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 인간은 왜 믿음을 저버리는가
아비샤이 마갈릿 지음, 황미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문명사회에서 언어는 다채로워졌으며, 복잡해졌다. 과거보다 더 많은 언어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가운데 우리가 생각하는 언어의 특징과 개념,한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특히 우리 앞에 놓여진 미디어는 수많은 단어들을 생성하였고, 그 단어에 개념을 부여하고 있다. 단어들은 유행에 따르면서 생성되고 소멸된다. 미디어 공간 안에서 '배신' 이라는 개념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단어가 사라진 미디어 환경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여기서 우리는 '배신'이라는 부정적인 단어 대신에 또다른 형태의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미디어 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 속에서, 뉴스와 드라마 예능까지 '배신' 이 등장하고 있으며, 현실 속의 배신과 희화화된 배신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우리는 배신을 하고 배신을 당하면서도 그 안에서 그게 실제 배신인지 아닌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당히 많으며,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배신이라는 단어 속에 모호함의 실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책에는 배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나오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배신에 대해서 하나의 단어가 아닌 다양한 단어들이 혼재하고 있으며, 단어와 의미는 다르지만 '배신'이라는 하나의 속에 포함되고 있다. 반역, 부역,친일, 상실, 간통,철새 정치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경우이며, 책에는 크게 개인적인 의미와 종교적인 의미, 정치적인 의미로 배신을 구분짓고 있었다. 여기서 배신은 두터운 관계에서 형성되고 있다. 두터움이란 대표적인 경우 가족과 친구, 회사가 있다. 저자는 배신의 개념에 대해서 도덕적인 의미가 아닌 윤리적인 의미로서 배신의 개념을 다루고 있으며, 거짓말은 배신의 범준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한다. 또한 가족은 하나의 가정에서 지역으로, 민족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우리 사회 안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배신의 새로운 가치관에 대해 깊이 들어가고 있어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배신이 어떤 형태로 쓰여지는지 알고 있지만, 그것의 정확한 형태, 구체적인 형태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 '배신이란 무엇인가?' 와 '배신없는 정의로운 사회는 구현 가능한가?' 였다. 이 두 가지 질문은 이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으며, 성서 속에 존재하는 종교적 배신의 형태는 어떤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속에 숨어있는 역사 속의 배신의 특징을 나열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스라엘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이 교차되고 있어서 저자의 생각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고, 어려운 이야기가 나열되는 가운데 쉽게 이해가 갔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보면 친일파가 나오고 배신자, 부역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책에는 배신자와 부역자의 차이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을 더해가고 있다. 한 나라를 지배하는 적의 내부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부역자라고 한다면, 외부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배신자가 된다. 저자는 역사 속의 배신자와 부역자의 딜레마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하고 있다. 배신자의 범주를 확장한다면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고, 누구나 배신자가 될 수 있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배신자는 소수이며, 그들의 특징은 바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이다. 친일파로서 부역자 노릇을 했던 학부대신 이완용,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은 나라를 일본에 바친 부역자였던 것이다. 반면 지금까지 나라 마다 스파이나 간첩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내부고발자는 배신자의 범주에 포함된다.


역사 속의 배신자란 관점의 문제이다. 우리에게 애국자로 잘 알려진 안중근은 일본의 입장에선 배신자가 될 수 있다.고구려 시재 관개토대왕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는 역사 속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프랑스 군인 드레퓌스가 바로 그런 예이며, 그는 독일과 연계되어 있다는 이유로 배신자로 찍혀 1895년 악마도에 유형되었다. 이런 모습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라는 또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김용철 변호사가 내부고발자 중 하나이며, 그들은 하나의 소속에 속해 잇으면서 또다른 배신자였다. 북한의 고위층 황장엽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의해 죽어야 했던 김정남 도 마찬가지다. 그가 죽기 전까지 북한 공작부의 암살계획이 여럽번 있었던 것만 봐도 그러하다. 여기서 배신자란 어떤 사람이 소속되어 있는 그 안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면서 , 그 안의 규칙을 저버린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배신이란 다름 아닌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과의 불화다. 다시 말해 객관적으로 자신이 아닌 대상과 동일시 하는 것이다. 가장 배신다운 배신은 자기가 객관적으로 속한 집단의 적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런 객관적 정체성이라는 그림 속에는 진정한 전향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전향은 배신이다. 전향은 종교적 전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형태의 이념적 전향도 포함될 수 있다. 전향이란 삶의 고정점을 포기하는 것이다. 철학자 시드니 모겐베서의 제안에 따르자면,'고정점'은 사람이 평생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변함없이 유지하는 신념과 행동을 말한다.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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