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인문학 -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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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의 역사는 글로 쓰이지 않은 은밀한 역사다. 노래의 작은 패시지, 노상의 작은 패시지, 인생 사의 작은 패시지, 그리고 책 속의 작은 패시지에서 그 역사의 편린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육체적 보행의 역사는 직립보행과 인체 해부의 역사다. (-17-)



조이스의 소설 『율리우스』 와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부인』 에서 주인공들의 머릿속에 뒤죽박죽 뭉쳐 있는 생각들, 기억들은 그들이 길을 걸을 때 가장 잘 풀려나온다. 바꾸어 말하면,보행이라는 비 분석적, 즉흥적 행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유는 이런 비체계적, 연상적 유형의 사유다. (-44-)



핵전쟁과 공산주의의 공포가 대부분의 미국인을 순응과 탄압의 참호로 몰아넣던 시대,미국 역사에서 가장 음산했던 시대, 평화에 찬성을 표시하는 것도 영웅적 용기가 필요하던 시대였다.길을 떠난다는 것, 1953년 첫날의 평화 순례자처럼 입고 있는 옷 한 벌과 주머니의 "빗, 접는 칫솔, 볼펜, 자기 글, 쓰던 편지" 외에는 아무것도 소지하지 않고 길을 떠난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다. 그녀가 화폐 경제에서 이탈한 것은 경제 호황의 시대, 자본주의가 자유의 성체(聖體) 로 모셔지던 시대였다. (-99-)



자기가 걸어가는 곳과 자신의 상상을 겹쳐봄으로써 그야말로 상상 속 영토를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다.미국 목사이자 보행광 존핀레이(John Finlay) 가 친구에게 쓴 편지를 보아도 알 수 있다."내가 혼자 하는 놀이가 있는데 알려드릴까요. 매일 이곳을 걸으면서 그 거리만큼 지구상의 어딘가를 걷는 놀이입니다.지난 6년 동안 거의 3만 2000 킬로미터를 걸었으니, 지구의 육지 부분을 한 바퀴 돈 셈입니다. 1934년 1월 1일부터 어젯밤까지는 약 32,000킬로미터를 걸었으니,북극에서 밴쿠버까지 걸어간 셈입니다. 나치 건축가 알베르트슈페어는 키르케고르와 그의 아버지처럼 교도소 마당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상상으로 세계를 한 바퀴 돌았다. 잉글랜드 시골에서 1년 간 살다가 맨해튼으로 돌아온 미술 평론가 루시리파드는 자기 생활에서 너무나 중요한 일과였던 산책을 맨해튼으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해나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일종의 육체 이탈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날씨를 느끼고,질감을 느끼고, 풍경을 느끼고,계절을 느끼고, 야생의 것들을 만났다. " (-129-)



떠돌이 인물은 워즈워스와 같은 시대 작가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작품에서 걷기는 재미와 모험을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과 생존을 위해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공유지를 제공했다. 잉글랜드 문화에서 걸어가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모두에게 대체로 평등하게 환영받는,흔치 않은 무계급적 활동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나는 심지어 지금까지도 잉글랜드 사람들로부터 듣는다. (-184-)



캠벨이 걷는 이유는 많은 경우 명분 있는 모금을 위해서였다. 그 점에서는 걷기 마라톤 참가자들과 비슷한 데가 있다.(캠벨이 스태프 인건비, 홍보비 등 종종 크게 불어나는 여행 경비 마련을 위해서 명분을 물색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하루에 80키로미터를 걷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또 그렇게 걷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음습한 날씨에 황량한 도로를 날마다 그렇게 걸어서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을 도파한다는 것은 지독한 일이다.그 일을 캠벨은 해냈다. 95일 만에 5000키로미터 오스트레일리아 횡단에 성공한 것은 세계 신기록이었다. 그녀의 두 다리는 목표를 향해서 가차 없이 매진하지만, 그렇게 걸은 후에 남는 것은 걸었다는 사실 밖에 없다. 아름다운 풍경도, 즐거움도 업소, 사람들과의 만남도 거의 없다.12만 8000킬로미터를 걸어가는 그녀의 목표는 자신을 옥죄는 고통을 두 발로 털어내고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지만, 그녀가 자기의 가치를 설파하는 대목들은 걱정스러우리만치 불투명하다. (-216-)



처음부터 시에라클럽에는 여러 가지 내재적 모순이 있었다. 뮤어를 비롯한 창립자 일부는 산에 가다 보면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산을 사랑하다 보면 산을 보호하는 정치적 투쟁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에서 시에라클럽은 등산과 자연 보호가 결합된 단체로 출범했다. (-246-)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보행의 역사는 자유를 찾아나서는 역사이자 즐거움의 의미를 정의하는 역사였다.그러나 시골에서의 보행은 자연을 행한 사람을 도덕적 당위로 삼으면서 시골 땅을 보호하고 시골 땅의 울타리를 부술 수 있었던 반면에, 도시에서의 보행은 언제나 비교적 그늘진 행동이었다. 도시 보행은 호객, 크루징, 산책, 쇼핑, 폭동, 시위,도망, 배회 등, 아무리 즐거워도 자연을 향한 사랑 같은 고고한 도덕적 울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행동들로 쉽게 바뀐다. 그러니 도시 공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그런 주장을 펴는 얼마 되지 않는 자유주의자들과 도시 이론가들조차 보행이 공공장소를 사용하고 공공장소에서 거주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라는 점을 거의 인지하지 못했다. (-281-)



실비아플레스(Salvia Plath) 가 그 이유를 일기에 적은 것도 열아홉 살 때였다."여자로 태어났다는 건 내 끔찍한 비극이다.길에서 일하는 사람들, 선원들과 병사들, 술집 단골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은데, 익명의 존재가 되고 싶은데, 경청하고 싶은데, 기록하고 싶은데, 다 망했다. 내가 어린 여자라서, 수컷으로 습격 당하거나 구타당할 가능성이 있는 암컷이라서, 남자들이 어떤 존재인지,남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데, 그렇게 궁금해하면 유혹한다고 오해받는다. 모든 사람과 최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374-)



여자들은 공공장소에 있는 동안 사적인 부분(private parts) 을 침해당하는 일이 놀라울 정도로 자주 발생한다. 영어에도 여자의 걷기를 성별화하는 표현이 많다. 창녀를 뜻하는 표현으로 길거리를 걷는 사람(streetwalker),거리의 여자(woman of the strssts),도심의 여자 (woman on the town),공공의 여자(public woman)등이 있다. (-375-)



라스베이거스 도심은 한때 철도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기차로 도착한 사람들은 카지노와 호텔이 밀집해 있는 지역인 '반짝이는 협곡(Glitter Gulch)'까지 걸어간다는 생각에서였다. 미국 여행자들이 기차 대신 자동차를 이용하게 되면서 도심의 초점이 이동했다. 1941년,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91번 고속도로 변(지금의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 최초로 카지노 호텔 단지가 들어섰다. 오래 전에 그곳을 지나가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연례 반핵 집회에 참여하라고 네바다핵실험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잠이 들었다가 우리가 탄 자동차가 스트립에서 정지 신호에 걸리는 바람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네온의 꽃밭, 네온의 덩굴 숲이 펼쳐져 있었고,네온사인 글자들이 춤을 추기도 하고 방울방울 흐르기고 하고 폭발하기도 했다. (-445-)



리베카솔닛(영어: Rebecca Solnit, 1961년 6월 24일 ~ )은 미국의 저술가, 비평가, 역사가, 여권 운동가이다. 1980년대부터 환경, 반핵, 인권 방면으로 다양한 사회적 운동에 참여해왔다. 그녀의 특별한 저서 『걷기의 인문학』 는 1990년대에 쓰여진 책이며, 지금처럼 걷기 열풍이 대한민국에 불기 전에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걷기를 통해서,철학과 사유,사색과 평화를 얻는다.걷기 순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걷기는 800km 에 달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이 책에는 걷기의 효용가치 뿐만 아니라 걷는 문화 속에 숨겨진 사회적 차별과 혐오,여성 인권까지 훑어 나가고 있었다.여기서 걷기는 단순히 직립 보행하여,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시골길은 자연 속에서 걷는 숭고하고, 경이로운 변화,활동이다.자유와 고독,평화는 걷기를 통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걷고 싶다고 해서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걸으려면, 목적과 의도가 있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 여성의 걷기는 타인에게 시선이자. 차별과 혐오,유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빌게이츠는 걷기 주간을 적극 이용하여, 다음 해 사업을 구상하였으며, 칸트는 정기적으로 걷기를실행함으로서, 철학적 사유를 얻었다. 즉 걷기는 느리지만 깊은 생각하고, 생각을 비우는 동시에 철학적 사유와 영감을 얻는다. 소설가 무라카미하루키가 마라톤과 걷기예찬론자인 이유도 그러하다. 21세기 현대에 들어와서 걷기는 적극적 사회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걷기를 통해 조직을 만들고 사람을 모으면서, 공동체 간의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만든다.걷는 것이 단순하게 서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평화를 적극 홍보하는 동시에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홍보 수단이 되기도 한다. 피오나 캠벨(Flyona Campbell)은 5000km이상의 걷기를 통해서,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였으며, 6년 동안 32,000km의 거리를 걸은 이도 있다. 걷기의 역사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이며,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인간의 도시는 걷기에 최적화된 형태로 도시가 설계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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