가는 시간과 돌아오는 시간또한 확인해야 하며,그 지역에 사는 사람과 친해질수 있는 친화력 또한 필요하다. 섬이라는 특성상 지하수와 생필품은 부족하며, 화장실에 가는 것 또한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섬에서의 정보는 현지인들을 통해서 확인하고 체크할수 밖에 없다. 


섬은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그건 바로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철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육지 음식과 다른 회.. 각 지역마다 각 섬마다 생산되는 회 또한 다양하며, 섬 여행을 따라 떠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특히 실미도나 봄의 왈츠가 촬영된 곳이나 이세돌이 태어난 비금도로 한번 떠나고 싶어진다. 


역시나 책을 읽으면서 눈길이 가는 건 진도였다..관매도와 서거차도.. 그 두 섬은 세월호의 흔적이 남아있다 진도 팽목항에서 출발해야 도착하는 곳..여전히 어민들은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며, 그곳의 풍경 또한 2년전과 많이 달라졌다. 물론 물길이 센 맹골수도 주변에는 그곳을 지나는 배들이 안전에 신경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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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수업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판미동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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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홀로 있는 한 남자에겐 사연이 있었다. 5년째 아내도 없이 아이도 없이 혼자 지내는 남자. 그 남자를 보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말을 하고 지나간다. 물론 그 남자의 개인적인 사생활이 아닌 산에 지내니까 좋겠다, 부럽다.걱정이 된다.지루하지 않냐....자신도 산에 살고 싶다는 말.. 하지만 그 남자는 산이 좋아서 그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 도피.그는 자신에게 지워진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며, 그 운명이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자신을 놓고 떠난 무정한 사람.그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만 내려 놓고 떠난 것에 대해서 후회를 하게 된다. 아내도 떠났고 아들도 떠나고 혼자 남았으며, 산속에서 아내를 그리워하며, 자책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타임머신..그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타임머신이었다. 과거로 돌아가 아내의 마지막 순간에 그 순간을 벗어나는 것이 그에게 유일한 치유였다.하지만 그럴수가 없었으며, 산속에서 사람들을 보면서 아내와 함께 하면서 느꼈던 아내의 행동과 생각들, 그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아픔이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마테오였으며, 아내의 이름은 노라였다. 그리고 첫째 아이는 왕의 이름을 딴 다비데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사라졌으며, 마테오의 아버지만 아들이 살아난 것에 대해 안도하였으며, 아들이 망가지고 잇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순식간에 저질러진 일들..마테오는 그 사건에 자신이 휘말리지 않는 것에 대해 다행이다 생각하는 것이 아닌 함께 하지 못한 것이 후회였다. 미라의 몸이 되었던 자신의 모습..아내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의사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산속에서 살아가는 마테오는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였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하였기에 아들이 왜 죽었는지 알지 못하였으며, 부모의 죽음은 마테오에게 또 다른 아픔인 것이다. 


이 소설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속에서 비극이 일어날 때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마테오를 통해서 투영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마테오와 같은 운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 사람에게 쉽게 말하고 쉽게 스쳐 지나 간다. 보여지는 그대로 판단하고 보여지는 그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에게 상처줄 마음이 없었지만 결국 상처를 주게 된다.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는 남자와 그 남자가 살아가야할 이유를 찾아줘야만 하는 또 다른 남자. 소설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비극을 경험한 남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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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왜 생의 마지막에서야 제대로 사는 법을 깨닫게 될까
찰스 E. 도젠 지음, 정지현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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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만 하여도 오늘날 요양원 체계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는 병원이나 집에서 돌아가셨다. 우리사회의 복지가 점점 좋아짐으로서 집이 아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인생을 마무리 하는 경우가 증가하였으며, 외할머니 또한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물론 요양병원에 들어간 것은 할머니의 자의적인 결정이 아닌 준비되지 않은 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처음 골절로 인하여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요양병원에 입원할 당시에는 치매진단을 받고 입원한 상태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와 다른 요양원 의료체계를 보면서 부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나 자신이 경험해본 요양병원은 치료 목적이나 회복이 아닌 생명 유지를 위해서 요양병원이 존재한다는 느꼈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청결하지만 살아있다느 걸 느끼지 못하였으며, 통제는 있지만 자유로움은 없었다.요양 병원에 들어서는 1층과 2층은 물리적으로 격리 되어 있었다. 


생의 마지막에서야 깨닫게 되는 것은 바로 건강이다. 평소 건강에 소홀히 함으로서 만성적인 질병이나 나이로 인하여 생기는 질병들,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요양원에 입원하게 된다. 재활이나 회복의 성격이 아닌, 요양원에서 병원이 주는 시스템에 따라 씻고 의식주를 해결하게 된다. 시설은 좋지만 자신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스스로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워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점점 상실되어 감을 느끼기 때문에 두려워 하게 된다. 평소 익숙한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살다가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면, 그들은 체계적인 의료 서비스와 깨끗한 병원 시설을 보여주지만 낯섬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평소에 느껴보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마주하게 되고, 평소 집에서 해 오던 생활을 하지 못함으로서 일상 생활이 단순해지고 무기력해진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못한 느낌을 가지는 것..요양원에 있는 환자들이 치료가 덜 끝났지만 퇴원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환자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저자은 그런 일을 하고 있으며 심리치료사로서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노인들의 심리 치료를 체계적으로 하는 곳은 많지 않다. 요양원..일반 병원에서 오래 투숙할 수 없다는 한계점으로 인하여 노인들은 완전한 치료가 끝나지 않은채 요양원에 오게 된다.그들에게는 감정을 드러낼 수 있고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책속에서 50년간 집을 떠나기 싫엇다는 베티앤의 이야기에 대해 이해하였다. 베티앤의 모습이 바로 외할머니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추석 다음날 요양원에 가기 싫어서 무리하게 집 앞을 나서다가 크게 넘어지셔서 골절을 입었던 기억. 외할머니께서는 그로 인하여 회복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정서적인 소통능력과 친밀한 인간 관계가 노인일수록 더욱 필요하다.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세상 속에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걸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소일거리,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일을 구준히 하는 것..그것이 바로 노년의 마지막 삶을 행복하게 해줄수가 있다.그것이 바로 노년의 행복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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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생의 마지막에서야 제대로 사는 법을 깨닫게 될까 - 삶의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25가지 인생질문
찰스 E. 도젠 지음, 정지현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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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만 하여도 오늘날 요양원 체계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는 병원이나 집에서 돌아가셨다. 우리사회의 복지가 점점 좋아짐으로서 집이 아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인생을 마무리 하는 경우가 증가하였으며, 외할머니 또한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물론 요양병원에 들어간 것은 할머니의 자의적인 결정이 아닌 준비되지 않은 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처음 골절로 인하여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요양병원에 입원할 당시에는 치매진단을 받고 입원한 상태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와 다른 요양원 의료체계를 보면서 부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나 자신이 경험해본 요양병원은 치료 목적이나 회복이 아닌 생명 유지를 위해서 요양병원이 존재한다는 느꼈기 때문이다. 깨끗하고 청결하지만 살아있다느 걸 느끼지 못하였으며, 통제는 있지만 자유로움은 없었다.요양 병원에 들어서는 1층과 2층은 물리적으로 격리 되어 있었다. 


생의 마지막에서야 깨닫게 되는 것은 바로 건강이다. 평소 건강에 소홀히 함으로서 만성적인 질병이나 나이로 인하여 생기는 질병들,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요양원에 입원하게 된다. 재활이나 회복의 성격이 아닌, 요양원에서 병원이 주는 시스템에 따라 씻고 의식주를 해결하게 된다. 시설은 좋지만 자신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스스로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워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점점 상실되어 감을 느끼기 때문에 두려워 하게 된다. 평소 익숙한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살다가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면, 그들은 체계적인 의료 서비스와 깨끗한 병원 시설을 보여주지만 낯섬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평소에 느껴보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마주하게 되고, 평소 집에서 해 오던 생활을 하지 못함으로서 일상 생활이 단순해지고 무기력해진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못한 느낌을 가지는 것..요양원에 있는 환자들이 치료가 덜 끝났지만 퇴원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환자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저자은 그런 일을 하고 있으며 심리치료사로서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노인들의 심리 치료를 체계적으로 하는 곳은 많지 않다. 요양원..일반 병원에서 오래 투숙할 수 없다는 한계점으로 인하여 노인들은 완전한 치료가 끝나지 않은채 요양원에 오게 된다.그들에게는 감정을 드러낼 수 있고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책속에서 50년간 집을 떠나기 싫엇다는 베티앤의 이야기에 대해 이해하였다. 베티앤의 모습이 바로 외할머니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추석 다음날 요양원에 가기 싫어서 무리하게 집 앞을 나서다가 크게 넘어지셔서 골절을 입었던 기억. 외할머니께서는 그로 인하여 회복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정서적인 소통능력과 친밀한 인간 관계가 노인일수록 더욱 필요하다.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세상 속에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걸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소일거리,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일을 구준히 하는 것..그것이 바로 노년의 마지막 삶을 행복하게 해줄수가 있다.그것이 바로 노년의 행복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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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소 싱크대 앞
정신실 지음 / 죠이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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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책 제목을 보면 그 책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지게 된다. 때로는 제목에 낚여 후회할 수도 있고, 때로는 잘 골랐다고 생각할 떄도 있다. 이 책은 후회와 잘 골랐다의 가운데가 아닐까 생각했다. 성소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듯이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교회가 아닌 일상 속에서의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물짓게 만드는 책,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두 남매를 키우는 엄마로서, 교회 죽순이에서 교회 언니로,지금은 교회 사모로서 목회자 남편의 아내로서,며느리로서,딸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TV 도 없고, 게임기도 없는 집..그래서 아들이 사달라고 하는 닌텐도 게임을 안 사주기 위해 다양한 묘책을 만드는데, 그 과정이 재미가 있다. 이상과 현실 속에서, 이상을 선택해야 할지, 현실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런 모습..그건 다른 교회 사모들 또한 그렇지 않을까 상상할 수 있다. 


어릴 적 행복한 아이로 보였던 저자는 하지만 그건 가짜 행복이었다. 슬픔을 감추기 위해서, 아픔을 감추기 위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에 대한 슬픔을 친구들 앞에서 감추고 있었던 것이며, 친구의 쪽지는 저자에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착각을 하고 실수를 하고 오해를 하면서 지내는 것 같다. 보여지는 것이 그게 모두가 아니라는 걸,그걸 여기서 느끼게 된다. 행복해 보이는 누군가에게 또다른 그늘이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7장 엄마의 미안한 육체..아흔을 바라보는 친정엄마의 이야기 속에서 나의 고모가 생각이 났다. 작은 고모 또한 40넘으신 할머니의 늦등이 딸이었다. 세 오빠들 사이에서 막둥이였던 작은 고모..국민학교 소풍 사진을 보면 엄마와 딸이 아닌 할머니와 손녀 딸이 같이 온 걸로 보여진다. 지금 할머니께서 살아계셨다면 100세 가까운 나이였으며, 어쩌면 저자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아흔이 넘은 엄마 곁에서 친정엄마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우리 삶에서 죽음 이라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느꼈으며, 친정엄마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그렇게 늙어가고 엄마는 자식에게 자식은 손자 손녀에게 삶이 되물림 된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비슷한 것일 수 있다. 돈과 명예,직업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나 스스로 그 사람을 거기에 비추어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두 다 똑같은 아픔, 똑같은 슬픔과 아픔을 가지면서 견디며 살아가는데,그걸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저자의 인생이야기에서 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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