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_0419
달빛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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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봉과 지유는 열일곱 살 단짝이었다. 5년 전,넝마주의를 할 때부터 둘은 죽이 맞았다.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가난은 가난을 알아보았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지유는 수봉을 알아보았다. 지유도 그렇지만 수봉도 모난 구석 없이 두루두루 사람들과 어울리려 들었다. 소위 '빤스' 한 장 없이 전쟁 통에서 살아남은 고아 답게 밥만 굶지 않아도 수봉은 행복해했다. 지유와 수봉은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가족인 양 바닷가 앞 댓거리 판자촌에 8천환짜리 방을 얻었다. (-123-)

민욱의 사촌 형은 짙은 소주 향기를 내뿜었다.

"아버지가 나를 봐주는 건 그것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대학을 가고 나서 깨달았어. 세상은 아버지가 없어도 되는 곳인지도 모른다. 나만 영웅이 된다면 모두 나를 우러러볼지도 모른다. 그런 치기 어린 욕심에 휩싸였어. 한번 그릇된 생각에 빠지고 나니 똑바로 보이거나 판단할 수 있는 게 없더라. 어쩌면 월남전에 참전하겠다는 결정은 내 욕망의 마지막 그릇된 배출구였는지도 몰라. 거기서 욕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가장 밑바닥을 보았어." (-50-)

과거라면 어땟을까.

현미는 질곡의 세월을 살았다. 어려서는 한국 전쟁을 겪었다. 포화와 잿더미는 무섭고 불안했다. 불안을 틈타 독재는 독재로 이어졌다. 총과 칼이 쑥대밭을 만들고 탱크를 앞세운 군인이 국민 위에 섰다. 근면했던 한국인은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을 발화시켰다. 거친 일을 위해 남자들은 바깥으로 나섰고, 자연스레 남성 중심으로 사회는 재편되어 커져갔다. (-132-)

현실적인 문제는 초이의 등장으로 불거졌다. 초이가 5천 달러를 들고 나타났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세헌은 불법 이민자였다. 취업 비자가 아니라 관광 비자였던 것이다. 보나 페나는 가나인이었고, 나오코는 세헌과 달리 취업 이민자였다. 거기에 더해 에리자베그 역시 불법 이민자였다. 서명했던 병원 서류가 발목을 잡을 위기였다. 엘리자베스의 죽음을 확인하려 경찰이 오게 되면 세헌은 추방당하고 말 것이다. (-203-)

아버지는 '4.19 혁명'을 축제로 기억했다.

아버지에게 1960년 4월 19일이 축제로 기억된 이유는 박현미라는 여인 때문이었다. 박현미에게는 그날이 상처인 동시에 동기 부여가 된 날이었다.

아버지는 박현미을 흠모했고, 박현미는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다.

두 사람의 인생은 그날 이후로 극명하게 갈렸다. (-277-)

소설 『#축제_0419』의 시대적 배경, 역사적 배경은 1960년 4월 19일에 일어난 4.19 학생운동이었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 이기붕 에 의한 3.15 부정선거는 3.15 의거로 이어졌으며,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소설에서 1944년생 동갑내기 전쟁 고아 수봉과 지유에게, 1960년은 10대 어린 나이에 넝마주의를 줍고 살았던 가난한 이들의 표상에 불과했다.

역사와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짐으로서,그 때의 기억을 현재에 소화하고 있다, 죽음을 눈앞에 목도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같은 역사를 다르게 바라본다.1940년대에 태어난 주인공이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바라볼 때,느꼈던 감정의 소용돌이는 그 누구도 느껴지지 않는 침울함 이였을 것이다.

4.19 혁명 당시 마산은 대한민국에서, 일곱번째로 큰 도시였다.지금은 마산창원진해로 불리는 통합된 광역시로 존재하지만, 엄연히 마산은 경남을 대표하는 지역이다. 1960년에 발생한 마산을 중심으로 일어난 혁명은 다시, 1979년 부마항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역사적 굴레를 하나의 소설에 풀어내며, 가난하고 넝마주의를 줍고 다녔던 판잣집 사람들이 월남전에 참전하고, 경제적 궁핍에서 살아남아, 현재를 마주할 때,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갑자기 나타날 수 있고, 고통이나 슬픔의 역사도 어떤 이들에겐 축제가 될 수 있다. 같은 날에 누구와 함께 하였고,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서, 그 역사는 역사가 될 수 있고,축제로 남을 수 있다. 소설에서, 죽음, 그리고 죽음, 내 죽음과 타인의 죽음, 나에게 죽는 죽음과 남이 죽이는 죽음, 오로지 죽음이 무엇인지 확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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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다녀왔습니다 - 무작정 떠난 세계 여행 1330일
임윤정 지음 / 비즈토크북(Biz Talk Boo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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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다. 비상금이 든 복대와 핸드폰, 사진이 저장된 외장 하드를 넣어둔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카드 지갑이 나와 있는 걸 보니 가방을 뒤진 게 분명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머릿속 뇌 기능이 정지한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머릿속에서 '왜?'라는 말만 메아리처럼 되풀이되고 있었다. 왜 내가 버스에서 내렸을까?근데 왜 하필 나지? 외장하드는 왜 들고 갔을까? 왜? 왜? 왜? 차라리 돈만 가져갔다면 마닐라 때처럼 손바닥 털듯 툭툭 털어 버렸을 텐데. 사진이 없어진 것은 어떻게 해도 털어지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엘리, 세상에서 가장 예쁜 커플, 마린과 욘, 손수하고 아름다웠던 말랑 아이들, 쿠칭의 친할머니 같았던 안티...함께한 추억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허무하고 공허했다. (-37-)

런던 거리는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 자리 잡은 빅토리아푸의 건물을 보면 해리포터가 떠올랐다. 건물의 벽돌 뒤에는 정말 마법 세계가 있을 것 같았고 ,이층 버스를 타고 시내의 좁은 도로를 지날 때면 버스가 갑자기 줄어드는 것 같은느낌이 들었다. 바쁜 도시인의 전형처럼 서류 가방과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다니는 사람,전신에 피어싱을 한 남자, 파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가죽 재킷을 입고 있는 할머니, 추운 날씨에도 탱크톱을 입은 여자 등등,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114-)

내것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돈이 없으니 저녁도 못 먹을 거 같아서 음식을 해놓고 기다렸다고. 어리둥절하면서 감동스럽고,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너무 배가 고파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밥만 먹었다. (-147-)

우리가 묵었던 곳은 남녀혼성 도미토리였다. 전부 2층 침대였고, 빈 곳은 위층밖에 없었다.연세가 있으신 두 분이 침대에 올라가는 걸 힘겨워해서 나머지 두 사람이 도와주고 있었다. 모두 자고 있으니까 불도 켜지 못하고 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는 상황이었다. (-204-)

수도원 전체가 그랬다. 겉면은 벽돌처럼 단단하고 차가워 보였지만, 안은 한없이 부드럽고 안온했다. 세월에 의해 벗겨지고 떨어져 나간 벽화들은 수도원에 성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벽에는 여기저기 예수상과 성모 마리아상이 걸려 있었고, 크고 작은 예배실에는 언제라도 기도할 수 있도록 촛대와 성경이 놓여 있었다.마르무사 수도원을 향한 수도사1분들의 깊은 애정과 정성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259-)

그리스 정교회는 성 엘리야 주교좌성당보가 한층 더 단출하고 딱딱한 분위기였다. 중세 유럽 교회나 성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스테인글라스나 프레스코화는 없었지만, 묵직하고 충만한 느낌을 주었다.

주데이데 전체가 그런 분위기였다. 아랍 문화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졌지만, 중세 유럽의 분위기 도한 간직하고 있는 곳이 주데이데였다. 좁은 골목, 높은 담장, 사이사이 놓인 아치향 게이트 등이 주데이데 거리의 주요 특징이었다. 일찍이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등의 수크에서 보아왔던 모습들이었다. 당장이라도 골목길 끝에서 투구를 쓰고 창과 방패를 든 채로 말을 타고 있는 중세의 기사가 나타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런 분위기가 났다. (-273-)

캐나다, 중국, 라오스,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필리핀, 인도, 네팔, 파키스탄, 이란, 튀르키예,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수단, 에디오피아, 우간다. 르완다,부룬디, 케냐, 탄자니아, 잠비아, 집바브웨,모잠비크, 남아프리칻공화국까지, 총 31개국, 138개 도시로, 1330일동안 세계여행을 다녀온 작가 임윤정의 세계여행 에세이집 『잠시 다녀왔습니다, 무작정 떠난 세계여행 1330일 』이다. 한달도 아닌, 4년 가까이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버렸고, 잃어버렸고,놓쳤으며, 감동을 얻었고, 비우고, 채워 나갔다.

익숙한 곳에서,낯선 곳으로 감으로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 추억이 담긴 사진을 통째로 잃어버렸고,허무함을 느낀다. 소중히 내 소지품을 챙겨야 한다고 숙지하였지만. 실제로 내가 경험하지 않고는 모르는 부분이다. 실제로 내 잘못이 아니지만, 나의 실수로 ,부주의로 생긴 것이었다.

마닐라 페낭 게스트하우스 에서 경험했던 여러가지 경험들이 저자의 세계여행을 특별하게 해주었다. 때로는 히치하이팅을 했고, 때에 따라서, 누군가의 호의를 받았다. 좁은 골목 높은 담장, 대한민국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풍경을 세계여행을 통해서,경험하였고,추억하였다. 인도 땅에서, 겐지스강에서,화장하는 모습을 보았고, 길을 다니다가, 쥐가 발 밑에 다니고, 소똥을 피하면서 다녀야 했다.인도에서 하늘을 보고 다닌다는 것은 사치였다. 인도 여행이 결코 낭만적일 수 없었던 이유다.

시리아와 리비아, 파키스탄과 이스라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이다. 그 국경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서, 엄격하고, 조심스럽고, 때에 따라서,위함하였고, 감시도 심했다. 저자는 여행을 통해 한국의 고마움을 느꼈고,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얻었으며,사람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비워낸다. 피부가 다르고,언어가 다르더라도, 사람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낯선 곳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동시에 보았고, 낯섦에서, 친숙함늘 느꼈다. 세계여행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사람을 마주하고, 내가 가지지 않는 것을 채워주는 따스한 정,그 정이 여행의 묘미였으며,선진국보다,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여행으로 떠난 저자의 특별한 세계여행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여행 인문학강의와 중남미, 아프리카, 코마서스 등 특수 지역 해외 인솔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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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아
램(lamb) 지음 / 팜파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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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2013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다. 공황장애는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저자는 어느날 갑자기 답답해지고,식은 땀이 흐르고,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힘들었다. 몸이 허하고, 면역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몸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고, 병원에 가서 원인을 찾기로 한다.

원인은 병원에서 공황장애로 밝혀졌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내 몸에 어떤 암이 생겼던 걸까, 공포스러웠고, 두려워했다. 하지만, 공황장애의 예후가 있었다. 삶이 불안했고,이유없이 몸이 무거워졌으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없었다. 잠잘 때,불을 켜고 잤다. 전형적인 공황증세이면서, 나의 병을 누구에게 말할 수 없었다. 무서워서 , 불을 키고 자야 했고, 영화를 보던 와중에 갑자기 뛰어 나와야 했다. 응급실로 향하고, 심장검사 맥박,혈압을 재고, 과호홉 증상으로 인해,신경정신과 예약을 잡았다.

공황장애가 갑자기 생기면, 우리는 그 병이 공황장애 증상을 모른다. 치매에 걸린 환자가 자신이 치매에 걸린 것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갑자기 당황하였고, 진찰과 병원 진료를 받지만,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느껴지는 혼자라는 두려움이 생겼고,구토 증상이 나타나고, 공황장애 특유의 발작 증상이 나타났다. 일하던 곳에서 사퇴를 하였고, 자신의 공황장애 증상을 주변에 널렸다.

이 부분은 중요하다. 내 병에 대해서,적극 주변에 알려야 한다. 우리는 어떤 병이 발생하면, 주변 사람들이 알 것 같아서 숨기기 급급하다.그래서, 주변사람들은 나의 병을 잘 알지 못할 때가 있다. 공황장애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생기고, 흔하지 않은 질병이기 때문에, 주변에 널리 알려서,도움을 적극 부탁하고, 내가 특별히 이상하거나 약해서 걸린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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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의 구조 그림으로 이해하는 인체 이야기
야마다 아쓰오 지음, 양지영 옮김, 차재명 감수 / 성안당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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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부쩍 관심이 많아지면서, 내 몸의 소화기의 구조가 궁금해졌다. 지인이 어느날 갑자기 기침을 자주 하였고,외숙모는 폐렴에 걸려서 세상을 등졌다. 어떤 이는 췌장암에 걸려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하루하루 삼시세끼 먹고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소화되고, 영양소가 되는지, 인간이 먹는 음식들이나 먹거리들이 어떻게 내몸에서 흡수되는지 이해한다면, 내 몸을 소중히 다루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아낄 것 같았다.






복막은 내 몸의 장기가 제자리에 있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소화관,신장, 방광, 췌장, 난소와 자궁이 여기에 해장되고, 과한 운동을 할 때, 그것이 내 몸을 해치지 않도록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갑작스러운 사고가 생겨서, 복막에 이상이 생긴다면, 응급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입은 음식이 들어오는 입구이다. 영양소가 들어오기도 하고, 알코올이 들어가기도 한다. 내 몸에서 알콜이 분해되지 않는다면, 작은 술 한잔에도 , 내 몸이 망가질 수 있다.사람들이 내 주량을 정확하게 알고, 직장생활에서,주량에 맞게 술을 마셔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덩치가 산만해도, 술이 약한 사람이 있다.그들은 알콜해독 능력이 선천적으로 약하기 때문에,술을 권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입 안에는 치아가 있고, 치아에 의해서, 음식을 잘게 부수는 저작기능이 있으며, 음식을 소화잘하도록 돕고 있다..








내 몸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장기, 위의 구조와 십이지자의 역할, 마지막으로 대장의 기능까지 나온다. 위는 신축성이 풍부한 주머니이다. 위암이 발생하거나, 간암이 발생할 때,어느 정도장기의 일부분을 절개 하여,종양이 암으로 퍼지지 않게 하더라도, 생명에 큰 지장이 없는 이유도, 위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신축성 덕분이다. 위에는 위산이 분비가 되며, 음식을 과하게 먹으면, 위산 분비가 생겨남으로서,위에 염증이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이 오래살기 위해서 소식을 하고, 식사 시간에 꼭꼭 씹어서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장의 경우, 우리가 변을 잘 나오도록 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변비나 설사가 생기거나 피가 나올 때, 대장이나 주변 장기에 이상이 생긴 경우로 추정하기 때문에,즉각 병원에 가서 원인을 확인한 뒤 상담 후 치료를 즉각 받아야 한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고 하였다. 즉 우리는 건강할 때는 내 몸의 장기,소화기관의 기능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다. 어떤 질병에 의해서, 장기에 이상이 생길 때, 평소 즐겨 먹었던 음식을 갑자기 먹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질 수 있다.그럴 때,내 몸 건강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끼게 되며,『소화기의 구조』 을 읽어야 하는 이유,목적이 분명하다.



* 책을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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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어디인가 - 청나라 황제의 강남 지식인 길들이기
양녠췬 지음, 명청문화연구회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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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살은 '정통성'이 서로 다른 종족과 왕조 간에 마치 릴레이 하듯 왕래하고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청나라에 대한 조선의 태도가 바로 그 좋은 예다. 조선 왕실은 오랫동안 청나라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만주족은 이적 夷狄이며, 청나라 통치는 이적들의 참위에 해당한다고 여긴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명대 유민의 관점과 완전히 일치하다(-23-)

청나라는 각 민족 지역의 풍습과 정치 종교 체제를 유지시켰지만 대일통 이념을 구축하면서 『춘추』의 옛 취지를 따랐다. 이는 강희제로부터 건륭제에 이르기까지 반포한 칙명을 통해 알 수 있다. 청초의 황제들은 유지를 내려 대일통의 의미를 수없이 강조했다. (-42-)

명말 청초 사인들의 눈에 비친 왕조 교체 전후의 산수풍경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원래 그들의 자랑이었던 강남의 금수강산은 만주족 철기 부대에 짓밟혀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상실했다. '야만'의 풍기가 남하하여 산수를 오염시킨 것은 강남 사인들이 매우 가슴 아파하는 화제가 됐다. (-84-)

"성인은 천하를 다스리는데 백성의 양식을 물과 불처첨 충분하게 하고 오직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한 후 하늘의 공에 감사할 뿐이었다. 먹을 것이 없을까봐 농사를 가르쳐주고 여유가 없을까봐 저장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때를 지켜 먹고 예로써 절제 있게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양식을 물과 불처럼 충분하게 하는 도일 것이다. 지금은 땅이 날로 넓어지고 인구가 점점 많아져서 일단 가뭄이나 홍수가 발생하면 쉽게 기근이 일어난다. 이것은 다 양식을 물과 불처럼 충분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57-)

여유량은 친구를 위해 쓴 조문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했다."오늘의 유민은 생게를 꾸리기 위해 요직에 있는 사람의 존중을 받아 자신을 드러내거나 다른 사람 대신 글을 쓰거나 막부에 들어가 막우가 된다. 최후의 수단으로는 불교에 귀의해 불법을 설교하여 가난을 면할 수 있다.어떻게 3척의 울타리 안에 수십 개의 대나무로 만든 외진 시골 초가집에서 은둔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241-)

명대 사인들의 정신적 생활은 심리적으로 절대적 자유와 낭만을 지나치게 추구하다가 이후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구속을 거부하는 극단적 지점으로까지 발전됐다는 특징이 있었다. 명청 왕조 교체 시기, 청초 유민들은 명나라 멸망의 원인을 찾을 때, 사인들이 결속력 있게 행동하지 못했고, 청나라 군대를 효과적으로 방어하지 못했음을 반성했고,심지어는 자신의 몸에 자학적인 규범까지 행했다. 양명 심학과 강학 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행동 규범에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시작되었다. (-323-)

하지만 강남의 번화함은 청초 제왕들의 누늘 사로잡았고 그들 마음속 깊이 숨어 있던 욕망과 충도을 일깨웠다. 특히 백성이 길거리 양쪽에 무릎을 꿇고 만세 하는 모습은 '오랑캐' 출신으로 중원의 주인이 된 군왕들에게 심리적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당시 사람들은 건륭의 남순에 대해 이렇게 기술햇다."양저우,쑤저우, 자싱, 항저우 네 부의 염상과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서 구리 거랠르 한 관상 등은 모두 다 무대를 만들고 가무를 공연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으며 화려하고 사치스럽기 그지없었다. 황제의 어가를 마중하는 수백 리 거리 아에 마련된 무대는 수천 개쯤 됐고 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황제는 그들에게 금과 은, 작고 귀한 물건, 담비 가죽 등을 선물로 하사했고, 그들 역시 이것을 세상에 다시없을 영광으로 여겼다. (-418-)

건륭제는 어려서는 정주이학의 굳건한 신봉자였지만,만년에는 주희 학문을 여러 번 비판했다. 그 이유는 꽤 복잡하다. 송대 이후 사인의 정치 참여도가 과도하게 높아지면서 권력을 군왕과 함께 나누는 지경에 이르렀다. 건륭제는 여기에 심한 반감이 있었는데 『서정이론경연찰자후 』에서 제기된 유명한 논의를 끌어냈다. 건륭제가 송대 사인의 기세가 고양좼던 상황을 보면 매우 놀라움을 느꼈던 지점은 다음에 있었다. (-530-)

'강남'은 일찍부터 인문학의 중심지였고, 청초 황제들의 눈에도 특별한 지역으로 인식되었다. 강남은 각종 반청운동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자, 패역무도한 여론의 발원지였다.그래서 그들은 천하의 문종인 강남의 위치를 인정하면서도 필요 할 때는 시시각각 여론의 확산을 방비하고 억제해야 했다. 따라서 '천일생수'란 말에서 천하를 업신여기는 문화적 횡포를 느낀 건륭제는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고, 모종의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652-)

이민족으로 중원에 들어온 청나라 황제들은 '예의'를 통해 각종 복잡한 민족 관계와 사회질서를 유지했다. 마찬가지로 '강남'에서 전해 내려온 문화유산으로 각종 복잡한 민족관계와 사회질서를 유지했다고도 볼 수 있다.이전 시대와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청나라 사인들은 이전 세대의 사인들이 '이치'와 '추세'의 방행을 맞추었던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청나라 황제들이 대일통을 통한 영토 확장과 통치상의 성공을 이루는데 있어, 추세로 하여금 이치에 비견할만한 강력한 지배 작용을 갖추게 했다. (-738-)

우리 속담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가 있다.이 속담의 의미는 친구가 하니까 나도 덩달아 친구 따라 같이하게 된다는 의미로서, 분별력 없는 나 자신을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강남이란 중국의 이남지역을 의미하며,양쯔강 하루 남쪽지역,비옥하고,풍족한 땅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강남은 지리적 의미가 아닌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로 나타나고 있으며, 중국 명청 교체기의 사회적 혼란기를 다루고 있다.

명나라는 1368년에 세워지고, 1644년에 멸망했다. 북방 유목 오랑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1616년에 세워지고, 1912년 멸망하였다. 조선의 15대 왕 광해군과 16대 왕 인조가 조선의 왕이었던 시기,명청 교체기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시기로서,중국은 상당히 혼란했던 시기로서, 조선은 외교에 있어서,대명 노선을 견지하였고, 청나라를 만주족 오랑캐의 후손이라 하면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족의 명나라의 국운은 기울어가고 있었으며, 청나라는 명나라 말엽, 명나라 유민들을 포섭하기 위해서,다양한 정책을 쓰고 있었다. 그중에서 명나라의 사인(詞人) 여유량은 반청 노선을 끝까지 견지하였고, 은거하면서 승려가 되어, 후학을 기르는 방법을 취하게 된다.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하면서, 명나라 유민들을 적극 수용하게 된다. 명나라 유민이 청나라 신민이 된 것이며, 출사를 하도록 적극 도와주는 방법을 취함으로서,청나라는 명나라 색을 지우고, 사회질서를 확립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책 『강남은 어디인가』를 읽으면,여전히 반청 노선을 견지하는 명나라 사신즐이 여럿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그들은 은둔하여 , 승려가 되거나, 농사를 지으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청나라를 분리하였으며, 명나라에 대한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여기서 명나라 사인들이 취한 방법, 청나라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명나라의 방식을 배재하고,그들과 다른 문화와 학문을 취함으로서,명나라와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공자 사상을 배척하고, 대학이나 춘추에 따라서, 대통일 노선에 따라서, 청나라 고유의 학문을 만들어 나간다. 명나라에 쓰여진 책들을 금서로 지정하고, 이 책의 마지막이 문자옥이 등장하는 이유는 , 명나라 사인이자 사상가였던 여유량의 후학들이 저지른 반역죄 때문이었고,청나라 옹정제는 사인들의 세력의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고 잇을 정도로 강력해지고 있음을 느꼈으며, 30여년 전 사망한 여유량의 시신을 다시 꺼내 부관참시하고,저잣거리에 내걸었으며, 그의 일족을 싹 멸족함으로서, 청나라 황제로서의 완권강화를 적극 꾀하게 된다.이 책을 읽으면, 남송 -명나라 교체기, 명-청 교체기의 사회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으며,우리가 통일 이후, 북한 사회의 기득권을 어떻게 처리하고,나라의 기틀을 만들기 위해서, 어던 준비가 필요한지 엿볼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한다 하여서,북한 인민 전부가 친한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친북 노선을 견지하면서, 여유량처럼 은거할 수 있다. 강남이라는 상상과 이미지가 가져오는 사회적 가치, 명나라, 청나라, 그리고 현대 중화민국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쳤는지 익히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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