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세라, 어른의 안부를 묻다 - 영혼을 치유하는 행복한 명작 동화
박내선 지음 / 행복한시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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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서 동화책을 다시 꺼내는 건 동화책에 대해 미디어에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화책 속에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알게 될 때 그 동화책을 다시 펼쳐보게 된다. 과거의 추억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안에서 나는 그 익숙함을 들여다 보고 싶어지게 된다. 그림이 없었던 텍스트 위주의 책을 읽었던 어릴 적 동화책에 대한 기억을 지금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을 읽으면 격세지감을 느끼고 질투를 할 때가 있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동화책을 한번 더 펼쳐들게 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아주 오래된 동화 이야기라서 거의 대부분 기억나지 않고 지워진채 남아있다. 플란다스의 개, 빨간머리앤은 애니메이션으로 접했던 기억이 나에겐 있다. 복잡하고, 때로는 사람과의 관계에 지쳐 있을 때 어릴 때 보았던 자연 속에 펼쳐지는 풍경을 들여다 볼 때 상처를 치유하게 되고, 내 마음을 위로받게 된다. 


다니엘 디포가 쓴 <로빈슨 크루소>. 이 소설은 27세에 무인도에 들어간 로빈슨 크루소가 54세에 무인도에서 나오는 이야기며,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 소설이 더 실화처럼 느껴진다. 나는 로빈슨 크루소를 중2 때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 때 읽었던 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두권짜리이며 아직 내 곁에 있다. 이 소설을 읽게 되면, 내가 만약 무인도에 갇히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며, 무인도에 갇히게 되면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할 때가 있다. 마약 무인도에 갇히게 되면, 나는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이 가져다 주는 교훈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미련이나 욕심을 버리고, 내 앞에 주어진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방법을 찾아가도록 노력하는 거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내 앞에 놓여진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그것이 기회가 될 수 있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 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모모>  에는 우리 앞에 놓여진 시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나 보다. 모모에 관한 이야기를 작가의 글로서 접하면서, 나에게 시간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시간이 나에게 주는 의미와 가치는 생략할 때가 있다. 시간을 절약하고 또 절약하지만 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무얼까, 내 안의 욕심이 시간을 자꾸만 필요로 하는 건 아닌지, 우리 삶에서 미니멀을 강조하는 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있는 곳에 쓰라고 하는 것 같다. 시간을 강조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배려가 사라진 세태를 들여다 보면 씁쓸할 때가 있다. 


연애는 허클베리핀과 , 결혼은 톰 소여와 하는 말. 허클베리핀과 톰소여는 우리의 또다른 모습이다. 자유분방한 허클베리핀과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톰소여, 두 주인공의 삶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삶이 보여지고, 우리는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고민하게 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선택하면서 때로는 내 마음 속에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건 아닌지, 내 주변에 톰소여에 대해서, 허클베리핀에 대해 좀더 들여다 보고 싶어진다. 마지막으로 그림형제의 <구둣방 할아버지와 요정>이야기에서 할아버지에게 행운이 찾아왔지만 구둣방 할아버지의 삶의 패턴은 그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 주변엔 구둣방 할아버지에게 찾아온 행운을 얻는 이들이 있다. 바로 대표적인 경우가 로또 당첨자이다. 그들은 로또에 당첨 되면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일을 하거나 이민가는 경우가 있다. 최고의 로또 당첨금을 타낸 경찰관이 자신의 일을 그만 둔 사연은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회자된다. 그들이 자신의 일을 그만 둘 수 밖에 없는 건 그 사람의 문제일까, 아니면 그 사람이 자신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사회가 문제일까. <구둣방 할아버지와 요정>이야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미래에도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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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계곡
박민형 지음 / 작가와비평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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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동네 사람들은 나를 두고 철이 일찍 들었다고 떠들었다. 영약하다고도 했다. 영리하다고도 했다.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듯 '영악' 과 '영리' 의 뜻은 엄연히 다르다. 영악하다는 것은 잇속이 밝고 애바르다는 것이고, 영리하다는 것은 똑똑하하고 눈치가 빠르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그 단어를 뒤섞어 내게 남발했다. (P47)


소설 속 주인공 정은숙은 1958년에 태어났다. 태어나자 마자 엄마에 의해 버려졌던 은숙은 할머니에 의해 길러지게 된다. 젖동냥을 통해 성장하게 된 은숙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월남아줌마, 미제 아줌마, 곤로, 교탁, 반공일은 지금은 거의 쓰여지지 않는, 은숙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는 1970년대에 쓰여졌던 언어이다.


60이 넘은 은숙은 자신을 키워준 오영철의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오영철과 결혼하게 되었다. 남남이었지만, 결코 남남이 아니었던 두 사람은 연을 맺게 되었고, 오영철의 어머니는 시어머니였지만 친정어머니와 같은 분이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오채희는 은숙의 과거를 빼닮은 분신이었고, 똑똑하면서 영악하고, 영리했다. 하지만 은숙과 달리 채희는 사고뭉치였으며, 결국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다.


시작은 일일곱 딸 오채희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은숙의 삶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였고, 무능한 아버지와 브라질로 가버린 어머니로 인해 은숙은 버려지게 된다. 하지만 그 역경을 은숙 스스로 해쳐나갔으며, 주변 사람들의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존재를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여기서 은숙의 그런 삶이 가능했던 건 1970년대의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글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고, 은숙은 글을 알고 , 문장을 잘 쓴다는 이유만으로 주변 사람들의 심부름을 도맡아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사라과 순정 편지를 대신 써주고 그럼으로서 자신의 글 솜씨도 늘어나게 되었다. 정작 자신의 짝사랑이자 고모의 아들인 찬수 오빠에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에는 초등학교이라 말하지만, 은숙이 살았던 그 때엔 국민학교였다. 12살 어린 나이부터 편지를 써내려갔던 은숙의 남다른 국어실력은 문장을 다듬어가면서 때로는 자신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편지도 능청스럽게 써내려가고 있다.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자면, 그게 국민학생이 보내는 편지인가 싶을 정도로 문장이 화려하고 진정성 가득한 문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 남다른 실력이 은숙이 성인이 되어 영어번역을 도맡아 할 수 있었고,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또다른 이유였다.


억척스러웠도, 때로는 두려웠다. 그리고 은숙은 살아야 했다. 할머니도 없었고 고모가 가는 곳에 얹혀 살아야 했던 은숙의 삶을 보면 바로 우리의 부모님의 삶이 어떤지 엿볼 수 있다. 사회에서 빨갱이라 말하는게 당연하였고, 돈을 벌기 위해 월남전에 참전할 수 밖에 없었던 그때의 모습들, 은숙은 공부를 잘하였지만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은숙이 짝사랑했던 찬수 오빠는 법대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였지만, 인문계고등학교가 아닌 공고를 선택하고 말았다. 그들은 그 시대의 아웃사이더였고 자신의 원하는 길과 꿈을 선택하게 된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살아가지 않고, 은숙은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때로는 자신을 길러준 시어머니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고, 고마움도 있었다. 자신의 인생은 딸에게 되물림 되었으며, 나와 똑같은 삶을 살아갈까 은숙은 두려워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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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해독하는 법 - 해독解讀하면 해독解毒 된다
서이랑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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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같은 단어, 같은 발음인데도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과가 그렇고, 밥이 그렇다. 먹었다 라는 동사 안에는 수많은 파생어가 있으며,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책을 소개하면서 뜬금없이 한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책 제목에 등장하는 단어 '해독'을 말하고 싶어서다. 해독은 두가지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첫번째 해독(解讀)은 나를 이해하는 것이며, 두번째 해독(解毒) 내 안의 독을 없앤다는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다. 물론 책 제목에 등장하느 해독은 해독(解毒) 으로 쓰여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우리 삶을 들여다 보고 있으며, 나는 어떤 삶읋 살고 있는지 재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나답게 살아가는 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재시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나답게 산다는 게 뭐지'라는 질문에 갇혀 버리게 된다. 나는 나답게 살지 못하고 있으며, 항상 그것에 대해 왜 그런 걸까 괸하고 또 고민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건 내 주변의 상황과 환경, 사람이 있어서다. 나답게 살고자 하지만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나답게 산답시고 우리는 내맘대로 사는 경우가 많다. 현실과 이상의 적절한 타협이 우리 앞에 놓여지게 되고, 내 주변의 상황이 바뀌면 나의 생각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나답게 살지 못하더라도 적절한 타협은 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남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그 안에서 나를 인정하고 남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 나갈 수 있게 된다. 때로는 내 앞에 당황스러운 상황이 갑자기 나타날 때 그 순간을 최악의 순간으로 만들지 않고, 적절하게 상황을 이해하고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 대부분이 바로 이런 것들과 연계되어 있고, 나 스스로 위로하는 법을 찾아나가게 된다. 


억울하다. 우리는 항상 억울하다는 생각에 갇혀 있을 때가 있다.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은 잘못이 내가 아닌 남에게 있을 때였다. 그건 나 스스로 자기합리화에 빠지게 되고, 스스로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미디어와 내 주변 사람들을 보더라도 그렇다. 억울하다는 사연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자기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조차 놓치게 된다. 내가 아닌 남이 기준이 되는 삶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하고, 비교당하고, 그 안에서 서로에게 욕하면서도 그걸 당연시하는 풍토가 점차 우리 안에 독(毒)을 키워 나간다. 남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으면, 스스로 바뀌지 않게 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며, 바뀌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노력해도 , 성실하게 살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남들이 생각하는 기준에 살아가지 않더라도, 왕따가 되거나 아웃사이더가 되더라도 말이다. 그들이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더라도 나는 나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해독(解毒)의 실체이고, 나 자신을 관찰하고, 내가 원하는게 뭔지 안다면 나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엄마"라는 말을 내뱉기까지 2,000번 넘게 "엄미."라는 말을 열심히 들었던 시절을 생각해봅니다. 고작 몇 번 해보고 "안 될 거야."라고 말하는 지금의 나, 무슨 일이든 될 때까지 시도했던 어린시절의 '초심'을 잊어버려서가 아닐까요? 그런 마음으로 끝까지 버텨내는 '뒷심' 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P51)


'남의 시선'때문에 휘청거리고 있지 않나요? 남이 어떻게 볼까 신경 쓰는 대신, 내가 나를 어떻게 볼지 더 많이 생각해 보세요. 그러고 나서 주눅이 든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선 다음 "남이사!!"라고 외쳐 보세요.(P113)


'감정'은 '똥' 같은 것입니다. 배출하지 못하면 답답하고, 어떤 형태로 나올지 알 수 없으며, 내보내고 나면 시원한 것, 몸에 안 좋은 것을 먹으면 똥은 냄새도 지독하고 색깔도 황금색이 아닙니다. 평소에 좋은 식습관을 가져야 건강한 똥을 둘 수 있는 것처럼, 평소에 건강한 마음 습관을 가지면 '분노' 같은 지독한 똥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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怒り始めた娘たち: 「母娘ストレス」の處方箋 (單行本)
リカ 香山 / 新潮社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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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관계를 알고 싶었다. 때로는 친구 같으면서, 때로는 치열한 웬수처럼 싸우는 딸과 엄마의 모습을 보면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바로 나의 엄마와 외할머니 관계였다. 살아계실적 엄마와 외할머니는 웬수처럼 싸웠고, 시골에 들어갈 때마다 그랬던 것 같다. 서로 무슨 문제가 있어서 저렇게 싸우고,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서로 그러는 걸까, 옆에서 보기엔 한쪽이 잘못하고, 한쪽이 덜 잘못한 것처럼 보이지 않고, 서로 똑같은 모습으로 비춰졌고, 절대 지지 않으려는 딸과 딸을 이겨 먹으려는 엄마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나타날 때가 있다. 그것은 살아생전 치열했던 모습이 한쪽이 세상을 떠날 때 상처로 남게 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픔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 상처는 분명 주변 사람들에게 향한다. 그 안에 감처진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서로 떨어지고 싶지만 떨어질 수 없는 관계와 심리를 엿보고 싶어서 이 책을 펼쳐들었다. 


"엄마는 평소엔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면서 왜 이럴 때만 어른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할까요? 어릴 때부터 나를 과잉보호했으면 지금도 변함없이 나를 돌봐주어야 하지 않나요? 이제 와서 본인이 나이 들었다고 피해버리다니, 정말 너무하지 않아요?"(p23)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다. 아기가 아이가 되고,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가는 딸의 모습. 그 과정에서 엄마도 나이가 먹으면서 삶이 바뀌게 된다. 체력도 떨어지고 여기저기 아파오는데, 딸을 바라보는 시선은 변하지 않는다. 몸에 배인 습관이 딸을 구속하고 간섭하고 통제하게 된다. 정작 딸이 엄마가 필요한 순간 엄마는 '나는 모른다'고 말한다. 그건 딸의 입장에선 분노였고, 증오였으며, 혐오갑이었더., 엄마는 딸을 자신의 거울로 생각하고, 딸이 잘못되면 자신이 잘못되었다 생각한다. 딸도 마찬가지이다. 서로가 자신의 그림자이거나 거울이 되면서, 서로를 구속하려 들고 때로는 벗어나려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갈등이 해결되지 못하고, 서로 싸움이 반복된다.


딸을 지배하려는 엄마의 심리는 '분리불안'과 관련이 있다. 이전까지 분리불안은 '부모와 떨어지기를 지나치게 싫어하는 심리'라고 해서 아이의 관점에서만 연구되었다. 그러나 최근 심리학에서는 부모의 분리불안을 주목하고 있다. 발달심리학은 '아이를 남겨두는 것에 대한 서운함과 걱정, 죄책감 등 불쾌한 감정' 이라고 부모 중에서도 엄마의 분리불안을 정의 했다. (p104)


엄마의 마음 속 분리불안에 대해서 짚어나가고 있다. 보편적으로 분리불안은 아이의 기준으로 바라보았다. 아기가 엄마가 갑자기 안 보일 때 분리불안을 느끼고 울거나 보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분리불안이 있다. 엄마의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의지해야 할 대상이 사라지면서, 엄마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딸에게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으며,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딸 , 딸의 행동에 대해 분노를 드러내는 엄마의 모습이 교차된다. 돌아켜 보면 그런 것 같다. 매주 외할머니를 보려 가면, 외할머니의 모습은 심각할 때가 있다. 엄마의 기준으로 볼 때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런 걸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외할머니)의 모습이 기분나쁜 거다. 서로의 감춰진 분리불안은 서로를 옥죄고 있으며, 내 안의 감정 찌꺼기를 털어내지 못하고 서운함이 쌓이게 된다. 


쓸쓸하게 혼자 있는 엄마에게 분노의 감정을 갖는 것도 나의 이기심 때문 아닐까? 엄마의 말에 위화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때마다 이렇게 그보다 두세배 더 강한 죄책감이 끓어올라 당신을 괴롭혔을 것이다. (p135)


엄마가 딸을 바라보는 시선과 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그건 딸이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덟 번 들으면 두 번 말...나 아들이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딸과 엄마의 마음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개입하고 터치하게 된다. 딸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딸의 몸이 내 몸이니까, 딸이 아프면 내가 아픈거다.그런데, 그 감정을 서로에게 드러내지 못하면서 갈등의 씨앗이 되고, 서로가 헤묵은 과거의 이야기를 드러내면서 다시 싸움을 반복한다. 반면 아들은 그렇지 않다. 서로 이질감을 느끼기 때문에 서로 조심하게 되고,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엄마가 아들에게 하는 것처럼, 아들이 엄마에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불편한 관계가 엄마와 딸 관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만약 엄마-나(엄마) -딸로 이어지는 관계라면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된다. 중간에 끼여있는 나(엄마)는 자신의 엄마의 행동에 대해 상처를 입고, 자신은 엄마와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엄마와 나(엄마)의 관계가 나(엄마)와 딸의 관계가 될 수 있고,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분리불안의 실체는 엄마가 돌아가시게 되면 자신이 그걸 답습하게 되고, 그 분리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딸에게 또다른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그런 내 안의 부정적이고 , 자신을 파괴하는 감정의 찌꺼기를 어딘가에 써내려가면서 털어내야만 엄마-나-딸로 이어지는 부정적 감정의 연결고리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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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 가까울수록 상처를 주는 모녀 관계 심리학 - 가까울수록 상처를 주는 모녀관계 심리학
가야마 리카 지음, 김경은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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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관계를 알고 싶었다. 때로는 친구 같으면서, 때로는 치열한 웬수처럼 싸우는 딸과 엄마의 모습을 보면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바로 나의 엄마와 외할머니 관계였다. 살아계실적 엄마와 외할머니는 웬수처럼 싸웠고, 시골에 들어갈 때마다 그랬던 것 같다. 서로 무슨 문제가 있어서 저렇게 싸우고,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서로 그러는 걸까, 옆에서 보기엔 한쪽이 잘못하고, 한쪽이 덜 잘못한 것처럼 보이지 않고, 서로 똑같은 모습으로 비춰졌고, 절대 지지 않으려는 딸과 딸을 이겨 먹으려는 엄마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나타날 때가 있다. 그것은 살아생전 치열했던 모습이 한쪽이 세상을 떠날 때 상처로 남게 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픔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 상처는 분명 주변 사람들에게 향한다. 그 안에 감처진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서로 떨어지고 싶지만 떨어질 수 없는 관계와 심리를 엿보고 싶어서 이 책을 펼쳐들었다. 


"엄마는 평소엔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면서 왜 이럴 때만 어른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할까요? 어릴 때부터 나를 과잉보호했으면 지금도 변함없이 나를 돌봐주어야 하지 않나요? 이제 와서 본인이 나이 들었다고 피해버리다니, 정말 너무하지 않아요?"(p23)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다. 아기가 아이가 되고,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가는 딸의 모습. 그 과정에서 엄마도 나이가 먹으면서 삶이 바뀌게 된다. 체력도 떨어지고 여기저기 아파오는데, 딸을 바라보는 시선은 변하지 않는다. 몸에 배인 습관이 딸을 구속하고 간섭하고 통제하게 된다. 정작 딸이 엄마가 필요한 순간 엄마는 '나는 모른다'고 말한다. 그건 딸의 입장에선 분노였고, 증오였으며, 혐오갑이었더., 엄마는 딸을 자신의 거울로 생각하고, 딸이 잘못되면 자신이 잘못되었다 생각한다. 딸도 마찬가지이다. 서로가 자신의 그림자이거나 거울이 되면서, 서로를 구속하려 들고 때로는 벗어나려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갈등이 해결되지 못하고, 서로 싸움이 반복된다.


딸을 지배하려는 엄마의 심리는 '분리불안'과 관련이 있다. 이전까지 분리불안은 '부모와 떨어지기를 지나치게 싫어하는 심리'라고 해서 아이의 관점에서만 연구되었다. 그러나 최근 심리학에서는 부모의 분리불안을 주목하고 있다. 발달심리학은 '아이를 남겨두는 것에 대한 서운함과 걱정, 죄책감 등 불쾌한 감정' 이라고 부모 중에서도 엄마의 분리불안을 정의 했다. (p104)


엄마의 마음 속 분리불안에 대해서 짚어나가고 있다. 보편적으로 분리불안은 아이의 기준으로 바라보았다. 아기가 엄마가 갑자기 안 보일 때 분리불안을 느끼고 울거나 보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분리불안이 있다. 엄마의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의지해야 할 대상이 사라지면서, 엄마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딸에게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으며,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딸 , 딸의 행동에 대해 분노를 드러내는 엄마의 모습이 교차된다. 돌아켜 보면 그런 것 같다. 매주 외할머니를 보려 가면, 외할머니의 모습은 심각할 때가 있다. 엄마의 기준으로 볼 때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런 걸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외할머니)의 모습이 기분나쁜 거다. 서로의 감춰진 분리불안은 서로를 옥죄고 있으며, 내 안의 감정 찌꺼기를 털어내지 못하고 서운함이 쌓이게 된다. 


쓸쓸하게 혼자 있는 엄마에게 분노의 감정을 갖는 것도 나의 이기심 때문 아닐까? 엄마의 말에 위화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때마다 이렇게 그보다 두세배 더 강한 죄책감이 끓어올라 당신을 괴롭혔을 것이다. (p135)


엄마가 딸을 바라보는 시선과 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그건 딸이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아들이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딸과 엄마의 마음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개입하고 터치하게 된다. 딸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딸의 몸이 내 몸이니까, 딸이 아프면 내가 아픈거다.그런데, 그 감정을 서로에게 드러내지 못하면서 갈등의 씨앗이 되고, 서로가 헤묵은 과거의 이야기를 드러내면서 다시 싸움을 반복한다. 반면 아들은 그렇지 않다. 서로 이질감을 느끼기 때문에 서로 조심하게 되고,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엄마가 아들에게 하는 것처럼, 아들이 엄마에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불편한 관계가 엄마와 딸 관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만약 엄마-나(엄마) -딸로 이어지는 관계라면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된다. 중간에 끼여있는 나(엄마)는 자신의 엄마의 행동에 대해 상처를 입고, 자신은 엄마와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엄마와 나(엄마)의 관계가 나(엄마)와 딸의 관계가 될 수 있고,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분리불안의 실체는 엄마가 돌아가시게 되면 자신이 그걸 답습하게 되고, 그 분리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딸에게 또다른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그런 내 안의 부정적이고 , 자신을 파괴하는 감정의 찌꺼기를 어딘가에 써내려가면서 털어내야만 엄마-나-딸로 이어지는 부정적 감정의 연결고리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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