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ournal of John Wesley (Audio CD, Unabridged)
존 웨슬리 / Blackstone Audio Inc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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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어떤 원칙에서 행동을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원칙은 이것입니다.'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그렇게 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확인이 있으며, 그곳에 가야 한다는 확신입니다.' 이 원칙에서 나는 미국에도 갔었고, 이 원칙에서 모라비아 교회를 방문하기도 하였고, 이제도 같은 원칙에서 아비시니아나 중국 같은 곳 어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어디는지 부르시는 대로 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로 나의 확신입니다.(p86)


군중들은 아직도 길을 돌면서 감리교도라고 불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욕을 하며 그들이 감리교를 떠나지 않으면 다 죽여 버리고 그들의 집을 다 부수겠다고 협박읗 하였다. (p202)


제가 생각하기엔 뉴게이트만큼 공포의 지옥 같은 곳이 다시 없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뉴게이트만큼 불안과 공포로 싸여 있던 곳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 가닥이라도 인간성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엄청난 더러움, 악취 비참함과 사악함에 충격을 받곤 했었습니다. 몇 주일 전에 그 곳에 가 보았는데 나는 그곳의 변화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p280)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p342)


오늘로 69세가 되었다. 자신을 돌이켜 보면 놀랍기만 하다. 목소리나 기력에 있어 29세 청년에 뒤떨어지지 않으니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다(p357)


"이제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 옛날에는 이 지상의 천국에선 경험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하나님과의 사귐을 지금 즐기고 있다"(p386)


영국의 종교개혁가 존 웨슬리는 1703년에 태어나 1791년 하나님의 곁으로 따라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데 ,자신의 삶을 다해왔던 존 웨슬리의 삶이 '존 웨슬리의 일기' 속에 기록된다. 18세기 영국 사회를 온전히 기억하고 살아왔던 존 웨슬리의 일기 속에는 400년전 영국사회의 민족적인 특징, 종교적인 색체를 엿볼 수 있으며,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도 감리교의 일원이었다. 감리교의 창시자로서 존 웨슬리는 자신의 일기를 통해 영원한 설교자로서 거듭났으며 ,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자 원하는 목자들에게 다가가게 된다. 가난과 고통으로 얼룩진 이들에게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도록 앞으로 전진해 나갔으며 ,죄를 지은 영국인들에게 회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거듭난 존 웨슬리는 영국 뿐 아니라 미국과 동아시아 곳곳을 다니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원칙과 의도에 따라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게 된다. 반면 영국 사회는 감리교인을 배척했으며, 때로는 또다른 고통을 주어 존 웨슬리를 내쫒았다. 하지만 존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에 따라서 선교활동과 설교자로서의 본분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며, 죄를 지은 이들을 구원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신을 온전히 성경의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존 웨슬리의 일기'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으며, 하나님에게 다가가는 기나긴 여행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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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urnal of John Wesley Lib/E (Audio CD)
존 웨슬리 / Blackstone Audio Inc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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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어떤 원칙에서 행동을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원칙은 이것입니다.'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그렇게 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확인이 있으며, 그곳에 가야 한다는 확신입니다.' 이 원칙에서 나는 미국에도 갔었고, 이 원칙에서 모라비아 교회를 방문하기도 하였고, 이제도 같은 원칙에서 아비시니아나 중국 같은 곳 어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어디는지 부르시는 대로 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로 나의 확신입니다.(p86)


군중들은 아직도 길을 돌면서 감리교도라고 불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욕을 하며 그들이 감리교를 떠나지 않으면 다 죽여 버리고 그들의 집을 다 부수겠다고 협박읗 하였다. (p202)


제가 생각하기엔 뉴게이트만큼 공포의 지옥 같은 곳이 다시 없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뉴게이트만큼 불안과 공포로 싸여 있던 곳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 가닥이라도 인간성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엄청난 더러움, 악취 비참함과 사악함에 충격을 받곤 했었습니다. 몇 주일 전에 그 곳에 가 보았는데 나는 그곳의 변화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p280)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p342)


오늘로 69세가 되었다. 자신을 돌이켜 보면 놀랍기만 하다. 목소리나 기력에 있어 29세 청년에 뒤떨어지지 않으니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다(p357)


"이제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 옛날에는 이 지상의 천국에선 경험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하나님과의 사귐을 지금 즐기고 있다"(p386)


영국의 종교개혁가 존 웨슬리는 1703년에 태어나 1791년 하나님의 곁으로 따라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데 ,자신의 삶을 다해왔던 존 웨슬리의 삶이 '존 웨슬리의 일기' 속에 기록된다. 18세기 영국 사회를 온전히 기억하고 살아왔던 존 웨슬리의 일기 속에는 400년전 영국사회의 민족적인 특징, 종교적인 색체를 엿볼 수 있으며,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도 감리교의 일원이었다. 감리교의 창시자로서 존 웨슬리는 자신의 일기를 통해 영원한 설교자로서 거듭났으며 ,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자 원하는 목자들에게 다가가게 된다. 가난과 고통으로 얼룩진 이들에게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도록 앞으로 전진해 나갔으며 ,죄를 지은 영국인들에게 회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거듭난 존 웨슬리는 영국 뿐 아니라 미국과 동아시아 곳곳을 다니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원칙과 의도에 따라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게 된다. 반면 영국 사회는 감리교인을 배척했으며, 때로는 또다른 고통을 주어 존 웨슬리를 내쫒았다. 하지만 존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에 따라서 선교활동과 설교자로서의 본분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며, 죄를 지은 이들을 구원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신을 온전히 성경의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존 웨슬리의 일기'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으며, 하나님에게 다가가는 기나긴 여행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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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일기 세계기독교고전 3
존 웨슬리 지음, 김영운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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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어떤 원칙에서 행동을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원칙은 이것입니다.'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그렇게 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확인이 있으며, 그곳에 가야 한다는 확신입니다.' 이 원칙에서 나는 미국에도 갔었고, 이 원칙에서 모라비아 교회를 방문하기도 하였고, 이제도 같은 원칙에서 아비시니아나 중국 같은 곳 어디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어디는지 부르시는 대로 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로 나의 확신입니다.(p86)


군중들은 아직도 길을 돌면서 감리교도라고 불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욕을 하며 그들이 감리교를 떠나지 않으면 다 죽여 버리고 그들의 집을 다 부수겠다고 협박읗 하였다. (p202)


제가 생각하기엔 뉴게이트만큼 공포의 지옥 같은 곳이 다시 없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뉴게이트만큼 불안과 공포로 싸여 있던 곳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 가닥이라도 인간성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엄청난 더러움, 악취 비참함과 사악함에 충격을 받곤 했었습니다. 몇 주일 전에 그 곳에 가 보았는데 나는 그곳의 변화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p280)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p342)


오늘로 69세가 되었다. 자신을 돌이켜 보면 놀랍기만 하다. 목소리나 기력에 있어 29세 청년에 뒤떨어지지 않으니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다(p357)


"이제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 옛날에는 이 지상의 천국에선 경험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하나님과의 사귐을 지금 즐기고 있다"(p386)


영국의 종교개혁가 존 웨슬리는 1703년에 태어나 1791년 하나님의 곁으로 따라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데 ,자신의 삶을 다해왔던 존 웨슬리의 삶이 '존 웨슬리의 일기' 속에 기록된다. 18세기 영국 사회를 온전히 기억하고 살아왔던 존 웨슬리의 일기 속에는 400년전 영국사회의 민족적인 특징, 종교적인 색체를 엿볼 수 있으며,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도 감리교의 일원이었다. 감리교의 창시자로서 존 웨슬리는 자신의 일기를 통해 영원한 설교자로서 거듭났으며 ,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자 원하는 목자들에게 다가가게 된다. 가난과 고통으로 얼룩진 이들에게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도록 앞으로 전진해 나갔으며 ,죄를 지은 영국인들에게 회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거듭난 존 웨슬리는 영국 뿐 아니라 미국과 동아시아 곳곳을 다니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원칙과 의도에 따라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게 된다. 반면 영국 사회는 감리교인을 배척했으며, 때로는 또다른 고통을 주어 존 웨슬리를 내쫒았다. 하지만 존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에 따라서 선교활동과 설교자로서의 본분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며, 죄를 지은 이들을 구원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신을 온전히 성경의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존 웨슬리의 일기'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으며, 하나님에게 다가가는 기나긴 여행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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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션 디자이너 - 영화미술감독이 생각하는 프로덕션 디자인
강승용.김지민 지음 / 비엠케이(BM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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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으로 영화 감독과 주연, 그리고 영화 제작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이 올라오게 된다. 그 이름들 중에서는 익히 눈에 들어온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는 이들도 존재한다. 특히 한 편의 영화를 준비하는데 중요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미술감독에 대해서 관객의 입장으로 보자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펼쳐본다면, 그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영화 한편에서 미술감독이 영화 제적에 있어서 얼마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보다는 우리는 미술감독이라는 단어를 더 즐겨 사용한다.그만큼 '프로덕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일반인에게는 낯설고,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 한편을 만들기 전에 제작자로서 영화 세트를 만들고, 영화 감독이나 영화 속에 인물들의 캐릭터를 잡아주는 것, 영화 제작 자본금에 맞춰서 영화의 배경을 설정하는 일련의 작업들을 하는 것이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하는 역할이며, 미적인 감각과 경영에 대한 지식을 동시에 요구되는 직업이다. 


저자는 20년 넘는 시간동안 영화와 함께 해 왔다. 왕의 남자, 사도, 리베라메 등등 우리 영화에서 굵직굵직한 흥행성적을 거두었던 영화의 세트 제작자로서, 영화 촬영하기 전 배경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숙지해야 프로덕션 디자이너로서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영화에 대한 이해,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작아주는 것,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등장인물 안에 숨어있는 이미지를 정확하게 잡아내 그들에 맞는 옷을 입혀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미적인 감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은 여기에 있다. 또한 영화를 촬영할 때 생기는 수많은 변수들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능숙하게 대처하는 것이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역할이며, 열악한 영화 제작환겨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직업이기도 하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상당히 흥미로운 직업이다. 수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미술에 대한 예술적 감각을 동시에 요구되는 직업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프로덕션 디자이너에게는 항상 영화 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할하게 이뤄져야 완성도 높은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질 수 있다. 영화 속에 숨어있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프로덕션 디자이너'에 대해서 관심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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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1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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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브룬디시움에 당도했습니다! 그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강력한 임페리움과 개선식, 로마 카피톨리누스 신전의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의 발밑에 월계관을 내려놓을 특권을 요구하기 위해섭니다. 작년 이 맘때 코그노멘이 킨나인 다른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는 이곳 근처에서 제 아버지의 퇴역명을 입대시키려 했지만 실패했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여러분께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앞에는 제 아버지의 수많은 퇴역병들이 모였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후계자입니다.! 그 분의 사람은 저의 사람이고, 그분의 과거는 저의 미래입니다. 술라는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 얼마나 많이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p67)


카이사르는 공식적으로 성인이 된 이래 유피테르 대제관을 속박하는 금기들을 지켜왔다. 그는 마르스 평원에서의 군사 훈련을 포기했고, 어떤 쇠붙이도 몸에 델 수 없었다. 옷이나 신발에 매듭이나 죔쇠도 쓸 수 없었고, 개에게 인사를 할 수도 없었으며, 사람이 죽이지 않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신발만 신었고, 유피테르 대제관이 먹어도 되는 음식만 먹었다. 카이사르에게 턱수염이 없는 건 청동 면도칼로 면도했기 때문이었고, 그가 신관용 나막신이 불편할 때 장화를 신을 수 있는 건 장화가 발목과 종아리에 편안하게 감기게 하는 일반적인 장치가 필요 없는 장화를 직접 발명했기 때문이었다. (p161)


공권박탈의 규칙과 적용을 다루는 술라의 코르넬리우스 법률은 철저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12월 초에 , 불과 이틀만에 완성되었다. 12월의 노나이 경에는 카툴루스의 예상대로 모든 것이 테쿨라의 질서 아래 잇었다. 만일의 사태는 모두 고려되었다. 공권박탈자 가문의 재산은 전부 국가의 것이 되었고, 죄 없는 어느 자손의 명의로도 이전할 수 없었다. 공권박탈자의 유언장은 전부 무효였으며, 거기 적힌 어떤 상속자도 상속할 수 없었다. 법에 따르면 공권박탈자를 목격한 사람은 남녀불문하고 그를 살해할 수 있었다. (p309)


"그러면 국가적 차원에서 문제가 까다로워지네. 나는 자네를 죽일 수 없고, 대제관 자리가 싫은 자네는 킨나 딸이 있어야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으니 이혼을 하지 않으려고 햐. 굳이 명예나 윤리나 원칙에 관해 거창한 해명 따위를 늘어놓지도 않고 말이야!" 별안간 그의 망가진 얼굴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팍삭 늙어버린 사람의 표정이 떠올랐다. 축 늘어진 입술이 접혔다가 펄럭이며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는 마치 다음 자식을 통째로 삼키려고 바라보는 크로노스 같았다." 우슨 일이 있었는지 어머니가 자네에게 말하던가?"
"독재관께서 저를 살려주셨다는 말만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p444)


전쟁에서 승리하고 로마 본토와 로마의 속주를 지킨 술라는 독재관이 되었고, 로마를 장악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수석 집정권을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꽂을 수 있었으며, 원로원도 장악할 수 있는 힘도, 호민관도 마찬가지였다. 술라는 로마의 법을 술라에게 유리한 법으로 바꿔 놓음으로서, 앞으로 자신의 정적이 될 싹들을 제거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는 술라라 하더라도 한가지 못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로마를 이끌 미래의 위대한 지도자 카이사르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노파의 예언은 술라의 운명에 있어서 발목 잡히는 결정적인 원인제공자였으며, 카이사르에게 유피테르 대제관이라는 직위를 가지게 된 카이사르에게는 그 직위가 자신의 운명을 발목 잡힐 수 있는 또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 그건 술라가 의도한 대로였으며, 유피테르 대제관은 카이사르가 군사적인 행동, 지휘자가 될 가능성에 대해서 싹을 도려내고 싶었던 술라의 은밀한 야심이 숨어 잇었다, 술라는 자신에게 유리한 제안을 카이사르에게 하게 되는데, 카이사르의 아내 킨나의 딸과 이혼하는 것이었다. 그 제안은 카이사르의 유피테르 대제관에 대해서 족쇄가 풀리는 달콤한 제안이었지만, 카이사르는 그것을 거부하게 된다. 아우렐리아의 아들로서 카이사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제 로마는 카이사르의 시대가 곧 찾아오게 된다. 마이우스 마르쿠스가 죽은 이후, 카이사르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고, 폼페이우스도 로마의 실세로 부각되고 있다.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술라에게 한 가지 약점이 있었으니, 전쟁의 휴유증으로 얻게 된 피부병이다. 온몸이 간지러웠던 술라는 특별히 자신에게 맞는 연고를 달고 살아아고 있다. 권력을 영원히 유지하고 싶었던 술라는 자신과 너무나 닮았던 카이사르를 죽일 수 없었고, 그가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하나의 가교 역할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술라가 앞으로 카이사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전쟁의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가까이 가고 있는 로마의 새로운 권력자로서, 포르투나 여신의 구애를 받을 자가 누구인지 ,로마의 새로운 변화와 혁명이 예견되고 있으며, 카이사르의 성장과 술라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불안 , 그 하나 하나 짚어 나가는 즐거움이 이 책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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