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명상 - 세계 톱 리더들의 잠재력을 끌어낸
가와카미 젠류 지음, 유은경 옮김, 이시카와 요시키 감수 / 불광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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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 승려 가와카미 젠류는 교토 하나조노 슌코인에서 부주지를 맡고 있다. 선 사상가였던 히사마쓰 신이치가 기거했던 슌코인에는 일년에 4000명여명이 선늘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으며, 그들 중에는 세계 최고의 엘리트이면서 경영자인 이들도 함께 동참하였다.  명상 체험을 하고 있으면서, 선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인 마음 챙김을 실천하고 있다.그들이 불교의 선과 명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 비즈니스와 연결짓고 있는 이유가 무언지 이 책을 읽으면 얻을 수가 있다.선불교에 관심 가졌던 이들 중에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기독교적인 사고방식 이면에 숨어있는 이분법적인 사고, 선과 악, 옳고 그름 , 이런 가치관으로는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으며,비효율적인 문제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도입된 초기엔 그들의 사고방식은 상당히 효율적이었고, 급격한 성장을 가져왔다. 21세기 들어와서 경제와 과학 기술이 정체되면서 그들은 스스로 안고 있는 문제들의 실타래를 풀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 문제를 먼저 풀었던 이가 애플의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괴짜였으며, 동양의 선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사람들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미워했지만 그가 가진 가치관을 무시하지 못했던 전세계 엘리트는 스티브 잠스의 세계관을 탐구하기 시작하였으며, 티벳 불교, 즉 제14대 갈라이 라마가 있는 티벳 불교에 답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티벳불교의 선 사상의 본질은 무아(無我)에 있었고, 내 앞에 보이는 것을 주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그것이 이 책에 나오는 명상의 본질이며, 일상적이며서, 습관화된 명상 수행법은 자신의 마음 챙김 뿐 아니라 이타심, 공감력 향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서양인들은 스스로 이기적인 기업이 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며, IQ 가 아닌 정서적 지능 EQ  향상을 꾀하게 된다.


이 책에서 마음 챙김과 명상, 좌선에 주목하게 되었다. 마음 챙김은 뇌의 활성화, 면역력의 향상, 탈진증후군의 저하, 적응력의 향상, 텔로미어의 유지, 공감력의 향상의 효과가 있다. 개개인의 역량을 증신시킬 수 있으며, 미리 판단하지 않으며, 먼저 결정하지 않는다. 항상 협력을 우선하며, 사회적 이익과 개인의 이익에 균형을 맞춰 나간다. 서양인들이 동양적 사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현대인들은 수많은 문제들을 방치한채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며, 명상 수행법 안에  포함되어 있는 세가지 개념, 조신(調身), 조식(調息), 조심(調心) 을 통해 해결하게 된다. 조신은 신체를 가다듬는 규칙이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게 조신이며, 그 다음에는 조식으로 나아가게 된다. 조식은 숨을 가다듬는 방법이다. 호홉을 고르게 유지하는 것은 조식의 방편이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챙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조심' 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선의 개념은 낯설지 않다. 불교 수행법에 대해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하였고, 그것이 가져오는 유익함을 스스로 인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불교 수행법의 일종인 명상이 가져오는 효용성의 특징, 서양인들이 선불교를 비즈니스로 연결하려는 목적, 좌선회의 특징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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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잘하는 게 없어 - 숭민이의 일기(절대 아님!) 풀빛 동화의 아이들 28
이승민 지음, 박정섭 그림 / 풀빛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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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유치했고, 진지한 모습도 느껴졌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숭민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숭민이 꿈꾸는 세상이 아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은 다른 것이지만, 부모님은 숭민의 꿈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런 모습은 집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숭민이 좋아하는 아이 심지영. 책에는 심지영 말고도 동규와 성윤이라는 아이가 등장하고 있다. 부모님의 눈에는 , 선생님의 눈에는 분명히 심지영과 동규가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고, 둘은 학교의 명예를 높여주는 똑똑하고 착실한 아이였다. 그렇지만 숭민에게는 심지영과 동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없었다.


숭민에게도 재능은 있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이 숭민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PC 방에서 사커 일레븐 45연승했다는 걸 그 누가 알아줄까, 아니 그걸 자랑했다간 혼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숭민의 머리 속에 뭐가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님은 숭민의 꿈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태권도 학원과 국어 학원에 보내지만, 숭민은 태권도 학원도, 국어 학원도 원하지 않는 곳이며, 항상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결국 심지영과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되는 숭민의 마음은 떨떠름한 모습 그 자체였고, 지키지 못하는 계약서였다. 친구들에게 꼬딱지, 킁킁이 별명을 부르지 않는다는 계약서이고, 어길시엔 숭민이 좋아하는 게임 계정 아이디를 삭제하는 것이다. 숭민의 입자에선 거절할 수 있는 일방적인 계약서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심지영이었기에 스스로 계약사에 사인을 한 것이고, 심지영은 숭민의 머리 위에 있었다. 


방송을 타면서 영재 수학 소년으로 입소문이 나게 된 동규와 글쓰기 대회에서 대상을 탄 심지영, 둘과 같이 어울려 다니는 숭민은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싫어하는 아이, 게임에서 자신을 농락했던 승윤, 숭민은 승윤에게만큼은 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칼을 갈지만 번번히 깨지고 말았다. 숭민의 마음 속에 '나만 잘 하는게 없어' 라고 말하는 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꿈도 없고 , 잘하는 것도 없었던 숭민은 자신이 잘하는 걸 인정해 주지 않는 세상을 미워하게 된다. 하지만 숭민에게도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숭밍의 새로운 꿈을 만들어 가도록 도와주는 존재였으며, 숭민은 새로운 꿈을 펼쳐 나가게 된다.



숭민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 났다. 어릴 절 유행했던 오락실 게인 테트리스가 있다. 그 오락실 게임을 친구들보다 잘했던 나 . 그렇지만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았던 게임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른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책에 나오는 숭민처럼 서운함이 먼저 들었던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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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마음 - 달라이 라마의 성경 강의
달라이 라마 지음, 류시화 옮김 / 불광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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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의문스러웟던 단 한가지가 있다. 종교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도덕적 가치가 존재하고 있다.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의 보편적 자치,근저에는 '선한 마음'이 존재한다. 하지만 공롭게도 우리 앞에 놓여진 종교는 세속적이며, 갈등과 분쟁의 씨엇이 되고 말았다. 서로가 추구하는 종교관을 인정하지 않고 전쟁의 원인을 제공하였으며, 특히 그리스도교와 이스람교의 뿌리 깊은 종교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의 보편적인 가치는 상실되어진 지 오래 되었다. 티벳 불교의 영적 지도자 달라리 라마도 마찬가지다. 그는 티벳 불교의 상징이 되었지만, 중국의 티벳 침탈로 인해 그가 살았던 터전 마저 잃어 버리고, 인도에 거쳐를 옮겨 놓은 상태이다. 티벳 불교의 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 1935년에 태어난 그는 2살이 되건 해 달라이 라마로 인전ㅇ받았으며, 지금까지 티벳 불교의 상징이 되었다.


이 책은 1994년 런던 미들섹스 대학의 강의실에서 그리스도교인들과 불교 수행자가 만난 자리에서 3일간의 특별강연에 대해서 나오고 있다. 존 메인 신부가 만든 '그리스도교 명상 공동체'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 텐진 갸초가 초대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가치와 불교의 가치.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그들이 종교관은 비슷한 점이 있다. 종교로서 외형적인 것에서 벗어나며,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있으며, 서로의 종교관의 융합, 성서의 복음서와 예수 그리스도가 남겨놓은 보편적인 가치를 얻을 수 있다. 그리스도교 명상 수행자들이 추구하는 종교적인 윤리, 영성, 경전 해서그 다른 종교와의 대화, 기도에 대한 특별강연이 3일 동안 펼쳐지고 있다.


그들은 질문하였고, 달라이라마는 불교적 가치관에 근거해 대답을 하고 있으며, 달라이라마는 그들에게 '따뜻함, 명확함, 웃음'을 선물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언급하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근본적인 실천, 자비와 형재에, 용서를 강조하면서 그것이 그리스도교인과 불교 수행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와야 하는지,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새로운 관점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또 눈애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를 괴롭히는 자에게 대항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갖고자 하는 자에게는 겉옷도 갖게 하라. 떠 누구든지 너를 억지도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장 38절 ~42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던 그날, 예수그리스도는 원수를 하랑하라고 언급하시었다. 불교에도 예수그리스도 깨서 남겨 놓은 씨엇과 비슷한 '보살의 계율'이 현존하고 있다. 고통을 인내하고, 비폭력과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대응하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며, 모든 이에게 차볗ㄹ하지 않고 편견으로 대하지 않는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 께서느 보편적인 사라을 추구하였으며, 그것이 제자들에게 고스란히 되물림 되어졌다.


'어떤 문제가 있는데 만약 그것에서 벗어날 방법과 해결책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반면에 벗어날 길도 해결책도 없다면, 이 또한 걱정할 게 없지 않은가!' (p69)


불교경전 <입보리행론>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 앞에 놓여지느 걱정은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지붕이 무너지는 그 순간,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대다수의 사람은 후자에 속한다. 하지만 좌절을 딛고 일어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위대함이 보인다. 실패하지 않고 성공을 추구해 왔던 이들보다 실패를 했음에도 다시 일어나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마냥 걱정만 하면 ,문제에서 벗어날 방법과 해결책은 그저 주워지지 않으며, 벗어날 길이 없다할지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 슬픔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지금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느 사실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슬픔은 외부의 고통 뿐 아니라 완성을 향해 노력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을 말한다.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는 구원 혹은 해방을 얻은 상태를 의미한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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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배신
아비샤이 마갈릿 지음, 황미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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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회에서 언어는 다채로워졌으며, 복잡해졌다. 과거보다 더 많은 언어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가운데 우리가 생각하는 언어의 특징과 개념,한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특히 우리 앞에 놓여진 미디어는 수많은 단어들을 생성하였고, 그 단어에 개념을 부여하고 있다. 단어들은 유행에 따르면서 생성되고 소멸된다. 미디어 공간 안에서 '배신' 이라는 개념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단어가 사라진 미디어 환경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여기서 우리는 '배신'이라는 부정적인 단어 대신에 또다른 형태의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미디어 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 속에서, 뉴스와 드라마 예능까지 '배신' 이 등장하고 있으며, 현실 속의 배신과 희화화된 배신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우리는 배신을 하고 배신을 당하면서도 그 안에서 그게 실제 배신인지 아닌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당히 많으며,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배신이라는 단어 속에 모호함의 실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책에는 배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나오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배신에 대해서 하나의 단어가 아닌 다양한 단어들이 혼재하고 있으며, 단어와 의미는 다르지만 '배신'이라는 하나의 속에 포함되고 있다. 반역, 부역,친일, 상실, 간통,철새 정치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경우이며, 책에는 크게 개인적인 의미와 종교적인 의미, 정치적인 의미로 배신을 구분짓고 있었다. 여기서 배신은 두터운 관계에서 형성되고 있다. 두터움이란 대표적인 경우 가족과 친구, 회사가 있다. 저자는 배신의 개념에 대해서 도덕적인 의미가 아닌 윤리적인 의미로서 배신의 개념을 다루고 있으며, 거짓말은 배신의 범준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한다. 또한 가족은 하나의 가정에서 지역으로, 민족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우리 사회 안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배신의 새로운 가치관에 대해 깊이 들어가고 있어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배신이 어떤 형태로 쓰여지는지 알고 있지만, 그것의 정확한 형태, 구체적인 형태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 '배신이란 무엇인가?' 와 '배신없는 정의로운 사회는 구현 가능한가?' 였다. 이 두 가지 질문은 이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으며, 성서 속에 존재하는 종교적 배신의 형태는 어떤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속에 숨어있는 역사 속의 배신의 특징을 나열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스라엘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이 교차되고 있어서 저자의 생각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고, 어려운 이야기가 나열되는 가운데 쉽게 이해가 갔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보면 친일파가 나오고 배신자, 부역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책에는 배신자와 부역자의 차이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을 더해가고 있다. 한 나라를 지배하는 적의 내부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부역자라고 한다면, 외부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배신자가 된다. 저자는 역사 속의 배신자와 부역자의 딜레마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하고 있다. 배신자의 범주를 확장한다면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고, 누구나 배신자가 될 수 있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배신자는 소수이며, 그들의 특징은 바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이다. 친일파로서 부역자 노릇을 했던 학부대신 이완용,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은 나라를 일본에 바친 부역자였던 것이다. 반면 지금까지 나라 마다 스파이나 간첩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내부고발자는 배신자의 범주에 포함된다.


역사 속의 배신자란 관점의 문제이다. 우리에게 애국자로 잘 알려진 안중근은 일본의 입장에선 배신자가 될 수 있다.고구려 시재 관개토대왕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는 역사 속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프랑스 군인 드레퓌스가 바로 그런 예이며, 그는 독일과 연계되어 있다는 이유로 배신자로 찍혀 1895년 악마도에 유형되었다. 이런 모습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라는 또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김용철 변호사가 내부고발자 중 하나이며, 그들은 하나의 소속에 속해 잇으면서 또다른 배신자였다. 북한의 고위층 황장엽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의해 죽어야 했던 김정남 도 마찬가지다. 그가 죽기 전까지 북한 공작부의 암살계획이 여럽번 있었던 것만 봐도 그러하다. 여기서 배신자란 어떤 사람이 소속되어 있는 그 안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면서 , 그 안의 규칙을 저버린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배신이란 다름 아닌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과의 불화다. 다시 말해 객관적으로 자신이 아닌 대상과 동일시 하는 것이다. 가장 배신다운 배신은 자기가 객관적으로 속한 집단의 적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런 객관적 정체성이라는 그림 속에는 진정한 전향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전향은 배신이다. 전향은 종교적 전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형태의 이념적 전향도 포함될 수 있다. 전향이란 삶의 고정점을 포기하는 것이다. 철학자 시드니 모겐베서의 제안에 따르자면,'고정점'은 사람이 평생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변함없이 유지하는 신념과 행동을 말한다.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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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 인간은 왜 믿음을 저버리는가
아비샤이 마갈릿 지음, 황미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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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회에서 언어는 다채로워졌으며, 복잡해졌다. 과거보다 더 많은 언어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가운데 우리가 생각하는 언어의 특징과 개념,한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특히 우리 앞에 놓여진 미디어는 수많은 단어들을 생성하였고, 그 단어에 개념을 부여하고 있다. 단어들은 유행에 따르면서 생성되고 소멸된다. 미디어 공간 안에서 '배신' 이라는 개념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단어가 사라진 미디어 환경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여기서 우리는 '배신'이라는 부정적인 단어 대신에 또다른 형태의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미디어 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 속에서, 뉴스와 드라마 예능까지 '배신' 이 등장하고 있으며, 현실 속의 배신과 희화화된 배신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우리는 배신을 하고 배신을 당하면서도 그 안에서 그게 실제 배신인지 아닌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당히 많으며,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배신이라는 단어 속에 모호함의 실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책에는 배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나오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배신에 대해서 하나의 단어가 아닌 다양한 단어들이 혼재하고 있으며, 단어와 의미는 다르지만 '배신'이라는 하나의 속에 포함되고 있다. 반역, 부역,친일, 상실, 간통,철새 정치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경우이며, 책에는 크게 개인적인 의미와 종교적인 의미, 정치적인 의미로 배신을 구분짓고 있었다. 여기서 배신은 두터운 관계에서 형성되고 있다. 두터움이란 대표적인 경우 가족과 친구, 회사가 있다. 저자는 배신의 개념에 대해서 도덕적인 의미가 아닌 윤리적인 의미로서 배신의 개념을 다루고 있으며, 거짓말은 배신의 범준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한다. 또한 가족은 하나의 가정에서 지역으로, 민족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우리 사회 안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배신의 새로운 가치관에 대해 깊이 들어가고 있어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배신이 어떤 형태로 쓰여지는지 알고 있지만, 그것의 정확한 형태, 구체적인 형태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 '배신이란 무엇인가?' 와 '배신없는 정의로운 사회는 구현 가능한가?' 였다. 이 두 가지 질문은 이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으며, 성서 속에 존재하는 종교적 배신의 형태는 어떤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속에 숨어있는 역사 속의 배신의 특징을 나열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스라엘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이 교차되고 있어서 저자의 생각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고, 어려운 이야기가 나열되는 가운데 쉽게 이해가 갔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보면 친일파가 나오고 배신자, 부역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책에는 배신자와 부역자의 차이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을 더해가고 있다. 한 나라를 지배하는 적의 내부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부역자라고 한다면, 외부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배신자가 된다. 저자는 역사 속의 배신자와 부역자의 딜레마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하고 있다. 배신자의 범주를 확장한다면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고, 누구나 배신자가 될 수 있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배신자는 소수이며, 그들의 특징은 바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이다. 친일파로서 부역자 노릇을 했던 학부대신 이완용,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은 나라를 일본에 바친 부역자였던 것이다. 반면 지금까지 나라 마다 스파이나 간첩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내부고발자는 배신자의 범주에 포함된다.


역사 속의 배신자란 관점의 문제이다. 우리에게 애국자로 잘 알려진 안중근은 일본의 입장에선 배신자가 될 수 있다.고구려 시재 관개토대왕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는 역사 속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프랑스 군인 드레퓌스가 바로 그런 예이며, 그는 독일과 연계되어 있다는 이유로 배신자로 찍혀 1895년 악마도에 유형되었다. 이런 모습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라는 또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김용철 변호사가 내부고발자 중 하나이며, 그들은 하나의 소속에 속해 잇으면서 또다른 배신자였다. 북한의 고위층 황장엽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의해 죽어야 했던 김정남 도 마찬가지다. 그가 죽기 전까지 북한 공작부의 암살계획이 여럽번 있었던 것만 봐도 그러하다. 여기서 배신자란 어떤 사람이 소속되어 있는 그 안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면서 , 그 안의 규칙을 저버린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배신이란 다름 아닌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과의 불화다. 다시 말해 객관적으로 자신이 아닌 대상과 동일시 하는 것이다. 가장 배신다운 배신은 자기가 객관적으로 속한 집단의 적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런 객관적 정체성이라는 그림 속에는 진정한 전향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전향은 배신이다. 전향은 종교적 전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형태의 이념적 전향도 포함될 수 있다. 전향이란 삶의 고정점을 포기하는 것이다. 철학자 시드니 모겐베서의 제안에 따르자면,'고정점'은 사람이 평생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변함없이 유지하는 신념과 행동을 말한다.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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