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하여
마광수 지음 / 어문학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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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그의 초창기 소설 <가자, 장미여관으로>,<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즐거운 사라> 가 출간 금지가 되고 구속 되었을 당시만 하여도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그당시 다양한 소설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마광수의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으며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언론과 법에 의해 마광수의 작품들은 아웃사이더로서 배척당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의 생각과 가치관은 시대를 앞서 나갔던 것이며 지금으로 말하면 혁신이다. 다만 세상은 그의 생각과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마광수 스스로 <인간에 대하여>에서  세상의 부조리한 모습에 대해서 자신이 고통받아야 햇던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 모습에 공감이 갔다. 


<인간에 대하여>은 마광수의 소설이 아닌 에세이며,그의 생각과 가치관이 쓰여져 있다.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확인해 보는 과정과 마광수 스스로의 생각과 가치관에 대해 탐구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기존의 학교에서 배웠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를 부정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동물로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답을 찾아가고 있다. 


마광수는 인간이 만든 사회라는 개념은 인공적인 요소로서 인간이 한곳에 정착하면서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틀이며, 처음부터 인간에게 사회라는 개념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인간에게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인간을 동물과 구분짓기 위한 도구로서 언어를 사용한 것에 불과하며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 아닌 본능에 가까운 기존의 동물과 다를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건 죽을 때까지 마흔 다섯개의 단어만 알았던 늑대소녀 가바라가 대표적이며, 책에는 없지만 신비한 서프라이즈에서 늑대소녀 가바라와 같은 동물과 같은 형태의 인간의 모습에 대해 소개되었기에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이처럼 그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짓은 것에 대해 거부하고 있는 이유는 그 스스로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고통을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그가 소설 작품을 써내려 가면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출간 했을 뿐인데 그는 기존의 법과 제도로 인하여 자신이 추구하였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금지되었으며 결국 구속되었다. 그럼으로서 그는 사회적 인간의 모습이 아닌 개인적 인간을 기준으로 그에 부합하는 증거들을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며, 그렇게 해야 자신의 그동안 해왔던 작품들이 세상 속에서 재해석되고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생각과 가치관 속에서 모든 것이 틀렸다고 할 수 없으며 공감가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자신이 지향하고자 하는 것..즉 기존의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 틀에 대해 순응하는 것보다는 맞서고 저항하는 것을 해왔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인 성욕에 대해서 다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사회라는 틀에 갇혀서 법과 제도를 이용하여 금지와 통제를 함으로서 권력을 가지려고 인간이 존재하게 되고, 인간의 이성 안에 감추어진 도덕과 파멸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에 관한 본질을 찾아가는 마광수의 에세이 안에는 그의 그동안의 작품 세계를 간략하게 엿볼 수 있으며 여전히 세상의 부조리함과 모순에 대해 싸우고 있는 마광수의 모습 또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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